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현지시승] 페라리 최강 V8, 488 피스타

로드테스트 입력 2018.06.13 12:29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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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라리의 고향, 이탈리아 마라넬로에서 피오라노 트랙과 국도를 오가며 488 피스타를 시승했다. 페라리는 기존 488의 엔진과 섀시를 재설계해 무게와 마찰을 줄인 결과 출력은 720마력, 최고속도는 시속 340㎞까지 높였다. 488 피스타는 역대 어떤 V8 페라리보다 강력하면서도, 역설적으로 가속과 감속, 몸놀림은 가장 매끈하고 노련했다.

페라리 역사상 가장 강력한 V8 엔진


“여러분, 우리가 왜 초대했는지 잘 알고 계시죠?” 페라리 홍보총괄 조앤은 에둘러 말하는 법이 없다. 늘 단호하고 직설적이며 명쾌하다. 올해부터 난 영국의 한 출판사가 주관하는 ‘올해의 엔진(The international engine of the year)’에 심사위원으로 참여 중이다. 1999년 시작한 이 어워드는 올해 기준 나를 포함해 68명의 심사위원이 함께 하고 있다.

세상엔 꽤 많은 ‘올해의 차’ 상이 있다. 저마다 다른 목적과 구성, 방침에 따라 운영 중이다. 세계 최초는 1950년대 초 시작한 미국 자동차 전문지 <모터트렌드>. 이후 월드, 유럽, 북미, 일본 등 지역별 올해의 차가 하나둘씩 싹을 틔웠다. 친환경차, 자동차 디자인처럼 특정 주제만 심사하는 상도 생겼다. ‘올해의 엔진’ 역시 심사부문을 좁혀 차별을 꾀한 경우다.



올해의 엔진 가운데 페라리 같은 고성능 스포츠카 제조사가 가장 눈독 들이는 부문은 역시 ‘베스트 퍼포먼스 엔진’. 페라리는 2011년 458 이탈리아 이후 이 부문에서 왕좌를 놓친 적 없다. 게다가 2016~2017년엔 488의 V8 3.9L 트윈터보 가솔린 엔진을 앞세워 종합 우승격인 ‘올해의 엔진’까지 잇따라 싹쓸이했다. 이 정도 전적이면 욕심을 낼만도 하다.

게다가 최근 영국 맥라렌이 페라리의 수염을 집요하게 쥐어뜯고 있다. 둘은 현재 주거니 받거니 출력 경쟁을 이어가는 중. 페라리가 458 스페치알레(605마력)를 내놓으면 맥라렌이 650S(650마력)로 맞불 놓고, 다시 페라리가 488(670마력)로 응수하면 맥라렌이 720S(720마력)로 대적하는 식이다. 이번에 페라리가 준비한 패는 720마력의 488 피스타다.



명분도 충분하다. 페라리는 늘 V8 스포츠카를 선보인 뒤 ‘하드코어’ 버전을 더해 왔다. F355 챌린지, 360 챌린지 스트라달레, F430 스쿠데리아 등이 대표적이다. 이제 488 피스타가 그 뒤를 이을 차례. 페라리가 V8 엔진을 자연흡기에서 터보로 전향한 뒤 내놓는 첫 고성능 버전이다. 게다가 역대 페라리 V8 중 최강이라니 유독 뜨거운 관심을 모았다.

애간장 태우는 ‘밀당’의 달인, 페라리


페라리는 사람들 애간장 태우는데 도가 튼 브랜드다. 늘 수요보다 적게 만든다. 그나마 엔초 페라리의 ‘아바타’였던 루카 디 몬터제몰로 이후 세르지오 마르치오네가 지휘봉을 넘겨받으면서 느슨해졌다. 애태우기는 언론도 예외 없다. 페라리는 신차나 행사 관련 정보 또한 갈증을 느끼게 준다. 올해의 엔진 심사위원 중 일부를 초대한 이번 출장 역시 마찬가지.

심지어 초청장에 어떤 차종을 타게 될지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사실 우린 빤히 예상했지만, 시치미 떼고 모르는 척 했다. 아마도 488 피스타와 한바탕 놀 기회인 듯한데, 이 정도 ‘짝짝꿍’쯤이야. 마라넬로에 도착한 첫날 저녁, 공식일정이 막을 올렸다. 우리 숙소는 페라리 공장 정문 바로 맞은편 호텔. 조앤 따라 왕복 2차선 길을 건너 페라리 본부로 들어섰다.



