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 Fiction] 트랜스포터의 마지막 임무

조회수 2020. 4. 30.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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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의 기수가 마지막 임무를 위해 포켓 로켓 발사 장치를 눌렀다. 그는 과연 무사히 은퇴할 수 있을까?


마지막으로, 이 중 하나라도 어길 시 어떠한 대가든 달게 받을 것. 두 눈을 지그시 감고 익숙한 업무지침을 새삼스레 되뇐다. 이제 끝이다. 오늘이 나의 마지막 근무일이다. 깊은 숨을 몰아쉬고 길을 나선다. 나는 프리랜서다. 배달의 기수, 근사하게 말하면 프라이빗 트랜스포터다. 상위 0.1%(아마도 양심이나 도덕 측면에서는 하위 0.1%) 고객을 위한 택배 기사다. 일감이 불규칙하게 들어와서 그렇지 보수는 상상 이상으로 높다. 실력과 비밀유지가 생명인 이 바닥에서는 단골 고객만 잘 잡으면 큰돈을 거머쥘 수 있다.

생명이 위태로운 순간이 찾아오기도 한다. 레이싱 드라이버만큼 빠르게 달려야 하고, 스턴트 드라이버보다 위험천만한 주행을 해야 할 때도 있다. 명예나 보람 같은 건 안중에 없다. 급히 돈이 필요했고, 그저 미친 듯 달리는 순간이 좋아서 시작한 일이다. 위험성이 크다는 점, 악당들 오작교 역할을 한다는 점만 빼면 로켓 배송을 생명으로 삼는 쿠팡맨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이 업계에 발 들이고 싶다고? 목숨이 아홉 개쯤 되지 않는다면 그 마음 접기를 바란다. 그래도 꼭 해보고 싶다면 기억하시길. 고객은 왕, 아니 신이다. 절대복종하라. 보안이 생명이다. 신분과 임무 노출을 숨기기 위한 전략 수립이 필수다. 호기심은 금물. 배송에 필요한 기본 정보 외에는 아무것도 신경 쓰지 마라. 임무는 무조건 완수해야 한다. 길거리 싸움과 링 위의 격투기가 다르듯, 프라이빗 트랜스포터는 레이싱 드라이버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법규와 질서, 안전과 배려 따위는 잊어도 좋다. 과감성과 순간의 기지가 성공과 실패를 가른다. 그리고 실패는 죽음으로 연결될 수도 있다.

업무용 차는 매번 다르다. 추적과 신분 노출을 예방하기 위해서다. 대개 트랜스포터가 원하는 모델을 주문하면 의뢰인이 제공해준다. 람보르기니 아벤타도르 같은 차가 최고일 것으로 생각할지 모르지만, 반경 500m 내 모든 눈동자를 수집해버리는 슈퍼카는 곤란하다. 속도보다는 위장술이 중요한 경우라면 되도록 눈에 익은 차를 골라야 한다. 그렇다고 주행성이 부족한 모델은 곤란하다. 경찰이든 악당이든 추격을 따돌릴 수 있는 달리기 실력은 기본이다. 짐 부피가 엄청나게 크지 않은 이상, SUV는 적절치 않다. 차체가 크면 움직임이 굼뜨고 눈에 잘 띄기 때문이다. 



은퇴 미션을 위한 차는 특별히 엄선했다. 콤팩트한 차체, 민첩한 핸들링, 강력한 퍼포먼스, 다부진 하체, 충분한 적재능력. 10년 동안 트랜스포터로 일하면서 지금까지 가장 만족스러웠던 모델, 미니 JCW 클럽맨이다. 신형은 이전 모델보다 최고출력이 75마력 올랐다. 최고출력 306마력, 최대토크 45.9kgm. 차체 무게는 1.6t 수준. 기본 적재공간 360L, 최대 적재공간 1250L. 거기에 John Cooper Works 배지까지. 완벽하다.

