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 먹는 전기차, 쉐보레 볼트(VOLT)

조회수 2016. 10. 17. 10:31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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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끝에 동영상 시승기가 있습니다>

쉐보레 볼트는 V로 시작하는 볼트와 B로 시작하는 볼트, 두 가지가 있다. VOLT는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BOLT는 순수전기차다. 쉐보레에서도 BOLT 뒤에는 'EV'를 붙여 혼란을 피하도록 했다. 특히 'V'도 ‘B'도 ’ㅂ‘으로 발음되는 한국만을 위한 조치가 아닌 걸 보면, 영어를 아주 잘하는 그들 스스로도 구분이 필요했나 보다.

이번에 시승한 모델은 VOLT(이하 ‘볼트’)다. 작년 가을부터 북미시장을 시작으로 판매되고 있는 2세대 모델이다. 쉐보레는 ‘주행거리연장전기차’라는 표현을 써 ‘전기차’임을 강조하지만, 결국 플러그인 하이브리드로 분류돼 낮은 정부 보조금을 받게 됐고 정식 출시가 연기됐다. 카셰어링을 통해 만나본 볼트에 대한 인상을 적어본다.

‘크루즈 하이브리드’ 같은 외모

볼트의 외관을 보면 현재 북미에서 판매 중인 크루즈가 떠오른다. 전체적인 비율도 대동소이하고, 비슷한 시기에 태어난 같은 핏줄인 만큼 디자인언어도 동일하다. 그도 그럴 것이 볼트와 크루즈는 'D2XX(D2UX)'라는 GM의 소형 플랫폼을 공유한다.

볼트는 외관에서 미래를 추구하거나 전기차임을 크게 드러내지 않는다. 크루즈와 비교하면 조금 더 앞으로 기울어진 벨트라인과 살짝 치켜 올라간 엉덩이 정도가 다를 뿐이다. 자동차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보닛 안에 새로운 파워트레인이 들어있음을 짐작키 어려운 외모다.

패스트백 스타일의 뒷태는 많은 친환경차의 공식을 따르고 있다. 누가 누구를 따라 한 것도, 유행도 아니다. 그저 넓은 공간과 공기역학을 두고 치열하게 고민한 결과일 뿐이다.

곳곳의 디테일은 전기차의 느낌을 살렸다. 전면 흡기구 크롬 덮개에 전기회로 비슷한 패턴을 새겼고, 델타커버(A필러 하단 삼각형 플라스틱 덮개)와 사이드 스커트, 뒷범퍼 하단은 반짝이는 고광택 검정 플라스틱으로 세련미를 강조했다.

독립식 2열시트?

실내로 들어가 보자. 실내는 신형 크루즈보다 말리부를 닮았다. 플로팅 스타일 모니터를 중앙에 두고 좌우대칭으로 펼쳐진 ‘듀얼콕핏‘ 대시보드가 익숙하다. 스티어링휠과 계기반 주변을 비롯해 대시보드와 센터터널 테두리까지 넉넉히 쓰인 크롬은 은은하게 반짝임을 줄여 유치해 보이지 않는다.

가죽시트의 착좌감은 만족스러웠다. 모든 조작을 수동으로 해야 하는 점은 조금이라도 전기를 아끼고, 몸무게를 줄여야 하는 전기차의 숙명상 충분히 수긍할 수 있다. 하지만 하루에도 몇 번씩 좁은 골목을 아슬아슬 지나다니고, 그런 곳에 주차까지 해야 하는 한국 실정상 윙미러 정도는 전동으로 접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오디오는 보스(BOSE)가 쓰였다. 준중형의 차급을 생각하면 고급스러운 구성이다. 상대적으로 주행소음이 적은 전기차의 특성상 오디오에 신경을 쓴 점은 현명한 선택이다. 최고급 오디오가 들어간 시끄러운 스포츠카들보다 한결 이성적이다. (음악은 주행 중에만 듣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면 할 말 없다.)

가격과 성능뿐 아니라 부피와 무게에 있어서도 배터리는 전기차 보급의 가장 큰 숙제다. 원하는 주행거리와 성능을 발휘하자면 크고 무거워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테슬라는 배터리를 차체 바닥에 넓게 깔았고, 프리우스는 2열 시트 엉덩이 아래에 수납했다. 한편 볼트는 뒷자리 센터터널과 엉덩이 아래까지 T자로 배터리를 품었다. 덕분에 볼트는 시트와 같은 높이의 센터터널이 좌우를 가른다. 배터리 기술의 한계와 전기차의 특성상 흠잡고 싶진 않다.

문제는 머리공간이다. 볼트의 패스트백 스타일 엉덩이는 매끈한 실루엣과 낮은 공기저항을 얻었지만 뒷좌석 머리공간을 잃었다. 키 173cm에 허리가 긴 기자가 뒷자리에 등을 기대어 앉으면 정수리와 해치도어 유리 사이에 손날 정도의 공간만 남을 뿐이다.

