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떨지 몰라서 둘 다 챙겨봤어!
BMW 신차 소식을 기대했다면 미안하다. 요즘 신차에 자주 등장하는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파워트레인 이야기다. 먼저 화석연료만 쓰기는 부담스럽고 전기 충전은 부담스러워서 싫은 경우를 가정해보자. 이 문제는 연료효율이 좋은 4기통 디젤차를 사면 간단하게 해결된다. 충전이 오래 걸리는 전기차는 안 사면 그만이다. 이런 극단적인 방법을 쓰지 않고 해결할 수는 없을까?
부담스러워도 6기통 가솔린 엔진은 포기하기 싫고 전기모터의 도움은 받고 싶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고, 하나보단 둘이 든든한 법. 조건에 가장 잘 부합하는 차로 BMW 745Le가 생각났다. 직렬 6기통 3.0L 엔진을 품었고, 기존 하이브리드 자동차처럼 전기 에너지를 함께 사용한다.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모델의 최대 장점은 전기를 직접 충전할 수 있다는 점이다. 가까운 거리는 EV 모드만으로 충분히 소화한다. PHEV는 언뜻 들으면 정말이지 이상적인 파워트레인이다.
과연 일상생활에서도 이상적일까? 우선 엔진 힘은 차고 넘친다. 최고출력 286마력, 최대토크 45.9kg·m의 힘에 전기모터가 113마력을 더한다. 이 둘이 만들어내는 시스템출력 및 토크는 무려 394마력, 61.2kg·m. 얌전한 운전자라면 온전히 다 써보지도 못할 정도로 큰 힘이다. 제일 중요한 연료효율은 어떠냐고? 복합연비 11km/L다. 거대한 차체를 생각하면 괜찮은 편이다.
사실 연비 수치는 크게 의미 없다. 745Le는 EV 모드로 35km나 달릴 수 있다. 우리나라 직장인 평균 도심 출퇴근 거리는 30km 남짓. 진짜 전기만으로 이 거리를 달려보기로 했다. 5월 어느 날, 전기를 가득 채우고 도로로 나갔다. 서울시 가산동에서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까지 딱 30km 거리를 달리기 위해서다.
시동을 켜자마자 EV 모드를 활성화했다. 도착 때까지 엔진을 아예 깨우지 않을 참이다. 전기모터로만 움직이면 정숙성은 여느 전기차와 다를 바 없다. 다만 폭발적인 성능은 기대할 수 없다. 전기모터를 주 동력원으로 사용하는 전기차와 달리 PHEV 모델은 전기모터가 내연기관을 보조하는 역할에 머물러서 출력이 비교적 낮다. 그렇다고 가속 성능이 답답하지는 않다. 시속 140km까지 시원하게 속도를 높일 수 있다.
처음엔 조금 긴장했다. 도로가 꽉꽉 막혀서 주행가능거리가 뚝뚝 떨어졌다. 이제 겨우 2km 남짓 달렸을 뿐인데 배터리 잔량 게이지에서 한 칸이 사라졌다. 하지만 정체 구간이 끝나자 연료효율이 좋아졌다. 결국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했다. 도착 후 확인한 EV 모드 주행가능거리는 4km. 배터리 충전량 90%를 사용해서 30km를 달린 셈이다. 지독한 정체 구간이 포함된 경로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꽤 괜찮은 결과다.
출근길이라고 가정하면 차를 세워두면서 충전기를 꽂고 돌아갈 때 다시 EV 모드로 퇴근하면 된다. 전기만 사용해서 출퇴근할 수 있다는 사실은 확인했다. 다시 전기를 충전할 필요는 없었다. e드라이브의 ‘배터리 컨트롤’ 기능을 사용하면 이 시간을 훨씬 단축할 수 있다. 비록 내연기관을 깨워야 하는 일이지만, 1km마다 전기 모드 주행가능거리가 거의 1km 씩 늘어난다.
실제로 같은 길로 돌아오는데 전기 에너지 게이지가 절반 이상 차 있었다. 달려온 거리만큼 기름 한 방울 쓰지 않고 달릴 수 있는 보너스가 생기는 셈이다. 7시리즈 같은 대형 세단도 마음만 먹으면 전기차처럼 탈 수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PHEV는 소형 세단이든, 대형 SUV이든 체급과 장르를 가리지 않는다. 어떤 차가 됐든 화석연료가 거의 필요 없을 정도로 전기 사용 비율을 높일 수 있다. PHEV가 머지않아 자동차의 파워트레인 패권을 지배하게 될지도 모른다.
글 박지웅 사진 이영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