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 모크, 56년 만에 귀향하다

조회수 2021. 8. 17.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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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서 태어나 타국을 전전하던 모크, 고향에서 다시 생산되어

1956년 제2차 중동전쟁이 발발하자 유럽의 연료비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연비 좋고 저렴한 차로 평가받던 BMW 이세타를 비롯한 버블카의 판매량이 급속도로 높아졌다. 당시 대중의 입맛에 맞는 차량이 영국 메이커에게도 절실했다. 그때 등장한 역사적 모델이 바로 미니였다.

1959년에 탄생한 미니 (출처: BMW Group)

미니는 브리티시 모터 코퍼레이션(이하 BMC)의 요청에 따라 알렉 이시고니스(Alec Issigonis)가 디자인한 소형차로, 매력적인 디자인과 실용성으로 전 세계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비슷한 시기에 영국을 대표할 또 다른 소형차가 설계되고 있었다. 미니의 형제 차 ‘모크’(MOKE)였다.

1950년대 영국군은 공중 수송이 가능한 다목적 차를 BMC에 의뢰했다. BMC에는 다양한 군용차를 설계한 디자이너가 있었다. 그가 바로 미니의 아버지 이시고니스’였다. 그는 미니와 휠베이스가 같은 모델을 영국군의 요청에 맞게 설계했다.

모크 프로토타입과 알렉 이시고니스 (출처: MOKE International)

1959년에 완성된 프로토타입은 군의 평가를 받았다. 결과는 좋지 못했다. 낮은 지상고와 0.85L 엔진이 영국 육군용으로 적합하지 않다는 이유에서였다. 반면 영국 해군은 항공모함에서 쓸 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다.

수송 적합성을 평가받고 있는 미니 모크 (출처: Hendy)

BMC는 이에 낙담하지 않고 항공 수송에 알맞게 가볍고 튼튼한 군용 버기카를 설계했다. 프로토타입은 더 큰 타이어와 개선된 오프로드 성능을 가진 사륜구동 모델로 거듭났다. 이 차는 비공식적으로 ‘모크’로 불렸다. 모크는 고대어로 당나귀란 뜻이었다.

그러나 재시험 결과도 실패였다. 작전에 투입하기에는 화물 수송과 험로 주행 능력이 부족하다는 이유에서였다. 이런 평가에 BMC는 군용 소형차 사업을 접었다. 이렇게 개발한 차를 묻어두기는 아까워, 영국의 도시형 차로 이미지 전환을 위한 마케팅에 힘을 쏟았다.

영국 문화의 아이콘이 되다

1960년대 영국을 휩쓸던 스윙잉 식스티(Swinging Sixties) 문화의 중심에는 히피와 10대 청소년들이 있었다. 그들은 자유로운 생각과 삶을 추구했다. 그들은 TV 광고나 드라마에 등장한 모크를 보며 컬트적 숭배 대상으로 삼았다. 루프와 도어가 없는 모델을 보고 고루한 형식을 벗어난 자유가 넘치는 디자인이라 칭송하는 젊은이들이 있었다. 이런 인기를 바탕으로 모크는 영국 대표 아이콘이란 명성을 얻었다.

1960년대 TV 드라마에 등장한 모크 (출처: The Good Life)

이때가 1964년 즈음으로, 비로소 오스틴 브랜드에서 미니 모크라는 이름으로 모크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이렇게 높은 관심과 애정을 받았지만, 판매 성적은 저조했다. 오스틴 미니 모크의 인기에도 불구하고 판매량은 4년간 약 1,400대에 그쳤다. 이는 영국에서 생산한 약 1만 4,000대의 모크 중 10% 정도였다. 구매력이 높지 않은 젊은 층의 지지 탓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1968년에 BMC는 모크를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생산하기로 했다. BMC 자동차 생산라인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추가적인 공장 설계 비용이 필요하지 않았다. 또한 1차 생산 자동차에 부가가치세가 부과되지 않는 점이 커다란 이유였다.

호주로, 다시 포르투갈로

1966년부터 1981년까지 약 2만 6,000대의 모크가 호주 시드니 제트랜드 공장에서 생산되어 모리스 미니 모크(Morris MINI MOKE)라는 이름으로 판매됐다. 영국에서 생산된 모델보다 바퀴는 3인치가 컸고 엔진은 더 강력한 것이 특징이었다. 파워트레인 개발에 정성을 들인 덕분에 최고속도 시속 약 130km로 주행 가능했다.

