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의 엔지니어들 - 루돌프 울렌하우트 (2)

조회수 2021. 8. 17.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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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빚어낸 메르세데스-벤츠 300 SL의 유전자

1934년에 W 25 경주차로 시작된 메르세데스-벤츠의 실버 애로우 시대는 루돌프 울렌하우트의 참여로 완성된 W 125와 더불어 황금기에 접어들었다. 이 기념비적 경주차는 압도적 성능과 선수들의 탁월한 기량이 어우러져 1937년 유럽 그랑프리 무대를 휩쓸었다.

시속 432.7km라는 속도 기록을 세운 메르세데스-벤츠 W 125 레코드바겐 (출처: Daimler)

울렌하우트는 한발 더 나아갔다. W 125의 성능을 더욱 높이고 공기역학적 디자인의 차체를 얹은 속도기록용 차를 만든 것이다. 이 차는 당대 최고의 경주 선수 중 한 명인 루돌프 카라치올라가 몰고 1938년 1월에 유명한 아부스(AVUS) 트랙에서 시속 432.7km라는 속도를 기록했다. 당시 아부스 트랙은 일부 구간을 제외하면 일반 도로였고, 그래서 W 125가 세운 일반 도로 최고속 기록은 이후 50년 이상 깨지지 않았다.

W 125가 활약한 기간은 길지 않았다. 유럽 그랑프리 규정이 다시 바뀌었기 때문이다. 다임러-벤츠는 1938년 규정에 맞춰 울렌하우트의 주도로 메르세데스-벤츠 W 154 경주차를 개발했다. V12 3.0L 슈퍼차저 엔진을 얹은 이 차는 출력은 W 125보다 낮았지만, 1938년 시즌 중반 변속기를 4단에서 5단으로 바꿔 가속과 고속 영역에서 모두 강력한 힘을 내도록 만들었다.

1938년 트리폴리 그랑프리에 출전한 메르세데스-벤츠 W 154 경주차. 오른쪽 세 대가 W 154다 (출처: Daimler)

W 154는 실버 애로우 시대 메르세데스-벤츠 경주차 중 가장 성공적이었다. 유럽 그랑프리 선수권에서 메르세데스-벤츠는 1938년과 1939년 모두 네 번의 경주 중 세 차례를 우승했고, 루돌프 카라치올라는 1938년 챔피언에 등극했다. 비선수권 경주에서도 메르세데스-벤츠는 1938년에 열린 9번의 경주 중 3연승을 포함해 모두 6번 우승을 차지하는 등 압도적 성적을 냈다.

그러나 곧 모터스포츠 활동에 암흑기가 시작되었다. 1939년 9월, 독일의 폴란드 침공을 시작으로 유럽이 제2차 세계대전의 포화에 휩싸인 것이다. 모든 그랑프리 경주는 취소되었고, 자동차 업체들은 군수품 개발과 생산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울렌하우트에게는 시련이 다가왔다. 어머니가 영국인이었기 때문에, 그는 나치의 감시를 받는 신세가 되었다. 다임러-벤츠 엔진 개발 부서에서 일을 계속할 수 있었던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전후 다임러-벤츠를 떠나 잠시 다른 분야에서 일했던 울렌하우트는 1948년에 복귀해 개발 업무를 이어나갔고, 1949년 4월에는 승용차 시험 부서 책임자로 임명되었다. 2차대전 이전에 메르세데스-벤츠가 생산하던 모델을 개선하는 한편, 새로운 시장 환경에 걸맞은 새 모델을 개발하는 역할이 그에게 주어졌다. 전후 유럽의 경제 회복과 수출 증가의 영향으로 다임러-벤츠는 다시 활기를 찾을 수 있었다.

300 SL '걸 윙'의 탄생

그러던 1951년 6월, 다임러-벤츠 이사회는 국제 모터스포츠에 다시 참여하기로 했다. 궁극의 목표는 그랑프리 선수권의 전통을 이어 1950년에 시작한 모터스포츠의 최고봉, 포뮬러 원(F1)이었다. 다임러-벤츠는 개발 기간을 고려해 1954년 시즌에 첫 출전을 하기로 했지만, F1 규정이 확정되지 않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전쟁 전 인기 있었던 스포츠카 로드 레이스를 전초전으로 활용할 생각으로 새로운 스포츠카 개발을 먼저 시작했다.

개발 중인 메르세데스-벤츠 300 SL을 살펴보고 있는 울렌하우트 (출처: Daimler)

그러나 경주차에 쓸 엔진이 마땅치 않았다. 울렌하우트는 우선 고급 대형 승용차인 300에 쓰고 있던 직렬 6기통 3.0L 양산 엔진을 바탕으로 성능을 개선했다. 4행정 가솔린 엔진 처음으로 직접 연료 분사 장치를 달고 여러 부분을 개선한 결과, 초기형 300에 올라간 것에서는 115마력이었던 최고출력은 무려 215마력으로 높아졌다.

이 엔진은 순수하게 경주용으로 개발된 것이 아니었기에 상당히 무거웠다. 울렌하우트는 이를 상쇄할 방법으로 알루미늄 합금 차체와 함께 파이프를 입체적으로 용접한 스페이스프레임 구조를 쓰기로 했다. 그런데 구조 강성을 높이려면 차체 측면 프레임이 높아질 수밖에 없어, 일반 도어는 달 수 없었다. 경주차 규정 상 도어 크기는 정해진 규격 이상이어야 했기 때문에 해법을 찾아야 했다. 그 과정에서 등장한 것이 이른바 '걸 윙(gull wing)' 도어였다.

