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프리미엄 세단이라는 이름값, G80 & ES300h & CT6 & S90

박지웅 입력 2020.05.30 12:15 수정 2020.05.30 13:1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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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미엄 세단 4대가 한자리에 모였다. 캐딜락, 볼보, 렉서스 틈에 최근 새 얼굴로 나타난 제네시스 G80이 눈에 띈다. 내로라하는 명문가 자제들 사이에서 제네시스 차남은 과연 제대로 기를 펼 수 있을까?


클래식 음악 애호가인 고모를 따라 세계적인 오케스트라 공연을 보러 간 적이 있다. 곡이 끝날 때마다 감동에 겨워 뜨거운 박수를 보내는 고모와 달리 박수를 치는 둥 마는 둥 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박수갈채를 보내는 사람들 모습이 그저 신기하기만 했다. 음악은 듣는 이에 따라서 전율이 올 수도, 혹은 졸음이 올 수도 있다.

프리미엄 세단도 비슷하다. 경계가 모호하다. 틀린 말이 아니다. 프리미엄 세단이라고 딱 못 박힌 차는 몇 없다. 대개 인정하는 부류는 롤스로이스, 벤틀리, 벤츠 S-클래스, BMW 7시리즈 등 ‘억’ 소리 나는 모델들이다. 모두 프리미엄의 대명사격인 존재들이다. 이들을 빼면 나머지는 승자 없는 춘추전국시대 같다. 1억원대 밑으로 가면 더 모호하다. 사람마다 고급스럽게 느낄 수도, 아닐 수도 있다. 력서리 세단에 기대하는 가치가 사람마다 각양각색인 까닭이다.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프리미엄 기준은 없는 걸까? 일단 얼굴은 잘생기고 봐야 한다. 어쩌면 외모지상주의가 사람보다 심한 곳이 자동차 세계다. 냉정하게 말해 못생긴 차에 지갑을 여는 소비자는 없다. 크기는 작으면 안 되고, 실내는 화려할수록 좋다. 첨단 안전 및 편의 장비도 필수다. 단순히 브랜드 배지가 구매 이유가 되기도 한다.

캐딜락 CT6 전면부

요즘은 특히 여기저기 ‘프리미엄’ 수식어가 붙은 모델이 많다. 하지만 나름 프리미엄 세단의 기준이 뚜렷한 차 4대를 모았다. 가격은 모두 1억원 아래다. 하나같이 브랜드 색깔이 짙다. 첫 번째로 소개할 모델은 캐딜락 CT6이다. 전통적으로 고급 세단을 만들어온 브랜드가 빚어낸 플래그십 모델이다. CT6은 넷 중 유일하게 대형 세단에 속하는 만큼 길쭉한 차체(5227mm)에서 은은하게 풍기는 중후함이 일품이다. 과거의 고루한 인상도 많이 지웠다. 브랜드 미래 핵심 기술력과 아이덴티티를 녹인 ‘에스칼라’ 콘셉트카의 디자인 언어를 적용한 덕에 외모 경쟁에서 전혀 밀리지 않는다.

캐딜락 CT6 스티어링휠

볼보 S90 엑설런스도 존재감 넘친다. 토르의 망치를 떠오르게 하는 시그니처 헤드램프 때문만은 아니다. 단순히 안전 및 편의 장비만 추가한 라인업 상위 트림도 아니다. 널찍한 실내공간을 제공하기 위해 차체 비율까지 조절했다. 엑설런스(5085mm) 모델은 기존 S90보다 길이는 120mm, 높이는 5mm 크다. 휠베이스까지 119mm 늘어나 2열 거주성이 뛰어나다. 볼보가 자랑스럽게 ‘스웨디시 쇼퍼드리븐’이라고 외치는 이유다.

볼보 S90 실내 대시보드

최근 제네시스가 야심 차게 선보인 G80도 나섰다. 폭(1925mm)은 대형 세단인 CT6 보다도 45mm 넓어서 자태가 정말이지 위풍당당하다. 2015년 당차게 출발했던 제네시스 브랜드는 우려와 달리 출시하는 모델마다 잇따른 성공을 거두면서 명실공히 우리나라 대표 프리미엄 브랜드로 자리를 굳히고 있다. 3세대 G80은 ‘두 줄’로 요약되는 브랜드 디자인 아이덴티티를 입고 역대급 완성도로 등장해 호평이 자자하다.

제네시스 G80 테일램프

렉서스 ES 300h가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엔 다소 부족한 게 사실이다. 하지만 ES는 반전매력이 포인트다. ES는 1989년 브랜드 출범부터 역사를 함께한 핵심 모델이다. 고급스러운 승차감, 브랜드 특유의 정숙성, 일본 고유의 장인정신이 깃든 우아한 실내공간은 렉서스가 추구하는 프리미엄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가격이 국산차 G80과 비슷한 수준이기 때문에 뛰어난 가성비로 누릴 수 있는 수입 프리미엄 세단인 셈이다. 이제 오감을 깨워 차를 본격적으로 느껴볼 차례다.