엔진은 거들뿐

평소 전기차를 접해보지 않았던 운전자라면 처음에는 계기반을 보는 것만으로도 볼트를 모는 재미가 쏠쏠하겠다. 디지털 속도계를 중심으로 좌우에 배터리와 가솔린의 잔량을 표현하고 바깥쪽에는 모터와 엔진의 상태를 묘사한다. 평소와 다른 정보들이 알록달록 화려하게 그려져 눈이 즐겁다.

센터패시아 모니터의 에너지흐름도는 한술 더 뜬다. 엔진과 모터, 배터리, 바퀴 사이를 잊는 선을 따라 에너지가 실시간으로 방향과 색깔을 바꾸며 흐른다. 가속과 제동, 배터리의 충전상태, 외부 기온 등 수없이 많은 환경요인에 따라 에너지가 너무나 즉각적이고 변화무쌍하게 흘러 운전 중에는 일일이 확인하면서 이해할 수 없는 수준이다.

하지만, 파워트레인의 작동원리를 완전히 이해하기란 차를 세우고 갖가지 설명과 자료를 들춰봐도 여전히 쉽지 않다. 볼트의 보닛 아래에는 GM이 개발한 하이브리드 파워트레인 볼텍(Vortec) 2세대가 들어있다. 볼텍은 1.5리터 직렬 4기통 가솔린 엔진과 2개의 모터가 연결돼 합산출력 149마력과 40.6kgm를 발휘한다.

하이브리드에는 크게 직렬식(Series)과 병렬식(Parallel), 직병렬 혼합식(Series-Parallel)이 있다. 볼트는 기본적으로 직렬식이지만, 직병렬식의 특징도 동시에 갖고 있는 독특한 방식이다. 직렬식은 구동은 모터가 전담하고, 엔진은 발전용으로만 쓰이지만, 볼트는 상황에 따라 엔진이 구동까지 관여하는 경우도 있다.

볼트의 달리기는 기본적으로 ‘전기모드‘와 ‘주행거리연장모드‘로 구성된다. 일단 배터리에 전기가 충전된 경우가 전기모드이며 이 모드에서는 ’거의‘ 엔진이 깨어나지 않는다. 사용설명서에는 전기모드에서도 엔진 시동이 걸리는 조건을 기술해 두었지만 시승 중에는 발견할 수 없었다.

심지어 에어컨을 켜고, 스포츠모드에서 가속페달을 밟아도 엔진은 잠잠했다. 볼트가 얼마나 전기모터 위주로 움직이는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출발과 동시에 최대토크가 나오는 모터의 특성상 ’쓩!‘하고 튀어나가는 느낌도 상큼하다. 간혹 순간적으로 휠스핀이 생길 정도다.

단, 이렇게 색다른 가속감을 즐기느라 오른발을 경박스럽게 놀렸다가는 뚝뚝 떨어지는 배터리 잔량과 함께 머지않아 계기반 좌측 하단 ‘EV 범위’가 0km로 찍히는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쉐보레가 말한 전기모드 주행가능거리 89km는 절대 재미를 위주로 측정한 수치가 아니다.

볼트는 정상, 스포츠, 산악, 대기의 4가지 드라이브 모드를 통해 모터와 엔진의 사용을 효율적으로 조절할 수 있다. ‘대기’를 선택하면 전기모드에서도 현재 배터리에 남은 전기를 최대한 유지하고 원하는 때 다시 전기모드로 달릴 수 있도록 엔진이 바삐 움직인다.

‘정상’은 기본 모드를 가리킨다. 그런데 이름이 ‘정상’이 뭔가? 그렇다면 나머지 스포츠, 산악, 대기는 ‘비정상’인가? ‘Normal'을 꼭 ’정상‘이라고 해야 했는지 궁금하다. 한글화에 좀 더 세심함이 필요해 보인다.

배터리의 전기가 바닥나면 비로소 엔진이 깨어나고 ‘주행거리연장모드‘가 된다. 이 모드에서는 주행상황에 따라 수시로 엔진이 치고 빠지기를 반복하면서 배터리에 전기를 공급하거나 바퀴를 굴리는데 힘을 보탠다.

이때도 운전자가 몸으로 느낄만한 이질감은 거의 없다. 나지막한 엔진음과 센터패시아 모니터의 에너지흐름도를 통해 인지할 뿐이다.

주행거리연장모드에서 배터리가 바닥나고 엔진이 깨어나도 볼트의 전기모터는 절대 쉬는 법이 없다. 여기서도 볼트가 얼마나 전기모터 위주로 움직이는지 느낄 수 있다. 쪽대본으로 연기하는 드라마 출연자처럼, 엔진이 실시간으로 만들어주는 전기를 끌어다 쓰느라 오히려 더 바쁜 듯하다.

