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시승] 엑센트와 비교하지 말아주오, 르노 클리오

조회수 2018. 5. 16. 16:4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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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15일, 강릉행 열차에 올라탔다. 르노 클리오를 시승하기 위해서다. 보통 시승은 서울 근교를 다녀오기 마련. 르노삼성은 ‘태풍의 눈’ 대신 불어로 마름모란 뜻의 ‘로장쥬(Losange)’ 엠블럼 단 식구를 맞이하기 위해 보다 특별한 곳으로 기자들을 초대했다.

시승 코스는 골든튤립 스카이베이 경포호텔을 시작으로 하슬라 아트월드를 거쳐 다시 출발지로 돌아오는 왕복 126㎞. 2인 1조로 짝을 지어 1명 당 편도 63㎞를 몰아볼 수 있었다. 고속도로부터 꼬부랑길의 연속인 해안로, 고저차 심한 산길을 누비며 프랑스 출신 해치백의 실력을 깊숙이 들여다볼 수 있었다.

르노 클리오의 이유 있는 가격

시승에 앞서 서울 강남구 신사동 가로수길에 자리한 ‘르노 아뜰리에 서울’에서 클리오의 외모를 보고 왔다. 첫인상은 합격점. 잘생긴 얼굴과 다부진 몸매는 클리오의 으뜸 매력이었다. 하지만 소형차 치고 꽤 높은 가격이 발목을 잡았다. 젠(ZEN) 트림은 1,990만~2,020만 원, 인텐스(INTENS)는 2,320만~2,350만 원.

비슷한 가격대를 갖춘 여러 차종들이 머릿속을 스쳤다. ‘내가 타고 있는 1,430만 원짜리 현대 엑센트 디젤보다 뭐가 더 좋길래….’ 시승 초청을 받고 엑센트와 비교를 하고 오겠다고 마음먹었다. 비교대상이 있으니 클리오의 장단점을 보다 확실히 가릴 수 있을 거라고 자신했다. 결과적으로 ‘긁어 부스럼’이었다. 엑센트는 ‘소형차의 정석’과 견주긴 역부족이었다.

특히 주행성능에서 실력 차이가 확연히 드러났다. 르노삼성이 미니 쿠퍼 디젤과 푸조 208을 경쟁상대로 지목한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다. 수입 소형 해치백과 비교하니 클리오의 가격에도 수긍이 갔다. 오히려 ‘가성비’ 좋은 차로 느껴지기까지 했다.

유럽 챔피언의 등장 역사

클리오의 ‘가성비’는 이미 유럽에서 오랫동안 인정받아 왔다. 유럽 B세그먼트 시장 판매왕이 바로 클리오다. 2016년과 2017년도 마찬가지였다. 폭스바겐 폴로와 포드 피에스타, 푸조 208, 현대 i20 등 B 세그먼트를 조준한 차들은 수두룩하지만 누구도 클리오를 넘지 못했다. 덕분에 클리오는 출시 후 29년 동안 1,400만 대 판매를 기록하며 유럽을 장악했다.

클리오의 시작은 1971년 르노5로부터. 1967년 6월, 중동에 스산한 분위기가 일기 시작했다. 이스라엘이 이집트와 요르단, 시라아에 기습공격을 감행한 까닭이다. 결국 이스라엘은 이들의 영토 일부를 손에 쥐었다. 페르시아만 6개 석유수출국은 원유를 정치적 무기로 사용할 계획을 세운다. 목적은 이스라엘 철수. 1973년 10월 원유가격이 17% 치솟으며 제1차 석유파동이 터졌다.

중동 사막 나비의 날갯짓에 전 세계에 혼란이 찾아왔다. 유럽도 직격탄을 맞았다. 소비자들은 기름 적게 먹는 소형차로 눈을 돌렸다. 르노5가 주목받은 때도 바로 이 시기. 단번에 유럽 베스트셀러를 꿰찼다. 1990년 르노는 차체 크기를 키운 클리오를 내놓는다. 연료 효율은 그대로 가져가면서 공간 활용성은 높인 1세대 클리오는 데뷔 후 1년 만에 ‘유럽 올해의 차’를 수상했다.