그런데 제복차림 보안요원이 막아선다. 자기네 회사 홍보총괄이 인솔해 온 손님인데, “전원 여권을 확인해야 들여보낼 수 있다”며 물러설 기색이 없다. 주섬주섬 여권을 꺼내느라 한바탕 소동을 벌인 후에야 우린 공장 안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이 때문에 은근히 주눅이 들었는데, 가만 생각해 보니 기선(?)을 제압하기 위한 페라리의 의도 아니었을까도 싶다.

페라리는 어둠이 내린 본사 건물 중 하나에 프레젠테이션 룸을 마련했다. 수요보다 적게 만드는 게 원칙인 브랜드니, 퇴근 시간 이후엔 공장도 본사도 적막강산. 정적이 흐르는 방에서, 조앤이 뼈 있는 인사를 건넸다. 방 안을 둘러보니 터빈과 흡배기 매니폴드 등 488 피스타의 일부로 추정되는 부품을 테이블 위에 잔뜩 부려 놨다. 침이 꿀꺽 넘어갔다.



엔진 개발담당이 설명을 시작했다. 우린 슬라이드의 첫 페이지를 보고 흠칫 놀랐다. ‘촬영금지’를 뜻하는 픽토그램을 대문짝만 하게 그려놓은 탓이다. 누가 페라리 아니랄까봐. 다음 장엔 예상대로 페라리 488 피스타 사진이 나왔다. “우와~!” 올해의 엔진 심사위원단의 ‘눈치 100단’ 맞장구가 이어졌다. 우리의 반응을 본 조앤의 표정이 더없이 흡족해 보였다.

488 시리즈로 세 번째 찾은 피오라노


다음날 아침, 우린 일찌감치 페라리 셔틀버스에 올랐다. 목적지는 피오라노 트랙. 페라리 전 차종의 성능을 날카롭고 벼리고 매끈하게 다듬는 산실이다. 몇 개의 차단 봉을 지나 입구에 들어섰다. 대문에 ‘Pista de Fiorano’ 글씨가 선명했다. 여길 몇 번이나 왔으면서 피스타를 눈여겨보긴 이번이 처음. 피스타는 트랙, 출발선 등을 뜻한다. 이제 진짜 시작이다!

이미 피오라노엔 488 피스타의 청아한 노랫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덩달아 내 심장도 뛰기 시작했다. 피오라노 트랙 시승엔 나름의 룰이 있다. 먼저 페라리 테스트 총괄 드라이버 라팔레 드 시모네(Raffaele de Simone)가 모는 차에 동승해 코스 설명을 듣는다. 첫 바퀴는 부드럽게, 두 번째는 ‘악’ 소리 나게 돈다. 피오라노는 그의 직장이자 놀이터다.





그런데 488 피스타의 몰골이 더없이 험상궂다. 디지털 무늬 입힌 위장 필름을 덕지덕지 씌워놓았다. 올 초 제네바 모터쇼에서 이미 베일을 벗었지만, 트랙과 본사 주변 국도 양쪽을 아우르는 이번 시승 때 고객도 인도받지 않은 488 피스타가 노출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배려다. 이처럼 고객을 끔찍이 아끼는 철학이 수많은 충성 팬을 거느린 비결 아니었을까.



공교롭게 난 지금껏 피오라노 트랙에서 488 시리즈만 주구장창 탔다. 2015년 6월엔 488 GTB, 10월엔 488 스파이더를 몰았다. 이제 488의 ‘끝판 왕’ 차례. XL 헬멧에 머리를 쑤셔 넣고, 타이트한 시트에 몸을 얹었다. 시동 버튼을 누르자 배기음이 와락 쏟아져 나오며 알싸한 진동이 온 몸을 휘감는다. 변속기를 오토 모드에 놓고, 묵직한 첫 걸음을 뗐다.

거의 3년 만에 다시 찾은 피오라노 트랙. 구조는 이제 어느 정도 익혔다. 첫 바퀴는 몸 풀기. 피트를 빠져나와 뻑뻑한 가속 페달을 지그시 밟자 등 뒤에서 펑펑 폭죽 터지는 소리가 나며 전방의 소실점을 향해 빨려 들어간다. 첫 번째 헤어핀을 앞두고 급제동. 스티어링 휠을 왼쪽으로 꺾자 뒷바퀴가 엉덩이 바로 뒤에 붙은 듯 코너를 단칼에 도려낸다.

