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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자동차 연대기] 자동차를 평생 친구 삼은 나에게 잊히지 않는 녀석들

나윤석 입력 2018.02.20 15:27 수정 2018.02.20 15:28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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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차를 다 가질 능력은 되지 않아 그걸 직업으로 삼았다

‘취미가 직업이 되는 것이 반드시 행복한 것만은 아닐까?’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어려서부터 내가 가장 좋아했던 친구인 자동차가 여러 가지 형태로 평생의 직업이 되어 지금까지 살아본 경험이 그렇다. 이제 오십 살이 넘었으니 전반전을 되돌아보니 그렇다. 축구 경기를 즐기기 위하여 반드시 선수가 될 필요는 없지 않은가? 따뜻한 히터가 나오고 음식이 잘 차려진 VIP 박스에서 즐기는 것도 좋은 방법이리라. 다른 일로 돈을 열심히 벌어서 좋아하는 차를 사는 것도 괜찮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직업이 되면 잠시 쉬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으니까 자칫하다간 친구도 잃어버릴 수 있겠다 싶은 적도 솔직히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래도 나는 조금 진하게 자동차를 좋아했던 모양이다. 지치고 꼴 보기 싫다가도 하룻밤만 지나고 나면 또다시 자동차 생각뿐이었으니까 말이다. 내 아이들의 나이를 셀 때도 자동차처럼 ‘1996년식, 1998년식’이라고 불렀고 스무 살이 넘어 성인이 되자 ‘보증기간 끝났다’라고 이야기하는 것을 축하의 표현이라고 했던 나다. 이 정도로 차를 좋아했던 나였기에 취미 정도로 끝낼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진짜 좋아한다면 몸으로 부딪쳐보고 싶지 않은가? 다시 축구로 비유하자면 돈이 엄청나게 많아서 구단주나 거물 매니저가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면 역시 선수가 되는 것이 길이다. 그게 내가 자동차를 평생 친구로 가진 방법이다. 좋아하는 차를 다 가질 능력은 되지 않는다면 그것을 직업으로 삼자. 그러면 항상 가까이 있을 수 있을 테니까.

그래서 나는 자동차를 직업으로 택했다. 그것도 자동차와 가장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제품과 관련된 일을 하려고 노력했다. 그 전에는 자동차를 더 깊게 알고 싶어서 애프터서비스와 트레이닝 관련 일을 했다. 애프터서비스를 할 때는 좀 더 깊은 기술적 자료를 접하면서 기능사와 기사 자격증 공부를 하는 것이 신났었고 트레이닝을 할 때는 새로운 지식을 접하는 것이 즐거웠고 그것을 동료들과 나누면서 괜히 내 자식을 소개하는 듯한 가벼운 흥분을 느끼기도 했다.

제품 기획자들 가운데에는 자동차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불문율이 있다. 그것은 첫째 ‘일반 고객들이 나와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회사는 망한다’이고 둘째는 ‘내가 좋아하는 차만 하면 회사는 망한다’이다. 이 ‘회사가 망하는’ 실수를 피하기 위해 나름 방법들을 찾는데 내가 선택한 방법은 ‘5 : 1 원칙’이었다. 그러니까 회사가 좋아할 모델 다섯 개에 내가 좋아하는 모델 하나를 섞는 원칙이었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모델도 이기적인 것은 아니어야 했다. 미래의 시장을 위한 포석이거나 브랜드의 가치를 잘 표현할 수 있는 모델, 즉 이미지 모델이었던 것이다.

아우디 올로드 콰트로는 여러모로 노림수가 많았던 모델이었다. Q7이 나오기 전에는 아우디에게는 SUV가 없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SUV 규정, 즉 최저 지상고, 통과 각도, 차동 제한 장치 등 네 가지 조건 가운데 세 가지만 만족시키면 SUV로 간주되는 규정을 면밀히 검토한 결과 올로드 콰트로가 SUV로 분류될 수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쾌재였다. 회사에게는 SUV를 선물하면서 동시에 내가 좋아하는 세 가지를 미래를 위한 포석으로 실현할 수 있었다. 그 세 가지는 볼보 V70 XC같은 올라운드 플레이어, 승용차와 같은 감각으로 드라이빙을 즐길 수 있는 라이프스타일 모델인 왜건, 그리고 당시에는 불가능했던 승용 디젤의 최초 도입이었다.

