힙합이 낳은 또 하나의 서브컬처 '동크'

조회수 2021. 7. 20. 16:31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번역중 Now in translation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다양한 분야의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를 카카오 플랫폼 곳곳에서 발견하고, 공감하고, 공유해보세요.

미국 동부 힙합 무대의 빼놓을 수 없는 요소

1970년대 경제 붕괴로 미국 뉴욕 브롱크스의 많은 기업과 공장이 폐쇄됐다. 젊은이들이 돈을 벌 기회는 사라져 갔고 금전적 여유가 없는 사람들은 즐길 거리가 거의 없었다. 그런데도 뉴욕의 청소년들은 기쁨과 자기표현을 추구하며 거리로 나왔다. 버려진 공장과 주차장 등이 파티(Block Party)의 무대였다. 이렇게 만들어진 플로어는 초기 힙합과 그에 관련된 문화가 발전할 수 있는 바탕이었다.

1980년대 합합의 탄생지 뉴욕 브롱크스에서 열린 블록 파티 (출처: Smithsonian Institution)

블록 파티에서 골판지는 브레이크 댄서를 위한 댄스 플로어로, 공장 벽돌벽은 그라피티를 위한 캔버스로 쓰였다. 자메이카 사운드 시스템을 사용해 DJ는 원하는 연주를 했고, 그 리듬에 맞춰 래퍼는 래핑을 했다. 이렇게 힙합이 탄생했다. 이에 성공한 공연자들은 값비싼 브랜드 옷과 액세서리 등으로 치장을 했고 어떤 이들은 롤스로이스나 포드 머스탱 등 고가의 차들을 커스터마이징(customizing)하며 자신을 표현했다.

하이 라이저 스타일로 개조한 포드 머스탱 (출처: Flickr)

이렇게 힙합과 자동차는 빼놓을 수 없는 관계를 만들어나갔다. 그 결과 만들어진 독특한 서브컬처 중 하나가 바로 커다란 휠을 단 자동차, ‘하이 라이저’(Hi-Risers)다.

힙합과 하이 라이저의 이유 있는 만남

1980년대까지 힙합은 메인스트림이 아니었다. 그래서 힙합 아티스트들은 늘 배고팠고 부유한 삶을 영위하는 사람은 극소수였다. 또한 자동차를 소유하는 것은 하나의 꿈이었고 자랑거리였다. 그래서인지 포르쉐나 페라리 등은 늘 희망 사항이었고 단종된 모델을 살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었다.

디제잉의 창시자 그랜드마스터 플래시가 사용한 턴테이블 (출처: Smithsonian Institution)

어떤 이에게 자동차는 일하기 위한 수단이었지만 그들에게는 자신을 표현하기 위한 하나의 아이템이었다. 값비싼 차보다는 자신의 현실에 부합하고 대중적이며 미국적인 자동차 스타일로 선택한 것이 바로 하이 라이저였다.

하이 라이저 스타일의 첫 번째 조건은 무조건 큰 바퀴다. 휠의 지름이 보통 20인치 이상이고 때로는 30인치 이상이 되기도 한다. 또한, 프레임을 올리고 지상고를 높인다. 두 번째 조건은 V8 엔진을 갖춘 후륜구동 방식 미국 세단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혹자는 크고 화려한 휠을 가진 차가 '동크(Donk)'라고도 하지만 엄격히 말하면 그렇다고 할 수 없다. ‘모든 동크는 하이 라이저지만 모든 하이 라이저가 동크는 아니'라는 것이다.

1970년형 쉐보레 임팔라로 제작한 동크 (출처: Flickr)

동크는 1971년에서 1976년 사이에 생산된 쉐보레 임팔라와 카프리스 모델을 뜻한다. 이것은 바뀌지 않는 황금 표준이다. 이후 모델인 1977년부터 1990년 사이의 임팔라와 카프리스 모델은 뚜렷한 직사각형 모양으로 인해 박스(Boxes)로 불린다. 버블(bubble)이라는 별칭의 차도 있다.

