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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롱텀시승 #6] 슈퍼카 오너의 봄맞이 마음가짐, 458 스파이더

탑기어 입력 2020.03.27 10:57 수정 2020.03.27 11:3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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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렵고 안타깝고 근심스럽다. 몸과 마음을 찌들게 하는 공해 같았다. TV가 쉴 새 없이 코로나19 관련 속보를 쏟아내고 있었다. TV 리모컨을 집어 들고 전원 버튼을 꾹 눌렀다. ‘휴, 이제야 좀 조용하네.’ 거실 창문을 활짝 열었다. 지난밤 내린 봄비 덕에 서울 하늘이 모처럼 쾌청하다. 맨얼굴을 드러낸 하늘빛은 눈이 시리도록 맑았다. 창밖에서 새들이 지저귀는 상쾌한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세상이 어수선해도, 계절을 막지는 못하는 법. 바야흐로 봄이었다.

봄이 상징하는 단어를 가만히 떠올려 본다. 새싹, 꽃, 햇살, 소풍, 설렘, 희망… 그리고, 슈퍼카 시즌 시작. 봄날 주말이면 도로 위가 떠들썩해진다. 봄맞이 라이딩을 나온 라이더와 모처럼 드라이브를 떠나는 스포츠카가 쏟아져 나와서다. 겨우내 기지개 한 번 마음껏 켜보지 못한 나의 안쓰러운 458 스파이더에게 봄바람을 쐐주기로 했다. 마침 반가운 봄 손님이 찾아왔다고 한다. 페라리 최신 오픈톱 모델 F8 스파이더와 812 GTS가 예비고객을 만나기 위해 페라리 청담 전시장에 도착했다.

458 스파이더의 손자 뻘 되는 F8 스파이더도 기대되고, 페라리가 50년만에 선보이는 V12 프런트 엔진 스파이더 812 GTS도 궁금했다. 옷장 깊숙이 넣어두었던 얇은 외투를 꺼내 입고 (물론 KF94 마스크도 든든히 챙겨쓰고) 모처럼 새빨간 차 키를 꺼내 들고 집을 나섰다. 서늘한 3월의 아침, 자연흡기 V8의 울림은 더없이 경쾌했다.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세상에는 결코 숨길 수 없는 세 가지 있다. 재채기, 사랑, 그리고 페라리가 주는 기쁨이다. 윈드스크린 너머로 시리도록 파란 하늘과 티 없이 새하얀 구름이 펼쳐졌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오른손 검지가 자석에 이끌리는 쇠막대처럼 루프 오픈 스위치로 향했다.

기분 좋은 냉기가 두 볼을 쓰다듬었다. 알 수 없는 일이다. 시선은 분명 윈드스크린 너머 도로를 향하고 있는데, 가슴은 머리 위로 넓게 열린 푸른 하늘을 향해 기지개를 켜고 있었다. 가속페달에 힘을 실었다. 자연흡기 V8 엔진의 명쾌한 회전질감이 머릿속 얽힌 실타래 한 올까지 시원하게 풀어줬다. 생생한 배기음은 마음속 구석구석 찌든 때를 깨끗이 털어냈다. 더없이 소중한 순간이었다. 매 순간, 미세한 감각 하나, 사소한 감정 변화까지. 주행의 모든 과정을 360도 촬영해서 어딘가에 저장해두고 싶을 지경이었다.

새빨간 458 스파이더가 페라리 청담 전시장에 도착했다. 환대하는 이는 없었다. 친정에 온 딸을 출가외인 취급하는 건지, 전시장 입구에 열화상 카메라가 눈을 번뜩이고 있었다. 코로나19 감염을 예방하기 위해 방문자의 체온을 체크하는 절차였다. 모든 방문자에게 마스크와 소독용 물티슈를 나눠줬다. 마스크를 잘 썼나 한 번 더 확인하고 손을 꼼꼼히 씻었다. 그 와중에도 바쁘게 돌아가는 두 눈을 어찌할 수 없었다. 눈부신 자태를 드러낸 최신 페라리 때문이다.

458 스파이더의 V8 미드십 하드톱 구성을 계승하는 F8 스파이더에 시선이 쏠렸다. 첫눈에 반할 만큼 아름다웠다. 우아하면서도 명민하고, 매혹적이면서도 샤프한 이미지다. 이성이든 감성이든 거부할 재간이 없다. 458 스파이더가 풍만한 곡선으로 여성성을 강조한 이미지를 드러낸다면, F8 스파이더는 예리한 라인과 각진 디테일을 더해 흉흉한 분위기를 잔뜩 풍긴다.

겉모습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488 피스타에게서 물려받은 S-덕트다. 프런트 다운포스를 높여 앞바퀴 접지력을 향상시키는 기능적 측면은 까맣게 잊어버릴 정도로 아름다웠다. 페라리는 기능적 요소를 미학적 영역으로 끌어들이는 데 능숙하다. 단순히 아름답기 위한 장식요소라고 해도 누구도 흠잡지 못했을 텐데, 구석구석 작은 디테일 하나까지 주행성을 끌어올리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사랑하는 458 스파이더와 비교하기는 좀 어렵지만, 눈이 부시도록 아름답고 가슴 저리도록 탐나는 모델이라는 사실만은 부정할 수 없었다.

