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차가 작아지기 시작한 시대

조회수 2021. 7. 20.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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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미국 사회상을 반영한 다운사이징

1970년대 미국은 저거너트(jargonaut)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초강대국이란 이미지가 흔들린 것이다. 베트남전의 거듭되는 고전으로 자국 내 반전 시위 양상은 격해져만 갔다. 설상가상으로 닉슨의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인해 정치적 도덕심마저 나락으로 추락했다. 또한 구소련과의 전략 무기 제한 협정(SALT Ⅱ)이 상원의 승인을 받지 못하면서 세계 평화 수호자라는 명성에 상처까지 입었다. 이런 것들의 여파로 물가 상승률은 20%을 훌쩍 넘었고 이는 약 10%의 실업률로 이어졌다.

1972년 베트남 라이허에 상륙하는 미군 (출처: Flickr)

악순환은 경제뿐만 아니었다. 실의에 빠진 이들은 코카인, 마리화나 등에 빠져 현실에서 도피하려고 했다. 60년대 사랑과 평화를 앞세운 히피 문화에 역행하는 기류가 만들어지며 사회 전반부가 정서적으로 황폐해져만 갔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지미 핸드릭스, 재니스 조플린, 짐 모리슨 등이 약물중독으로 사망했다. 그들의 죽음은 당시 젊은이뿐만 아니라 미국 사회에 절망감을 순식간에 퍼지게 하는 촉매제가 돼버렸다.

27세에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한 짐 모리슨 (출처: Flickr)

이렇게 70년대의 미국은 칠흑 같은 밤 속에 있었다. 이런 암흑기에 자동차 산업계는 연료 수급이라는 악재가 겹쳤다. 이 시기에 제작된 자동차를 ‘불안한 시대(Malaise era)에 탄생한 모델’이라 부르기도 했다. 언뜻 산유국인 미국이 연료가 부족하다는 말에 동의하기 어려운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과거를 되돌아 보면 납득할 지도 모르겠다. 필자는 1970년대와 1980년대 초반까지의 미국에서 생산된 자동차가 무슨 이유에서 다운사이징이 되었는지 이번 기회에 알리려 한다.

1갤런당 30센트 시대는 사라졌다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전후 휘발유 배급제를 실시하기도 했다. 절대적 연료 부족을 겪진 않았지만, 타이어의 주재료인 합성고무의 원료가 원유에서 대량으로 얻어졌기에 석유 소비를 제한할 필요가 있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타이어가 마모되는 시간을 늘리기 위해 차량 사용 시간을 줄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소비되는 양도 적지 않았던 석유를 아껴야만 하던 시기였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자동차 연료 수급에 커다란 문제를 야기한 사건이 터졌다.

이런 문제는 1973년 아랍 석유 수출국 기구(OAPEC) 회원국은 석유 생산량을 줄이고 이스라엘 국가 생성의 주요 지지자인 미국과 네덜란드로의 석유 수출 금지 선언을 하면서 더욱 심각해졌다. 제1차 오일 쇼크가 발발한 것이었다. 당시 미국은 연간 석유 소비량 약 2천만 배럴 중 5분의 3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었다. 이는 당시 전 세계 석유 소비의 24% 정도라는 어마어마한 양이었다. 이에 비례해 미국이 받은 충격은 가히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이로써 1갤런당 30센트의 시대는 추억의 저편으로 사라졌다.

1974년 미국의 문 닫은 한 주유소 앞에서 연료 배급 기사를 읽고 있는 시민 (출처: wikimedia commons)

이런 영향으로 미국 내 많은 휘발유 공급처들은 폐업할 수밖에 없었다. 운 좋게 살아남은 주유소를 만나도 몇 시간을 대기하는 건 예삿일이었다. 대기 시간이 길어져 운전자들끼리 싸움은 보통이었다. 심지어 새치기했다는 이유로 총격 사건까지 벌어지기도 했다. 연료가 부족해지면서 장거리 여행이나 높은 출력의 대형 세단이나 트럭을 사고자 하는 사람들도 급격히 줄어들었다. 반면 연비 좋고 작은 차로 수요가 몰리기 시작했다.