두 뺨의 핏기마저 빼는 폭풍 가속


‘차와 몸이 하나가 된 느낌.’ 신중히 아껴 쓰는 표현인데, 이번처럼 피부에 와 닿았던 적 없다. 실은 운전석에 앉는 순간, 단단한 시트와 뻑뻑한 조작감, 오장육부를 꿰뚫는 진동 때문에 이미 절반쯤 488 피스타로 빙의한 기분이었다. 488 피스타는 운전자의 미묘한 조작을 지체 없이 움직임에 반영했다. 가속과 감속, 조향까지 ‘초스피드’ 반응엔 치우침이 없다.

기존 488과 가장 차이 나는 부분은 역시 가속이다. 488 GTB와 스파이더의 0→시속 100㎞ 가속 시간은 3.0초. 488 피스타는 이 기록을 기어이 2.85초까지 끌어내렸다. “0.15초 차이가 대수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 전후를 아우른 가속감의 차이는 굉장하다. 굳이 수치를 확인하지 않아도 온 몸의 신경이 먼저 느낀다. 짜릿함을 넘어 겁이 덜컥 난다.




페라리가 488 피스타의 심장과 관련해 세 가지 특징을 강조한다. 첫째는 출력, 둘째는 반응성, 셋째는 사운드다. 출력은 488 GTB보다 50마력, 458 스페치알레보단 115마력 더 높다. 보어와 스트로크는 86.5×83㎜ 그대로다. 눈에 띄는 수치 변화는 압축비를 9.4에서 9.6으로 높인 정도. 그런데 알고 보면, 엔진 전체 부품의 절반을 새로 설계했다.



가장 흥미로운 항목은 역시 반응성. 페라리는 3단과 4단에서 풀 드로틀 시도할 때 소요시간별 가속g로 가늠한다. 가령 3단에선 1초 지나자마자 0.6g를 넘는다. 여기까진 488 GTB와 같다. 그런데 2초 이후 488 GTB의 가속은 무뎌진다. 반면 피스타는 거침없이 치솟는다. 3초가 되었을 때 0.9g로 정점을 찌른다. 이때 488 GTB는 0.7g를 살짝 웃돈다.

4단에선 488 GTB와 차이를 더욱 벌린다. 시작부터 점프하듯 맹렬한 가속g로 운전자 두 뺨의 핏기마저 가시게 만든다. 피오라노에서 488 GTB를 처음 몰며 랙 없는 터보 엔진에 감탄했다. 몇 달 뒤 488 스파이더를 탈 땐 전동식 하드톱을 얹고도 쿠페와 똑같은 가속에 감동했다. 488 피스타는 또 달랐다. 살벌한 가속과 번개 같은 반응으로 나를 경악케 했다.

488은 잊어다오, 뼈째 갈아 마셨으니


한층 우월한 488을 빚기 위한 노력은 눈물겨웠다. 외모부터 한층 흉흉하다. 보닛엔 깊숙한 구멍을 냈다. 이른바 S-덕트(Duct)로, 앞 범퍼로 빨아들인 공기로 앞머리를 짓누르기 위한 디자인이다. 뒷날개도 여느 488보다 30㎜ 더 높고, 40㎜ 더 길다. 그 결과 다운포스를 25% 더 높였다. 488 GTE와 F1에서 농익은 노하우를 아낌없이 녹여 넣은 결과다.

488 피스타의 공차중량은 1,280㎏. GTB보다 90㎏ 가볍다. 앞 범퍼를 비롯한 여러 부품을 탄소섬유강화플라스틱(CFRP)으로 빚고, 뒷유리를 폴리카보네이트로 바꿨다. 배기 매니폴드는 인코넬 합금으로 빚어 9.5㎏, 커넥팅 로드는 티타늄으로 1.8㎏, 실린더 라이너는 얇게 깎아 1.35㎏를 덜었다. 옵션으로 마련한 20인치 휠은 CFRP로 구워 10㎏을 줄였다.