파트타임 배달꾼으로 산 지 어느새 10년. 이제 빚도 다 갚았고 결혼하고 싶은 사람도 생겼다. 안정된 환경에서 평범하게, 사람답게 살고 싶다. 마지막 임무를 확인하기 위해 클라이언트 C로부터 온 문자메시지를 다시 열어봤다. ‘케이스에 든 물건을 미스터 J에게 전달하고 돈 가방을 받아와.’ 긴말은 필요 없었다. 그는 나의 단골 고객이다. 소문에 의하면 어느 대기업 총수의 오른팔이라고도 하고, 아시아에서 가장 큰 마약 밀매상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확인할 방법도 없고 알고 싶지도 않다. 일하는 방식은 고객마다 다르다. C와 내가 일하는 방법은 대개 이렇다. 5건을 한 단위로 묶어서 계약하고. 다섯번째 배송을 완료할 때마다 배송비를 지급한다.



배달용 차는 늘 세워두는 대형쇼핑몰 주차장에서 픽업한다. 주차 위치는 매번 바꾼다. 주차장 기둥에 적힌 숫자를 기준으로 피보나치 수열을 참고해 주차 위치에 변화를 준다. 첫 번째 임무는 F1에 1번째 주차면, 두 번째 임무는 F2 1번째 주차면, 세 번째 임무는 F3 2번째 주차면, 그다음은 F4 3번째 주차면…. 이런 식이다. 이런 규칙은 고객과 나만의 비밀이다. 서류를 남기는 바보 같은 짓 따위는 하지 않는다.

배달용 자동차 수령 시간은 항상 문자메시지 받은 다음날 오전 7시다. 차 키는 늘 차 안에 들어 있다. 정확한 배송 시간과 수취자 접선장소는 글러브 박스 안에 자동차 등록증과 함께 들어있다. 메모 방식은 대략 이렇다. ‘1151동남운중구천인002151400202’ 반대로 읽으면 ‘2020년 4월 15일 12시까지 인천 중구 운남동 1511번지로 배송’이라는 지령을 확인할 수 있다.

마지막 임무를 함께할 동반자를 지그시 바라봤다. 누구라도 호감 어린 시선으로 바라볼 동그란 눈, 닥스훈트처럼 길지만 차돌처럼 단단해 보이는 차체, 유니언잭을 형상화한 테일램프…. 구석구석 위트와 센스가 엿보인다. 순간 기지와 재치에 목숨을 걸고 달리는 트랜스포터를 위한 동반자로서 이보다 매력적인 모델은 없다.



트렁크에 J에게 전달할 펠리칸 하드케이스 3개가 들어있었다. 짐 부피가 적지 않았지만 굳이 2열 시트를 접을 필요는 없었다. 빠르게 달려도 짐이 최대한 움직이지 않도록 2열 시트 등받이를 든든히 세우고 짐을 안정적으로 배치했다. 케이스에 무엇이 들어있을지 상상했다면, 당신은 트랜스포터 지원 자격을 상실한 셈이다. 마약이든, 금괴든, 무기든, 누군가의 토막살인 시체든, 알 바 아니다. 정해진 시간까지 약속된 장소에 가서 전달만 하면 그만이다.

운전석에 앉아 촉촉한 가죽을 두른 스티어링휠을 매만졌다. 림 안쪽 붉은 스티치가 손끝에 걸리는 느낌이 마냥 좋았다. 플라스틱을 주로 사용한 내장재가 어른을 위한 장난감이라는 이미지를 각인시켰다. 곳곳에 자리 잡은 탄소섬유 패널은 함부로 가지고 놀다가는 큰코다칠 수 있는 공격본능에 대한 암시다. 센터페시아 하단 빨간색 토글스위치를 내려다본다. 포켓 로켓 발사 장치다. 스위치를 누르자 경쾌한 엔진음과 진동이 온몸을 간지럽혔다.



마지막. 괜스레 상념에 젖어 들었다. 이번 일만 마치면, 동남아 이름 모를 섬에서 반려자와 행복하게 살 것이다. 쉬지 않고 다가오는 아스팔트 위로 지난 10년의 초조함과 핑크빛 미래가 가만히 포개졌다. 어째서인지 눈가가 뜨듯해졌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직 그럴 때가 아니다.

