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과 감성을 모두 잡다" 푸조 뉴 3008 SUV 장거리 시승기

조회수 2021. 10. 10. 21:09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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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부탁해, 3008!


서울 구로에서 전남 영암 국제자동차경주장. 장장 370km의 먼 거리다. 취재를 위해 몰고 갈 차를 궁리했다. 요즘 ‘핫’한 전기차를 선택했다간 충전하느라 허송세월 보내야 할 게 뻔했고, 그렇다고 가솔린 차를 타고 가기엔 기름값이 부담스러웠다. 막히지 않아도 족히 왕복 7시간은 달려야 할 텐데, 너무 작은 차는 피곤하겠지?


그렇게 간택 받은 차는 푸조 뉴 3008 SUV(이하 ‘3008’). 최근 페이스리프트를 거친 신차다. 무엇보다 1.5리터 디젤 심장을 얹은 덕에 복합공인연비가 리터당 15.8km에 이른다. 푸조 승차감이야 탈 때마다 마음에 들었던 부분. 이 정도면 장거리 여행 동반자로서 꽤 적합한 조합으로 짐작됐다.


출발 전, 트립미터 리셋

출발에 앞서 트립미터를 초기화했다. 연료계는 거의 ‘만땅’. 연료탱크 가득 찬 새 차를 타고 먼 길 떠나려니 사뭇 설렌다. 비록 출장 길이지만, 기분만큼은 여행길 부럽지 않다. “잘 부탁해, 3008!”


하지만 설렘도 잠시. 서울 빠져나가는 길이 호락호락할리 없다. 꽉 막힌 길이 김치 없이 찐 고구마를 먹은 듯 답답하다. 그렇다면 ADAS(Advanced Driver Asistance System, 첨단 운전자 보조 시스템)를 켜야지. 이럴 때 쓰라고 달아놓는 게 바로 ADAS니까. 뻥 뚫린 고속도로를 크루징 할 때보다 오히려 더 유용하다.


개선된 3008의 ADAS

뉴 3008은 ACC(Adaptive Cruise Control)를 켠 상태에서 완전히 서더라도 기능이 해제되지 않으며, 앞차가 움직이면 따라서 출발할 줄 안다(정차 시간이 3초를 넘어가면 가속페달을 ‘톡’ 쳐 주거나, ADAS 레버의 버튼을 누르면 된다). 또한 기존 3008은 차선 ‘이탈 방지’ 수준이었다면, 이젠 차선 ‘중앙 유지’도 가능하다. 다소 부족했던 반자율주행 기능을 보강해 비로소 업계 평균이 됐다.


운전대 뒤 ADAS 레버는 한번 조작법을 익히면 직관적으로 쓰기 편하다

유유자적 두 발 쉬며 약 78km를 달려 경부고속도로 안성휴게소에 들어섰다. 아직도 계기반에 찍힌 주행 가능 거리는 680km. 디젤 아닌 다른 심장에선 쉽게 보기 힘든, 보기만 해도 배부른 숫자다. 꼭 디젤이 아니어도 가능은 하다만, 그건 소식해서가 아니라 밥통이 커서일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경우 주유소 한 번 들리면 지갑이 가벼워지겠지만, 3008은 연료탱크가 53L니까 대략 7만 원이면 배부르다고 숟가락 놓을 터다.


안성휴게소

차지도 넘치지도 않는 딱 맞는 출력


수도권과 멀어질수록 주변 차가 줄었다. 시간도 촉박하겠게다, 연비 신경 쓰지 않고 오른발에 힘을 실었다. 1.5리터 디젤의 131마력이 부족하진 않냐고? 사실 전혀 그렇지 않았다고는 못하겠다. 가혹하게 몰아붙이면 기대보다 더디게 속도를 쌓으며 ‘마력빨’의 한계가 발목을 잡는다. 특히 세자리수 이상의 고속에선 더욱. 5008 SUV GT Pack에 들어가는 177마력 사양의 2리터 디젤이 아쉬워지는 순간이다.


1.5L 디젤 엔진은 131마력, 30.61kgm를 발휘한다

반면, 살짝 고삐를 늦추고 평범하게 달릴 땐 별다른 갈증을 일으키지 않았다. 30.61kgm의 디젤 ‘토크빨’ 덕에 자연스레 교통 흐름에 섞일 수 있었고, 평소 감각보다 차가 안 나가서 조바심을 일으키지도 않았으며, 가속페달을 더 깊게 밟을 필요도 없었다.