이런 분위기를 타고 포드 핀토, AMC 그렘린, 쉐보레 노바, 닷지 다트 등 소형차가 있는 전시장에 더 많은 소비자가 몰리기 시작했다. 캐딜락 엘도라도, 쉐보레 카프리스 등 대형차가 있는 매장은 파리만 날렸다.

1971년 미국 땅을 밟은 폭스바겐 타입 4 (출처: wikimedia commons)

혼다 시빅을 앞세운 일본과 폭스바겐 타입 4를 선두로 한 독일 브랜드 차들까지 소형차 시장에 수입되고 있었다. 미국 메이커는 ‘V8 엔진과 갤런 당 12마일’이란 당시 미국 자동차의 상식을 수정해야만 했다. 연비를 개선하고 차체를 줄인 이코노미 카 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시대가 온 것이다.

준비된 강자 GM이 낳은 소형차

GM은 1960년대부터 준비해온 후륜 구동 기반 아키텍처 ‘X 플랫폼’(또는 X 보디)을 가지고 쉐보레 노바(Nova)와 같은 인기 차종을 생산하며 재빠르게 적응해 나갔다. 이런 플랫폼으로 제작된 컴팩트 세그먼트로 오메가(Omega), 아폴로(Apollo), 벤추라(Ventura) 등이 있었다.

GM X 프레임 스타일 (출처: curbsideclassic)

1973년 올즈모빌은 노바와 같은 X 플랫폼과 트림 라인으로 오메가를 제작했다. 대중의 인기로 검증이 됐기 때문이었다. 엔트리 모델로 2도어 세단, 3도어 해치백, 4도어 세단을 준비하여 선택의 즐거움을 배가시키려 노력했다.

1970년대 올즈모빌 오메가 (출처: flickr)

이후 뷰익도 오메가의 생산 방식을 따라 아폴로를 제작했다. 그러나 차명이 뷰익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불만이 일자 4도어 세단을 제외한 쿠페와 3도어 해치백 모델은 바로 스카이라크(Skylark)로 개명했다. 얼마 지나지 않은 1976년 4도어 세단도 아폴로가 아닌 형제 모델의 명판을 달았다. 이 모델은 직렬 6기통 4.1L 쉐보레 엔진을 기본으로 얹었고 옵션으로 V8 5.7L 뷰익 엔진을 선택할 수 있었다.

1973년형 뷰익 아폴로 (출처: Hatch Heaven)

위 모델들보다 앞서 나온 1971년 벤추라 Ⅱ가 있었다. 폰티액이 내놓은 콤팩트 세그먼트 차로써 X 플랫폼 열풍을 일으킨 주역 중 하나였다. 이 차는 데뷔 1년 후 숫자(Ⅱ)를 버리고 벤추라가 되었고 1977년에는 피닉스(Phoenix)로 개명하며 인기를 이어갔다.

1971년형 폰티액 벤추라 II (출처: wikimedia commons)

특이한 점이 하나 있었다. 공차중량이 약 1,437kg인 이 모델은 V6 엔진 대신 4기통 엔진이 옵션이었다. 이런 다운사이징 엔진을 선택할 수 있게 한 이유가 무엇일까? 시장은 점점 기존 대형차로 경쟁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구매자들은 연료를 덜 쓰는 모델을 원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리브랜드 모델로 개발비를 줄이다

또한 경제성을 강조한 정부 정책도 그런 옵션을 만들어낸 이유였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리브랜드(rebrand)를 알리는 하나의 신호탄이었다. 기존 모델을 재설계하거나 신차를 제작하는 것보다 훨씬 경제적이기 때문에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한다. 미국의 1970년 중반 즈음 생산한 자동차들이 외형이 비슷비슷한 이유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르노삼성 SM6의 형제차 르노 탈리스만 (출처: wikimedia commons)

여담이지만 르노의 다이아몬드 로고를 한 탈리스만이 우리나라에서 르노삼성이 만든 다이나모 엠블럼이 적용된 SM6으로 판매되고 있다. 그것이 바로 리브랜드 또는 리엔지니어링이 적용된 모델의 예라고 볼 수 있다.

