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 닛산 370Z..순수의 시대는 저물지 않는다

조회수 2016. 2. 4. 10:3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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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정통 스포츠카는 대부분 ‘결핍’이란 공통점을 갖는다. 많은 것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파워 스티어링은 커녕, 에어컨도 없고, 창문도 수동인 경우가 많았다. 실내는 좁고, 트렁크 공간을 따질 필요도 없었다. 스포츠카는 그저 잘 달리면 됐다. 운전자가 원하는대로, 빠르고 정확하게 달리면 그만이었다.

닛산 370Z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이런 20세기 스포츠카에 대한 향수를 불러 일으킨다. 많은걸 덜어낸 덕에 움직임은 예상을 뛰어넘는다. 실내의 허술한 지점에 갸웃거리는 것도 잠시, 고막을 울리는 거대한 엔진 소리와 날카로운 스티어링의 감각이 이내 미소짓게 만든다.

닛산에게 있어서 아직 순수의 시대는 저물지 않았다. 닛산 Z의 명맥을 잇는 370Z를 탐미했다. 분명 즐거운 시간이었지만, 내내 타임머신을 타고 있단 생각이 들었다 .

엔진회전수를 맞춰라

코너를 빠른 속도로 통과하기 위해서는 감속하는 과정에서도 추진력을 머금고 있어야 한다. 감속과 변속을 겸하는 과정에서 클러치, 브레이크, 가속 페달을 동시에 조작해야 한다. 사람 발은 두개 뿐이니 결국 오른발 발가락(Toe)으로 브레이크 페달을 밟으면서 뒤꿈치(Heel)로 가속페달도 함께 밟아 엔진회전수를 높여야 했다.

이론적으론 그리 어렵지 않을 것 같지만, 손발은 마음처럼 되지 않는다. 특히 오른발로 두개의 페달을 밟을 때 각각의 압력 차이를 미세하게 조절하기 쉽지 않다. 이같은 복잡한 조종을 돕는게 370Z의 ‘다운시프트 레브매칭(Downshift Rev Matching)’이다. 클러치만 밟으면 스스로 엔진 회전수를 올려놓기 때문에 다운시프트때 기어를 대충 집어 넣어도 매우 빠르게 슥 들어가는게 매력적이다.

자동변속기 모델에서도 감속할때 웅웅거리며 엔진 회전수를 높이기 때문에 마치 수동변속기를 변속하는 것 같은 느낌을 주긴 한다. 하지만 요즘의 듀얼클러치 스포츠카를 경험해봤다면, 370Z의 변속기는 그저 구식 7단 변속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그래서 한국닛산의 접근법은 좀 아쉽다. 우리나라에서 스포츠카는 소수 마니아를 위한 것이다. 이 정도 차급에선 수동변속기를 선호하는 소비자들이 더 많다고 볼 수 있다. 자동변속기로 판매한다고 저변이 확대될 것도 아니다. 370Z는 지난해 고작 8대 판매 됐는데, 차라리 수동변속기를 팔았다면 더 많은 소수의 소비자들을 붙잡았을 수도 있겠다.

앞으로 더욱 보기 힘들 자연흡기의 매력

변속기에 대한 아쉬움은 기대치가 높았기 때문이다. 비록 변속이 번개처럼 빠르진 않지만, 운전자의 변속 습관을 기억하는 어댑티브 시프트 컨트롤(Adaptive Shift Control)과 큼지막한 패들시프트 등은 조작에 대한 편의를 높여준다. 또 강력한 엔진과의 궁합도 훌륭하다. 370Z의 강점은 변속기보단 원초적인 엔진에 있다.

VQ, V6, 3.7리터 등의 단어는 이젠 닛산을 설명하는 그 자체가 됐다. 그만큼 오래됐고, 완성도도 높다. 다양한 차에 적용되는 엔진이지만 각기 성격은 판이하다. 370Z의 엔진은 기존 엔진에서 35%의 부품이 새롭게 만들어졌다. VQ 엔진은 블록만 유지될 뿐 계속 발전하는 셈이다.