이밖에도 클리오가 29년 역사를 지켜오며 차지한 타이틀은 수없이 많다. 1998년 등장한 2세대 클리오는 유로NCAP에서 소형차 최초로 별 네 개를 거머쥐며 높은 안전성을 인정받았다. 3세대 클리오는 한 술 더 떠 최고등급인 별 다섯 개를 받아 들었다. 그 결과 출시 이듬해인 2006년 ‘유럽 올해의 차’에 다시 한 번 이름을 올렸다. 1964년 시작한 유럽 올해의 차 역사에 이름을 2번 올린 차는 폭스바겐 골프와 오펠 아스트라, 르노 클리오뿐이다.

작지만 배려 깊은 패밀리카

국내에 출시한 4세대도 높은 안전성을 뽐낸다. 3세대와 마찬가지로 유로NCAP에서 별 다섯 개를 이마에 붙이며 소형차 부문 ‘2012 올해의 가장 안전한 차’에 올랐다. 어른부터 카시트가 필요한 어린이까지 모두 합격점을 받았다. 클리오의 카시트 고정장치(ISO FIX)는 동반석과 좌우 뒷좌석을 포함해 3개. 작은 차지만 가족을 생각한 배려는 대형차 못지않다.

클리오는 문 5개 가진 어엿한 패밀리카. 단 어린 아이 둔 부모라는 조건이 있다. 뒷자리가 다소 좁은 까닭이다. 클리오의 1열 시트부터 천장까지 높이는 880㎜, 2열은 847㎜다. 적당히 누워있는 뒷좌석 등받이 각도 덕분에 성인이 앉아도 머리 공간은 부족하지 않다. 다만 무릎 공간이 협소해 오랜 시간 앉아 가기 힘겹다. 짐 공간은 넉넉하다. 클리오의 트렁크 용량은 300L, 2열 시트를 접으면 1,146L까지 늘어난다. 또한 길이 1,388㎜짜리 물건도 집어 삼킨다.

갓 운동 마친 인간의 부푼 근육을 닮은 디자인

4세대 클리오는 2012년 10월 등장했다. 르노는 디자인과 연료 효율에 초점을 맞춰 네 번째 진화를 꿈꿨다. 클리오를 그린 주인공은 로렌스 반 덴 애커(Laurens Van den Acker). 그는 2010년 파리 모터쇼에서 콘셉트카 드지르(DeZir)를 공개하며 르노의 새로운 디자인 철학을 선보였다. 주제는 ‘사랑’. 4세대 클리오는 새 옷으로 갈아입은 르노의 첫 번째 모델이다. 드지르와 같이 ‘따뜻함’을 담아냈다고.

로렌스 반 덴 애커는 클리오의 디자인을 “인간의 근육을 닮은 감각 덩어리”라고 설명했다. 유려한 선으로 풍만한 곡면을 그렸다. 압권은 뒤태. 마치 입 안 가득 물을 머금은 듯 팽팽히 부풀었다. 반면 2열 유리창에서 트렁크에 이르는 선은 얇게 저며 바짝 엎드린 자세를 완성했다. 한 눈에 보기에도 무게중심이 낮아 안정적이다.

낮은 무게중심에서 찾은 운전 재미

단순히 눈을 속인 건 아니다. 4세대 클리오의 길이와 너비, 높이는 4,060×1,730×1,450㎜. 3세대보다 23㎜ 넓고 47㎜ 낮게 설계했다. 지면에서 차체 바닥까지 높이는 단 120㎜. 국내 자동차 정기검사를 겨우 통과할 정도로 낮다. 덕분에 움직임이 민첩하고 안정적이다. 갑작스러운 스티어링 휠 조작에도 흐트러짐 없이 자세를 고쳐 잡았다.

단단함과 부드러움 사이에서 적당한 타협점을 찾은 서스펜션 세팅도 매력적이다. 자잘한 진동은 걸러내면서 앞뒤와 좌우 쏠림은 최소화했다. 특히 과속 방지턱을 만났을 때 움직임이 놀라웠다. 보통 앞뒤 바퀴의 거리가 짧은 소형차들은 방지턱을 넘을 때 소란스럽기 마련이다. 클리오는 속도를 줄이지 않아도 부드럽게 대처했다.

클리오의 직렬 4기통 1.5L 디젤 엔진의 최고출력은 90마력, 최대토크는 22.4㎏·m다. 네티즌 사이에선 우스갯소리로 ‘심장병’ 엔진으로 통한다. 하지만 운전자가 느끼는 답답함은 생각보다 크지 않다. ‘차가 왜 이렇게 안 나가지?’라는 생각에 계기판을 보면 이미 원하는 속도를 훌쩍 넘겨 있었다. 독일 게트락 6단 변속기는 출력 낭비 없이 기어를 오르내렸다. 일상 주행이 어려워 출력에 목마름을 느꼈다기보단 안정적인 움직임 때문에 더 큰 힘을 내는 클리오가 궁금했다.

