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 검색어 입력폼

마이 드라이빙 메모리 (10) - 마세라티 222 4V

조회수 2021. 10. 18. 12:05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번역중 Now in translation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다양한 분야의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를 카카오 플랫폼 곳곳에서 발견하고, 공감하고, 공유해보세요.

| 생동감과 호화로움을 동시에 갖춘 이탈리안 럭셔리의 모범

Prologue – 피아트, 란치아 그리고 마세라티

자동차 역사를 수놓은 자동차 명문들 중에는 이탈리아 출신이 많았다. 특히 모터스포츠를 통해 이름을 널리 알렸던 알파 로메오, 페라리, 마세라티 그리고 란치아와 피아트 거기에 슈퍼카붐에 빼놓을 수 없는 람보르기니까지 빨간빛 차체로 단장한 ‘이탈리안 레드’들은 고성능과 멋진 스타일링으로 많은 이의 가슴을 울렁이게 했다.

아시아자동차가 생산했던 피아트 124

하지만 90년대까지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이탈리아 차는 그리 많지 않았다. 70년대 아시아자동차가 라이선스 생산을 했던 피아트 124, 80년대 기아차가 내놓았던 피아트 132 그리고 90년대 들어 소개된 란치아가 전부였다. 알파 로메오, 페라리 그리고 람보르기니 등은 그저 카 마니아들의 방에 걸린 사진이 전부였던 별세계의 존재일 뿐이었다.

젊은 시절 차에 푹 빠져있던 필자에게도 이탈리아 차는 매력적인 존재였다. 초등학교 시절 작은아버지의 피아트 124 조수석에서 들었던 독특한 배기음 그리고 대학시절 엄청 잘살았던 선배가 아버지 몰래 끌고 나온 피아트 132를 몰면서 느꼈던 생동감이 어릴적 이탈리아 차에 대한 기억의 전부였다.

기아자동차가 생산했던 피아트 132는 당시 피아트의 최고급 고성능 모델이었다

대중적인 이탈리아차만 타본(피아트 132는 당시 피아트의 최고급 고성능 모델이었지만 어차피 피아트 자체가 그 당시에는 대중적인 모델들만 내놓던 시절이었다) 필자에게 책으로 보았던 이탈리아 차들은 너무 멋진 모습에 대단한 스펙을 자랑했다. 그럼에도 도무지 우리나라 도로에서는 볼 수 없었다. 그저 신화 속 존재같은 환상 그 자체였다.

베일 속에 가려졌던 마세라티

이탈리아 차가 우리나라 도로를 달리기 시작한 것은 서울올림픽을 전후해 수입되기 시작하면서였다. 첫 주자는 피아트. 피아트는 크로마와 판다 4X4를 내놓았다. 크로마는 2.0L DOHC 엔진을 얹은 중형차로 피아트 132의 직계후손으로 피아트의 톱 모델이었지만 여전히 대중차였다. 판다 4X4는 45마력 1.0L 엔진을 얹은 리터카로 유럽에서 큰 인기를 모았지만 럭셔리카 중심의 수입차 시장에서는 거의 이단아와 같은 존재여서 그리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그 뒤를 이은 이탈리아 차가 란치아였다. 란치아 테마는 피아트 크로마와 사브 9000 그리고 알파 164와 섀시를 공유하는 콰트로 프로젝트로 탄생한 모델로 고급스러움이 돋보였지만 당시 국내에서는 듣보잡적인 존재였다.

수입차 개방과 함께 진출한 란치아의 테마는 고급스러움이 돋보였지만 인지도가 낮았다

당시 자동차전문지 기자였던 필자는 피아트 차들을 통해 이탈리아 차 특유의 생동감 넘치는 달리기를 다시 한번 느꼈고 란치아를 통해 이탈리안 럭셔리의 실체를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책을 통해서나 접할 수 있었던 알파, 페라리, 람보르기니 등의 ‘스포츠성’은 여전히 상상의 영역에 머물렀다.

그런 상황에서 필자에게 가장 궁금한 존재가 바로 마세라티였다.

창업 시절부터 모터스포츠 역사에 존재를 드러냈던 마세라티는 1950년대까지 레이스에서 알파 로메오, 페라리 등과 경쟁을 벌이던 화려한 역사를 자랑했다. 하지만 역사만 멋졌을 뿐 기업으로서의 성공은 거두지 못했다. 68년 시트로엥에 경영권이 넘어가고 다시 75년 아르헨티나 출신 F1 레이서였던 알레한드로 데 토마조(Alejandro de Tomaso)가 세운 데 토마조 그룹에 넘겨졌다가 그마저도 힘들어 89년부터 피아트의 도움으로 겨우 연명하던 브랜드였다(1993년 마세라티는 완전히 피아트 그룹으로 넘어가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탈리안 럭셔리 스포츠의 표본같은 존재 222 4V

마세라티 222 4v

1993년 여름 필자는 가장 궁금해했던 마세라티를 마침내 만나게 되었다.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사업을 하던 기타무라(北村) 씨를 만나면서부터였다. 일본에서 타던 마세라티를 페리에 싣고 우리나라에 들어왔다가 만나게 된 첫 한국인 자동차 친구가 바로 필자가 된 셈이었다. 일본에서 조차 마이너한 존재였던 마세라티를 한국이라는 자동차 후진국에서 한눈에 알아보고 즐거워한 어린 친구가 신기하고도 반가웠다고 했다.

