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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승기] '친절한 오프로더' 지프 랭글러 4xe, "아스팔트도 제법 잘 어울려요"

조회수 2021. 12. 4.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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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동화 추세는 더 이상 거스를 수 없는 대세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 지프 랭글러를 꼽을 수 있다. 강인하고 굳건한 이미지의 이 하드코어 오프로더는 전동화 흐름을 비껴갈 것처럼 보였지만, 어느새 전기 모터가 들어가기 시작했다.

정통 오프로더에 전기모터는 과연 어울리는 조합일까. 지프 랭글러 4xe를 직접 만나봤다. 앞서 여러 기자들이 오프로드에서 신차를 평가한 만큼, 이번에는 도심을 주요 평가무대로 삼았다.

외관은 기존 랭글러와 차이점을 찾기 어렵다. 테일게이트 왼쪽에 4xe 로고에 파란색 e자가 추가됐고, 운전석 앞쪽에 자그마한 충전구가 추가된 것을 제외하면 사실상 큰 변화는 없다.

전면부는 여전히 브랜드 특유의 '세븐 슬롯 그릴'을 중심으로 동그란 눈과 각진 범퍼, 극단적으로 두드러진 펜더가 위치한다. 옆면도 도드라진 경첩과 넉넉한 스이드스탭, 그리고 C필러 뒤편으로 살짝 보이는 스트럿바 등이 어디든 달릴 수 있음을 암시한다.

랭글러 4xe는 오버랜드 모델을 베이스로 하기 때문에 나름(?) 얌전하게 생긴 브릿지스톤의 듀얼러 H/T 타이어가 장착됐다. 덕분에 잘 포장된 아스팔트 길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이들이 부담 없이 선택할 수 있겠다.

뒷면 역시 기존 랭글러와 다르지 않다. 커다란 보조 바퀴가 뒷문짝 대부분을 가리고 있고 그 가운데는 후방 카메라가 위치한다.

실내도 마찬가지다. 도어와 천장을 분리할 수 있기 때문에 창문 조작 버튼은 작은 센터 디스플레이 아래쪽으로 밀려났고, 실내등은 차량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기둥에 위치한다.

핵심은 역시 달라진 심장이다. 랭글러 4xe는 최고출력 272마력의 2.0L 가솔린 터보 엔진과 각각 33kW(약 45마력) 및 100kW(약 136마력)급인 두 개의 전기 모터가 결합해 375마력의 시스템출력을 자랑한다.

이와 함께 삼성SDI가 만든 360V 15.23kWh 리튬 이온 배터리 팩을 품었다. 덕분에 엔진을 돌리지 않고도 30km 이상을 달릴 수 있다. 배터리는 2열 시트 아래 위치해 트렁크를 비롯한 실내 공간을 낭비하지 않았다.

험상궂은 외모와 달리 시동 버튼을 눌러도 조용한 차량은 어딘가 어색하다. 가속 페달에 발을 살짝 얹으면 공포 영화에서 유령이 등장할 때 흘러나올 법한 고주파음이 들리며 살며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이 소리는 보행자 안전을 위해 차량 외부에 들리도록 만들어진 가상 사운드로, 차를 세우거나 속도가 35km/h를 넘어서면 들리지 않는다. 한 가지 불만이 있다면 이 소리가 실내에서 지나치게 크게 들린다는 점이다. 특히, 소리가 보닛이 아닌 뒤쪽에서 들리기 때문에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도심에서 더 거슬린다.

전장은 4880mm, 전폭은 1935mm로 꽤 큰 덩치이지만, 각지고 앞으로 쭉 뻗은 보닛 덕분에 차폭을 가늠하기에 편해 운전이 부담스럽지 않다. 여기에 조용하면서도 가뿐한 전기 엔진의 성능까지 더해지니 도심에서 이리저리 쏘다니는 재미가 있다

공식 제원상 전기만으로 32km를 달릴 수 있다. 그러나 계기판에는 40km 넘게 달릴 수 있다고 표시된다. 한국교통안전공단이 발표한 지난해 하루 평균 자동차 주행거리가 37.9km을 감안하면 기름 한 방울 없이 일반적인 출퇴근이 가능한 셈이다.

예상외로 넉넉한 전기 주행거리 덕분에 엔진을 한 차례도 돌리지 않고 서울을 벗어나 고속도로에 올랐다. 가속 페달을 조금 더 깊게 밟아도 엔진은 여전히 깨어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결국 최고 제한속도인 110km/h까지 별다른 어려움 없이 전기 모터만으로 달렸다. 엔진이 돌지 않으니 주행감각도 생각보다 부드럽고 편안하다.

게으른 엔진이 괘씸해 순간적으로 가속 페달을 깊게 밟으니 그제서야 움직이기 시작한다. 기껏 잠들어 있던 엔진을 깨웠지만 큰 타이어에서 올라오는 노면 소음, 각진 차체에 바람이 부딪히는 소리 때문에 존재감은 크지 않다.