렉서스 ES300h 실내 대시보드

CT6의 부드러운 승차감은 똑똑한 서스펜션 공이 크다. 1초에 1000번 노면을 분석해 서스펜션 댐퍼를 조절하는 ‘마그네틱 라이드 컨트롤’은 편안한 주행을 돕는다. 대형 세단은 육중한 하중 탓에 특유의 무거운 느낌이 강할 수 있지만, CT6은 그런 느낌이 덜하다.  GM의 차세대 뼈대 ‘퓨전 프레임’이 동급 경쟁모델보다 100kg가량 가벼운 덕분이다. 전체 소재 62%에 알루미늄을 사용하고 접합 부위를 최소화한 전략이 다이어트 비결이다.

캐딜락 CT6 실내 대시보드

대체로 만족스러운 승차감이다. 다만, 커다란 20인치 휠 탓에 요철에 따라 충격을 완전하게 거르지 못하고 나지막이 ‘탁탁’거리는 진동이 올라오는 경우가 더러 있다. 차가 조용할수록 조그만 소리도 은근 거슬리는 법이다.

V6 3.6L 심장은 정속 주행 시 연료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실린더 2개를 쓰지 않는다. 하지만 스포츠 모드로 바꾸고 가속 페달에 힘을 주면 태도가 180도 변한다. 노면에 쏟아내는 최고출력 334마력, 최대토크 39.4kg·m의 힘은 차체를 시원하게 견인한다. 더 놀라운 점은 CT6은 횡이동 시 옆 차선으로 민첩하게 빨려 들어간다. 스포츠카에서 볼 법한 네바퀴조향 기능이 들어갔다. 거대한 체구가 민첩하게 움직이는 감각이 작은 차를 몰 때보다 어쩐지 더 오묘하고 짜릿하다.

볼보 S90 전면부

S90이 4기통 2.0L 엔진이라고 실망하기는 이르다. 슈퍼차저와 터보차저를 모두 장착한 괴물 4기통 엔진이다. 이 엔진(315마력, 40.8kg·m) 하나만으로도 강력한데, 이 차는 심지어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모델이다. 87마력짜리 전기모터를 더한 시스템출력은 무려 405마력. 0→시속 100km 가속을 5.1초 만에 끝내는 무시무시한 힘이다. 엔진을 깨우지 않은 상태에서 전기모터만으로 24.5kg·m 토크를 쓸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1회 충전 주행가능거리는 34km이다. ‘퓨어’ 모드(순수 전기 모드)로 달리면 차가 스르륵 미끄러져 나가는 느낌이다. 게다가 거짓말처럼 조용하다. 12기통 엔진 부럽지 않은 압도적인 정숙성 때문에라도 앞으로 순수 전기 모드가 프리미엄카의 필수 덕목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4기통 가솔린 엔진은 4기통 디젤 엔진과 확실히 다르다. 엔진이 깨어나면 정숙성을 해칠 것이라는 괜한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 게다가 볼보가 기함 S90의 방음·방진에 신경을 안 썼을 리 없다.

제네시스 G80 실내 대시보드

V6 3.5L 트윈터보 엔진(380마력, 54kg·m)을 물린 G80 역시 발진 가속력은 S90과  엇비슷하다. 제원상 출력이 S90에 약간 밀리지만, 200kg 정도 가벼운 무게 덕을 봤다. 하지만 G80의 진면모는 스포츠 주행보다는 여유 부리듯 느긋하게 달릴 때 더 잘 느낄 수 있다. ‘프리뷰 전자제어 서스펜션’은 카메라, 내비게이션과 연동되어 노면 정보를 미리 파악해 상하 움직임과 충격을 최소한으로 줄이는 똑똑한 서스펜션이다.

제네시스 G80

요철을 지날 때마다 독일 태생 자동차들처럼 노면 충격을 한 번에 지우고 스프링 텐션을 짱짱하게 유지한다. 물렁물렁한 서스펜션에 익숙한 사람이 타면 다소 단단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이런 다부진 세팅이 굉장히 고급스러운 차를 타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첨단 운전자 보조 시스템은 넷 중 가장 앞선다. 특히 한층 업그레이드한 ‘고속도로주행보조 Ⅱ’는 이제 정체 상황에 앞에 끼어드는 차에도 안정적으로 대응한다. 차로 변경도 보조한다. 방향지시등을 켜고 차선 변경을 시도하면 스티어링휠에 힘을 조금 보태는 식이다.

제네시스 G80 계기판

반자율주행 기능 대부분이 운전자의 실제 주행 습관과 달라 이질감이 느껴지는 경우가 많은데, G80은 이런 부분까지 고려한 ‘운전 스타일 연동’ 기능을 고속도로주행보조 Ⅱ에 넣었다. 자동차가 운전자의 주행 습관을 학습하여 실제 운전자가 주행하듯이 달리는 신기한 기능이다.

