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의 엔지니어들 - 월터 오언 벤틀리 (1)

조회수 2021. 11. 19.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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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통의 영국 럭셔리 자동차 브랜드를 만든 인물

역사가 긴 자동차 브랜드들 중에는 창업자의 성을 브랜드 이름으로 쓰는 곳이 많다. 그리고 그들 가운데에는 창업자가 엔지니어인 곳이 적지 않다. 오랫동안 자동차 역사는 곧 엔진의 역사였고, 다른 모든 요소를 합친 것보다 엔진의 중요성이 더 컸다. 초기 자동차에서는 섀시가 엔진을 비롯한 동력계와 구동계를 얹기 위한 수단처럼 쓰였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관점에 따라 평가가 엇갈릴 수는 있지만, 적어도 유럽에서는 본격적인 대량 생산이 이루어지기 전까지 자동차 브랜드의 명성을 좌우하는 요소 중 하나가 엔진의 성능과 신뢰성이었던 것은 틀림없다. 자동차 역사 초기에 다임러와 마이바흐가 설계하고 만든 엔진이 널리 쓰이며 자동차 붐을 일으키는 원동력이 될 수 있었던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역사가 긴 여러 자동차 브랜드들처럼 벤틀리도 창업자의 성이 회사의 이름으로 쓰였다

이는 성능과 신뢰성이 뛰어난 엔진을 설계하고 만들 수 있는 엔지니어나 업체가 많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특히 유럽 대륙이나 미국보다 자동차의 산업화가 더뎠던 영국에서는 더욱 그랬다. 그런 가운데 영국 특유의 경제사회적 환경을 극복하고 강력한 성능의 엔진과 차를 내놓아 이름을 높인 브랜드가 있었다. 바로 벤틀리다.

벤틀리는 영국을 대표하는 럭셔리 자동차 브랜드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벤틀리의 브랜드 이미지는 지금과 과거가 많이 다르지만, 이른 시기부터 럭셔리 브랜드 이미지를 꾸준히 이어온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초기부터 럭셔리 브랜드로 자리잡을 수 있었던 이유는 역시 뛰어난 기술의 엔진을 바탕으로 고성능의 차를 만들고 모터스포츠를 통해 신뢰성을 입증한 데 있다. 그 바탕을 다진 인물은 다름아닌 벤틀리 창업자인 엔지니어 월터 오언 벤틀리(Walter Owen Bentley)다.

어린 시절부터 탈것과 속도에 대한 열정 불태워

벤틀리 창업자 월터 오언 벤틀리(왼쪽)

월터 오언 벤틀리는 영어권에서는 곧잘 이름을 줄인 W. O.로 불린다. 이는 그가 처음 자동차 관련 사업을 시작할 때 동업한 그의 형 H. M. 벤틀리와 구분하려는 목적이 있다. 그리고 영국에서는 자동차에 관한 글에서 사람을 이야기할 때 벤틀리라는 성을 쓰지 않고 W. O.라고만 표현해도 읽는 이들이 누구를 말하는지 안다고 한다. 그의 유명세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1888년에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난 W. O. 벤틀리는 어린 시절부터 기계와 탈것에 관심이 많았다. 특히 당시 영국에서 빠르게 발전하던 철도는 그의 마음을 빼앗기에 충분했다. 16살이 되던 해, 그는 브리스톨에 있는 클리프톤 칼리지를 그만두고 던캐스터에 있었던 그레이트 노던 레일웨이(GNR)라는 철도 회사에서 기술 견습생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그곳에서 그는 정비와 기계학을 함께 배울 수 있었다. 근무 조건은 좋지 않았지만, 사업가였던 아버지의 후원 덕분에 생활은 꽤 풍족했다고 한다.

W. O. 벤틀리가 일했던 그레이트 노던 레일웨이의 증기기관차 (Tony Hisgett via Wikimedia Commons CC BY 2.0)

GNR에서 일하면서 그는 모터사이클이라는 새로운 탈것에 눈을 떴다. 모터사이클은 그에게 스릴과 더불어 속도의 쾌감을 한껏 안겨주었고, 이내 모터스포츠에 뛰어들었다. 그는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동원해 모터사이클의 성능을 높이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그는 모터스포츠가 기술력을 확인하고 입증하기에 효과적인 방법임을 깨달았다.

기계에 대한 관심과 속도에 대한 열정은 자동차로 이어졌다. 철도 분야에서 자신의 능력을 키우는 데 한계를 느낀 W. O. 벤틀리는 1910년에 런던에 있는 내셔널 모터 캡이라는 택시 회사로 자리를 옮겼다. 그곳에서 그는 기술 발전과 더불어 점점 더 널리 쓰이게 된 자동차를 가까이에서 경험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회사 경영에 관해서도 배울 수 있었다.

