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의 엔지니어들 - 조라 아쿠스던토브 (1)

조회수 2021. 9. 17.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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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대표 스포츠카, 쉐보레 콜벳의 아버지

미국을 대표하는 스포츠카 중 상징성이 가장 큰 모델로 1953년에 처음 출시되어 지금까지 혈통이 이어지고 있는 쉐보레 콜벳을 꼽을 수 있다. 물론 포드 머스탱, 쉐보레 카마로 등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스포츠카들도 있긴 하다. 그러나 콜벳은 그들과는 다른 특징들로 독보적 입지를 지켜왔다.

미국을 대표하는 스포츠카, 쉐보레 콜벳의 최신 모델인 콜벳 스팅레이

우선 현재 판매 중인 미국 브랜드 스포츠카 가운데 모델 역사가 가장 길다. 그리고 처음부터 지금까지 2인승 정통 스포츠카라는 개념을 지켜왔다. 대중적 브랜드인 쉐보레가 만들기는 하지만, 승용차와는 전혀 다른 전용 섀시와 보디를 쓴 특별한 모델이라는 점도 마찬가지다. 그런 점에서 콜벳이야말로 미국 대표 스포츠카로 불릴 자격이 있다.

이런 콜벳의 탄생에는 크게 두 사람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한 명은 GM의 디자인 수장이었던 할리 얼(Harley Earl)이고, 다른 한 명은 쉐보레 기술 책임자였던 에드 콜(Ed Cole)이다. 그러나 많은 콜벳 팬이 ‘콜벳의 아버지’라고 이야기하는 사람은 따로 있다. 그의 이름은 조라 아쿠스던토브(Zora Arkus-Duntov)다. 미국에서는 그의 긴 성을 줄여 던토브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다.

자신이 개발을 주도한 쉐보레 콜벳 SS의 운전석에 앉은 조라 아쿠스던토브

던토브는 콜벳의 개발이 시작될 때에는 GM에서 일하고 있지 않았다. 그럼에도 콜벳의 아버지라 불리는 것은 그가 허약한 심장을 품고 태어난 콜벳이 건강하고 튼튼한 청년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키우는 역할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부족한 성능과 실패한 판매로 단종 위기에 처했던 콜벳을 떳떳한 스포츠카로 거듭나도록 만든 인물이 바로 그였다.

| 유럽에서 태어나 미국에 둥지를 틀다

콜벳만큼 강렬하고 화려한 삶을 살았던 던토브는 1909년 12월 25일에 유태계 러시아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났다. 태어난 곳은 벨기에 브뤼셀이었지만, 곧 부모의 고향인 러시아 레닌그라드(지금의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는 원래 성이 아쿠스였지만, 부모가 이혼한 뒤 어머니와 재혼한 양아버지의 성인 던토브를 덧붙여 자신의 성으로 썼다.

그는 가족과 함께 다시 독일 베를린으로 이주해, 1934년 독일 베를린 샤를로텐부르크 공대(지금의 베를린 공대)를 졸업하고 기계공학 학위를 받았다. 자동차, 모터사이클 등 탈것을 몰기를 즐겨했던 그는 독일 자동차 전문지 ‘아우토 모토 운트 슈포르트’에 기고하기도 했다. 자유로운 영혼을 지녔던 그는 멋과 즐거움을 찾아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며 자유분방하게 살았다. 그러던 중 발레와 무용을 공부하던 엘프리데 볼프와 만났고, 이들은 오랫동안 연락을 주고받다가 제2차 세계대전이 터지기 직전에 결혼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던토브는 동생 유라와 함께 프랑스 공군에 입대했지만, 오래지 않아 프랑스가 독일에 항복하자 아내와 가족을 데리고 급히 스페인, 포르투갈을 거쳐 미국으로 탈출했다. 유태인 혈통이면서 프랑스군에 복무했던 경력으로 나치 치하에서 살아가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뉴욕에 둥지를 튼 그는 동생과 함께 아던(Ardun)이라는 이름의 회사를 세웠다. 자신의 성인 아쿠스던토브를 줄여 쓴 것이었다. 그의 회사에서는 전쟁 중에는 탄약 제조 설비와 비행기 부품 등을 만들었고, 전쟁이 끝난 뒤에는 독자 개발한 고성능 엔진 부품을 만들었다. 그가 설계하고 만든 포드 플랫헤드.V8 엔진용 실린더 헤드는 엔진의 고질적 과열 문제를 해결한 것은 물론 출력도 크게 높이는 효과가 있어, 금세 핫 로드 마니아들에게 인기를 얻었다.