4세대 쉐보레 카프리스 하이 라이저. 둥근 선을 가졌다 해서 버블이라고도 불린다 (출처: wikimedia commons)

이는 1991년도에서 1996년도에 생산된 카프리스, 뷰익 로드마스터(Buick Roadmaster), 캐딜락 플리트우드(Cadillac Fleetwood)를 가리킨다. 이런 범주로 나눠진 동크, 박스, 버블 등이 하이 라이저의 하위 개념이라고 보면 좋다.

임팔라와 카프리스가 동크로 불리는 이유

먼저 언급한 임팔라와 카프리스가 어떤 이유로 동크라 불리는지 잠시 살펴보자. 임팔라와 카프리스는 미국 자동차 업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제품 중 하나였다. 이 모델들은 모두 풀 사이즈로 제작되었지만 1971년 전후 연료비 상승으로 인해 파워트레인의 출력 등이 다운그레이드 되었다. 임팔라는 1958년 쉐보레 벨 에어(Chevrolet Bel Air)와 함께 생산된 상위 트림 모델이었다. 데뷔 후 소비자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며 독립 생산 라인으로 분리됐다.

1972년형 쉐보레 임팔라 포스터 광고 (출처: Flickr)

이와 유사하게 카프리스도 임팔라의 상위 트림 모델이었고 고가였지만 소비자는 카프리스에 시선을 더 주었다. 임팔라는 1961년부터 8년간 생산된 SS(Super Sport)로 유명해졌다. 305마력 이상의 출력을 내는 V8 엔진과 높은 기술로 제작된 서스펜션 등이 만들어내는 스포티한 주행 감성으로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

임팔라 광고와 확연히 다른 분위기의 1972년형 쉐보레 카프리스 광고 (출처: Flickr)

카프리스는 스포티한 주행보다 럭셔리와 편안하고 안락함을 중심으로 제작된 차였다. 에어컨과 같은 값비싼 옵션은 상위 트림답게 임팔라보다 카프리스에 먼저 도입되었다. 1996년에 이 모델들은 외모처럼 같은 날 생산 종료가 결정됐다. 심지어 2000년 재생산도 함께 결정됐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1971년도부터 5년간 생산된 쉐보레 임팔라와 비슷한 시기에 생산된 카프리스는 ‘형제 차 또는 쌍둥이’란 별명과 함께 동크로 분류되었던 것이 아닐까 한다.

동크라는 단어의 기원

할리우드 영화나 힙합 뮤직비디오에는 큰 바퀴에 차체가 공중에 떠 있는 자동차가 종종 등장한다. 이런 스타일의 차들은 하이 라이저 또는 스카이스크레이퍼(skyscrapers)라고 한다. 이 스타일에서 파생된 독특한 문화 중 하나가 동크다. 이 말은 5세대 임팔라 실내에 장식된 배지를 보고 '당나귀 같다'는 사람들이 많았던 사실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당시 인테리어용으로만 쓰던 배지가 너무 형편없이 만들어져 아프리카 영양(Impala)을 당나귀(donk)로 오해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던 것이다. 동크 데이(Donk Day)를 창설한 리 심스(Ree Sims)에 따르면 처음에는 당나귀(Donkey)로 불리다가 1990년대 초반 마이애미에서 동크(Donk)라 부르기 시작해 미국 전역에 전파되었다고 한다.

1970년형 쉐보레 임팔라 운전대에 장식된 임팔라 엠블럼 (출처: classic cars)

또 하나의 설이 있다. 1970년대에 판매된 145마력의 임팔라에 대해 실망의 목소리가 컸다. 오일쇼크와 배기가스 규제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다운그레이드한 모델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이유로 파워 넘치고 활기찬 주행의 전 모델의 임팔라보다는 느린 당나귀라 부르다가 동크가 되었다고 한다. 어떻게 이 단어가 만들어졌다는 구체적인 증거는 없다. 하지만 다운그레이드 된 임팔라에 안타까움과 애정이 섞인 별칭임에는 틀림없는 듯하다.

