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0억으로 대우차를 인수하다

조회수 2020. 1. 28.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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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허에서 희망을 일군, 대우자동차 브랜드 히스토리(8)

대우차 승용차 부문은 결국 2002년 GM이 인수했다. 1992년 대우차가 GM 지분을 완전히 청산한 이후 10년 만이다. 간판부터 바꿔달았다. 지엠대우오토앤테크놀로지. 당시 대우차는 경쟁력 있는 차종을 여럿 생산하고 있었지만, 부실기업으로 낙인찍혀 평가절하 받았다.



GM이 대우차 인수 당시 투입한 금액은 단 4억 달러(약 4,000억 원)다. GM은 똑똑한 회사다. 적은 투자로 엄청난 이득을 얻었다. 1조 원 이상 투자해 한창 개발 중이던 신차들을 고스란히 손에 넣었고, 경차 생산 라인도 챙겼다. 특히 큰 차 위주로 생산하던 GM에게 대우의 소형 신차들을 판매할 기회가 생겼다. 훗날 김우중 대우그룹 전 회장이 “GM이 대우차를 거의 공짜로 가져갔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GM은 대우 소형차를 알뜰살뜰 활용했다. 2000년대 중국 시장에 진출해 대우 누비라, 마티즈, 라노스로 인기를 끌어 오늘날 중국 1위를 차지하는 기틀을 마련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2008년 미국 금융위기가 발발했을 때 얼어붙은 경기를 대우차가 개발한 소형차로 넘겼다. 당시 GM은 미 정부에 파산 보호를 신청한 상황. 큰 차만 만들던 GM은 많이 팔 대중차가 필요했다. 해답은 GM대우가 쥐고 있었다. 마티즈, 젠트라, 라세티 삼총사다. GM은 이들을 쉐보레 스파크, 아베오(미국명 소닉), 크루즈로 각각 이름을 바꿔 달고 전 세계 소형차 시장에 투입했다. GM대우를 기점으로 해외에 여러 공장을 지어 위기에 빠진 GM의 구원투수로 활용했다.



반응은 성공적이었다. 스파크는 소비자의 60%가 쉐보레를 처음 사는 고객일 정도로 새로운 수요를 끌어왔다. 아베오는 미국서 2012년 8만 대 팔려나가며 인기를 끌었다. 특히 크루즈는 전 세계 115개국에서 400만 대 이상 놀라운 판매고를 올렸다. 2012년 우리나라에서 만든 GM 차만 206만 대에 달했을 정도. GM 전체 판매의 20%에 육박하는 수치다. GM대우는 부도난 GM의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찬란한 역사의 마침표

어려운 시절 GM대우 덕을 든든히 본 GM. 그러나 GM에게 ‘대우’라는 이름은 어떤 의미도 없었다. 오히려 ‘망한 자동차 회사’라는 이미지 때문에 판매가 힘들었다. 더욱이 국내 GM대우 고객도 대우 대신 보타이 엠블럼을 붙일 만큼 쉐보레 브랜드 선호도가 높았다. 결국 2011년 GM은 GM대우를 없애고, 1911년 미국에서 설립한 대중차 브랜드 쉐보레로 통일했다. 사명도 한국지엠주식회사로 바꾼다.



쉐보레로의 변화는 그간 바꿔 달아온 신진자동차, 새한자동차 등 간판과는 결이 다르다. 미국 브랜드를 그대로 쓰면서 1955년부터 이어온 유구한 대우차의 흔적이 GM이 세운 여러 해외 생산 기지 중 하나로 전락한 사건이었다. 로얄 시리즈로 중형차 왕국을 세우고 현대차와 자웅을 겨뤘던 대우차의 쓸쓸한 결말이었다.



현재 한국GM은 신뢰회복을 위해 노력 중이다. 트래버스와 콜로라도를 경쟁력 있는 가격으로 수입했고, 소형 SUV 트레일블레이저와 2022년 출시할 새로운 CUV를 각각 부평공장과 창원공장에서 생산할 계획이다. 특히 한국GM 연구개발 센터는 GM 연구개발 센터 중 두 번째 큰 규모로, 전기차 및 여러 신차 개발을 주도하는 중이다. 비록 하청 기지로 전락했지만, 대우차가 남긴 기술개발 역량이 GM의 옷깃을 든든히 붙들고 있는 셈이다.(대우자동차 브랜드 히스토리 종료)


글/윤지수(로드테스트 기자) 사진/한국지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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