ES 300h의 4기통 2.5L 엔진은 성능보다는 연료 효율성에 초점을 맞췄다(복합연비 17km/L). 전기모터를 더한 합산출력 218마력은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다. 가속 반응은 제법 빠른 편이다. 프리미엄 세단에서 정숙성만큼 높게 쳐주는 요소도 없다.

캐딜락 CT6 플래티넘 뒷좌석

ES는 비록 빠르진 않더라도 정숙성에서는 결코 뒤지지 않는다. 우선 차체 바닥과 엔진룸을 포함한 곳곳에 고성능 흡음재를 사용했다. 더불어 작은 소음까지도 스피커를 통해 상쇄하는 액티브 노이즈 컨트롤 기능을 탑재했다. 끝이 아니다. 어쿠스틱 글래스와 노이즈 저감 휠 등 브랜드 특유의 DNA인 정숙성을 지켜내기 위해 소음저감기술을 아낌없이 쏟아부었다.

과연 이들의 실내는 얼마나 좋을까? 하나같이 가죽으로 실내를 감싸 한눈에 보아도 고급스럽다. 특히 볼보와 캐딜락은 최고급 가죽을 썼다는 사실을 티라도 내려는 듯 유독 가죽 냄새가 진하다. 제네시스와 렉서스는 가죽에 패턴을 넣어 고급스러움을 강조했다. 볼보와 제네시스는 나뭇결이 그대로 살아있는 천연소재를 사용했다. 자칫 촌스러워 보일 수 있는 소재인데도 불구하고 세련되게 잘 마감했다.

각자 특별한 시트를 가진 점도 눈길을 끈다. CT6의 1열 시트는 무려 20방향으로 조절할 수 있어서 대부분의 탑승자 체형에 편안하게 맞출 수 있다. 전 좌석에는 롤링, 주무르기, 피로회복 모드로 이루어진 마사지 기능을 넣어 장시간 운행에도 피로감을 덜 느낄 수 있도록 배려했다.

볼보 S90 엑설런스 뒷좌석

S90도 마사지 기능을 전 좌석에 넣었다. 독립식 리클라이닝 시트로 구성한 전 좌석이 열선·통풍 기능을 지원하고, 원한다면 2열 시트 등받이를 1열 시트처럼 눕힐 수 있다. 볼보 차를 타고 비행기 일등석에 버금가는 공간 경험을 할 수 있다니 신기할 따름이다(16L 냉장고와 크리스털 컵까지 갖췄다).

G80은 아쉽게도 18방향으로 조절 가능 ‘에르고 모션’ 시트는 운전석에만 달린다. 마사지 기능도 전 좌석에 넣지 않았다. 쇼퍼드리븐보다는 오너드리븐을 추구하는 차라고 해석할 수 있다. ES는 운전 피로도를 줄이기 위해 골반의 각도까지 세밀하게 고려한 시트를 달았다. 허리 근육의 부담을 줄이고, 골반에 집중되기 쉬운 압력이 쉽게 분산되도록 엉덩이 부분에는 부드러운 소재를, 그 외 부분에는 단단한 소재를 사용했다.

프리미엄카에 프리미엄 오디오 시스템은 거의 필수 덕목이다. CT6은 상위 트림인 플래티넘이다. CT6 전용 보스 파나레이 사운드 시스템을 탑재했다. 곳곳에 숨은  34개가 어떤 노래든 기가 막히게 소화한다. 달리는 콘서트장이 따로 없다.

볼보 S90 B&W 오디오 시스템

S90은  이보다 스피커 개수(19개)는 적지만, 1476W 출력을 자랑하는 클래스 D 앰프를 포함한 바워스&윌킨스 사운드 시스템은 웅장하면서 자연에 가까운 소리를 구현한다. G80에 적용한 렉시콘 사운드 시스템도 섭섭지 않은 스피커 개수(18개)를 자랑한다. 저음보다는 고음에 탁월하지만, 전체적으로 밸런스가 좋다. ES는 마크 레빈슨(스피커 17개) 서라운드 시스템을 갖췄다.

네 모델의 운전석과 뒷자리에 차례로 앉아 봤다. 각자 매력이 넘친다. CT6은 인테리어가 화려하진 않아도 거실 소파에 앉은 듯 어딘가 익숙하고 편안한 고급 세단의 느낌이 강하고, 볼보는 북유럽 특유의 정갈하고 세련된 느낌이 좋다. 렉서스는 타쿠미(장인)의 손길을 거친 높은 수준의 완성도를 생각하면 가격 대비 훌륭한 차다.

분명한 건 G80이 이들 사이에서 선전했다는 점이다. 렉서스 ES가 그러했듯 G80 역시 브랜드 출범을 이끈 핵심 모델이다. 이전 모델도 충분히 좋았기 때문에 단 한 차례 풀체인지로 이만큼 상품성을 끌어올렸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5년 후 4세대 신형 G80이 나올 때는 또 얼마나 놀라게 될지 자못 기대된다.

박지웅 사진 이영석 촬영 협조 충북 음성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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