랠리 역사의 아이콘들 (2) - 포드 에스코트

조회수 2021. 11. 1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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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드 랠리 역사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이름

현재 M-스포트를 통해 WRC에 출전하고 있는 포드 피에스타 (출처: M-Sport)

최근 WRC는 현대와 토요타 그리고 포드의 3대 세력이 타이틀 쟁탈전을 벌여왔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완전 워크스 팀인 현대와 토요타와 달리 포드는 M-스포트라는 외부 회사를 통한 세미 워크스 체제에 가깝다. 맬컴 윌슨이 이끄는 M-스포트는 이미 1997년부터 포드 월드랠리팀의 운영을 맡아 온 모터스포츠 전문 회사. 지금은 M-스포트에 포드가 숟가락을 얹은 형세지만 예전에는 포드가 직접 활동하던 시절도 있었다. 포드 랠리 역사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이름, 에스코트가 바로 그 시절의 유산이다.

런던-멕시코 랠리에서의 성공

1세대 포드 에스코트

1967년 영국에서 공개된 에스코트는 앙글리아를 대체하는 포드의 소형차였다. 당시 포드는 독일과 영국 등에 흩어져 있던 거점들을 유럽 포드(Ford of Europe)로 막 통합한 참이었다. 아직 2차 대전 이전의 흔적이 외모에 남아있던 앙글리아에 비해 에스코트는 현대적이면서 세련된 모습이었다. 이 차는 승용차 시장에서 앙글리아를 대체하는 역할 외에도 또 하나의 임무가 있었는데, 바로 코티나가 맡고 있던 모터스포츠 활동이었다.

1세대 에스코트의 고성능 스페셜 버전인 에스코트 멕시코

에스코트는 포드 최초의 랙 앤드 피니언 스티어링과 뒷바퀴 굴림 구동계, 적당한 크기의 차체 등 뛰어남 잠재력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빈약한 엔진은 보강할 필요가 있었기에 1.6L의 트윈캠 8밸브 엔진을 준비했다. 1968년 영국 투어링카 챔피언십과 1970년 런던-멕시코 월드컵 랠리에서의 성공으로 커리어의 첫 페이지를 성공적으로 써넣었다. 영국에서 출발해 유럽과 중남미 2만 5,700km를 누비는 대장정에서 우승한 기념으로 포드는 에스코트 멕시코라는 스페셜 버전을 1970년 출시했다. 강화형 차체에 1.6L OHV 85마력 엔진을 얹고 포드 AVO(Advanced Vehicle Operations)에서 1만 대 이상 만들어졌다.

코스워스의 심장을 얻다

코스워스 엔진을 얹은 에스코트 RS1600

포드는 이듬해 코스워스 심장을 얹은 더욱 강력한 모델, 에스코트 RS1600을 선보였다. 코스워스는 오늘날에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레이싱 엔진 전문 회사로 당시 포드와는 매우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포드 켄트 엔진 기반의 BDA는 양산차를 위한 코스워스의 첫 작품으로 배기량 1.6L에 실린더당 4밸브를 갖추고 115마력을 냈다. 이 밖에 앞바퀴 디스크 브레이크, 고성능 타이어를 달기 위해 부풀린 펜더 등 많은 부분을 다듬었다.

‘RS(Rally Sport)’는 에스코트 RS1600의 성공에 힘입어 포드 고성능의 상징으로 확고하게 자리 잡았다. 레이싱 엔진인 BDA는 강력한 대신 다소 까탈스러웠기 때문에 2.0L 8밸브 핀토 엔진으로 바꾼 RS2000도 만들었다. 출력은 100마력으로 다소 줄었지만 대신 저렴하고 취급이 쉬웠다.

성능을 타협했지만 저렴하고 취급이 쉬워진 에스코트 RS2000

에스코트 RS1600은 1972년부터 영국 랠리(RCA)에서 5연승을 차지했으며 70년대 초반 사파리 랠리와 핀란드 1,000호 랠리, 뉴질랜드에서도 우승컵을 거머쥐었다. 당시는 아직 WRC가 아니라 IMC라 불릴 때였다. 1973년 WRC가 시작되고 초기 4년간은 드라이버 타이틀 없이 매뉴팩처러 챔피언 타이틀만 존재했다. 하지만 알핀과 란치아, 피아트의 챔피언 쟁탈전에 아직 포드는 본격적으로 끼어들 수 없었다.

2세대에서 이루어 낸 챔피언의 꿈

코티나와 에스코트 1세대를 통해 기반을 다진 포드는 더욱 강력한 랠리카를 탄생시켰다. 2세대 에스코트를 바탕으로 개발한 RS1800은 강력한 라이벌들을 제치고 1979년 드디어 포드에게 매뉴팩처러즈 챔피언 타이틀을 안겨주었다.

2세대 에스코트를 바탕으로 개발한 RS1800

에스코트는 저렴한 소형차였기 때문에 2세대는 개발비 절감을 위해 구형을 최대한 활용했다. 리프 스프링 방식의 리어 라이브 액슬도 그대로 물려받았다. 반면 외형은 직선을 활용해 각진 느낌으로 바꾸었다. 코스워스가 담당한 BDE 엔진은 배기량을 1.8L로 키워 117마력, 17.4kg・m로 성능을 강화했다.

에스코트 RS1800과 더불어 아리 바타넨은 1981년 WRC 드라이버즈 챔피언에 올랐다

1975년부터 WRC에 투입된 에스코트 RS1800은 6개 시즌을 뛰며 20번의 우승을 차지했다. 79년 뉴질랜드에서는 1-2-3, 포르투갈과 영국에서는 1-2 피니시를 차지하는 등 강력한 면모를 보였다. 게다가 아리 바타넨은 1981년 드라이버즈 챔피언에도 올랐다. 터보 엔진과 4WD 등 신기술로 무장한 랠리카들이 속속 등장하던 시기에 거둔 성과였다.

5세대 에스코트로 1992년 WRC 재도전

3세대 에스코트에도 RS 버전은 있었다. 다만 80년대 WRC는 그룹 B의 시대였다. 포드 WRC 활동 역시 그룹 B 규정에 맞추어 개발된 RS200이 이어받았다. 에스코트가 WRC에 복귀한 것은 그로부터 10여 년이 흐른 1992년의 일.

WRC 재도전을 위해 만들어진 5세대 에스코트 RS 코스워스

5세대 에스코트 기반의 RS 코스워스는 개발 단계부터 랠리 머신으로 기획되었다. 그룹 A로 바뀐 WRC에서 전투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고성능의 양산차가 필요했다. 엔진을 가로로 얹는 양산형과 달리 에스코트 RS 코스워스는 시에라 플로어 팬을 사용해 세로 엔진에 네 바퀴를 굴렸다. 하지만 당시는 일본 메이커들이 위세를 떨치던 시기였다. 결국 토요타와 스바루의 벽을 넘지 못한 채 6개 시즌 동안 10번의 우승을 거두는 데 그쳤다.

5세대 에스코트 RS 코스워스는 일본 랠리카의 위세에 밀렸다 (출처: Michelin)

1997년부터는 월드랠리카 규정에 따른 신차로 바뀌면서 엔트리명이 에스코트 RS 코스워스에서 에스코트 WRC로 바뀌었다. 맬컴 윌슨이 이끄는 M-스포트가 포드의 WRC 활동을 도맡기 시작한 것 역시 이때부터다. 에스코트는 2000년대 초반 포커스에게 자리를 내주었고 지금은 중국 등 일부 시장에서만 찾아볼 수 있다.

| 글  이수진 (자동차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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