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대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

조회수 2021. 8. 17.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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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대는 둥글지 않았다

1886년 세계 최초로 특허를 받은 세 바퀴 자동차 페이턴트 모터바겐은 방향을 바꾸려면 막대기를 잡고 돌려야 했다. 비슷한 시기에 제작된 네 바퀴 자동차 모터 캐리지도 마찬가지였다.

1886년 모터 캐리지를 타고 있는 고틀리프 다임러와 그의 아들 아돌프 (출처: Daimler)

어느 것이나 방향을 바꾸기 위한 크랭크와 레버가 있었지만 편리하거나 정밀하지 않았다. 1893년 칼 벤츠는 조향성을 높이려 이중 회전축을 가진 장치를 발명했지만 나아지지 않았다. 이듬해 앞바퀴 방향을 드라이버가 원하는 대로 움직일 수 있는 장치가 세상에 나타났다.

동그란 운전대의 탄생

1894년 7월 파리에서 출발해 루앙까지 달린 레이스에 동그란 운전대를 달고 출전한 레이스 카가 그것이었다. 이 모델은 프랑스 엔지니어 알프레드 바셰론이 파나르 르바소 차량을 개조한 경주용 차량으로 정확한 조향과 고속에서 탁월한 방향 전환이 장점이었다. 이 경기에 11등을 기록했지만 스티어링 휠 역사에서는 둥근 운전대를 단 첫 자동차로 기록됐다.

1899년 당시 동그란 운전대를 단 들라이에의 광고 (출처: cliccar)

이후 프랑스뿐 아니라 여러 나라 메이커가 빠르게 이 기술을 수용했다. 개선해야 할 부분이 많았지만, 특히 운전대가 뻑뻑해 부드럽게 돌아가지 않는 점이 큰 문제였다.

1910년 캐딜락 레이서에 쓰인 나무 운전대 (출처: American Car Collector)

코너가 많은 길에서 운전자의 노동 강도는 증가했다. 정지 상태에서 운전대를 돌릴 힘이 부족한 운전자도 적지 않았다. 운전자가 조금 더 수월하게 돌릴 수 있도록 당시 자동차의 운전대의 지름은 길게 디자인됐다.

유압식 파워 스티어링의 발명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는 시간이 꽤 필요했다. 제1차 세계대전의 소용돌이 속에서 자동차 업체들이 조향장치를 개발할 시간적 여유와 자금이 부족했던 탓이었다. 둥근 운전대가 디자인된 후 30여 년이 흐른 뒤에야 가볍고 부드럽게 앞바퀴를 조정할 수 있었다. 1926년 프랜시스 데이비드(이후 데이비드)가 유압식 파워스티어링 시스템을 개발한 덕분이었다.

프랜시스 데이비드가 설계한 유압식 파워 스티어링 구조 (출처: hemmings)

그는 제너럴 모터스(GM)에 특허 기술을 제안했지만 거절했다. 값이 비싸 경제적인 장치가 아니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GM은 상대적으로 저렴한 재순환 볼 스티어링 시스템을 선택했다. 그 시스템을 채용한 자동차는 주행 중 부드러운 방향 전환이 가능했지만, 정지 상태에서는 과거의 문제점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다. 결과적으로 GM의 계산은 틀렸다.

운전대 손가락 하나로 돌아가다

이후 자동차 메이커들이 파워 스티어링 특허를 '사느냐 빌리느냐'를 놓고 고민만 하던 와중에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적은 수의 탱크와 장갑차 그리고 대형 군용차가 데이비드의 기술을 적용했다. 파워 스티어링 시스템을 탑재한 군용 트럭 등의 기동성은 우수했다. 자동차에 적용해야 할 이유는 충분히 검증했다. 전쟁이 끝날 때쯤 파워 스티어링 시스템을 적용한 군용 차량이 1만 대가 넘었다.