이 정도면 4.5미터(4,450mm) 길이, 1.5톤(1,505kg) 무게의 3008에 정확히 딱 맞는 힘이다. 이걸 프랑스 차답게 합리적이라고 해야 할까? 경쟁 모델보다 낮아 아쉽다고 해야 할까? 물론 같은 가격에 더 강력한 엔진이 들어간다면 마다할 리 없겠으나, 본인 운전 스타일이 평범해서 있어도 다 쓰지 않을 힘이라면 적어도 크게 문제 삼을 필요는 없겠다. 단언컨대, 3008 이상의 가속을 원한다면 그건 재미를 위한 욕심이다.


디젤 엔진을 탓할 수도 있다. 때가 어느 때냐는 저 아래 댓글이 벌써 보이는 듯하다. 때가 때인 건 맞다. 너도나도 ‘디젤 타도’를 외치며 환경오염의 주범으로 몰아가고 있으니까. 하지만 엄격한 유로6D를 충족시키는 최신 디젤까지 노후 디젤과 함께 싸잡아 욕하는 건 지나치다. 그래도 나는 진동, 소음 때문에 디젤이 싫다면 내년 상반기 중 출시 예정인 가솔린 3008을 기다려보자.


아이신 자동 8단 변속기

출력 대비 경쾌한 움직임을 보여주는 데는 변속기의 훌륭한 궁합도 한몫한다. 아이신에서 가져온 자동 8단으로, BMW 1, 2시리즈와 볼보 전 라인업 등 전륜구동 기반 다양한 브랜드, 여러 모델에 널리 쓰이며 품질을 인정받은 변속기다.


역시 불쾌한 충격 없이 재깍재깍 원하는 단 수를 찾아 물며 주행 흐름을 매끄럽게 요리한다. 노멀 모드에선 중간중간 기어를 빼 미끄러지다가도, 스포츠 모드에선 고회전 영역까지 변속을 자제하며 최대한 힘을 뽑아 쓰거나 엔진 브레이크를 적극 활용한다. 수동 모드의 변속 반응도 무난한 수준. 넉넉지 않은 형편에도 알뜰살뜰 가정을 꾸리는 일등 살림꾼이다.


부여백제휴게소

부지런히 달려 논산천안고속도로를 지나 서천공주고속도로 부여백제휴게소에 도착했다. 잠시 휴식을 취한 후 주차장을 빠져나오며 생각했다. ‘과연 어라운드 뷰(푸조는 ‘180도 비전 팩’이라고 부른다)는 이게 최선입니까!’ 화질도 화질이지만, 차가 움직여야만 그림이 완성되는 방식은 아쉬움이 컸다. 나는 때가 어느 때냐는 말을 이때 하고 싶더라. 이해 못 하는 건 아니다. 사이드미러 좌우 카메라 없이 앞뒤 카메라만으로 주변을 보여주기 위한 궁여지책이었을 테니.


개선이 시급한 180도 비전 팩

다시 발길을 재촉했다. 푸조를 탈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하체 느낌은 정말 독보적이다. 이 부드러움이란 전반적으로 단단함을 추구하는 요즘 다른 브랜드와 완전히 결이 다르며, ‘푸조다움’의 대표적인 특징이라 할만하다. 당연히 3008도 마찬가지.


3008의 리어서스펜션

도심과 국도에서 수시로 만나는 누더기 길이나, 포트홀, 과속방지턱을 사뿐히 소화한다. 사뿐사뿐 말고도 찰랑찰랑, 야들야들 등이 떠오른다. 에어서스펜션 위에 얹힌 값비싼 SUV가 부담스럽게 호사스러운 호텔의 편안함이라면, 3008의 하체는 내집처럼 편하달까? 다분히 일상의 부드러운 달리기를 겨냥한 설정이며, 이는 조사 결과 대다수 3008 고객들이 원했던 바였다.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것도 있기 마련. 고속 코너에서 하중 이동을 든든히 버티거나, 도로에 쩍쩍 붙어 달리는 감각은 약했다. 온로드 성능을 내세운 고성능 SUV들이 물리적 한계와 싸워 이겨먹으려는 파이터의 자세라면, 3008은 도로와 춤추는 댄서에 가깝다. 비록 엠블럼은 사자지만 발걸음은 고양이와 비슷하다. 그렇다고 마냥 부드럽기만 한건 아닐지 걱정은 넣어두자. 만약 그랬다면 다름이 아니라 그름으로 기억했겠지.



드디어 도착! 연비는?