그의 차는 마세라티 222 4V.

데 토마조그룹에 흡수된 마세라티가 의욕적으로 내놓은 고성능 모델로 2.0L V6 트윈 터보 엔진을 얹은 비투르보(Biturbo)가 있었다. 자동차 역사에는 최악의 차로 평가받는 모델이었다. 제대로 된 양산라인을 갖추지 못해 조립과정에서 비롯된 문제 때문이었지만 어떻든 좋은 차임에도 악평에 시달렸다.

마세라티 222 4V는 수출용 최고성능 모델이었다 (출처: Guillaume Vachey via Wikipedia - CC0 1.0)

비투르보의 페이스리프트모델이 이어지면서 많은 부분을 개량해 등장한 비투르보는 2세대 2.0L, 2도어 모델이란 의미에서 222이라 이름을 붙였다(당시 이탈리아에서는 배기량 2.0L를 기준으로 등록세가 19%에서 38%로 크게 늘기 때문에 이탈리아 국내용 모델은 대부분 2.0L 엔진을 얹었다). 222 4V는 수출용 모델로 279마력을 내는 2,790cc V6 DOHC 트윈 터보 엔진을 얹은 마세라티 222 중 최고성능 모델이었다.

기타무라씨의 호의로, 머리로 알고 있던 마세라티의 운전석에 오르게 되었다. 작은 차체(길이 4,150mm, 너비 1,715mm, 높이 1,305mm, 휠베이스 2,515mm)지만 넓은 차폭과 큰 라디에이터 그릴 등으로 결코 작아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더 당당하게 느껴졌다. 20cm 가량 더 긴 BMW 3시리즈(E30)와 비교해도 더 큰 차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호화로운 마세라티 222의 실내

도어를 열자 화사한 크림색 가죽을 씌운 미소니의 내장과 붉은 호두나무가 감싼 실내가 고급스러움을 보여준다. 대시보드 한가운데 자리한 라 살 금장시계까지 더해지면서 럭셔리함을 뿜는다. 벤츠, BMW에서 보았던 공업제품스런 고급스러움이나 운전자를 압도하는 롤즈로이스의 장중한 럭셔리와는 확연히 구분되는 럭셔리다.

운전석에 오르니 마호가니 스티어링 휠과 시프트 노브가 또 다른 호사스러움을 느끼게 해주었다. 하지만 계기반에는 터보 부스트 인디케이터가 있고 시프트 레버 주변에는 서스펜션 조절 스위치가 달려있어 스포츠 마인드를 자극하기도 한다. 차를 몰고 한적한 자유로로 달렸다. 1990년대 초까진 ‘한국의 아우토반’이라 불렸던 자유로에서 222 4V로 마음껏 달렸다.

1990년대 고성능차의 극단을 보여준 마세라티 222 4V (출처: Guillaume Vachey via Wikipedia - CC0 1.0)

222 4V는 엄청난 스피드를 자랑했다. 5.9초(어떤 자료에는 5.6초) 만에 정지에서 시속 100km 가속이 이뤄진다. 당시 포르쉐 911(964 모델)과 같은 수준의 가속성능이다. BMW의 340마력 고성능 세단 M5도 6.3초나 필요했던 발진 가속을 마세라티 222 4V가 가볍게 따돌리는 수준이다. 핸들링도 빼어나다. 섀시의 한계에 앞서 타이어의 한계가 먼저 찾아온다. 새벽에 이슬이 깔린 도로에서 급가속을 하면 타이어가 스핀하며 휘청거릴 정도로 엄청난 출력을 내뿜는다.

90년대 감각으로는 고성능차의 극단이었다. 외모는 초기 스텔라를 연상시키는 쐐기형 3박스 형태에 엄청난 폭발력을 품고 한없이 화사한 내장을 갖춘 마세라티 222 4V는 이탈리안 럭셔리와 이탈리안 스포츠의 양면을 고루 갖춘 최고의 이탈리아 차로 필자의 기억에 남아있다.

사족

요즘 우리나라에서 마세라티가 인기를 모으고 있다. 확실히 스타일링이나 꾸밈새에서 이탈리아적인 고급스러움과 예술성을 보여준다. 하지만 필자같은 꼰대에게는 1988년 등장한 2세대 비투르보 222(티포 AM331)과 98년까지 생산된 기블리(티포 AM336)까지의 마세라티가 여전히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다.

2세대 마세라티 비투르보 혈통의 마지막 모델인 기블리(티포 AM336)

이 마세라티 222 4V에 대한 그리움을 현대 제네시스 쿠페의 섀시에 스텔라의 차체를 얹어 풀까 싶은 꿈을 꾼다. 왜 스텔라 차체냐고? 필자가 222 4V를 타던 2달동안 가장 많이 들었던 말 중의 하나가 “이 차 스텔라 2도어 모델이예요?”였기 때문이다.

| 글 한장현 (자동차 칼럼니스트, 대덕대학교 자동차학과 겸임교수)

이 콘텐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