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 드라이빙 메모리 (8) - 프렌치 스포츠의 표본 - 푸조 405 Mi16

조회수 2021. 8. 17.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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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개성? 또는 고집!

프랑스인들은 자긍심이 넘친다. 그리고 고집이 세다. 프랑스와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나라들을 보는 그들의 시각 또한 마찬가지다. 그들 눈에는 독일인들이 ‘융통성 없는 멍청이들’이고 영국인들은 ‘거드름 피우는 촌놈’들이며 이탈리아리인들은 ‘놀기 좋아하는 사기꾼’들이고 스위스인들은 ‘심장에서 째깍거리는 소리가 나는 돈만 밝히는 모리배들’이다. 오로지 자기들만이 ‘멋을 알고 인간미를 간직한 문화인’이라는 같잖은 자부심에 절어 있다. 한마디로 밥맛없는 인간들이 넘친다.

프랑스 기술을 상징했던 시트로엥 DS(아래)와 영국과 프랑스가 합작해 만든 초음속 여객기 콩코드

프랑스 기술자들도 마찬가지다. 하나의 컨셉을 잡으면 타협은 거의 없다. 그리고 그런 것을 ‘프랑스적 합리주의’라고 우긴다. 많은 사람이 칼 벤츠가 특허를 낸 1886년을 자동차의 원년이라 하지만 그들은 그보다 2년 앞서 프랑스에서 자동차가 만들어졌다고 우기기도 한다. 밥맛은 없지만 인정할 부분도 있다. 그런데도 세계에 첫 고속철 TGV를 내놓았고, 이젠 사라졌지만 영국과 함께 초음속 여객기 콩코드를 선보인 나라다.

덤덤했던 첫 만남

프랑스 차 역시 그런 프랑스적 자긍심과 고집이 넘쳐난다. 지금은 많이 완화되었지만(?) 1980~90년대까지만 해도 프랑스 차는 국제적 감각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래서 프랑스 차는 유럽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기 힘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나라에 수입차 시장이 개방되자 푸조가 들어왔다. 이미 기아가 푸조 604를 조립 생산하면서 ‘최고급 최고가 국산차’ 타이틀을 가졌던 푸조였기에, 수입사였던 동부그룹은 자신 있게 시장에 뛰어들었지만 판매는 신통찮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내놓을 모델이 없었기 때문이다. 플래그십 모델이던 604는 후계 모델 없이 단종되었고 당시 푸조의 최고급 모델이던 505는 발표된 지 10년을 바라보는 구형이어서 경쟁력이 떨어졌다.

겨우 명맥을 유지하던 동부 푸조사업부가 기지개를 켠 것은 91년 푸조의 새로운 기함 605와 함께 중형 405 모델을 들여오면서였다. 흔히 푸조의 5세대 모델로 불리는 이들 모델이 등장하면서 우리나라에 프랑스 차가 자리 잡기 시작했다(물론 점유율은 미미했다).

당시 필자에게 푸조란 브랜드는 그리 눈길이 가지 않는 차였다. 505 V6를 타보았지만 기억에 남는 것은 벤츠만큼 세련된 승차감 정도였다. 더구나 2세대 폭스바겐 골프 GTI 16V에 빠져있던 터라 큰(?) 세단에는 그리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405 시승에 그리 큰 기대를 걸지도 않았다.

405의 첫 모습은 밍밍했다. 균형 잘 잡힌 프로포션이었지만 피닌파리나 디자인에 대한 필자의 기대가 컸던 탓이었는지 그냥 작은 현대 쏘나타(Y2) 같은 인상이었다. 차체는 기아 캐피탈과 거의 비슷한 크기인데 뒷좌석 공간은 훨씬 넓게 보였다. 그런데 트렁크 위에 달린 스포일러, 큰 휠과 넓은 타이어가 눈길을 끌었다. 195/60 R14 초편평 타이어(타이어 사이즈를 잘못 쓴 게 아니라, 90년대 초에 편평비 60인 타이어는 고성능 차의 상징이었다)라니?!

