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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드 F150과 시애틀의 대자연에 빠지다

모터트렌드 입력 2020.03.02.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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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드 F150과 함께 시애틀의 대자연 속으로 들어갔다. 살아 숨 쉬는 자연의 생경한 모습에 마음을 빼앗겼다

2018년 여름에 미국 시애틀을 다녀왔다. 시애틀의 랜드마크 스페이스 니들에 올라 야경을 내려다보기도 하고 치훌리 가든 앤 글라스 박물관에서 화려한 유리 공예를 구경했다. 휴식이 필요할 땐 캐리 파크 언덕에 앉아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시간을 보냈다. 그 외에도 우드랜드 파크, 퍼시픽 사이언스 센터, 보잉 박물관 등 참 부지런히 움직였다. 촉박한 시간 속에서 ‘질보단 양’을 선택한 여행이었다. 시애틀 시내를 돌아다니다 보면 어디에서든 보이는 산 하나가 있다. 여행이 모두 끝나고 인천행 비행기에 몸을 싣고 나서야 그 산이 레이니어라는 것을 알았다. 현실로 돌아온 어느 날, 우연히 시애틀 도시명이 “돈으로 공기나 땅, 물을 살 수 없다”던 인디언 대추장의 이름에서 유래했다는 것을 알고 망치로 머리를 맞은 듯했다. ‘어쩌면 시애틀의 진짜 모습은 도시가 아니라 자연에 있는 게 아닐까?’ 멍하니 모니터를 보다가 두 번째 시애틀행 비행기표를 끊었다. 다시 찾은 시애틀에는 겨울비가 세차게 내리고 있었다.

미국의 알프스, 레이니어 국립공원

전날까지도 무섭게 퍼붓던 비가 그쳤다. 비 냄새와 키 큰 빌딩 사이로 파고드는 바다 냄새가 섞여 코끝을 자극했다. 레이니어 정상까지 안전하고 즐거운 여행을 책임져줄 차는 포드 F150이다. 6m가 넘는 차체 길이와 도로를 씹어먹을 듯한 디자인 때문인지 존재감이 대단했다. V8 5.0ℓ 자연흡기 엔진을 얹어 최고출력 395마력을 내고, 네바퀴굴림 세미오프로드 옵션까지 챙겼다. 1시간 넘게 달렸는데도 연료량 표시 바늘이 오른쪽 끝을 가리켰다. 3000kg에 가까운 무게를 감안하면 연비가 의외로 좋은 점도 있었지만, 연료탱크 용량이 135ℓ나 돼 1시간 정도 달린 건 티도 나지 않았다.

불과 2시간 만에 레이니어 국립공원에 도착했다. 레이니어는 높이 4392m로 캐스케이드산맥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만년설이 곱게 덮인 휴화산이다. 눈이 많이 오거나 안개가 심한 날에는 진입할 수 없고, 일반인이 접근 가능한 지역과 불가능한 지역으로 나뉜다. 국립공원에 들어서자 우뚝 솟은 침엽수가 도로 양옆에 빽빽하게 줄지어 섰다. 시애틀 시내에서 바라볼 때는 손톱만 하던 산을 눈앞에서 마주하니 벅찬 감동에 쉽게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 산은 하늘에서 내려준 선물이 확실했다. 도로 옆 트레킹 코스에는 신발 밑에 아이젠(미끄럼 방지)을 끼운 채 산으로 올라가는 사람들도 많았다.

레이니어에는 정상까지 차를 타고 올라갈 수 있는 오프로드 코스가 있다. 많은 차 중에 콕 집어 F150을 타고 온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F150의 진면목을 확인하고 싶었다. 우렁찬 V8 엔진 소리가 깊은 산속의 적막을 깼다. 눈이 노면에 단단히 얼어붙어 차체가 물고기처럼 좌우로 흔들렸지만 제어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코스 중간에는 한쪽 뒷바퀴가 크게 헛돌기도 했고 내리막길에선 차체가 옆으로 미끄러지기도 했다. 그럴 때면 수동 모드로 기어를 내리고 엔진 브레이크를 이용해 겨우 멈췄다. 한쪽에는 절벽, 다른 쪽은 낭떠러지 등 환경이 주는 긴장감 탓에 모든 신경이 차에 집중됐다. 신경은 곤두섰지만 눈은 황홀했다. 창문 옆에는 구름이 손에 잡힐 듯 가까이 있었고, 절벽 밑으로 멋진 광경이 광활하게 펼쳐졌다.

레이니어 정상에 도착하면 꼭 가보고 싶은 곳이 있었다. 바로 에번스 크리크 오프로드 코스다. 오프로드 모델이 있는 브랜드라면 공식 영상에 수없이 등장했던 곳으로 난도가 높은 편이다. 이번 여행의 목적지라고 해도 될 만큼 가장 기대했던 곳이다. 하지만 눈이 많이 와 에번스 크리크 오프로드 코스의 입구는 굳게 닫혀 있었다. 여기까지 올라온 수고가 물거품이 된 순간이었다. 아쉽지만 정상에서 노을이 지는 모습을 바라보며 하루를 마무리해야 했다.

카페리를 타고 엘펜달 패스로

밤새 구글 지도와 씨름한 덕분에 또 다른 오프로드 코스를 발견했다. 시애틀에선 꽤 먼 거리였지만 카페리가 육지와 섬을 거미줄처럼 연결하고 있어 그렇게까지 오래 걸리지 않는다. 목적지는 벨페어에 있는 엘펜달 패스다. 항구에서 빠져나오자마자 길을 잃었다. 지도를 봐도 도통 알 수가 없었고 키 큰 나무들 사이로 방향을 잡기도 어려웠다. 때마침 적재함에 산악용 바이크를 실은 픽업트럭을 보고 본능적으로 뒤따라갔다. 촉은 정확했다.