동크의 한계는 하늘

이제 동크의 색다른 외형적 특색이 주는 매력을 살펴보자. 우선 동크 스타일의 차에서 가장 눈에 띄는 곳은 바퀴인 듯하다. 특히 커다랗고 다양한 스포크 디자인을 한 휠은 왕관의 보석이 아닐까 한다. 한 동크 팬은 바퀴가 크면 클수록 성층권에 오르는 기분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1,000달러 이상의 휠을 고민 없이 구입하는 듯하다. 20인치에서 30인치, 31인치 등 어떤 크기의 휠도 고객이 원한다면 제작하는 공장도 있다고 한다.

1974 쉐보레 쉐벨 라구나 동크 (출처: Flickr)

순정 보디에 직경이 큰 휠을 장착하려면 충분한 공간을 확보해야 한다. 그래서 서스펜션 및 브레이크 시스템을 개조하기도 한다. 어떤 경우에는 펜더 플레어를 넓히기도 한다. 휠을 키우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휠은 여러 방법으로 맞춤 제작된다. 동크 팬들에게 휠 높이의 한계는 우주가 아닐까 싶다. 크기만 자유로운 게 아니었다. 색상 또한 원하는 어떤 것이든 배합이 가능하다고 한다.

1972년형 쉐보레 임팔라를 바탕으로 제작된 래퍼 타이가의 동크 (출처: Big Rim)

이런 동크 스타일은 마이애미를 중심으로 한 미국 남부에서 시작된 문화답게 릭 로스, 트릭 대디, 타이가 등 유명 래퍼들의 애마로도 유명하다. 또한 서부의 로라이더(lowrider)에 대항하는 문화로도 발전했다. 여담이지만 로라이더 스타일은 1940년대 멕시코계 미국인들이 서스펜션의 스프링을 잘라 차체를 낮게 만들면서 시작되었다. 그들도 연식은 다르지만 임팔라를 선호한다고 한다.

화려한 캔디 오렌지 색상의 캐딜락 에스컬레이드 동크 (출처: Flickr)

최근 동크에 관련한 자동차 쇼나 행사 등에 모인 차들을 보면 차체는 세단, 쿠페, 컨버터블 말고도 SUV든 픽업이든 가리지 않는 듯하다. 미국 차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브랜드나 유럽 메이커의 보디도 그게 문제 삼지 않고 커다란 바퀴를 자랑하는 동크 스타일의 모델이 많아진 듯하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의 동크는 1971년에서 1976년 사이에 생산된 쉐보레 임팔라와 카프리스 모델뿐이라고 한다.

마이애미 스타일의 힙합의 상징 동크

1992년 4월 ,서태지와 아이들이 데뷔한 날을 기억한다. 그들의 데뷔곡 ‘난 알아요’는 카페든 식당이든 어디든 들렸다. 우리나라에 힙합과 관련된 음악과 패션 심지어 학계까지 커다란 영향을 준 그들이었다. 반면 당시 멜로디 위주의 음악적 흐름에 거스르는 음악이라 혹평하는 사람도 있었다. 디지털 샘플링의 리듬에 맞춰 내뱉는 말과 힙합을 받아들이기 힘든 시대에 그들이 던진 문화적 충격은 하나의 즐거움이 되어갔다.

동크도 그들의 음악처럼 클래식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확실한 건 1970년대 초기의 기념할만한 차를 가지고 자신을 표현한다는 것이 매력적이라는 것이다. 어두웠던 시대에 탄생한 힙합 문화처럼 동크도 그냥 즐기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윤영준 (자동차 칼럼니스트)

이 콘텐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