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것과 완성 그 사이 어디쯤, '로터스 에보라 400'

조회수 2016. 9. 24. 20:31 수정
음성재생 설정

이동통신망에서 음성 재생시
별도의 데이터 요금이 부과될 수 있습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번역중 Now in translation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다양한 분야의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를 카카오 플랫폼 곳곳에서 발견하고, 공감하고, 공유해보세요.

로터스 에보라 400을 만났다. 엑시지 S 로드스터에 이은 두 번째 로터스로 이전에 느꼈던 일상과 동떨어진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생활에 녹아들 수 있도록 포용력을 키운 모습이 인상적이다.

로터스가 달라졌다. 에보라를 통해 경험한 로터스는 우리가 익히 아는 로터스가 아니었다. 운전자를 시트에 앉히는 것부터 스티어링 및 사이드미러 조작, 주차까지 한결 편안하고 손쉽게 할 수 있도록 다듬었다. 스포츠카로서의 본질은 충실한데 이전에 없던 배려가 참 고맙게 느껴진다.

먼저, 에보라 400은 엑시지와는 달리 차에 올라타는 것부터가 수월했다. 외부와 실내를 단절시키던 섀시의 넓은 문턱을 좁게 줄였고 지붕도 보이는 것보다 여유가 있어 승하차에 큰 도움이 됐다. 물론 일반적인 승용차를 생각하면 여전히 격한 동작을 요구하지만 분명 다른 로터스 모델보다는 한결 수월하게 오르내릴 수 있다.

차에 앉으면 시트포지션을 맞춰야 하는데 로터스인 것을 감안하면 다시 신세계가 열린다. 바로 전동으로 조작 가능한 사이드미러 덕분. 일일이 손으로 직접 맞춰야 했던 엑시지와는 달리 손가락만 까딱하면 전동 사이드미러가 제 위치를 찾아간다. 요즘 차 중에 그렇지 않은 차가 어디 있나 싶지만 로터스에서는 사치스러운 부분이다.

키를 꽂아 돌리고 시동버튼을 길게 눌렀다. rpm게이지가 크게 오르며 요란한 배기음을 토해낸다. 변속기 버튼 중 D버튼을 누르자 버튼 불빛이 흰색에서 빨간색으로 바뀌며 기어가 물렸음을 표시한다.

주차장에서 도로로 나가는 좁은 길에서 스티어링 휠을 움직여본다. 여전히 묵직한 질감을 느낄 수 있지만 엑시지와는 또 다르다. 엑시지는 스티어링 조작 시 보조 동력을 더해주는 파워스티어링이 적용되지 않았다. 군대에서나 경험했던 무 파워 핸들 느낌 그대로다. 스포츠카로서 극강의 핸들링 성능을 발휘하겠지만 일상생활에서는 너무 무겁고 도로의 모든 정보를 받아들이기 때문에 피곤하기 그지없는 세팅이다. 하지만 에보라 400은 유압식 구조의 파워스티어링을 장착했다. 덕분에 좁은 주차공간에서 한결 손쉬운 조작이 가능할 뿐더러 노면상황에 따라 온 신경을 집중하지 않아도 운전이 가능하다.

시선의 중심

도로에 나와 천천히 차를 몰아본다. 브레이크는 일반 승용차들보다 약간의 답력을 필요로 하는 세팅이다. 반발력이 느껴지지만 기분 좋은 수준으로 밟는 만큼 정직하게 반응한다.

촬영 장소까지는 교통흐름에 맞춰 천천히 이동을 했다. 모든 조작부가 묵직한 감각이라 금세 지칠 줄 알았건만 막히는 도심이어도 크게 불편하거나 어색한 점은 없었다. 대신 신호에 걸려 횡단보도 앞에 서면 여기저기서 느껴지는 시선이 부담스러웠다. 특히나 솔리드 레드 컬러의 차체는 주변의 시선을 끌어당기는데 크게 한몫했기 때문에 시선을 즐기는 사람이 아니라면 좀 더 무난한 컬러를 택하는 걸 추천하고 싶다.

촬영지에 도착해 차체 구석구석을 포커스에 담아봤다. 먼저, 전면은 이전보다 각지고 크게 벌려놓은 범퍼가 눈에 띈다. 매서운 모양의 헤드램프 디자인과 함께 고성능을 암시하는 모양새다. 측면을 보면 미드쉽 구조의 차체가 도드라져 보인다. 엔진이 운전석 뒤에 위치해 높은 밀도감과 함께 스포츠카다운 균형미를 자랑한다.

캐릭터 라인은 전면 범퍼부터 시작해 앞바퀴를 감싸 돌고 도어 손잡이까지 내려온다. 이어 다시 한 번 크게 뒷바퀴까지 감싸 오른다. 넘실거리는 라인이 날렵한 럭셔리 요트를 보는 듯 우아한 모양새다. 여기에 한껏 치켜 올린 리어 스포일러는 측면 디자인의 백미를 담당했다. 후면은 좌우 하나씩 박힌 원형 테일램프가 스포티한 멋을 드러내며, 머플러는 번호판 하단 중앙에 위치했다. 머플러 주위로는 경주용차에나 달릴 법한 디퓨저를 장착해 공기의 흐름을 정리한다.