완성된 300 SL 경주차와 함께 선 울렌하우트 (출처: Daimler)

걸 윙은 열었을 때 갈매기 날개처럼 보이는 도어 모습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는 이들을 놀라게 만들며 경주차의 가장 큰 특징이 되었다. 이 차의 이름은 300 SL이었다. 개발명 W 194인 300 SL은 처음에는 순수 경주용 스포츠카로 만들어져, 1952년 르망 24시간 경주, 뉘르부르크링 아이펠 레이스, 카레라 파나메리카나 등 유명 로드 레이스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300 SL을 통해 메르세데스-벤츠가 모터스포츠 무대에 성공적으로 복귀한 모습을 본 사람 중에는 미국에서 영향력 있는 자동차 딜러였던 맥시밀리언 '맥스' 호프만도 있었다. 그는 모터스포츠 이미지가 스포츠카 판매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300 SL 경주차를 바탕으로 스포츠카를 만들면 1,000대를 수입해 팔겠다며 다임러-벤츠 경영진을 설득했다.

독특한 도어 형태로 화제가 된 메르세데스-벤츠 300 SL (출처: Daimler)

호프만이 제안하기 전까지는 다임러-벤츠는 300 SL을 일반 판매용 스포츠카로 만들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다. 부랴부랴 다임러-벤츠는 일반 도로를 달릴 300 SL을 개발해, 1954년 뉴욕 국제 모터스포츠 쇼에서 공개했다. 공개와 함께 300 SL은 화제가 되었고, 많은 유명인이 새 스포츠카를 주문하기 시작했다. 300 SL과 비슷한 모습에 좀 더 대중적 성격을 지닌 190 SL도 함께 공개되었는데, 승용차 뼈대로 만든 190 SL 역시 울렌하우트가 개발을 이끌었다.

모터스포츠에서 승용차 개발까지

승용차 개발과 병행해, 울렌하우트는 새로운 W 196 F1 경주차를 설계했다. 전후 실버 애로우 시대의 선두주자가 될 차였다. 그는 직접 경주에 출전해 차를 시험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었지만, 다임러-벤츠 이사회는 혹이 있을지 모를 사고로 유능한 인재를 잃고 싶지 않았고 시험주행 이외에는 경주차를 몰지 못하도록 했다.

울렌하우트는 직접 경주차를 몰고 시험하기도 했다. 사진은 1938년 W 154 경주차를 시험 주행하고 있는 울렌하우트 (출처: Daimler)

울렌하우트는 늘 경주차 개선을 생각했고, 먼지투성이 랠리 현장에서 소매를 걷어붙이고 스패너를 집어 들어 차를 수리하기를 꺼리지 않았다. 드라이버들과 얽힌 일화들도 많다. 1955년 뉘르부르크링에서 있었던 W 196 경주차 시험주행 때의 이야기가 좋은 예다. 세계 챔피언을 차지한 바 있는 후안 마누엘 판지오는 시험주행을 마치고 나서 차가 제 상태가 아니라고 이야기했다. 울렌하우트는 이내 정장에 넥타이를 맨 상태로 차에 올라 뉘르부르크링을 달렸고, 판지오보다 3초 더 짧은 랩타임을 기록했다. 주행을 마친 뒤, 울렌하우트는 판지오에게 '연습만 좀 더 하면 괜찮을 것'이라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울렌하우트와 모터스포츠의 인연은 오래 이어지지 않았다. 1955년 르망 24시간 경주에서 있었던 대참사를 계기로 다임러 벤츠는 모든 모터스포츠 활동을 중단했다. 울렌하우트는 승용차 개발 부문에서 양산차 개발을 전담하는 선임 엔지니어가 되었다. 그는 1972년 S 클래스 (W 116)을 포함해 은퇴할 때까지 메르세데스-벤츠가 만든 모든 모델 개발에 참여했다. 물론 세 꼭지 별 엠블럼을 단 모든 스포츠카 개발에는 그가 특별히 신경을 썼다. 독특한 지붕 디자인으로 '파고다'라는 별명을 얻은 230 SL이 그랬고, 첨단 기술 시험을 위해 개발한 C111 역시 그의 지휘 아래에서 완성되었다.

울렌하우트의 손길이 닿은 300 SL들. 왼쪽부터 300 SLR '울렌하우트 쿠페', 300 SL 경주차, 300 SL 경주차 프로토타입, 1953년형 300 SL '걸 윙' 경주차 (출처: Daimler)

루돌프 울렌하우트는 평생 개인적으로 차를 갖지 않았다. 그러나 300 SL과 함께 만들어져 회사 업무용으로 썼던 이른바 '울렌하우트 쿠페'는 메르세데스-벤츠 안팎으로 유명하다. 울렌하우트 쿠페는 외모는 일반 도로용 300 SL과 비슷하면서 내부에는 경주차 기술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최고속도가 시속 290km에 이르렀고 당시 일반 도로용으로 승인받은 차 가운데 가장 빨랐다.

그는 1972년에 다임러-벤츠에서 은퇴했고, 1989년 5월 8일에 82세의 나이로 슈투트가르트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그가 정립한 메르세데스-벤츠 특유의 주행 특성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류청희 (자동차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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