손가락 하나로 조향이 가능하다는 1952년형 드소토 광고 (출처: Chrysler)

1951년에 데이비드의 특허권이 사라지자 크라이슬러는 발 빠르게 유압식 파워 스티어링 시스템(일명 하이드라가이드)을 사용했다. 이 기술이 최초로 적용된 양산차가 바로 임페리얼이었다. 이후 여러 메이커에서 사용되고 개발되며 엄청난 속도로 다양하고 우수한 파워 스티어링 시스템이 만들어졌다.

1972년 마세라티 부메랑 콘셉트카의 운전대 (출처: wikipedia)

이후 출력이 강한 스포츠카와 레이스 카 등은 지름이 작은 운전대를 채용했다. 더 빠르고 더 날카로운 방향 전환을 위해서였다. 수평으로 돌아오는 시간이 짧았던 그 디자인이 정답이었다. 이후 거대한 스티어링 휠은 점점 자취를 감췄다.

스티어링 휠과 함께 발전한 것들

이런 조향 시스템의 발전으로 스티어링의 편안함이 높아지자 자동차 소비량도 동시에 늘어났다. 교통혼잡과 교통사고의 수도 마찬가지였다. 운전자와 보행자에게 사고 위험을 알리려 사용된 기존의 경고 장치 벌브 혼(Bulb Horn)보다 강력한 소리를 내는 것이 필요했다. 이런 요구를 알아차린 밀러 리스 허치슨은 1908년에 클랙슨 경적을 발명해 상품화했다. 이후 1920년대 초반 보쉬가 개발한 전자식 클랙슨이 운전대에 적용되며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1908년 클랙슨 경적 광고 (출처: Graces Guide)

스티어링 휠 재질에도 변화가 있었다. 초기 운전대는 강철 림을 두 장의 목재 림에 샌드위치처럼 넣어 가공해 제작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목재 스티어링 휠은 여러 문제점이 있었다. 세월이 흐를수록 목재가 썩거나 부서지는 일이 빈번했다. 사고 시 운전자와 승객이 파손된 운전대 조각에 상처를 입기도 했다. 높은 목재 값도 메이커에게 부담이었다.

스티어링 휠 디자인의 시대적 변화 (출처: wikimedia)

그러던 1909년에 첫 합성 플라스틱인 베이클라이트가 발명됐다. 이 소재는 목재보다 값싸고 내구성이 높아 운전자와 메이커의 선호도가 높았다. 그렇게 대량 생산된 스티어링 휠 손잡이 부분에 가죽을 덧대서 그립력과 멋스러움을 자아냈다. 이렇게 운전대는 조향성과 안전성 그리고 스타일을 중심으로 발전했다.

끝없는 스티어링 휠의 변화

2000년대 이후 스티어링 휠에 많은 인터페이스 요소가 추가됐다. 오디오 볼륨, 크루즈 컨트롤, 전화 및 온보드 컴퓨터 제어 장치와 에어백 등 여러 안전 요소가 포함됐다. 조향에 집중해 설계한 초기와 달리 '다기능 스티어링 휠'로서 자동차의 주요한 디자인 장치로 거듭났다. 부주의한 운전자에게 경고하고 전기 신호(통신)로 주행을 제어하는 스마트 스티어링 휠을 채용한 자동차는 도로를 점령한 지도 오래다.

스티어링 휠 미래 콘셉트 (출처: Pixabay)

레벨 3 이상 자율주행을 목표로 하는 자동차 업계에서는 플랫 보텀(Flat Bottom), 조이스틱(Joystick), 요크(Yoke) 등 여러 스타일에 독특하고 아름다우며 최첨단 기능까지 두루 갖춘 운전대를 선보였다. 130여 년의 역사를 가진 스티어링 휠이 앞으로는 어떤 기능과 디자인으로 변신할지 그리고 어떤 자동차에 쓰일지 자못 궁금하다.

윤영준 (자동차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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