그의 관심사는 늘 고성능 차와 모터스포츠였고, 엔지니어로서 일하기도 했지만 자동차 경주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인디애나폴리스 500 경주에 출전하기 위해 준비했지만 실패한 그는 영국 스포츠카 업체 알라드(Allard)의 초청으로 영국으로 건너갔다. 알라드에서 일하던 1952년에 그는 처음으로 르망 24시간 경주에 출전했고, 경주차 개발에도 참여했다. 그러면서 꾸준히 근거지인 미국에서 자동차 업체들의 문을 두드렸다. 미국에서 스포츠카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1953년 열린 GM 모토라마 행사에 전시된 쉐보레 콜벳 프로토타입

그러던 1953년 1월, 뉴욕 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에서 열린 모토라마(Motorama) 행사에 전시된 한 대의 차가 그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EX-122 콜벳 프로토타입이었다. 그는 즉시 쉐보레 연구개발 담당 책임자였던 모리스 올리(Maurice Olley)에게 편지를 썼고, 그의 편지를 흥미롭게 읽은 올리는 던토브를 엔지니어로 채용했다.

GM 특유의 관료적이면서도 계층적인 기업문화는 자유로운 던토프의 성격과 맞지 않았고, 입사 직후부터 상사들과 마찰이 잦았다. 그러나 쉐보레 기술 부문을 총괄하고 있던 에드 콜(Ed Cole)은 오히려 던토프를 지지했다. 콜은 기술적으로 뛰어나며 빠르고 강력한 차를 원했고, 그런 차들이 쉐보레 브랜드를 빛내길 바랬다. 던토브의 생각도 같았다.

| 쉐보레 콜벳에 스포츠카다움을 더한 던토브

1953년 6월, 드디어 생산을 시작한 콜벳이 시장의 문을 두드렸다. 세련된 디자인과 유리섬유 강화 플라스틱 차체를 갖추고 화려하게 꾸민 콜벳에 대한 경영진의 기대는 컸다. 그러나 시장 반응은 싸늘했다. 직렬 6기통 3.9L 엔진은 최고출력이 150마력에 불과했고, 변속기는 2단 자동만 달 수 있었던 첫 콜벳은 스포츠카라 하기에는 성능이 부끄러운 수준이었다.

1953년에 선보인 쉐보레 콜벳

큰 인기를 예상하고 연간 1만 대 생산을 목표로 삼았던 경영진은 300대에 불과한 첫 6개월 판매실적이 큰 충격이었고, 이후로 생산과 판매가 늘기는 했지만 경영진의 기대에는 훨씬 못 미쳤다. 그런 상황이 이어진다면 단종은 불보듯 뻔한 일이었다. 콜벳을 스포츠카답게 만드는 것이 콜의 과제였고, 고성능 엔진 개발은 물론 르망 24시간 경주 출전 경험도 있는 던토브가 그 과제를 풀어 나가기 시작했다.

던토브는 콜의 지지를 바탕으로 콜벳의 고성능화를 단계적으로 추진했다. 우선 콜벳의 새 심장부터 시작했는데, 그 바탕은 콜이 주축이 되어 개발한 ‘스몰블록’ V8 4.3L 엔진이었다. 1955년형 모델부터 콜벳에 쓰인 이 엔진은 197마력의 최고출력을 냈고, 그제서야 스포츠카다운 성능을 기대할 수 있었다. 기본 변속기는 여전히 2단 자동이었지만, 나중에 선택사항으로 3단 수동변속기가 추가되었다. 원래 계획에 없었던 수동변속기 개발은 던토브에 의해 이루어졌다.

던토브는 1956년에 쉐보레 고성능 차 설계 및 개발 책임자가 되었고, 이때부터 콜벳 개발은 온전히 그의 손에 쥐어졌다. 1957년형 콜벳은 그가 추구하는 고성능의 방향을 엿볼 수 있는 좋은 예다. V8 엔진 배기량은 4.6L로 커졌고, 새로운 4단 수동변속기를 선택 사항으로 추가했다.

던토브가 주도해 설계한 '로체스터' 연료분사 시스템을 선택할 수 있었던 1957년형 쉐보레 콜벳

무엇보다도 개발팀 이름을 딴 ‘로체스터(Rochester)’ 연료분사 시스템을 새롭게 개발해 선택 사항으로 마련한 것이 눈길을 끌었다. 이 시스템을 단 콜벳의 V8 엔진은 294마력의 최고출력을 냈다. 불과 2년 사이에 가장 강력한 모델의 최고출력이 50% 가까이 높아진 것이다. 이로써 GM은 처음으로 배기량 1 세제곱인치(cu. in.)당 1마력의 출력을 내는 엔진을 만들게 되었다.

그럼에도 판매량은 많지 않았지만, 사람들의 콜벳에 대한 시선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일반 모델과는 별개로, 값비싼 선택 사항인 로체스터 연료분사 시스템은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했다. 소비자들이 콜벳에 바라는 바는 분명했고, 콜과 던토브는 계속해서 그들의 기대에 걸맞도록 콜벳을 개선해 나갔다. 그 과정에서 던토브의 또다른 재능이 빛을 내기 시작했다. 바로 마케팅이었다.

(다음호에 이어집니다)

류청희 (자동차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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