애플 카플레이를 켜고 음악을 틀었다. 오늘의 드라이빙 뮤직은 이선희의 ‘J에게’. 어떤 상황에서도 집중력을 잃어선 안 된다. 스티어링휠을 바투 쥐었다. JCW 클럽맨은 가뿐한 움직임으로 운전자의 조작에 화답했다. 정확히 정오다. 약속된 장소에 도착했다. 미스터 J가 돈가방을 들고 다가왔다. 그는 인사조차 하지 않았다. 펠리칸 캐리어 3개와 돈가방을 교환한 뒤 뒤돌아서 사라졌다. 넉넉한 뒷자리에 돈가방을 던져놓고 다시 시동을 걸었다.



JCW 클럽맨이 도로 위를 달렸다. W에게서 전화가 왔다. “지금 어디야? J 만났어? 돈가방은 받았어?” W는 클라이언트 C의 부하다. 나는 다급한 목소리로 소리치는 그녀를 진정시키려 애썼다. 그러나 소용없었다. “돈가방을 받았으면 절대로 차에 타지마!” W는 나의 연인이다. 우리는 C 모르게 비밀연애를 하고 있었다. 이번 임무를 마친 뒤, 그녀와 함께 멀고 먼 나라로 흔적도 없이 사라질 계획이었다.

W의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배기음이 들리는데? 차에 탄 거야? 브레이크 밟지 마! J와 C가 내통했어. J가 준 돈가방을 가지고 C가 준 차에 타면 5분 안에 가방과 자동차에 설치해둔 폭탄이 활성화돼. 엔진회전수가 3000rpm 이래로 떨어지면 엔진에 설치한 기폭장치가 작동해. 속도가 시속 20km 아래로 떨어지면 가방 속 GPS 대응 기폭장치가 작동하고….”



C는 내가 약속장소에서 어느 정도 멀어진 뒤 사고로 죽은 것처럼 위장하려고 한 모양이다. 교차로가 다가왔다. 신호등에 붉은빛이 들어왔다. 가속 페달을 더 깊이 밟았다. 신호를 어기고 교차로를 지나는 차들 사이를 가로질러 달렸다. W가 절규하듯 외쳤다. “절대 멈추지 마. 내가 구하러 가기 전까지 어떻게든 계속 달려. 엔진회전수를 3000rpm 이하로 떨어뜨리면 절대 안 돼. 달리는 상태에서 차와 가방을 분리해야만 한다고!” 나는 그저 “사랑해”라고 답했다. 더 할 말이 없었다. 상황이 너무 암담해서. W의 간절한 목소리가 너무 고맙고 또 미안해서. “사랑해.



기다려줘.” 수화기 너머로 W의 바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C는 지금껏 너무 많은 임무를 맡았던 나의 은퇴가 반갑지 않았나 보다. 나를 제거하기 위해 함정을 파다니…. 어쩌면 나와 W의 관계를 알아챘는지도, 그래서 더더욱 제거하고 싶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C에게 전화를 걸었다. 수화기 너머 그가 태연하게 물었다. “무슨 일이야? 보고 연락 같은 건 필요 없어.” W가 곤란한 일을 겪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짐짓 침착한 척 말했다. “네. 돈가방 받아서 돌아가고 있어요. 돈가방 전달 장소와 시간을 바꿀게요. 미행이 붙은 것 같아요.” C가 한숨을 내뱉은 뒤 답했다. “그럴 필요 없어. 가방 안에 있는 돈은 다 네 거야. 다섯 건 배송비에 퇴직금까지 두둑이 얹은 금액이니, 그걸로 잘 살아. 그동안 수고했어.” 뚝. C가 전화를 끊었다.



신호등에 빨간불이 켜진 교차로를 7개째 돌진했다. 3000rpm과 레드존 사이에서 울부짖는 엔진음과 주변 차들의 경적이 머리를 아프게 했다. 이대로 계속 달릴 수만은 없었다. 문득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W에게 전화했다. “영종도 서킷으로 와. 기름이 바닥날 때까지는 어떻게든 달려볼게.” BMW 드라이빙 센터로 돌진했다. 당황하는 경비원의 눈빛이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찰나, 진입차단 바를 부수고 시설로 들어갔다. 두 눈이 바쁘게 움직였다. 트랙 입구를 찾아야 했다. 마침 휴관일인지 인적이 뜸했다. 줄지어 세워둔 파일런 무리를 돌파한 뒤, 임시 진입로를 지나 트랙에 들어섰다.