1973년 영화 '007 죽느냐 사느냐'에 등장한 모크 (출처: MOKE America)

1973년부터는 모기업의 재편과 더불어 레이랜드 모크(Leyland MOKE)라는 이름으로 판매됐다. 1977년에는 1.3L 엔진으로 출력이 업그레이드된 모델이 등장했지만, 얼마 후 모크는 호주를 떠나야 했다. 영국 정부의 국영화 정책의 영향을 피해갈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다음 목적지는 포르투갈 공장이었다.

포르투갈에도 브리티시 레이랜드의 조립공장(British Leyland Portugal Ltd)이 있었다. 인건비가 저렴하고 주요 시장인 카리브해가 가깝다는 것도 메리트였다. 1980년부터 1993년까지 모크는 포르투갈 공장에서 약 1만 대가 생산됐다. 이후 급속도로 판매량이 줄어든 모크는 단종됐다.

카리브해 앵귈라 해변의 모크 렌트 사무소 (출처: Anguilla beaches)

인기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카리브해 섬 등지에서 렌터카로 인기가 높아 구하는 이가 많았다. 부품 수급에도 큰 문제가 없어 중고차 시장에서 모크를 사려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상표권 분쟁이 끝나고 등장한 새로운 모크

2000년대 들어 모크를 골프 카트나 비치 카 또는 전기 차로 개조해 판매하는 회사가 늘어났다. 개조한 모델뿐만 아니라 클래식 모크를 찾는 고객도 적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세계 각지에 클래식 모크를 취급하는 딜러들이 있어 구매가 가능했다. 그러나 새롭게 디자인한 모크는 없었다. 벨기에, 스페인, 미국, 프랑스, 중국 등 소규모 자동차 회사가 새롭게 설계한 모크를 선보이기도 했지만 불법이었다.

전기 골프차로 개조된 모크 (출처: MOKE America)

그들은 상표권이 없었다. 브랜드가 자신의 것이라 주장하는 업체들끼리 법정 분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결국 2015년 모크의 상표권은 모크 인터내셔널(MOKE International Limited)이 획득했다. 그다음 정품 마크(MOKE®)를 도안해 인증 절차를 마쳤다. 이로써 오랫동안 지리멸렬하게 벌어진 모크 브랜드에 관한 권리 분쟁은 일단락됐다.

모크 인터내셔널은 새로운 모크가 필요했다. 클래식 모크의 아름다움과 멋을 유지하며 현대적인 감각을 담은 디자인을 원했다. 마침내 모크의 열광적인 팬이자 디자이너인 마이클 영과 엔지니어들을 채용했다. 그들 모두 클래식 모크를 보유하고 드라이브를 즐기고 있었다. 또한 모크의 매력 포인트가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마이클 영이 새롬게 디자인한 모크 (출처: Michael Young)

이후 전보다 큰 보디와 업그레이드된 서스펜션, 브레이크, 파워 스티어링, 열선이 내장된 앞 유리 등을 추가했다. 160개 이상의 부품을 현대적인 감각에 맞게 재설계한 결과였다. 기본 파워트레인으로는 4기통 66마력 1.1L 가솔린 엔진(유로4 준수)과 4단 자동 또는 5단 수동변속기를 장착할 수 있게 정했다. 이렇게 새 모델은 준비됐다.

영국으로 귀향한 모크

2020년 10월 모크 인터내셔널은 영국 내 공식 딜러로 헨디 그룹(Hendy Group)을 선정했다. 또한 새롭게 설계한 리미티드 에디션 ‘모크 56’(MOKE 56) 생산 계획도 함께 발표했다. 모델명의 숫자 56은 1964년에 처음 영국 도로를 달린 모크가 56년 만에 고향 땅에 돌아온 것을 환영하는 의미였다. 이렇게 비틀즈와 퀸처럼 영국을 상징하는 아이콘이 부활했다.

모크 인터내셔널과 헨디 그룹이 손을 잡고 모크의 새 역사를 쓰기 시작했다 (출처: MOKE International)

우리나라 자동차 디자인은 헥사고널, 캐스케이딩, 파라메트릭 쥬얼 패턴 등의 이름과 더불어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고 있다. 현재의 브랜드 아이덴티티에서는 과거를 느낄 수 없다. 그래서 미니 모크의 헤리티지가 주는 메시지는 무게를 더한다.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는 디자인 요소가 국내 브랜드 디자인에도 담기기를 바란다.

윤영준 (자동차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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