먼 길을 달려 드디어 영암 국제자동차경주장에 도착했다. 취재차 경주장 근처를 잠시 돌아다닌 것까지 포함한 주행거리는 375km. 계기반에 찍힌 평균 연비는 L당 16.3km였다. 연료는 아직 절반이 조금 못 미치게 남았다. 고성능 가솔린 차였다면 벌써 밥 달라고 경고등을 띄웠을지 모를 일이다.


375km를 달린 후 평균연비는 16.3km/L

다음날 오후, 이제 서울로 돌아갈 일이 남았다. 또다시 장거리 주행을 앞두고 걱정보다 설렘이 앞서는 건, 아직 내가 젊어서일까 아니면 3008의 편안한 승차감 때문일까? 둘 다 사실이라 믿으며 가볍게 길을 나섰다. 날씨는 화창했고, 길은 뻥 뚫려있었다.


출발하며 초기화했던 트립미터가 600km 즈음에 이르자 계기반에 연료 부족 경고가 들어왔다. 군산휴게소에서 3만 원, 약 23L를 주유하니 주행가능거리가 480km로 올라갔다. 싸고 든든한 국밥 한 그릇 먹은 기분이다. 같은 디젤 차 오너로서 뿌듯함이 샘솟는다.


3만 원 넣었을 뿐인데...

하지만 갈수록 교통 상황이 흐려졌다. 서해안고속도로 서산을 앞두고 점점 교통량이 많아지더니 급기야 서해대교에선 서울 러시아워 저리 가라였다. 아까 군산휴게소부터 글썽이던 하늘도 비를 쏟기 시작했다. 파노라마 루프 너머로 저녁노을과 비구름이 만나 아름답고도 오묘한 하늘이 펼쳐졌으며, 앰비언트 라이트가 실내를 감싸자 3008의 실내가 새삼 분위기를 달리했다.


안드로이드 오토와 애플 카플레이 모두 지원
파노라마 루프 테두리를 따라 들어오는 앰비언트 라이트

잠시 실내를 볼까? 높게 자리한 계기반은 HUD 역할을 훌륭히 해내고, 앙증맞은 운전대는 독특한 핸들링 감각의 시작이다. 피아노 건반 닮은 스위치는 소재와 조작감이 고급스럽고, 대시보드와 시트에 들어간 알칸타라가 실제보다 비싼 차로 보이게 한다. 차 급에 비해 말랑말랑한 마감재도 넓게 둘렀다. 뒷자리와 짐 공간도 무난한 수준.


독특한 아이콕핏 디자인의 실내

겉모습도 최신 스타일로 업그레이드했다. 양 끝 경계를 허물어 넓어진 라디에이터 그릴은 엠블럼을 중심으로 퍼져나가는 패턴의 입체감이 뛰어나다. 수직으로 뚝 떨어지는 주간주행등은 푸조의 새로운 상징으로 강한 인상을 전달한다. 여러 번 휴게소에 설 때마다 의외의 관심을 받았던 이유가 아닐까?


리어램프도 변했다. 가늘고 날카로운 붉은 선을 세 가닥씩 하나로 묶어, 두껍고 은은했던 면발광 램프를 대신했다. 전면 주간주행등처럼 항상 불을 밝히는 미등도 숨은 특징이다.


수직으로 떨어지는 주간주행등
날카로워진 리어램프

고마워, 3008!


집에 도착했다. 이틀간 3008과 달린 총거리는 807km. 트립미터의 평균연비는 16.1km/L를 기록했다. 거의 가득 찼던 연료탱크를 한 번 비웠으며, 3만 원 주유로 주행 가능 거리 270km를 남겼다. 고속도로 주행이 많긴 했지만, 돌아오는 길 극악의 교통체증을 생각하면 연비에 아주 유리했던 것만도 아니었다. 좋은 연비를 위해 가속페달을 애무하지도 않았다. 주유소 사장님들은 3008을 싫어하겠다.


총주행거리 807km, 평균연비 16.1km/L

훌륭한 연비가 3008의 이성적 장점이라면 한층 예뻐진 외모, 독특한 실내, 차지도 넘치지도 않는 성능, 편안한 승차감은 감성적 매력이었다. 브로슈어와 제원표만으로는 미처 알 수 없는, 직접 찬찬히 겪어봐야 알 수 있는 것들 말이다. 800km를 함께한 3008은 그렇게 ‘볼매’로 기억됐고, 이성과 감성 모두를 만족시켰다. “고마워, 3008!”


어두운 지방 국도에서 요긴한 코너링 램프

이광환 kwanghwan.lee@carla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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