GM은 리브랜드를 가장 즐겨 활용한 메이커였다. 1975년부터 저렴한 후륜구동 소형차 아키텍처로 H 플랫폼(또는 H 보디)을 개발해 쉐보레 베가(Vega) 아스터, 몬자(Monza), 뷰익 스카이호크(Skyhawk), 올즈모빌 스타파이어(Starfire) 등을 세상에 내놓았다. 쉐보레 베가는 1971년 '모터 트렌드' 올해의 차 상을 받는 영예를 얻기도 했으나 엔진 내구성과 녹 그리고 설계 문제 등으로 GM의 명성에 상처를 입히기도 했다. 이에 관련된 문제가 끊이지 않자 1977년 단기간에 단종되어 버렸다.

다양한 트림의 1971년형 쉐보레 베가를 보여주는 광고 포스터 (출처: Flickr)

폰티액은 그런 쉐보레 베가를 리브랜딩한 아스터를 앞세워 소형차 시장에 진출했다. 이후 1976년 쉐보레 몬자도 리엔지니어링 해 선버드(Sunbird)를 내놓았다. 아스터와 선버드는 엔트리 모델은 4기통이었으나 선버드는 V6 엔진을 옵션으로 선택할 수 있었다.

AMC의 대표 소형차들

1970년 GM의 호적수였던 AMC의 대표적 소형차는 그렘린(Gremlin)과 호넷(Hornet)를 빼놓을 수 없다. 그렘린은 북미 최초 서브콤팩트(Subcompact) 차로 당시 AMC 모델 중 가장 저렴하고 연비가 좋았다. 파워트레인으로는 3단 수동변속기와 V8 5.0L 엔진을 채택했고 오렌지색 스티칭과 리바이스와 협업으로 제작한 데님 시트로 소비자의 사랑을 받았다. 이 차는 내구성과 안정성 높은 주행으로 1970년대에 가장 인기 있던 AMC의 대표 모델이었다.

1972년형 AMC 그렘린 광고 포스터 (출처: Flickr)

전년도인 1969년 9월에 출시된 호넷은 이코노미 카 부문에서 늘 언급되는 모델로 틈새 시장을 노린 패밀리 카였다. 엔트리 모델에는 6기통 3.3L 엔진을 기본으로 채택했다. 고성능 버전이자 높은 트림의 SST 모델의 보닛 안에는 6기통 3.8L 엔진을 얹었다.

영화 '007 황금 총을 가진 사나이'에서 코르크스크류 점프 중인 호넷 (출처: James Bond 007)

1971년부터 1977년까지는 매년 왜건 등으로 설계 변경을 한다거나 크고 작게 성능 및 인테리어 등을 업그레이드하며 럭셔리 콤팩트 카란 명성을 얻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 1975년 개봉한 ‘007 황금 총을 가진 사나이’에서 코르크스크류 점프(Corkscrew jump)로 많은 관객의 탄성을 자아내기도 했다.

포드, 소형차 시장에 머스탱을 내놓다

포드의 핀토(Pinto)는 포드 역사상 북미에서만 생산된 첫 콤팩트 카였다. 그러나 연료 계통 설계 결함으로 인해 연료 누출과 충돌 시 연료탱크 화재 등의 가능성을 지닌 모델이기도 했다. 포드가 핀토의 단종을 결정을 내리기 전까지 후방 충돌에 관련한 약 117건의 소송을 해결해야만 했다.