물론 그의 가장 큰 관심사는 기술과 기계였기 때문에, 오래지 않아 독립해 자동차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형인 H. M. 벤틀리와 함께 자동차 수입업체를 인수해 벤틀리 앤 벤틀리(Bentley & Bentley)로 이름을 바꾼 것이다. 그는 프랑스 DFP(Doriot, Flandrin et Parant) 차를 수입해 판매하면서 그 차로 경주에 출전했다.

이때 W. O. 벤틀리는 알루미늄 합금으로 만든 경량 피스톤, 독자 설계한 캠샤프트 등으로 엔진을 개조했고, 여러 경주에서 우승한 것은 물론 속도기록을 내기도 했다. 그는 DFP에 알루미늄 합금 피스톤을 넣은 엔진을 쓰도록 요청해 제품화하기에 이르렀지만, 채 1년도 되지 않아 제1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어 생산과 판매가 중단되고 말았다.

다양한 경험 바탕으로 자동차 만들기 시작해

제1차 세계대전 기간에 그는 영국 해군 항공국 기술 위원회에서 일했다. 당시 영국 전투기는 주로 프랑스산 엔진을 달았는데, 독일 전투기와의 공중전에서 여러 문제가 드러나면서 더 강력하고 신뢰성 높은 엔진이 필요하게 되었다. 이에 W. O. 벤틀리는 영국 자동차 업체인 험버(Humber) 출신의 기술자인 F. T. 버제스(Frederick Tasker Burgess)와 함께 프랑스 클레제 블랭(Clerget-Blin) 엔진을 바탕으로 새 엔진을 개발했다.

W. O. 벤틀리가 제1차 세계대전 중 개발한 항공기용 BR1 엔진

새 엔진은 알루미늄 피스톤과 이중 점화장치를 갖추고 실린더 설계도 바뀌었다. 그 덕분에 성능과 신뢰성이 높아진 것은 물론 값도 싸졌다. 이 엔진에는 벤틀리 성형 엔진(Bentley Rotary)의 머리글자를 따 BR1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더 크고 성능이 높은 BR2 엔진과 더불어, BR1 엔진은 1차대전 당시 영국의 대표적 전투기인 소프위드 카멜(Sopwith Camel)을 비롯해 여러 영국 군용기에 표준 엔진처럼 쓰이며 좋은 평을 얻었다.

BR 시리즈 엔진의 성공 덕분에, W. O. 벤틀리는 기술자로서 명성을 쌓은 것은 물론 충분한 경제적 대가도 얻을 수 있었다. 그 덕분에 그는 전쟁이 끝나자 마자 새로운 도전에 나설 준비를 할 수 있었다. 그동안 철도, 모터사이클, 자동차, 항공기 등 다양한 기계를 섭렵한 경험을 바탕으로 직접 자동차 만들기에 나선 것이다.

W. O. 벤틀리는 종전 후 채 몇 달도 지나지 않은 1919년 1월에 자신의 성을 내건 회사를 새로 차렸다. 런던 북부 크리클우드(Cricklewood)에 본사를 둔 벤틀리 모터스(Bentley Motors Ltd.)였다. 새 회사에는 BR1 엔진 개발을 함께 했던 F. T. 버제스와 복스홀 출신의 엔지니어 해리 밸리(Harry Valley)가 회사에 합류했다.

벤틀리의 첫 차인 스리리터

먼저 개발한 것은 엔진이었다. 역시 군 복무 당시 함께 일했던 클라이브 갤롭(Clive Gallop)이 주축이 되어 새로 개발한 3.0L 엔진은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설계와 기술이 돋보였다. 양산차용 엔진 처음으로 실린더당 4밸브 구조를 채택했고, 현대적인 OHC(오버헤드 캠샤프트) 구조와 드라이섬프 강제윤활 방식도 반영되었다. 아울러 실린더마다 스파크 플러그를 두 개씩 달았고, 트윈 카뷰레터와 펜트루프 형태의 연소실을 갖추는 등 성능을 높일 수 있는 기술이 두루 쓰였다.

W. O. 벤틀리는 1919년 10월에 열린 런던 모터쇼에 즈음해 미완성 엔진을 올린 시제차를 먼저 공개해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후 꾸준한 개선을 통해 완성도를 높인 벤틀리의 첫 차는 1921년 9월에 첫 구매자에게 인도되었다. 엔진 배기량을 뜻하는 스리리터(3-Litre)라는 이름이 붙은 그 차로부터 벤틀리의 100년 역사가 시작되었다.

(다음 호에 이어집니다)

| 글  류청희 (자동차 칼럼니스트)

* 벤틀리 창업자의 이름은 흔히 월터 '오웬' 벤틀리로 쓰이지만, 이 글에서는 외래어 표기법에 따라 월터 '오언' 벤틀리로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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