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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 드라이빙 메모리(11) - 마즈다 MX-5 미아타

조회수 2021. 11. 1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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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경량 로드스터 르네상스의 도화선

프롤로그 – 현실로 다가온 드림카

1990년대를 앞두고 자동차 업계에는 복고열풍이 일었다. 신기술을 과시하던 1980년대를 거치면서 현대적 메커니즘에 복고풍 스타일링을 갖춘 양산차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당시 사회초년생이었던 필자의 가슴에 꽂힌 차는 당연히 스포츠카였다. 그럼에도 주제 파악에 확실한 젊은이여서 페라리나 포르쉐 같은 톱레벨의 스포츠카는 꿈도 꾸지 않았다.

MG B 혹은 트라이엄프 TR3나 TR4 같은 영국산 경량 로드스터나 로터스 엘란이나 알핀 A110 정도의 소형 스포츠카들을 꿈꿨다. 그러나 그런 차들은 이미 단종된 모델들이었고 피아트 X1/9도 베르토네의 생산라인에서 겨우 명맥을 유지하는 수준이어서 ‘현재 생산라인에서 만들어지는 소형 스포츠카’는 거의 없었다. 그나마 가까운 일본의 도요타에서 내놓은 MR2와 혼다의 CR-X 정도가 겨우 꿈꿀 수 있는 스포츠모델이었다.

1987년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BMW가 발표한 Z1

1987년. 이런 잔잔한 스포츠카 꿈을 꾸던 필자의 눈에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BMW가 Z1이라는 쇼킹한 로드스터를 발표했다. BMW의 주력이었던 325i(E30)의 파워트레인을 이용해 만든 Z1은 충격 그 자체였다. 당시 BMW의 디자인 공식을 깬 파격적인 스타일링에 수직으로 슬라이딩 되는 도어를 가진 Z1은 ‘콘셉트카가 아닌가?’ 싶을 만큼 미래적 인상이었다.

그러나 이런 감동적인 등장에도 불구하고 뒤이어 들려 온 정보에 의하면 기본가격 8만 3,000마르크(당시 환률로 약 3,000만원)에 8천 대 한정생산 스포츠카라고 했다. 개인 수입이 불가능한 시절, '혹시 BMW 한국수입원인 코오롱상사에서 결정을 내리면 가능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걸어봤지만, 발표 전에 이미 3,500대가 주문되었고 고객 인도가 시작된 1989년에는 이미 완판되었단 소식이 뒤이어 전해졌다.

‘독일에서 8만 3,000마르크면 735iL 값인데 우리나라 들어오면 9,000만 원이 넘을 테고, 뭐 Z1은 내가 꿀 수 있는 꿈이 아니지 뭐 그 반값에도 못 미치는 320i 카브리오도 못사는 주제에...’

이솝우화의 ‘여우와 신포도’에 등장하는 여우처럼 자기합리화로 Z1에 대한 꿈을 접었다.

1989년 시카고 오토쇼에서 처음 공개된 마즈다 MX-5 미아타

BMW Z1이 독일을 비롯해 유럽의 도로를 달리면서 외국 자동차 전문지의 Z1 시승기를 읽으며 아쉬움을 달래던 무렵에 일본에서 또 하나의 꿈같은 소식이 들려왔다. ‘마즈다에서 2인승 경량 로드스터를 시카고 오토쇼에서 발표했다’는 내용이었다.

급하게 명동의 중국대사관(당시엔 중화민국대사관) 앞으로 달려갔다. 인터넷이 없던 시절 가장 빠른 자동차 소식을 접할 수 있는 방법은 중국대사관 앞에 자리한 일본 서적 전문 서점 서너 곳에서 일본 자동차 전문지를 사보는 것이었다. 카 그래픽, 모터매거진, 모터 팬 등 일본 자동차 전문지를 샀다.

'유노스 로드스터 특집' 책을 펴자 짜증이 났다. ‘와~ 일본 X들 왜 이렇게 잘 만든 거야?!!’ 1950~60년대 로터스 엘란을 기억에서 불러올 듯한 스타일링의 자그마한 2인승 로드스터는 너무 예뻤다. 거기에 120마력의 1.6L DOHC 엔진과 5단 수동변속기의 조합 그리고 FR 구동 방식에 4륜 더블위시본 서스펜션 등 데이터만으로도 흥분하기에 충분했다.

게다가 어설픈 일본어 실력으로 읽어본 시승기는 내가 꿈꾸던 경량 로드스터의 모든 것을 가지고 있다는 칭찬으로 가득 차 있었다. 물론 당시 일본의 자동차 저널리스트들 역시 애국심이 작동했겠지만, 찬사로 채워진 시승기를 보면서 MX-5를 나의 드림카로 결정했다. 이런 결정의 가장 크게 작용한 것은 170만 엔(약 1,700만 원)이라는 가격표 때문이었지만.

젊은이들에게 딱 맞는 스포츠카

마즈다 MX-5 미아타는 일본에서 유노스 로드스터로 판매되었다

꿈의 세계에 머물러 있던 마즈다 MX-5를 타게 된 건 2년이나 흐른 뒤였다. 일본인 친구가 한국에 차를 가지고 여행을 오겠다기에 혹시 유노스 로드스터를 가져오면 어떻겠냐고 꼬드겨 이루어졌다.

처음 MX-5를 마주한 날. 마리나 블루라 불리는 밝은 파랑 MX-5를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떨렸다. 차폭이 한 뼘 정도 넓었지만 1960년대 로터스 엘란이 떠올랐다. 운전석에 올랐다. 물론 오른쪽에... 