1971년 출시된 포드 핀토 (출처: Flickr)

핀토의 리브랜딩 모델인 머큐리 밥캣(Bobcat) 또한 같은 설계 문제로 골머리를 앓아야 했다. 포드는 말썽꾸러기 소형차만 가지고 있지 않았다. 1969년부터 생산된 매버릭(Maverick)이란 신뢰성 높은 모델이 있었다. 이 차는 오일쇼크에도 수요가 끊이지 않는 효자 상품으로 대중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포드 매버릭 (출처: Flickr)

1970년 포드의 사장 자리에 앉은 리 아이아코카는 도요타 셀리카처럼 작은 몸집에 세련된 라인을 가진 머스탱을 주문했다. 높은 연비는 기본이었다. 미국에 수입된 일본 차 판매량이 안일했던 포드를 자극했던 셈이다.

1973년형 도요타 셀리카 쿠페 (출처: Flickr)

포드의 제품 기획자들은 1세대 머스탱의 휠베이스를 약 2,443 mm으로 설정했고 초과중량을 줄이기 위해 노력했다. 그 결과 1974년에 재탄생한 머스탱 Ⅱ는 축간거리가 전 모델 대비 약 300mm 이상 줄어들어 소형차 시장에 진입할 수 있었다. 당시 미국의 소형차 기준은 휠베이스가 최대 2,790mm였다. 이후 머스탱은 포니란 별칭이 붙기도 했다. 공차중량도 전 모델 대비 226kg 정도 다이어트되었다. 머스탱이 가벼운 중량으로 더 경쾌하고 더 세련되고 더 연비가 좋은 포니카로 거듭나는 순간이었다.

1974년형 포드 머스탱 Ⅱ 광고 포스터 (출처: Flickr)

머스탱 Ⅱ은 롱 노즈 숏 데크의 우아한 보디 라인으로 전통적인 머스탱의 트레이드 마크 스타일로 사랑받기 충분한 매력을 유지했다. 4인승 노치백 쿠페와 2+2 패스트백 쿠페 두 가지 차체 스타일이 제공되었다. 머스탱 Ⅱ의 베이스 모델 가격은 3,000달러 이하로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기 충분했다. 또한, 전작과 달리 랙 & 피니언 스티어링과 4단 변속기가 기본 장착되었다.

소형차라는 점을 강조한 1974년형 포드 머스탱 Ⅱ 광고 포스터 (출처: Flickr)

보닛 아래의 엔진은 다운사이징되었다. 마하 1을 제외한 모든 트림에 4기통 2.3L 88마력 엔진이 표준 이었다. 마하 1의 빅 엔진은 V6 2.8L 105마력으로 그다지 높은 출력을 뽐내지 않았다. 연비에만 신경 쓴 모델이라는 악평을 들었는지 1976년 포드는 미국 머슬카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V8 엔진을 얹은 고성능 머스탱 코브라 Ⅱ 모델도 출시했다.

1978년형 포드 머스탱 코브라 II (출처: wikimedia commons)

이 모델은 전면 및 후면 스포일러, 블랙아웃 그릴, 후드 스쿠프 및 레이싱 스트라이프 등이 장식이 외관적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주행 중 바람을 느끼고 싶은 드라이버를 위한 특별한 모델도 준비했다. 1977년 탈착식 T 톱 글라스 루프 패널을 적용한 모델도 발매됐다. 바람으로 인한 연비 저하 없이 탑다운 차의 느낌을 어느 정도 느낄 수 있게 디자인한 차로 지금까지 높게 평가받고 있다.

소형차 시장의 후발주자, 크라이슬러

빅3 중 GM과 포드는 고유가 시대에 발맞춰 소형차를 발매했지만, 크라이슬러는 1970년대 후반까지 소형차를 출시하지 않았다. 고비용의 새 모델보다 유럽 등지에서 제조된 크리켓(Cricket), 챔프(Champ), 콜트(Colt)의 소형차를 수입 판매하는 것이 옳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물론 크라이슬러도 소형차 생산 라인은 있었다. 1974년 닷지 다트(Dart) 라인은 스포츠 패스트백 쿠페, 스윙어, 스윙어 스페셜 하드톱 쿠페, 4도어 세단 등이 포함됐다. V8 쿠페와 스페셜 에디션 세단과 하드탑 플리머스의 밸리언트 라인업은 360 엔진(5.9L) 버전, 브로엄(Brougham) 하드탑 및 세단 모델 등이 있었다.