차체 중앙에 위치한 파워트레인은 V형 6기통 3.5리터 엔진에 슈퍼차저가 결합된 구조다. 슈퍼차저 엔진은 터보엔진에 비해 출력 상승폭은 적고 고속으로 갈수록 효율이 떨어지지만 자연흡기엔진처럼 일관된 움직임을 보여주기에 반응성을 중시하는 로터스에게는 최적화된 과급기 세팅이다. 변속기는 토크컨버터 방식의 6단 자동이며, 듀얼클러치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뛰어난 반응속도를 보여준다.

에보라 400의 성능을 수치로 살펴보면 이름 그대로 400마력의 최고출력을 발휘하며, 최대토크는 41.8kg.m를 낸다.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도달시간은 단 4.2초, 최고 시속은 자동변속기를 기준으로 280km다. 어지간한 스포츠카는 명함도 못 내밀 정도다.

우리는 본격적인 주행을 위해 한적한 도로를 찾았다. 우선은 주행모드 변경 없이 엔진회전수를 높여봤다. 귀 뒤편으로 슈퍼차저가 공기를 빨아들이는 소리가 요동친다. 배기밸브가 열리지 않은 탓에 배기음보다는 흡기음이 실내를 채우며, 가속페달을 깊게 밟아도 한결 느긋한 반응이다. 제대로 달리고 싶다면 스포츠 버튼을 눌러주라는 얘기다.

그래서 눌러줬다 스포츠 버튼

버튼을 누르자 SPORT라는 단어에 빨간불이 들어오며 가변배기가 열린 것이 바로 확인됐다. 잠잠하던 배기 소리가 이내 걸걸해졌기 때문이다. 가속페달의 반응성도 이전과는 완전히 달랐다. 꾹 눌러줘야 올라가던 rpm이 발끝만 닿아도 움찔 거렸다. 숨을 거르고 좀 전과 같이 액셀레이터를 밟아봤다. 순식간에 치솟는 rpm을 따라 차도 빠르게 속도를 올린다.

4,000rpm을 넘어서면 가히 폭력적이라고 해도 될 만큼 가열 찬 배기음이 터져 나왔다. 이 영역부터는 급격히 시야가 좁아지며 온몸의 피가 뒤로 쏠리는 것을 경험할 수 있다. 내가 달려간다기보다는 빨려 들어간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듯 보인다. 다시 5,000rpm을 넘기면 에보라 400에서 느낄 수 있는 가장 황홀한 소리가 울려 퍼지며 절정에 다다른 듯 고조되는 기분을 만끽할 수 있다. 글로 쓰니 길어졌을 뿐 정말 눈 깜짝할 새에 벌어진 일이다.

물론 포르쉐나 M 또는 AMG 등 다른 고성능 차량들도 이런 가속능력을 보여주기는 마찬가지다. 하지만 터보시대가 된 이후 가장 날것에 가까운 배기음을 토해내는 에보라 400의 매력은 비슷한 성능의 차급에서는 독보적인 캐릭터라 할 수 있겠다. 문제는 이 차가 로터스라는 데에 있다.

열광적인 가속성능 외에도 더욱 뛰어난 부분은 코너링에 있다는 얘기다. 엑시지처럼 노면에 붙어있는 느낌은 덜하지만 역시나 안정적인 움직임 그 이상을 보여준다. 약간의 언더스티어 현상은 차의 몸놀림을 이해하기 쉽게 도와주고 가속페달에서 슬쩍 힘을 빼면 앞머리는 다시금 코너 안쪽으로 가볍게 밀고 들어간다. 실로 모든 영역에서 즐거운 차다.

분명, 희열을 느낄 수 있는 차였다. 또한, 그 즐거움을 위해 너무 혹독한 대가를 치르지 않아도 괜찮았다. 이쯤 되니 완벽한 스포츠카로 칭송받는 911이 떠올랐다. 혹자는 포르쉐와의 비교가 가당키나 하겠냐고 말하겠지만 터보시대를 맞이한 이후의 911이라면? 배기음만큼은 에보라 400의 압승이다. 물론 전체적인 완성도, 미션의 우수함, 독보적인 헤리티지 등등 여전히 911의 매력은 뛰어나지만 에보라 400만이 갖고 있는 뛰어난 매력도 뒤지지 않는다. 이미 포르쉐를 경험했거나 흔해진 개구리들 속에서 유니크함을 원한다면 에보라 400은 좋은 선택지가 될 것이다. 특히 프로모션이 진행 중인 현시점이라면 카레라S 깡통 가격에 알칸타라로 치장한 에보라 400을 만날 수 있다.

에보라 400으로 경험한 로터스는 더 이상 열정으로, 노동으로 타는 차가 아니다. 약간의 수고로움이면 충분하다. 단, 추가로 필요한 것은 새로운 영역에 첫 발을 내딛는 도전정신? 그 정도면 분명 편하게 로터스를 즐길 수 있다.

신종윤 기자 sjy@ridemag.co.kr

이 콘텐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