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차와 독일 심장(feat. DB11)
유독 영국의 자동차 프로그램을 보면, 독일차를 재미삼아 폄하하는 경우가 있다. 70년 전 전쟁의 앙금이 남아서일까? 하지만 영국산 자동차들은 독일산 심장을 좋아한다. 가령, 전설적인 수퍼카 맥라렌 F1, 사막의 롤스로이스 레인지로버(3세대 초기형)엔 BMW 엔진이 들어갔다. 또한, 벤틀리와 롤스로이스도 V8 엔진은 주로 독일산을 쓴다.
007의 새 본드카, 애스턴 마틴 DB11도 새 심장을 이식받았다. 이 차엔 거대한 V12 5.2L 가솔린 트윈 터보 엔진이 똬리를 틀었다. 최고출력 608마력, 최대토크 71.4㎏·m의 강력한 힘을 뿜는다. 소위 ‘제로백’이라고 부르는 0→시속 100㎞까지 가속 성능은 단 3.9초. 최고속도는 시속 321㎞다. 매력적인 안팎 디자인뿐 아니라 성능까지 007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런데 최근 등장한 DB11에겐 V12뿐만 아니라 V8 4.0L 가솔린 트윈 터보 엔진도 들어갔다. 최고출력은 510마력, 최대토크는 70.9㎏·m다. 0→시속 100㎞까지 가속은 4.0초, 최고속도는 301㎞다. V12 엔진과 실력 차이가 크지 않아 흥미롭다. 그런데 심장의 모양과 제원표를 살펴보니 익숙한 냄새가 풍긴다. 메르세데스-AMG가 빚은 제품이기 때문이다.
이 유닛은 AMG GT, AMG C63 등 현재 메르세데스-벤츠의 고성능 모델에 널리 쓰이고 있다. 물론 애스턴 마틴이 돈 주고 사와 그대로 얹을 리 만무하다. 가장 신경 쓴 부분은 ‘사운드’다. 이를 위해 에어 인테이크과 배기관을 새롭게 설계했다. 그 다음, 전용 ECU 프로그램을 더해 애스턴 마틴만의 감칠맛을 챙겼다.
또한, 단순히 동생이 필요해서 아래 급 모델을 만들 진 않았다. 애스턴 마틴에 따르면, V12 모델이 럭셔리 그랜드 투어러라면, V8 버전은 더욱 역동적인 운동 성능을 제공한다. 가령, AMG V8 엔진은 부피가 작고 무게가 가볍다. 때문에 V12 모델보다 무게를 115㎏이나 덜어낼 수 있었다. 공차중량은 1,760㎏. 대부분 차체 앞머리에서 감량한 만큼, 더 날렵한 코너링 성능을 기대해도 좋을 듯하다.
V12와 V8의 안팎 디자인 차이는 미묘하다. V8 모델엔 블랙 베젤 헤드램프를 심었고, 보닛에 자리한 4개의 방열구를 2개로 줄였다. 이를 제외하면 V12 모델이 고를 수 있는 모든 옵션을 똑같이 넣을 수 있다. DB11 V8의 가격은 미국 기준 198,995달러. 우리 돈으로 약 2억2,700만 원이다. V12 버전보다 17,500달러(한화 약 2천만 원) 더 저렴하다.
글 강준기 기자(joonkik89@gmail.com)
사진 애스턴 마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