일단 운전석에 올랐다. 전체적인 질감은 고급스럽진 않지만, 계기류나 조작 레버와 스위치가 제자리에 달려 있다. 국산차나 독일차에서 옮겨타더라도 프랑스 차라서 다른 부분은 거의 없다. 적어도 디자인 면에서는 프랑스 차 냄새가 많이 사라졌다. 비로소 프랑스 고집쟁이가 국제감각을 익힌 것 같다. 약간 낮은 시트와 탁 트인 시야, 제대로 위치를 잡은 스티어링 휠과 시프트 레버까지 운전하기에 더없이 좋은 모습이었다.

섬세한 반응이 준 감동

시동을 걸었다. 액셀러레이터 페달을 밟자 엔진 회전이 즉각적으로 반응한다. 배기음도 좋다. 기어를 1단에 넣고 클러치를 연결하자 왜 이 차가 크고 넓은 타이어와 리어 스포일러를 달았는지 이해가 됐다. 그 반응은 2세대 골프 GTI 16V와 거의 같았다. 오히려 405가 더 빠른 듯했다. 그 차는 그냥 405가 아니라 405 Mi16이었다. 최고출력 158마력의 DOHC 엔진을 얹은 고성능 405였다는 얘기다. 당시 메이커 발표치로는 최고속도 시속 214km에 정지에서 시속 100km 가속에 9.0초가 걸렸다.

이런 데이터가 요즘 기준으로는 초라해 보이지만 30년 전 기준으로는 엄청난 수준이었다. 당시 국산차 중에 158마력이 넘는 출력을 가진 차는 현대 그랜저 3.0(164마력)과 오펠의 3.0L 직렬 6기통 엔진을 얹은 대우 임페리얼(184마력)뿐이었다. 당시 고성능 차의 기준이 최고속도 시속 200km, 시속 100km 정지 가속 10초 이내였음을 고려하면 405 Mi16의 성능은 대단한 것이었다.

먼저 올림픽대로를 달려 보았다. 당시 올림픽대로는 양화대교를 지나면 김포공항까지 거의 빈도로 수준이었다. 과속단속 카메라도 거의 없어 아우토반 달리기를 흉내 낼 수 있었다. 고속성능이나 중간 가속 성능 모두 뛰어나다. 바람 가르는 소리가 조금 거슬렸지만, 즉각적인 반응에 감동하느라 소음은 그저 빨리 달리고 있다는 안내 멘트로 느껴졌다. 김포공항을 돌아 성산대교를 넘어 '서울의 하코네' 북악스카이웨이로 향했다.

북악스카이웨이를 달리면서 405 Mi16이 정말 대단한 차라는 확신이 들었다. 부드러운 승차감과 안정적인 코너링을 어떻게 양립시킬 수 있었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대단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2세대 골프 GTI 16V보다 더 빠르고 세련된 달리기였다. 이전에 잠시 시승했던 란치아 테마 8.32도 떠올랐다. 평범한 소형 해치백에 고성능 엔진을 얹은 2세대 골프 GTI 16V가 ‘양가죽을 쓴 늑대’라 불린다면, 고급스러운 4도어 세단에 페라리 328의 엔진을 디튠해 얹은 테마 8.32는 ‘양가죽을 쓴 사자’였다. 푸조 405 Mi16은 ‘양가죽은 쓴 표범’이라 할까?!!

필자에게 푸조 405 Mi16은 30년 전 기억뿐 아니라 현재까지도 마음을 설레게 하는 차로 남아있다.

사족(蛇足)

요즘 팔리는 프랑스 차들(르노삼성차 포함)을 보면 조금 슬프다. 경제성, 실용성 그리고 스타일링에만 초점을 맞춘 듯하다. 직접 타면서 가슴 울리는 그런 프랑스 차 그래서 한편 감탄하면서 이해 못할 부분에 욕도 하면서 탈 수 있는 그런 프랑스 차는 사라진듯하다.

한장현 (자동차 칼럼니스트, 대덕대학교 자동차학과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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