열효율도 치열하게 높였다. 핵심은 더 차가운 공기를 보다 빠르고 많이 들이마시기. 예컨대 흡배기 밸브는 이전보다 1㎜ 더 깊이 연다. 배기 밸브는 열려 있는 시간도 연장했다. 그 결과 실린더 내에서 이전보다 5.5% 더 강력한 소용돌이(텀블)를 일으킨다. 또한, 이전엔 좌우 도어 바로 뒤 구멍을 빨아들인 공기로 터보 인터쿨러도 식히고 엔진에도 공급했다.

반면 이젠 엔진에 공급할 공기를 뒷날개 주위에서 따로 빨아들인다. 앞 범퍼 밑에 숨긴 엔진 라디에이터도 화끈하게 키웠다. 결실은 구체적 수치로 확인할 수 있다. 흡기밸브를 닫았을 때 실린더 내 온도를 7℃ 더 낮췄다. 그만큼 고회전으로 엔진이 불지옥으로 변했을 때 노킹의 개연성을 줄였다. 아울러 터빈엔 속도 센서를 달아 기온에 따른 영향을 줄였다.





사운드 또한 압권이다. 격렬한 가속 땐 실탄 사격장에 앉아 있는 기분마저 든다. 심지어 페라리는 488 피스타의 목청을 좀 더 ‘살 떨리게’ 가다듬기 위해 배기 매니폴드를 아예 새로 설계했다. 그 결과 배기가스가 이전보다 27% 더 긴 경로를 통해 빠져 나간다. 운전자 귀로 전달되는 사운드는 기존보다 8데시벨(㏈) 더 높다. 스포츠카에선 이게 자랑거리다.

노면 ‘꽝’인 국도에서조차 편안한 GT


피오라노가 생판 낯선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익숙하지도 않다. 피트 빠져나와 급가속과 급제동을 거쳐 헤어핀 돌고 나면, 지우개로 지운 듯 머릿속이 새하얘진다. 불과 몇 분 전 체험한 조교의 시범에도 불구하고, 대체 라인을 어떻게 그려 나갈지, 어디서 맺고 끊을지 망설이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고민할 시간조차 없다. 시간의 개념이 바뀔 만큼 빠르니까.



결과적으로, 걱정할 필요 없었다. 정답대로 몰 필요 없었다. 6.0 버전으로 진화한 페라리 ‘사이드슬립 앵글 컨트롤(SSC)’은 능구렁이 뺨치게 과잉 운전을 다듬어준 덕분이다. 스티어링 휠의 마네티노 로터리 스위치를 ‘CT-Off’로 바꾸면 잠재력을 극대화할 수 있다. 그러면 간이 배 밖으로 나오거나 천재 드라이버가 아니어도, 파워 슬라이드에 도전할 수 있다.

예상과 달리 488 피스타는 레이서를 위한 장난감이 아니었다. 레이스에서 얻은 피드백을 기반으로, 섀시와 엔진의 잠재력을 경주차 수준까지 끌어올리되 위험은 최소화하고 재미를 뾰족이 부각시킨 결과였다. 따라서 처음엔 덜컥 쫄지만, 조금만 익숙해지면 누구나 그럴 듯하게 몰 수 있다. 게다가 강력하지만 역설적으로 오히려 매끈하다. 가감속과 몸놀림 모두.




국도 체험은 페라리 시승의 오랜 전통이다. 실제로 페라리는 주변 도로에서 프로토타입을 담금질한다. 마라넬로 시골길은 노면이 형편없다. 쩍쩍 갈라졌고 울퉁불퉁하다. 페라리 서스펜션의 ‘범피(Bumpy)’ 모드는 이 같은 환경에 뿌리를 뒀다. 이날 파워트레인은 레이스, 서스펜션은 범피에 두고 굽잇길을 누볐다. 포악한 사운드와 달리 운전은 쉽고 편안했다.



엠바고 핑계로 미뤘던 시승기를 갈무리할 무렵, 페라리가 짜릿한 승전보를 전해왔다. 488 피스타의 심장이 압도적 점수 차이로, ‘2018 올해의 엔진’과 ‘올해의 퍼포먼스 엔진’, ‘3.0~4.0L 부문’을 휩쓸었다는 소식이었다. 절묘한 타이밍의 출장을 논외로 치더라도, 기꺼이 수긍할 수 있는 결과였다. 페라리의 열정과 조앤의 노련함에 경의를 표하는 바다.


글 김기범 편집장(ceo@roadtest.kr)

사진 페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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