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혹한 운명의 기자 시승차, 마지막을 함께하다(ft. BMW 320d)

조회수 2020. 4. 5. 11:26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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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자동차 기자들은 신차를 가장 먼저 접하고, 신차소개 또는 시승기를 통해 소비자에게 정보를 전달한다. 각 제조사에선 ‘미디어 시승차’를 운용하는데, 통상 2~3일 정도 타보며 촬영도 하고 기사도 쓴다. 주어진 시간 동안 꼼꼼한 테스트를 위해 ‘신차 길들이기’도 채 안 끝난 새 차를 가혹하게 굴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시승차 입장에선 그야말로 ‘극한의 조건’이다.

글 강준기 기자
사진 BMW, 강준기

그렇게 가혹한 운명 안고 태어난 시승차는 약 짧게는 6개월, 길게는 1년 동안 ‘미디어 시승차’로 활동한다. 여러 기자들의 손길 거친 까닭에 주행거리도 빠르게 는다. 그래서 문득 궁금했다. 소위 ‘끝물’ 시승차의 컨디션은 신차와 비교해 어느 정도 유지할까? 아무래도 소비자 입장에선 장기간 소유했을 때 이 차의 내구성이 어떻게 변화할 지 궁금할 듯하다.

물론 제조사에서 별도의 ‘차량 관리팀’을 꾸려 세심하게 관리하긴 한다. 그러나 따끈따끈한 새 차 때와 매각 시기가 임박한 차의 차이는 분명할 듯하다. 사실 시승행사 때 접하는 주행거리 1,000㎞ 미만의 새 차들, 특히 요즘 나오는 신차는 웬만하면 다 좋다. 그러나 실제 차를 구입해 장기간 유지하고자 하는 소비자 입장에선 새 차보다 ‘헌차’ 상태에 더 관심이 갈 게 분명하다.

마침 정리를 일주일 앞둔 시승차를 예약했다. BMW 320d 럭셔리 모델이다. 소음‧진동에 불리한 4기통 디젤차여서 더욱 의미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약 1년 정도 운행한 차이며 누적 주행거리는 2만 ㎞를 넘어 섰다. ‘시승차’로서 퇴역 선고 받은 셈이다.

320d의 외장 컨디션은 평범했다. 의외였던 점은 실내다. 아무래도 체형이 다른 여러 기자들이 만지고 타는 운전석은 가죽이 울거나 때가 탄 경우가 흔하다. 반면 320d는 기대 이상 ‘뽀송뽀송’한 컨디션을 유지했다. 과거 일부 BMW 모델과 달리 가죽 내구성이 올라갔다는 단서다. 특히 럭셔리 라인은 대시보드에도 센사텍 인조가죽을 씌워 만족감이 높았다. 고급차에 흔히 쓰는 나파가죽처럼 표면이 매끈하고 부드럽진 않지만, 내구품질이 한층 뛰어나다.

신형 3시리즈 실내의 핵심은 뒷좌석에 있다. 넉넉한 차체의 혜택을 고스란히 받았다. 키 182㎝의 기자가 앞좌석을 맞추고 뒤에 앉았을 때, 무릎 여유공간은 2세대 전 5시리즈를 넘볼 정도로 쾌적하다. 개별적으로 조작하는 공조장치와 두 개의 C타입 USB를 챙기는 등의 업데이트가 돋보인다. 참고로 신형 3시리즈의 차체 길이는 이전보다 76㎜ 더 길쭉하다. 단, 등받이 각도가 소폭 서 있어 안락한 느낌은 들지 않는다.

안팎 디자인보다 파워트레인이 가장 궁금했다. 320d의 보닛은 직렬 4기통 2.0L 디젤 터보 190마력 엔진을 품는다. ZF 8단 자동기어와 맞물려 최대토크 40.8㎏‧m를 뿜는다. 이전과 비교해 출력 차이는 눈에 띄지 않는다. 사실 1세대 전 BMW 디젤차를 경험한 소비자라면 알겠지만, 소음‧진동 측면에서 경쟁 차와 비교해 정숙하지 않았다. 주행거리가 늘수록 더더욱.