고속도로에서 엔진 없이도 부족함이 없던 랭글러 4xe는 엔진의 힘이 보태지자 한결 날랜 몸놀림을 보여준다. 300마력 넘는 최고출력을 자랑이라도 하듯 가속 페달을 밟는대로 뻗어나간다. 잘 포장된 도로에서도 마치 험로를 탈출하듯 고개를 치켜들며 박차고 나가는 느낌이 제법이다.

전기 주행 모드는 하이브리드 모드와 더불어 일렉트릭 모드, e-세이브 모드 등 세 가지를 갖추고 있다. 이와 별개로 각 모드별로 회생 제동 강도를 조절할 수도 있다.

기존 내연기관 모델의 오토 스탑 기능을 해제하는 버튼은 회생 제동 버튼으로 바뀌었다. 이 버튼을 누르면 회생 제동량이 더욱 커진다. 단, 원 페달 드라이빙이 가능한 정도는 아니다. 완전 정차를 위해서는 여전히 브레이크 페달을 밟아주어야 한다.

하이브리드 모드에서는 일반적인 플러그인하이브리드 차량처럼 전기를 우선 소모하고, 보다 강력한 힘이 필요할 때만 엔진이 깨어나 개입한다. 일렉트릭 모드에서는 고속 주행할 때도 엔진을 돌리지 않으며, e-세이브 모드에서는 고출력이 필요할 때만 배터리에 저장된 전기를 꺼내 쓰고 대부분의 상황에서 엔진을 우선 구동해 배터리를 충전한다.

한 가지 독특한 점은 배터리를 모두 소모해도 엔진을 적극적으로 멈춰 세운다는 점이다. 남김없이 전기를 쥐어짜 내는 느낌이다. 특히, 일렉트릭 모드에서는 배터리가 1%라도 남아있는 한 끝까지 붙잡고 엔진을 돌리지 않는다.

한참을 달리다 보니 어느덧 배터리가 동났다. 랭글러 4xe는 여느 PHEV 차량처럼 급속 충전을 지원하지 않는다. AC 단상 5핀 커넥터를 이용해 7kW 속도로 완속 충전하려면 2시간 반이나 소요된다.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이번에는 별도 외부 전원 없이 e-세이브 모드로 충전을 해봤다.

e-세이브 모드로 놓더라도 정차 상태에서 엔진이 무작정 높은 RPM으로 돌거나 하지는 않는다. 엔진이 계속 작동하니 연비가 줄어들지만 출력 감소는 그다지 느껴지지 않는다. 약 100km를 달린 후 배터리가 50%까지 충전됐다. 이때 전기만으로 주행 가능한 거리는 약 22km를 가리킨다.

투박한 생김새와는 다르게 사각지대 모니터링 시스템과 같은 안전 사양이나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과 같은 주행 보조 시스템도 빠짐 없이 갖추고 있다. 다만,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의 경우 저속에서 기능이 해제되는 방식이다. 전자식 파킹 브레이크가 탑재되지 않아 오토 홀드 기능도 없다. 정차 시에는 브레이크를 계속 밟고 있어야 한다.

상대적으로 의외의 오디오 성능에 놀랐다. 랭글러 4xe는 9개의 스피커와 트렁크에 위치한 서브우퍼로 구성된 알파인 프리미엄 오디오 시스템이 적용됐다. 명료한 고음과 든든한 저음이 노면 소음과 풍절음을 뚫고 실내에 울려퍼지는 느낌이 생각보다 괜찮다.

아무리 편안한 주행을 추구한 오버랜드 모델이라지만, SUV 수준의 승차감을 기대하면 안 된다. 전기모터와 배터리,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까지 최첨단 기능이 적용됐어도 랭글러는 랭글러다. 2시간 넘게 운전대를 잡고 앉아있으니 허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이번 시승 기간 동안 총 600km를 달렸고, 평균 연비는 10.4km/L를 기록했다. 그중 배터리만 사용해 달린 거리는 164km에 달한다. 배터리 충전을 위해 e-세이브 모드를 한참 사용했고, 대부분의 시간을 도심지에서 보낸 탓에 표시연비(12.7km/L)보다는 낮은 실연비를 나타냈다.

그간 지프 랭글러는 '주말 캠핑이나 가끔씩 오프로드를 갈 때나 어울리는 차'라는 편견이 있었다. 그러나 처음 만난 오버랜드 모델은 도심에서 제법 친절했고, 여기에 전기 모터와 배터리까지 더해지니 데일리카로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모습을 보였다.

어디서든 존재감을 숨기지 않는 각진 디자인을 선호하고, 평일, 주말 모두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자동차를 찾는다면 지프 랭글러 4xe가 제격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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