실내는 약간 실망스러웠다. 그냥 요즘 차였다. 하지만 운전석에 올라 시트벨트를 채우고 스티어링 휠을 잡자 완벽한 자세가 나왔다. “이건 190만 엔이 넘는 D 타입이야”라며 으스대는 친구말에 다시 둘러봤다. 파워 스티어링, 파워 윈도에 14인치 알루미늄 휠 그리고 이탈리아 모모의 가죽 스티어링 그리고 CD플레이어가 달린 모델이란다.

평범한 승용차에 가까왔던 1세대 MX-5의 실내

시동을 걸기 전 시프트 레버를 움직여 보았다. 짧은 시프트 레버는 작동이 짧으면서도 절도감이 느껴졌다. 그간 스포츠 모델이라는 국산차(현대 스쿠프 터보와 대우 르망 이름셔)의 시프트가 화물차 시프트처럼 느껴질 만큼 짧고도 절도있게 움직였다.

시동을 걸자 건조한 배기음이 다시 한번 가슴을 울렁이게 한다. 120마력/6,500rpm, 14.0kg·m/5,500rpm의 성능을 가진 엔진의 반응은 무척 빠르다. 작은 차체(3,970x1,675x1,235mm)에 차체 무게가 940kg이니 골프 GTI보다도 빠르게 느껴진다. 남산순환도로를 거쳐 사직동에서 인왕스카이웨이를 지나 북악스카이웨이까지 와인딩 코스로만 달렸다.

코너를 돌 때마다 반응이 빠릿빠릿하다. 차의 모든 거동이 운전자와 일체가 된 듯한 느낌이다. 인마일체(人馬一體)라며 떠들어대던 일본 자동차 저널리스트들의 칭찬이 오버라고 생각했었는데 정말 그랬다. 차에 따는 것이 아니라 차를 입은 것 같은 느낌이다.

페라리나 포르쉐에서 느낄 수 있는 엄청난 파워는 없지만, 충분히 빠르고 충분히 즐거운 반응을 보여준다. 페라리나 포르쉐를 탈 때 느끼는 위압감이 없어 더더욱 좋았다. 이런 차라면 새벽부터 밤까지 종일 달려도 지치지 않고 마냥 즐거울 거란 확신이 들 정도였다.

백본 프레임을 결합한 차체 구조가 민첩한 반응을 뒷받침했다

50:50의 이상적 중량 배분을 BMW가 전매특허낸 듯 자랑하지만 실제는 50:50에 가까울 뿐인데, MX-5는 정말 50:50의 중량 배분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래서 가속은 물론 제동도 안정적이고 코너링에서는 빠른 스티어링 기어와 짧은 휠베이스(2,265mm이니 2,400mm인 모닝보다도 한참 짧다)와 어우러져 빠르고 깔끔하고 즐거운 거동을 보여준다. 거기에 안정감까지!!

MX-5와 보낸 몇 시간의 드라이빙으론 너무 아쉽단 생각에 2주 동안 운전기사 겸 가이드를 자처해 전국을 달렸다. 고속도로든 국도든 아니면 구불거리는 지방도든 MX-5는 필자의 의도대로 반응하며 2,000km를 함께해 주었다.

30년이 흐른 지금도 필자는 MX-5와의 짧았던 그러나 강렬했던 만남을 잊지 못한다. 우리보다 30여 년 앞서 출발한 일본차는 그 역사 중에 몇몇 명차를 탄생시켰다. 그중 마즈다 MX-5는 일본뿐 아니라 세계에서도 인정받는 명차라고 할 수 있다.

마즈다 MX-5 이후로 현대적 경량 로드스터가 붐을 이뤘다

1980년대 초까지 겨우 명맥을 이어왔던 경량 로드스터를 현대적 기술과 레트로풍 스타일링을 버무려 탄생한 MX-5는 이후 많은 자동차 회사들이 경량 스포츠카 시장에 눈 돌리게 했고 스포츠카를 꿈꾸나 경제력이 모자란 많은 젊은이에게 스포츠카의 꿈을 이뤄준 존재였다. MX-5에 뒤이어 BMW Z3, 메르세데스-벤츠 SLK, 아우디 TT는 물론 포르쉐 복스터까지 아니 이런 비싼 독일제 경량 로드스터가 아니더라도 로버 MG-F, 피아트 바르케타 등 젊은이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자동차 세계를 펼친 주인공이 바로 마즈다 MX-5가 아닐까??!!

사족

글에는 MX-5라고 표기했지만 시승했던 차는 유노스 로드스터였다. 90년대 일본 마즈다는 5개의 딜러망을 가지고 있었다. 마즈다 이외에 자본제휴 관계에 있던 포드 배지를 단 J 포드, 그리고 상급 모델 중심의 앙피니(Efini), 소형차 중심의 오토잼(Autozam), 마지막으로 스포츠 모델 혹은 스페셜티 모델을 주로 취급하는 유노스(Eunos)가 있다. MX-5는 이 유노스 판매망을 통해 팔렸다.

유노스 로드스터는 스티어링 휠에 오른편에 달려있어도 충분히 즐거운 차다

시승한 유노스 로드스터는 당연히 일본 내수용 모델이어서 스티어링 휠이 오른편에 달린 모델이었다. 그런데도 충분히 즐거운 차였다. 자동차가 우측통행을 하는 나라에서 스티어링 휠이 오른쪽에 달린 차는 확실히 불편하고 안전에도 불리한 면이 있다. 하지만 유노스 로드스터는 스티어링 휠이 오른편에 달려있어도 충분히 즐거운 차다. 마치 오리지널 로버 미니처럼.

| 글  한장현 (자동차 칼럼니스트, 대덕대학교 자동차학과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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