본격적인 시작에 앞서 타이어 공기압을 조금 뺐다. 창문 너머로 비탈길을 수시로 확인하면서 천천히 나아갔다. 차에서 내려 코스를 미리 확인하고 창문으로 고개를 내밀어 바퀴를 살피는 것은 오프로드 주행만의 큰 매력이다. 나뭇가지와 돌이 차체에 스치거나 튀기는 소리도 경쾌하게 다가왔다. 하지만 점차 좁혀오는 나무들 사이로 F150의 움직임이 무뎌지기 시작했다. 커다란 차체가 곤욕스러웠다.

진흙탕에 들어서자 앞 범퍼 아래가 긁히는 소리가 들렸다. 심상치 않았지만 뒤따르는 다른 차 때문에 멈출 수도 없었다. 진흙탕을 지나 급경사로 내려갈 때는 정말 섬뜩했다. 무거운 앞부분 때문인지 뒷부분이 들리는 것이었다. 촘촘해진 나무 사이를 달리다가 F150이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기도 했다. 꼼짝 못 하는 F150을 비웃기라도 하듯 허름한 쉐보레 콜로라도가 배기파이프에서 흰 연기를 내뿜으며 나무 사이를 질주했다. 오프로드의 또 다른 대명사 지프 랭글러도 뒤이어 나타나 더 좁은 나무들 사이를 재빨리 빠져나갔다. F150으로 더 이상의 코스 진입은 어려웠다. 그때만큼 지프 랭글러 2도어를 간절히 원한 적도 없었다.

님아, 그 창문을 넘지 마오

시애틀의 자연을 꼭 오프로드에서 경험하란 법은 없다. 동물원에서도 만날 수 있으니까. 시애틀 올림픽 국립공원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세큄 올림픽 게임 팜은 일반적인 동물원과 다르다. 방문객들이 동물원 안으로 직접 차를 몰고 들어가 코앞에서 동물을 보거나 먹이도 줄 수 있다. 방문에 앞서 세큄 근처에서 구형 도요타 시에나를 빌렸다. 동물들이 차로 다가오거나 차체를 두드리는 친근한(?) 표현 때문에 흠집이 생길 수 있어 ‘자동차 파손에 대해 손해배상을 청구하지 않겠다’는 내용이 포함된 렌터카를 가지고 들어가야 한다.

챙길 것이 또 있다. 동물들을 유인하기 위한 식빵이다. 들어가자마자 식빵의 힘을 확인했다. 처음에 만난 동물은 라마였는데 생긴 게 귀여워 식빵을 던지자 그 모습을 지켜보던 다른 라마들이 차를 둘러싸기 시작했다. 내렸던 창문을 다시 올리기에도 늦었다. 라마의 얼굴이 조수석까지 들어와서 차 안은 이미 전쟁통이었다. 겨우 창문을 닫고 출발하니 라마가 식빵을 얻기 위해 저돌적으로 차를 쫓아왔다.

라마의 1차 습격이 지나고 철조망 속에서 겨울잠 자는 곰을 만났다. 여름철엔 서서 인사를 하며 재주도 부린다고 하던데 겨울에는 행동이 느려 바로 앞까지 식빵을 던져줘야 겨우 먹었다. 식빵을 먹는 이빨과 발톱을 보니 얇디얇은 철조망이 무슨 의미가 있을지 의구심이 들기도 했다. 겨울잠 자는 곰을 보고 아쉬워할 무렵, 엘크가 나타났다. 창문을 내리지 않으니 큰 혀로 창문을 핥으며 적극적으로 식빵을 요구했다. 창문을 살짝 여는 사이, 엘크들이 달아나기 시작했다. 바이슨이 나타난 것이다. 바이슨은 자동차와 맞먹는 크기의 동물이다. 식빵을 주지 않으면 커다란 뿔로 차를 쿵쿵 치며 공격성을 드러내기까지 한다. 바이슨 무리에 둘러싸이면 위험하기 때문에 천천히 조금씩이라도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용기를 내 창문을 내리자 바이슨의 큰 머리가 안으로 훅 들어왔다. 바이슨의 저돌적인 행동에 심장박동수가 빨라졌다. 바이슨의 시선을 돌리기 위해 식빵 한 묶음을 창문 밖으로 던졌다. 바이슨은 식빵을 향해 돌진했고, 그제야 바이슨에게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바이슨보다 더한 동물이 나타날까 긴장하던 그때, 순한 눈으로 쳐다보는 사슴이 눈에 들어왔다. 식빵을 내놓으라고 운전자를 보채지도 않는다. 창문을 내려도 식빵을 줄 때까지 천천히 기다렸다. 그제야 마음이 진정되었다. 새끼 사슴들은 겁이 많아서 다가오지도 못했다. 식빵을 던져주면 오히려 도망치기 바빴다. 동물원 한 바퀴를 돌고 나니 차 안은 식빵 부스러기와 동물 털이 떨어져 있고 시트엔 그들의 침이 흥건했다.

동물원에서 나오니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카페리를 제때 타기 위해 서둘러 항구로 돌아와 F150을 싣고 갑판 위에 올랐다. 낮과는 달리 바람이 제법 쌀쌀하고, 푸젓 사운드 만에는 안개가 짙게 깔렸다. 안개 사이로 시애틀의 높은 빌딩에서 빛나는 조명이 아른거렸지만, 며칠 동안 보고 경험했던 자연 속 생경한 모습들은 또렷이 기억에 남았다.
글·사진_강도원(자유기고가)



CREDIT

EDITOR : 김선관   PHOTO : 강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