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자동차의 몰락..이름을 잃다

조회수 2020. 1. 27.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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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허에서 희망을 일군, 대우자동차 브랜드 히스토리(7)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 대우그룹 김우중 회장의 ‘세계경영’ 방침에 따라 대우자동차는 세계로 뻗어나갔다. 1997년 발발한 IMF 외환위기도 아랑곳없었다. 이듬해인 1998년 국내에선 쌍용자동차를 인수했고, 해외에선 이집트 공장을 준공하고 폴란드엔 새 공장을 짓기 시작했다. 이렇게 덩치를 잔뜩 키운 대우차 연간 생산 능력은 1998년 기준 무려 200만 대. 공격적인 투자로 외환위기 정면돌파를 노렸다. 그러나 상황이 과거와 달랐다. 국내 자동차 시장은 외환위기로 인한 소비 감소는 물론 급격한 성장기를 지나 안정기로 접어들었다. 세계 시장도 마찬가지였다. 공급과잉으로 수많은 자동차 업체가 제휴나 합병 등 자발적 구조조정을 서두르고 있었다. 이런 상황을 모를 리 없었지만, 대우차는 후발주자로서의 약점을 극복하고자 무리하게 남들과 거꾸로 달렸다.



성과는 있었다. 1998년 상반기 라노스, 누비라, 레간자 등 연이은 독자 개발 신차 출시에 힘입어 우리나라 시장에서 처음으로 현대자동차 판매량을 넘어섰다. 그뿐만 아니라 2000년 북미와 유럽에서 최대 실적을 거뒀고, 동유럽 및 동남아시아 몇몇 국가에서는 ‘국민차’라고 부를 만큼 반응이 뜨거웠다. 세계 자동차 업계가 주목할 만큼 기세등등했다. 그러나 거대한 기둥은 속부터 썩고 있었다. 외환위기인데도 불구하고 대우차는 돈을 빌려 사업을 확장해왔다. 1996년 2조 원대에 머물던 금융권 부채가 1999년엔 11조1천억 원으로 늘어났다. 대우그룹 전체가 그랬다. 더욱이 밖으로 눈길을 돌린 사이 체질 개선도 늦어졌다. 1998년 5월 삼성 및 현대그룹이 구조조정 목표치 100% 이상을 달성할 때 대우그룹은 고작 18.5% 수준에 불과했다.



결국 1999년 부채비율이 400%에 달했던 대우그룹은 8월 ‘워크아웃(부도로 무너질 위기에 처한 기업을 살려내는 작업)’을 맞이한다. 재계 서열 2위까지 오른 32년 역사의 거대 기업이 무너졌다. 대우차도 2000년 11월 최종부도를 맞았다. 2년이 지난 후 대우차는 공중분해된다. 승용차 부문은 GM, 버스 부문은 영안모자, 트럭 부문은 인도 타타그룹이 각각 인수했다.


대우자동차가 그렸던 화려한 색깔

1990년대 말, 대우자동차는 어려운 상황을 감내하고 있었다. 한편으로 그간 공격적인 투자가 결실을 맺으면서 전성기를 누렸다. 한 번에 쏟아냈던 라노스와 누비라, 레간자 등 세 신차가 선전 중이었고, 마티즈와 매그너스, 레조가 연달아 등장했다. 세 신차는 개성 가득한 스타일로 잿빛 도로 위를 화려하게 수놓았다. 인기를 끌면서 대우차 판매도 견인했다.



마티즈는 시의적절했다. IMF 외환위기로 작은 차 찾기 시작하던 1998년, 경차 티코 후속으로 등장했다. 특히 작은 차가 강세인 유럽서 빚은 스타일은 전년 등장한 현대 아토스가 초라해 보일 만큼 세련됐다. 예쁘고 경제적인 마티즈에 시장은 열광했다. 출시 첫 달 곧바로 국내 단일 모델 판매 1위를 차지했고, 1998년 우리나라 연간 판매 1위를 기록했다. 더욱이 이탈리아, 인도, 영국 등 해외 시장에서도 호평이 이어졌다.



한편, 6기통 엔진 대중화는 한창 잘 나가던 대우차의 청사진 중 하나였다. 대우차는 1995년 직렬 6기통 엔진 개발을 시작해 회사가 안팎으로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개발을 마쳤다. 2002년 중형 세단 매그너스(1999년 출시)에 처음으로 이 엔진을 얹었다. 앞바퀴 굴림 가로배치 직렬 6기통 구성은 국내 최초이자 세계에선 두 번째였다. 대우차 도전 정신이 듬뿍 담긴 별난 엔진이었다.



6기통 매그너스의 상품성은 독보적이었다. 경쟁상대는 최고 사양에만 넣던 6기통 엔진을 매그너스는 주력으로 삼았다. 배기량은 2.0L와 2.5L. 더욱이 6개 실린더가 서로 충격을 삼켜버리는 직렬배치 덕분에 준대형차 웃도는 정숙성을 자랑했다. 매그너스는 이렇듯 고급 승용차의 상징과도 같던 6기통 엔진을 보다 대중적인 중형 세단까지 끌어내렸다.



2000년 출시한 레조는 RV를 향한 대우차의 첫걸음이다. 역시 스타일이 새로웠다. 토요타 입섬을 따라 한 기아 카렌스와 달리 어떤 차와도 닮지 않았다. 이탈리아 카로체리아 피닌파리나가 바깥 디자인을 맡고, 이탈디자인이 실내를 다듬은 까닭이다. 레조는 당시 RV 붐과 함께 LPG 경제성이 맞물려 국내외 꾸준한 인기로 무너지던 대우차를 지탱했다. 실용성 높은 스타일 덕분에 해외에서는 2011년까지 생산할 만큼 장수한다.(8부에서 계속)


글/윤지수(로드테스트 기자) 사진/쉐보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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