아우디 코리아 이전에 수입되었던 RS6에도 사연은 많다. BMW M5와 메르세데스 벤츠 E55 AMG는 알지만 아우디 RS는 아는 사람만 알던 시절. 지금은 기정 사실이 된 ‘고출력에는 4륜 구동’이 옳다고 생각했고 아우디 콰트로의 강점을 단번에 알릴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아우디가 순한 차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 내부 설득이 쉽지 않았다. 다행인 것은 당시에 A6의 판매가 좋았기 때문에 겨우 허락을 받아서 여섯 대를 들여올 수 있었다. 낮에는 회사에서 일하고 밤새도록 인증 시험용 차량을 타면서도 하나도 피곤하지 않았던 그 시절의 추억이 있다.

밤도 많이 샜다. 하지만 즐거웠다. 지금은 아픈 손가락이 되었지만 2005년 가을의 폭스바겐 디젤의 1차 도입, 즉 페이톤 3.0 TDI, 투어렉 3.0 TDI, 그리고 골프 TDI의 준비 과정은 힘들었지만 아우디 시절 올로드 콰트로 TDI로 우회적인 방법으로 씨를 뿌렸던 승용 디젤 시장을 제대로 열어젖힐 수 있었기 때문에 힘든 줄 몰랐다. 투어렉이야 SUV니까 그냥 두어도 되었다. 하지만 대형 리무진인 페이톤의 TDI는 페이톤과 디젤 두 가지를 한꺼번에 성공시키기 위한 노림수였고 결국은 대성공이었다.

그러나 가장 정성을 들였던 것은 골프 TDI였다. 폭스바겐의 현재와 미래를 위해 가장 중요한 요소인 골프, TDI, 그리고 DSG 변속기가 결합된 전략의 핵심이었기 때문이다. 시생산 모델을 갖고 <모터 트렌드> 김형준 편집장과 밤새도록 폭우가 내리던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골프 TDI DSG를 어필하려 애썼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김형준 편집장과의 인연이 더 진득해진 중요한 계기이기도 해서 더욱 애틋하다.

이들 말고도 기억에 남는 모델들은 많다. 판매는 어려웠지만 고객들의 충성도는 높았던 파사트 바리안트, 폭스바겐의 끝판왕이었던 투어렉 V10 TDI와 R50, 그리고 독일 본사와의 담판 끝에 도입할 수 있었던 골프 R32와 GTI 파렌하잇 등 폭스바겐이 성공해준 덕분에 나도 행복한 기억을 많이 가질 수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무대에서 소개할 수 있었던 가장 순수한 종마였던 페라리 458 스페치알레의 기억. 그 때의 손맛은 아직도 내 손을 찌릿하게 생생하다.

어렸을 적 나 때문에 고생했던 아버지의 업무차,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자마자 겁도 없이 샀던 나의 첫 차 흰색 프라이드 DM 3도어 수동, 그리고 긴 여정을 돌아 다시 내 손에 있는 소형 해치백인 스파크 LTZ 수동까지 나에게 자동차는 친구이자 내 인생 자체다.

하지만 지금도 여전히 흥분된다. 남아있는 인생 후반전에는 어떤 차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자동차 칼럼니스트 나윤석

나윤석 칼럼니스트 : 수입차 브랜드에서 제품 기획과 트레이닝, 사업 기획 등 분야에 종사했으며 슈퍼카 브랜드 총괄 임원을 맡기도 했다. 소비자에게는 차를 보는 안목을, 자동차 업계에는 소비자와 소통하는 방법을 일깨우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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