더 높은 연비에 대한 소비자의 요구에 1976년 플리머스는 페더 더스터(Feather Duster) 등으로 답했다. 이 모델의 차체는 알루미늄을 사용하여 경량화했다. 2도어 쿠페로 특별한 리어 액슬 비율 및 세심하게 튜닝된 직렬 6기통 3.7L 엔진을 얹었다. 오버드라이브가 장착된 알루미늄 케이스 수동 변속기도 옵션으로 제공하여 연비를 극대화하려 노력했다.

1976년형 플리머스 페더 더스터 (출처: forbbodiesonly)

결국 크라이슬러는 드라마 '왕좌의 게임'의 산사 스타크처럼 왕관을 얻기 위해 입은 드레스를 입은 듯 절박한 심정으로 소형차 시장에 뛰어들었다. 그 결과 1977년 크라이슬러 역사상 최초로 북미에서 생산한 전륜구동 방식의 닷지 옴니(Omni)와 형제 모델 플리머스 호라이즌(Horizon)을 발매할 수 있었다.

1977년형 크라이슬러 호라이즌 (출처: Wikimedia commons)

이 모델은 소형 해치백 시장을 빠르게 잠식하고 있던 폭스바겐 래빗(Rabbit)에 대항하기 위한 결정이었다. 크라이슬러의 판단을 옳았다. 이 두 모델은 경제성과 안전성 그리고 적당한 적재량을 갖춘 모델을 원하던 대중의 니즈에 부합했다. 판매량도 많아 미국 소형차 중 최고라는 찬사를 받기도 했다.

시대를 이해하면 변화할 수 있다

1970년대 말까지 심각한 연료 부족 현상은 일어나지 않았다. 다른 말로 좋아지지도 나빠지지도 않았다고 표현하는 게 맞을지 모르겠다. 1980년에 이란 이라크 전쟁으로 휘발유 공급에 대한 불안감은 커졌어도 오일쇼크를 완충할 국제기구와 대비책을 마련한 덕분일 것이다. 유가는 더는 심하게 널뛰지 않았다. 1980년대 전후 휘발유를 대체할 에너지로 전기를 사용하는 일렉트렉 언카(Electrek Uncar)란 EV도 개발되었고 디젤 연료도 사용 가능한 1기통 테컴시(Tecumseh) 엔진을 채용한 프리웨이(Freeway)란 3륜 자동차도 등장했지만 금세 사라졌다. 왜 그랬을까? 안정세를 찾은 유가에 연비 위주의 소형차를 찾는 고객이 줄어든 탓이었다. 최근에도 SUV의 강세로 인해 연비 좋은 소형차 수요가 급속이 떨어졌다. 과거에는 유지비가 우선이었지만 이제는 라이프 스타일이 차를 고르는 바로미터라는 걸 반증하는 것은 아닐까 한다.

2021년 여름 지금. 정부 규제 등으로 인해 자동차 업체들은 가솔린과 디젤 그리고 LPG로 구동되는 내연기관을 전기모터로 바꾸고 있다. 1970년대 미국처럼 말이다. 누구는 배기음이 사라져 가는 것을 아쉬워하지만 다른 이는 새로운 전동화 시대에 부푼 꿈을 키워나가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과거 ‘불안한 시대에 탄생한 모델’을 통해 미래에 변화할 자동차를 투영해 보면 어떨까 한다. 팬데믹의 시대에 자동차의 변화가 더욱 기대되는 건 필자만이 아닐 것이다.

윤영준 (자동차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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