드라이브 모드를 스포츠에 두고 굽이치는 서킷을 질주했다. 트랙 내에는 신호도 장애물도 없어서 엔진회전수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면서 달릴 수 있었다. 속도를 크게 높일 필요도 없었다. 그러나 이성을 잃고 미친 듯 길길이 날뛰었다. 화가 나고 분해서. 불안하고 두려워서. 도저히 주체 못할 감정을 속도와 배기음으로 뱉어냈다. 왼손으로 패들시프트를 당기고 오른발로 가속 페달을 짓밟았다. 폭탄이 터지기 전에 엔진이 터져버리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절망감의 한 가운데 옅은 희열이 서광처럼 들이쳤다. 웃음이 났다.



문득, 10년 내내 스티어링휠 잡고 산 내가 이렇게 죽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순간에는 폭발에 대한 두려움도 잊은 채 달리는 일 자체에 집중했다. 연속코너를 고속으로 지나쳐도 네바퀴굴림 시스템이 지면을 다부지게 움켜쥐었다. 알칸타라를 두른 세미버킷 시트는 운전자 몸을 든든히 감아쥐었다. 빌어먹을, 정말 좋은 차였다. 눈물 나게 즐거웠다. 코너의 시작과 끝, 그다음 코너, 그리고 길게 뻗은 직선로…. 다운시프트와 제동, 에이팩스 확인과 가속, 그리고 풀스로틀…. 주행의 모든 순간 혀끝에 단맛이 맴돌 만큼 짜릿했다. 실성한 사람처럼 가속 페달을 지르밟았다.



멀리서 경적이 들렸다. 사이드미러 너머로 빨간 미니가 보였다. W가 몰고 온 JCW 컨트리맨이다. W 얼굴을 확인하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대로 포기하면 안 돼. 내가 죽으면 W는 어떻게 해. 이젠 그녀 목숨도 위험해. C는 이미 W가 나를 구하러 왔다는 것을 알았을 거야.’ 

엔진과 돈가방에 달린 기폭장치 작동을 막기 위해 달리는 차에서 다른 차로 가방을 넘겨주기로 했다. 그녀가 모는 JCW 컨트리맨과 시속 30km 정도로 속도를 맞춰 달렸다. 굽이치는 코너 탓에 나란히 달리기 어려웠다. 엔진회전수를 높이면서 저속으로 달리려니 그녀의 차와 페이스를 맞추기도 쉽지 않았다. 직선 구간이 다가오자 W가 스티어링휠을 놓고 창밖으로 손을 뻗었다. 나란히 달리는 두 대의 JCW 사이로 위태롭게 돈가방을 내밀었다.



“잡았어! 됐어!” 눈물범벅이 된 그녀가 오열하듯 소리쳤다. 돈가방을 넘겨준 뒤 브레이크 페달을 밟았다. 빨간 JCW 컨트리맨이 앞으로 멀어져 갔다. 쉬지 않고 목놓아 소리치던 엔진이 비로소 고요해졌다. 서킷 한 편에 차를 대고 내렸다.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을 뻔했다. W는 내가 무사하다는 것을 확인하고 돌아오고 있었다. 눈물이 앞을 가렸다. 그러나 얼싸안고 안도할 새도 없었다. 멀리서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서킷 관리자가 경찰에 신고했을 것이다.

다시 차에 올라탔다. 트랜스포터에 대해 아직 말하지 않은 것이 있다. 우리에겐 언제나 계획이 있다. 언제든 비상시 추적을 따돌리기 위한 시나리오를 세 개쯤 마련해 둔다. W와 나는 서로 다른 길로 달리다가 경찰 포위망 밖으로 숨었다. 몇 시간 뒤 약속한 장소에서 다시 만났다. 그렇게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은퇴식이 끝났다. 햇살이 눈부셨다. 공기마저 달콤했다. 퇴직금 두둑이 담긴 돈가방과 피앙세, 그리고 두 대의 JCW를 가만히 둘러봤다. 더 이상 배달은 없다. 이제 돈을 갖고 튀는 일만 남았다. 포켓 로켓 발사 장치에 다시 한번 손가락을 올린다.




김성래 사진 이영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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