볼트는 가속페달에서 발을 떼었을 때의 감속량이 BMW i3에 비해 크지 않다. 이질감이 적다는 장점이 있지만 그만큼 회생제동에 소극적이라는 뜻도 된다. 대신 볼트는 스티어링휠 왼쪽 뒤에 ‘리젠’ 버튼을 숨겨뒀다. 리젠 버튼을 누르면 비로소 엔진브레이크가 걸린 듯 속도가 줄어든다.

리젠 버튼을 눌러 운전자가 회생제동을 제어할 수 있고, 동시에 배터리를 향해 움직이는 에너지 흐름을 보면서 생산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는 뿌듯함까지 안겨준다. 특히 멀리서 빨간 신호등을 보고 리젠만으로 정확히 정지선에 섰을 때는 뿌듯함이 배가된다. (완전 정지는 브레이크를 밟아야 한다.)

사용설명서에 적힌 볼트의 최고속도는 시속 160km였지만, 실제로는 계기반에 170까지도 적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고속주행 안정감은 상당히 뛰어나 더 이상 속도가 오르지 않는 상황에서도 크게 불안하지 않았다.

풍절음과 노면 소음도 잘 틀어막았다. 고요한 새벽, 속도계를 110에 고정시킨 뒤 전기모드로 고속도로를 혼자 달리고 있자면 나지막한 바람소리만 들려오는 가운데 가로등 불빛들이 빠르게 뒤로 스쳐 지나가는 비현실적인 경험을 하게 된다.

다만, 주행거리연장모드에서 정차 시에 시동이 걸리면 진동과 소음이 생각보다 실내로 많이 넘어오는 경우도 있어 아쉬움이 남았다.

그 밖의 전반적인 주행능력은 무난한 수준이다. 하체는 부드러움에 초점이 맞춰진 설정이다. 도로의 요철들을 동동거리며 부드럽게 타고 넘는다. 코너에서는 GM의 전통적인 장기인 탄탄한 차체강성과 함께 롤링을 억제하는 능력도 지녔다.

볼트의 연료탱크는 33.7L. 아반떼가 50L인 것에 비하면 훨씬 작은 크기다. 전기모드로만 달릴 수 있는 89km와 주행거리연장모드에서도 모터가 끊임없이 구동하는 점을 감안한 크기다.

충전과 주유를 100%로 했을 경우 두 모드를 합쳐 볼트가 달릴 수 있는 거리는 최대 676km다. 하염없이 줄어드는 ‘EV 범위’를 떠올리면 든든한 거리가 아닐 수 없다.

기름 먹는 전기차, 볼트(VOLT)

최근 전기차 시대로의 전환이 점점 빨라지고 있다. 벤츠는 이달 초 파리모터쇼에서 새로운 전기차 전용 브랜드 'EQ' 출범과 함께 2025년까지 전기차 10대를 내놓겠다고 발표했다.

BMW는 ‘i', 아우디는 ’e-tron'이라는 이름으로 각자 전기차 시대의 청사진을 제시하고 있다. 2030년부터 신규 내연기관 승용차의 등록을 불허하기로 했다는 독일 의회의 소식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렇다고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인류문명의 발이 돼온 내연기관이 하루아침에 전기차로 대체될 수는 없다. 오랜 충전시간과 미흡한 주행거리 등 전기차 기술은 아직 갈 길이 멀기 때문이다. 충전소와 같은 인프라도 주유소와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다. 값비싼 배터리와 높은 개발비로 인한 낮은 수익성은 자동차 회사들에게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하이브리드는 내연기관 시대과 전기차 시대의 과도기를 열었다. 나아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가 하이브리드와 순수전기차 사이를 또 비집고 태어났다. 그리고 볼트는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중 가장 순수전기차에 다가선 모델이다. 최대한 전기차처럼 움직이고, 가능한 내연기관차만큼 달린다.

과거 디지털카메라가 처음 등장했던 시절, 과연 CCD가 필름을 뛰어넘을 수 있느냐는 논란이 있었다. 지금 보면 조악하기 짝이 없는 화질의 결과물조차 신기하게 구경하기도 했다. 하지만 요즘 필름은 취미 용도가 아니면 구경하기도 어렵게 됐고, 디지털 이미지의 화질은 더 이상 논란거리가 아니다.

전기차 역시 같은 길을 가게 될 것이다. 시기의 문제만 남았을 뿐이다. BOLT 뒤에 ‘EV’나, 전기차 앞에 ‘주행거리연장’처럼 구구절절 설명이 필요치 않을 날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다. 당연히 전기차요, 700km는 거뜬히 달릴 수 있는 그런 시대 말이다.

글, 사진
이광환 carguy@carlab.co.kr

카랩 http://www.carla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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