반응은 무척 민감하다. 날이 잔뜩 섰다. 운전자의 조작이 곧바로 뒷바퀴에 전달된다. 엔진회전수가 높아질수록 민감함은 날카로움으로 바뀐다. 조금만 한눈을 팔아도 계기바늘은 순식간에 레드존을 계속 때린다. 수동모드에서는 저절로 변속되지 않는다. 운전자의 능력을 믿고 모든 권한을 맡긴다는 뜻이다.

VQ 엔진은 고회전에서 제 힘을 발휘하는데, 그 앙칼진 음색이 무척 매력적이다. 여기엔 엔진 소리가 증폭되는 ‘액티브 사운드 인핸스먼트(ASE: Active Sound Enhancement)’이 적용됐다. 덕분에 빠르게 달릴땐 옆사람과 대화가 잘 되지 않을 정도로 실내가 엔진 소리로 가득 찬다.

스포츠카에게 순수성이란

370Z은 난해한 외관 디자인과 90년대 스포츠카를 떠올리게 하는 실내 디자인까지 갖고 있지만, 스티어링휠을 한번 돌려보면 대부분의 불만이 눈 녹듯 사라진다.

그리 특별해 보이지도 않는데 손에 착 달라붙고, 큼지막한 패들시프트도 사용감이 좋다. 다만 위, 아래로만 조절이 가능하고 앞으로 당기거나 밀 수 없는 점은 아쉽다. 그럼에도 확실한 손맛을 느낄 수 있으니 어느 정도 용서가 된다.

스티어링휠이 크게 묵직한 편도 아니고, 서스펜션이 독일 스포츠카에 비해 단단한 편도 아니다. 370Z는 비교적 편안한 스포츠카다. 그런데 코너에서의 움직임은 크게 다르지 않다. 370Z나 카이맨이나 목적이 뚜렷하다. 안정된 자세로 재빨리 코너를 통과한다.

전륜 더블위시본 서스펜션과 후륜 멀티링크 서스펜션, 고성능 타이어, 앞뒤 50:50의 무게배분은 놀랍도록 정교하고, 짜릿한 코너링을 선사한다. 빠른 속도로 코너를 들어서도 불안감이 드는게 아니라, 오히려 매우 정밀하고 즉각적인 스티어링 반응에 머리카락이 쭈뼛선다. 생김새만 보면 제네시스 쿠페와 별다를 게 없을 것 같은데, 정통 스포츠카란 수식을 붙이기 전혀 부끄럽지 않다.

스포츠카는 그저 잘 달리고, 잘 돌고, 잘 서면 그만이던 시대가 있었다. 하지만 시대는 바뀌었고, 운전의 즐거움을 추구하는 차는 곧 비싼 차라는 인식도 강해졌다. 그러면서 고급스러움과 첨단 편의 장비까지 빠짐없이 갖추기 시작했다. 달리는데 불필요한 것을 버리는 차가 아닌, 세단보다 더 많은 것을 갖춘게 21세기의 스포츠카다.

닛산은 아직도 순수성을 강조하지만, 계속 머물러 있다간 370Z는 순수한 스포츠카가 아닌 순박한 과거의 스포츠카가 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멸종 위기종인 스포츠카를 타협없이 만들어주는 것은 무척이나 고마운 일이다.

* 장점


1. 정직한 엔진의 힘과 반응.


2. 차체 밸런스와 섀시의 완성도.


3. ‘고성능 + 후륜구동’ 을 감안하면 꽤 착한 가격.


* 단점


1. 틸트만 가능한 스티어링휠. 이런 부분은 더 친절해야 한다.


2. 안팎의 디자인도 더 신경을 써줬으면 한다.


3. 액티브 사운드 인핸스먼트는 과하다.


김상영기자 sy.kim@motorgraph.com <자동차 전문 매체 모터그래프(http://www.motorgrap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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