엔진룸을 열어 샅샅이 살폈다. 2016년부터 2019년까지 4년 연속 올해의 엔진상을 휩쓸고, 2018년엔 지난 20년간 엔진상을 수상한 모든 유닛 가운데 최고의 엔진으로 뽑힌 명작이다. 488의 트랙 스페셜 모델 488 피스타에게서 물려받은 V8 터보 엔진의 최고출력은 무려 720마력. 488 스파이더보다 50마력, 458 스파이더보다는 155마력이나 강력하다.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km 가속은 2.9초 만에 끝내고, 시속 200km까지는 8.2초면 충분하다.

488 챌린지 경주차에서 물려받은 흡기 시스템으로 숨을 들이키고, 항공우주 분야에 사용하는 인코넬 합금으로 빚어낸 경량 배기 시스템으로 숨을 내뱉는다. 차체 무게는 488 스파이더보다 20kg 가볍다. 개인적으로 출력, 속도, 제로백 같은 제원 수치보다는 감성과 주행 만족도를 우선시하는 편이지만, 페라리의 90년 레이싱 기술과 70년 로드카 제조기술을 집대성한 최신 모델 앞에 서고 보니, 새삼 엄청난 성능을 경험하고 싶은 충동이 들끓었다.

운전석에 앉아 보려다가, 혹여 겉잡을 수 없는 상황이라도 벌어질까 두려워 황급히 다른 전시차로 발길을 돌렸다. 실은 458 스파이더가 초라해 보일까 걱정됐다. 페라리가 반세기 만에 내놓은 양산형 V12 프런트 엔진 스파이더 812 GTS를 살펴봤다. 지난 50년 사이 550·575·599와 같은 V12 모델의 오픈톱 버전도 깊은 인상을 남겼지만, 모두 한정판이었다. 도로를 질주하기보다는 차고에서 먼지만 뒤집어쓸 가능성이 높은 모델이었던 셈이다. 812 GTS는 양산형이다. 다시 말해, 수집가만을 위한 차가 아니다.

성능은 812 슈퍼패스트와 크게 다르지 않다.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km 가속을 3초 이내로 끝내고, 시속 200km는 8.9초 만에 도달한다. 최고시속은 슈퍼패스트와 같은 340km. 굳이 달려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지붕을 열고 가속페달을 깊이 밟으면 대양을 반으로 가르는 스피드보트처럼 경쾌한 주행성을 드러낼 것이다. 가속페달에 힘을 빼고 여유롭게 크루징하면 초호화 요트처럼 더없이 풍요롭게 도로 위를 항해할 것이다.

도저히 거부할 재간이 없었다. 812 GTS는 그 자체로 치명적인 매력을 품고 있었다. 자연흡기 V12 6.5L 엔진의 노래를 지붕 열고 감상할 생각만 해도 가슴이 저렸다. 0→시속 100km, 0→시속 200km 가속이 F8 스파이더보다 느리다 한들 어떤가. 거대한 엔진을 기다란 보닛 아래 품고 길 위를 달리는 기쁨은 숫자로 표현할 수 없다. 쉽사리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가까스로 옮겨 전시장을 빠져 나왔다. 458 스파이더의 심장을 깨우고 루프를 열었다. ‘미안해, 잠시 한눈팔았어. 많이 서운했니?’ 스티어링휠을 가만히 어루만졌다. V8 자연흡기 엔진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호쾌한 노래로 답했다. 푸르른 하늘빛이 가슴 깊이 스며들었다. 청운의 꿈이 뭉게뭉게 피어났다.

집에 돌아와 주차하고 보니 458 스파이더 옆자리가 왠지 허전해 보였다. V12 스파이더를 한 대 들여놓으면 어떨까? 골라 타는 재미가 있어서 주말이 두 배로 행복하려나? 정교한 V8 미드십 스포츠카를 탈지, 풍요로운 V12 GT를 탈지 고민하는 것만으로도 짜릿하지 않을까?

주차장을 벗어나는 길, 봄이 상징하는 단어를 가만히 떠올려 봤다. 새싹, 꽃, 햇살, 소풍, 설렘, 희망… 그리고, 슈퍼카 시즌 시작. 458 스파이더와 함께 설렘 가득한 하루를 보냈다. 며칠 뒤엔 새싹처럼 솟아오르는 설렘을 견디지 못하고 페라리 딜러에게 전화했다. 812 GTS를 계약하고 싶은데 인도까지 얼마나 기다려야 하는지 물었다. “계약자가 이미 50명이나 늘어서 있습니다. 1년 이상 걸릴 가능성이 높습니다.”

며칠 동안 고민한 끝에 결국 계약을 포기했다. 가슴 설레는 첫 만남을 떠올리며 매일 입맛만 다실 뿐이다. 페라리는 아직 갖지 못한 이에게든 이미 소유한 자에게든 유혹의 손짓을 보낸다. 도약하는 말과 함께 영원히 깨지 않을 꿈을 꿔보라고 설득한다. 지금 당장 손에 넣지 못하면 어떤가. 꿈꾸는 한, 언제든 기회가 올 터다.



 익명의 슈퍼카오너  에디터  김성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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