다만 쉽게 그립을 잃는 출고용 타이어(넥센 엔페라 AU5)가 아쉬울 따름이었다. 르노삼성에 따르면 유럽에 판매하는 클리오와 다른 점은 타이어 하나뿐이라고. 금세 비명 지르며 한계에 다다르는 타이어는 낮은 무게중심과 뛰어난 하체 세팅에서 오는 만족감을 희석시켰다. 내가 클리오를 산다면 가장 먼저 타이어를 바꿀 테다.

하이브리드도 아닌데 제동 시 전기 만들어 연비 높인 르노의 기술 집약체

높은 연료 효율도 매력적이었다. 시승이 있던 날 강원도 강릉의 날씨는 32℃를 넘나들며 후끈 달아올랐다. 시승 내내 에어컨 온도는 21℃, 바람세기는 3단으로 틀고 달렸다. 시승을 모두 마치고 트립 컴퓨터가 가리킨 연비는 13.5㎞/L. 급가속과 감속을 반복하고 오르막이 많았던 코스를 감안하면 나쁘지 않은 수치다. 참고로 이날 가장 높은 연료 효율을 기록한 동료 기자의 클리오는 19.5㎞/L를 나타냈다.

연료를 살뜰히 아끼는 클리오의 비결은 혹독한 다이어트였다. 4세대 클리오는 기존보다 약 100㎏ 감량에 성공했다. 르노는 살을 빼는 과정을 ‘십시일반’으로 설명했다. 가령 테일게이트는 폴리프로필렌으로 빚어 3㎏을 덜었다. 연료탱크는 기존보다 10L 작은 45L를 집어넣었다. 이외에 휠과 브레이크, 배기 시스템, 대시보드를 가르는 크로스 멤버, 드라이브 샤프트, 안티롤 바 등 여러 부분에서 무게를 조금씩 덜어냈다.

‘액티브 그릴 셔터’도 높은 연료 효율에 한몫 거들었다. 엔진을 식힐 필요가 없을 때 구멍을 막아 공기저항을 줄이는 장비다. 르노에 따르면 시속 130㎞로 달릴 때 셔터를 닫으면 연료를 100㎞ 당 0.1L 아낄 수 있다. 운전자가 셔터를 따로 조작할 순 없다. 주행환경에 따라 스스로 여닫는다.

또한 클리오는 제동할 때 버려지는 운동에너지를 전기로 바꾸는 효율을 18% 높였다. 감속하거나 멈출 때 알터네이터는 기존보다 더 많은 전기를 만들어 배터리에 저장한다. 이렇게 만든 에너지 대부분은 ‘스탑&고’ 기능으로 시동을 끈 엔진의 잠을 깨울 때 사용한다. 참고로 르노에 따르면 클리오의 엔진은 시동을 41만 번 걸어도 끄떡없다. 여느 자동차의 엔진보다 내구성이 약 7배 더 높다고.

만약 더 높은 연비를 원한다면 변속기 레버 옆에 자리한 ‘에코’ 버튼을 누르면 된다. 가속은 더디지만 연료를 최대 10% 아끼는 효과를 낼 수 있다. 또한 가속 상황에 따라 계기판 아래를 초록과 노랑, 주황으로 물들여 운전자의 연비 주행을 돕는다. 이렇게 해서 클리오는 복합 연비 17.7㎞/L를 얻었다.(도심 16.8㎞/L, 고속도로 18.9㎞/L)

톡톡 튀는 디자인과 무르익은 주행성능, 흐뭇함이 베어 나오는 높은 효율까지 클리오는 명성만큼 소형 해치백의 정석이었다. 하지만 이 차를 누구에게나 추천하고 싶진 않다. 분명 작은 크기가 갖는 한계는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작기 때문에 누릴 수 있는 즐거움도 가득하다. 경쾌함이다. 클리오는 운전에서 재미를 찾고 싶은 이들에게 권하고 싶은 자동차다. 수입 경쟁차종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을 생각하면 후회는 없을 테다.

글 이현성 기자

사진 르노삼성, 이현성


사진 르노삼성, 이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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