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 패밀리 룩의 탄생

조회수 2021. 9. 17.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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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터 슈라이어의 빛나는 업적

2000년에 현대자동차그룹의 일원이 된 뒤, 기아자동차(이하 기아)는 지속적으로 국내에 투자하고 해외 공장 생산을 늘렸다. 현지 마케팅도 강화했다. 그 효과로 생산량의 70% 이상이 수출됐다. 2005년에는 수출 100억 불탑을 받으며 글로벌 기업으로 부상했다.

2000년 인수된 후 현대자동차 옆으로 옮긴 기아자동차 본사 전경 (출처 현대자동차그룹)

당시 기아는 늘어나는 판매량을 기뻐할 수만은 없었다. 옵티마에 이어 야심 차게 내놓은 로체가 시장 반응이 좋지 못했다. 현대차 디자인을 따라간다는 혹평도 있었다. 디자인 아이덴티티가 필요한 상황에 직면했다. 기아차는 이미지 제고가 필요했다. 리브랜딩을 주도할 거물 디자이너가 절실했다.

미국으로 수출되기도 했던 기아 로체 (출처 Wikipedia)

차세대 기아 디자인을 총괄할 인물로 BMW의 수석 디자이너였던 크리스토퍼 뱅글 등 여러 명이 물망에 올랐다. 그중 ‘아우디 경영의 흑자 전환과 독일 경제의 성장에 적잖은 영향을 주었다’는 평가를 받는 인물이 있었다. 그가 바로 피터 슈라이어(Peter Schreyer)였다.

피터 슈라이어(이하 슈라이어)는 1994년 아우디 디자인 총괄 책임자를 맡았다. 이후 2002년부터 6년간 폭스바겐에서 디자인을 책임졌다. 아우디 TT, 폭스바겐의 신형 비틀 및 폭스바겐 파사트와 같은 선구적 모델의 디자인을 담당했다. 2006년 슈라이어는 기아 디자인 총괄 부사장(CDO)으로 취임했다.

2006년에 기아 총괄 디자인을 맡은 피터 슈라이어 (출처 wikimedia commons)

슈라이어는 기아 차에 ‘갖고 싶은 차’라는 존재감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우선 기존 기아 차가 가진 평면적인 전면부를 호랑이 얼굴을 기초로 입체화했다. 경쾌한 주행과 편안한 승차감을 위한 플랫폼 설계도 고려했다. 이런 개념들을 모아 유럽 디자인센터 디자이너들은 콘셉트 카를 제작했다. 차명은 키(Kee), 한자명은 기운 기(氣)로 결정됐다. '브랜드 성공의 열쇠’(Key)이자 에너지 넘치는 브랜드 이미지를 의미했다.

| 콘셉트 카 키의 등장

이렇게 만들어진 키는 2007년 9월 프랑크푸르트 모터쇼 무대에 올랐다. 대중과 언론은 기존 기아 차와 전혀 다른 스타일의 키를 보고 놀라워했다. 그때까지 기아 차는 값싼 도시형 또는 오프로드 차 메이커라는 인식이 강했다. 또한 BMW나 아우디 등에서나 볼 수 있었던 패밀리 룩, 호랑이코 그릴을 채용한 첫 번째 모델에 박수를 보냈다. 전시된 콘셉트 카 그대로 양산할 예정이라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2007년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 기아가 내놓은 콘셉트 카 키 (출처 wallpaperbetter)

그도 그럴 것이 키는 전시장이 아닌 도로에서 보더라도 어색하지 않은 완성도를 가지고 있었다. 넓은 스탠스, 낮은 지상고 그리고 긴 벨트라인은 정지 상태에서도 달리는 듯했다. 가까이 다가가 보면 알루미늄과 플라스틱 패널 단차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독특한 20인치 휠 스포크 사이로 차명이 새겨진 캘리퍼도 장착돼 있었다. B필러가 보이는 투명한 사이드 윈도에 작은 터치에도 반응하는 도어 스위치가 눈길을 끌었다.

2007년 프랑크프르트 모터쇼에 전시된 기아 키 (출처 Flickr)

운전석에 앉아 보이는 앞유리는 넓고 쾌적한 시야를 제공했다. 시트는 포르쉐 911처럼 2+2 방식을 채택했다. 뒷좌석은 성인이 앉을 수 있게 풀사이즈로 디자인됐다. 직관적으로 인터페이스를 조작할 수 있는 토글스위치가 적용돼 클래식 스포츠카를 연상케 했다. 6단 자동변속기를 덮은 센터 콘솔은 알루미늄 재질이었다. V6 2.7L MU-II 엔진을 깨울 스타트 버튼은 기어 레버 상단 커버 속에 있었다.

콘셉트 카 키의 인테리어 (출처 kiamedia)

키의 앞은 독특한 헤드램프와 LED 클러스터 그리고 세련된 범퍼 라인이 눈길을 끌었다. 기존의 기아차가 가진 밋밋하고 평면적이 얼굴이 아니었다. 전면부의 가장 큰 이슈는 호랑이 코와 입을 형상화한 그릴이었다. 슈라이어 그릴이라고도 불렸다. 이 그릴 디자인은 이듬해 양산 모델 로체 이노베이션에 최초 적용됐다. 이후 K 시리즈뿐만 아니라 쏘울, 카니발, 쏘렌토 등 여러 모델에 적용됐다. 그렇게 기아 차 만의 ‘패밀리 룩’이 완성됐다.

| 기아 패밀리 룩에 쏟아진 찬사

혹자는 각 세그먼트마다 다른 그릴 디자인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기아의 이미지를 과거로 돌려놓자는 뜻은 아닐 것이다. 슈라이더가 정립한 기아 차의 패밀리 룩은 시장의 호응을 이끌었다. 이것은 세계 시장의 판매율과 기업의 위상을 높이는 요인이 됐다.

2020년 IF 디자인 상을 받은 이매진 바이 기아(Imagine by Kia) 콘셉트 카 (출처 hyundaimotorgroup)

2012년 11월, 페르디난트 피에히 폭스바겐 회장은 오토모티브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그를 보내지 말았어야 했다”라고 말했다. 피터 슈라이어가 만든 기아 차의 아이덴티티와 지속 가능한 디자인 그리고 패밀리 룩이 보여준 글로벌 이미지에 대한 찬사였다.

윤영준 (자동차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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