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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가 클래식 카 박물관이 된 이유

조회수 2021. 11. 1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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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한 역사가 만든 독특한 풍경

1940~50년대 전후에 생산된 자동차는 만나기 쉽지가 않다. 박물관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쿠바에서는 이야기가 다르다. 여전히 클래식 자동차가 도로에서 달리고 있다. ‘왜 이렇게 오래된 자동차가 많을까? 그 질문의 해답은 쿠바의 자동차 역사 속에 있다.

19세기 말까지 쿠바는 스페인의 식민지였다. 스페인은 400여 년이란 통치 기간 쿠바 전역을 사탕수수밭으로 만들었다. 수확한 사탕수수에서 설탕을 생산해 미국이나 유럽 전역에 수출했다. 엄청난 수익을 냈다. 쿠바 사람들은 스페인 통치하에 노예처럼 생활했다.

쿠바 독립을 이끈 미국 스페인 전쟁 (출처: wikimedia commons)

19세기 독립을 열망하는 쿠바인들은 스페인과 독립전쟁을 두 차례 치렀지만 실패했다. 1898년 미국의 도움으로 스페인의 지배에서 벗어났다. 미국은 존 R 브룩(John R Brooke)을 쿠바의 총독으로 임명하고, 군사 통치를 시작했다.

쿠바 최초의 자동차

미 군정은 스페인과 달랐다. 사탕수수 외에 다른 농작물 재배도 허가했다. 미국의 대규모 자본이 투입돼 시장은 호황이었다. 새로운 비즈니스에 도전하는 이도 생겨났다. 그들 중에 호세 무뇨스(José Muñoz)는 자동차 딜러 사업을 시작했다.

소시에떼 파리지엔의 초창기 모델 빅토리아 콤비네이션 (출처: hymanltd)

당시 그는 프랑스 메이커 ‘소시에떼 파리지엔(Société Parisienne)’이 제작한 모델을 독점했다. 그때 수입한 자동차를 사람들은 라 파리지엔(la parisienne)이라 불렀다. 이 모델들은 쿠바에서 달린 최초의 자동차로 기록됐다.

1902년 5월 쿠바는 미 군정에서 벗어났다. 이후에도 양국 간 교류는 경제, 관광, 문화 등 여러 채널로 지속됐다. 미국 자동차와 부품 수입도 확대됐다. 얼마 지나지 않아 쿠바는 라틴 아메리카에서 미국 차를 가장 많이 받아들인 나라가 됐다.

쿠바 내 대부분의 클래식 카는 미국 자동차다 (출처: pxhere)

1956년까지 14만 대 이상의 미국 자동차가 쿠바 내 도로를 달렸다. 최근 쿠바 관광지 안에서 볼 수 있는 차들이 이때 수입됐다.

특히 1950년대 쉐보레 벨 에어는 대중의 인기를 한 몸에 누렸다. 1월 혁명의 주역 체 게바라도 1960년식 쉐보레 벨 에어 스포츠 세단(Bel Air Sport Sedan)을 소유하기도 했다.

1950년대 윌리스 지프 택시 (출처: flickr)

1959년 1월 피델 카스트로가 권력을 장악했다. 그 무렵 카스트로는 1951년형 윌리스 M38 지프를 타고 수도 아바나에 입성했다. 당시 지프는 쿠바 혁명가들에게 인기 모델이었다. 수리가 용이하다는 점과 탁월한 오프로드 주행 능력 덕분이었다.

이후 쿠바는 공산주의 체제로 전환됐다. 자유민주주의 진영 미국과 쿠바의 관계는 급속도로 악화했다. 카스트로 정권은 미국뿐만 아니라 외국 물품 수입 금지를 강행했다.

멈춰버린 진화

금수 조치 품목에는 자동차와 관련 부품까지 포함됐다. 1960년 10월 19일에 미국 또한 외교 관계를 완전히 단절했다. 쿠바 내 미국인들은 추방됐다. 당시 쿠바에서 가장 유명한 미국인으로 파파(PaPa)라는 애칭으로 불렸던 소설가도 마찬가지였다. 약 28년 동안 쿠바에서 지낸 어니스트 헤밍웨이였다. 그는 애마였던 1956년형 크라이슬러 뉴요커를 두고 쿠바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헤밍웨이 동상처럼 쿠바의 자동차 시간은 1960년대에 멈췄다 (출처: piqsel)

1961년 4월 카스트로 정권은 쿠바 내 미국의 자본, 즉 공장, 부동산, 주식 등을 몰수해 국유화했다. 이후 10여 년 동안 쿠바에서 신형 자동차는 거의 볼 수 없었다. 자동차의 진화가 멈춰버린 듯한 시대였다.

이 모습을 지켜본 소련은 쿠바에 자동차 공장을 설립해 라다 VAZ 2101 모델을 주력으로 생산했다. 카스트로 정부는 국가에 헌신한 공산당원에게 이 차를 선물로 주기도 했다. 부를 떠나 명성을 나타내는 자동차로 여겨졌다. 1980년대까지 쿠바의 자동차 세 대 중 한 대는 라다 VAZ 2101이었다.

라다 VAZ 2101 쿠바 택시 (출처: wikimedia commons)

냉전 시대 속 쿠바 내 자동차는 이 모델뿐만 아니었다. 폴란드에서 생산된 피아트 126p도 있었다.  1970년대 부품 수급이 쉬웠고 연비 좋은 엔진 그리고 저렴한 가격에 호평을 받았다. 폴스키(Polski)라는 애칭으로 약 1만 대의 모델이 쿠바에 등록됐다.

쿠바는 자동차 박물관

2015년 미국은 대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쿠바를 삭제했다. 그해 7월 양국에 대사관도 다시 개설하며 외교 관계를 복원했다. 이듬해 2016년 피델 카스트로의 동생 라울 카스트로는 외제차 구매 허가를 완화했고, 마침내 미국 자동차와 부품 수입 금지를 해제했다. 이때부터 쿠바의 도로로 클래식 카가 아닌 새 모델들이 달리기 시작했다.

쿠바 수도 아바나 풍경 (출처: pxfuel)

이것이 쿠바의 고전적인 자동차 산업의 종말을 알리는 신호일까? 쿠바 국민들에게 빈티지 자동차는 중요한 수입원이기도 하다. 그들의 문화와 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다. 택시, 버스, 렌털 사업과 독점적인 자동차 판매 방식을 바꾸지 않는 한 쿠바는 클래식 카 박물관의 모습을 유지할 것으로 생각한다.

| 글  윤영준 (자동차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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