반면 신형 320d는 N‧V‧H(소음‧진동‧불쾌감) 설계에 공 들인 흔적이 엿보인다. 시승차는 누적 주행거리 2만 ㎞를 넘었고, 길들이기는커녕 신차 때부터 급가속&급제동을 반복한 차임에도 불구하고 꽤 괜찮은 정숙성을 보였다. 물론 외부 보닛 앞쪽에선 디젤 엔진의 존재감을 알 수 있지만, 실내뿐 아니라 외부 뒤쪽에서도 2L급 가솔린 직분사 엔진 얹은 대중 브랜드 중형차보다도 한결 조용하다. 스마트폰 앱을 통해 기록한 정차 중 실내 소음은 36dB(데시벨) 수준.

속도가 붙기 시작하면 디젤의 존재감을 알아채기 어렵다. 과거 320d는 살뜰한 연비를 위안 삼아 소음‧진동은 타협해 사는 느낌이 짙었다. 반면 신형은 결이 다르다. 풍절음뿐 아니라 바닥에서 올라오는 소음도 차분히 제압했다. 이 정도의 정숙성이면, 가솔린을 선호하는 나도 출퇴근 용도로 사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 특히 진동 때문에 스트레스 받을 일 없겠다.

감성 품질까지 신경 쓴 신형 3시리즈.

물론 252마력 가솔린 터보 엔진 품은 330i가 더 재미있고 호쾌하지만, 고급유만 편식한다. 비싼 연료비는 차치하더라도, 수도권 조금 벗어나면 고급유 파는 주유소 찾는 게 수고스럽다. 따라서 꼭 장거리 출퇴근하는 사람만 320d를 사라는 법은 없다. 짧은 거리만 운용해도 가솔린과 디젤의 연비 차이는 분명하니까. ‘지옥’의 양재 IC와 강남대로를 거치는 나의 출퇴근 환경에서도 1L 당 14㎞ 이상의 효율을 우습게 기록한다.

무엇보다 주행 품질은 3시리즈답다. 무거운 디젤 엔진을 앞머리에 얹었지만, BMW 특유의 50:50 무게배분은 칼같이 지켰다. 운전자가 그리는 궤적 그대로 따라오는 섀시, 듀얼 클러치 못지않은 빠른 반응속도 챙긴 ZF 8단 자동기어 덕분에 평범한 도심 주행도 신이 난다. 다소 단단한 M 스포츠 모델과 비교하면 오히려 럭셔리 모델 쪽의 밸런스가 더 낫다는 생각이다. BMW답지 않다고? 천만에.

차 주변을 360도로 띄우는 카메라 덕에 주차도 손쉽다.

특히 낮은 회전수부터 줄기차게 뿜는 최대토크 덕에 도심에서 빛난다. 가속페달을 약 2~3㎝ 정도 밟았을 때 지연반응 없이 동력 보내는 느낌이 올차다. 0→시속 100㎞ 가속 성능은 6.8초로, 5.8초의 330i보단 느리지만 충분히 호쾌하게 끌 수 있다. 또한, 시속 100㎞ 항속 주행 시 엔진 회전수가 1,400rpm에 불과해 연비와 정숙성, 두 가지를 모두 잡았다.

다만 아쉬운 부분도 있었다. 정차 중 시동을 끄고 켜는 오토 스타트&스탑 시스템은 주행거리가 늘수록 작동이 깔끔하진 않다. 특히 재시동 할 때 ‘툴툴’ 거리는 진동이 여느 모델보다 크다. 엔진 열이 충분히 올라와 있는 상태에선, 굳이 시동을 끄지 않아도 조용하기 때문에 자꾸만 OFF 버튼에 손이 간다. 따라서 가다 서다 반복하는 도심 환경에선 끄고 달리는 게 낫다.

또한, 새롭게 바꾼 디지털 계기판의 시인성은 이전 아날로그만 못 하다. 중앙에 내비게이션 화면을 띄울 수 있지만, 아무도 없는 유령도시처럼 어두컴컴하다. 가장자리에 두른 숫자들은 크기가 작아 한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더욱이 계기판 밝기를 가장 높게 조절해도, 주간에 가독성이 좋지 않다. 부분변경을 통해 꼭 개선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시승차’로서 마지막 임무를 다한 BMW 320d. 디젤차 구입을 고민하는 소비자는 주행거리가 늘수록 소음‧진동이 얼마나 커질까 걱정한다. 한 세대 전 BMW가 그 증거다. 반면 G 바디로 거듭난 지금 세대는 걱정하지 마시라. 가혹하게 굴린 시승차의 상태가 이 정도라면, 신차 때부터 꼼꼼히 관리한 차의 만족감은 이보다 높을 게 분명하다. 개인적으로 320d에 대한 편견이 깨진, 의미 있는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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