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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in Test #2] 판타스틱 듀오, 던 vs 우라칸 에보 스파이더

조회수 2020. 2. 26. 11:41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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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은총을 머금은 두 대의 오픈카를 소환했다. 빠르고 매혹적인 우라칸 에보 스파이더는 진정한 오픈카의 결정체다. 세상을 더없이 생생하게 품에 안는 롤스로이스 던 앞에서도 최고일까?

우주 공간을 유영하는 느낌이 이러할까? 롤스로이스 던이 미끄러지듯 앞으로 나아가면 마치 우주선에 탄 기분이다. 유리 한 장을 사이에 두고 단절된 세상은 지나치리만큼 적막했다. 실내에는 V12 엔진이 내뱉는 청량한 노랫가락만이 은은하게 펴졌고, 차창 너머 풍경은 한 편의 뮤직비디오처럼 스쳐 지나갔다. 발길이 닿는 어디든 지상낙원이었다. 딱히 목적지가 없어도 좋았다. 스티어링휠 잡은 손을 이대로 평생 놓고 싶지 않았다.

롤스로이스를 모는 내내 오감이 살아 숨 쉬었다. 중후한 움직임과 호사스러운 인테리어는 물론 사소한 가죽 냄새, 버튼 조작감 하나까지도 몸의 온 세포가 깨어나 이 모두를 느끼기 시작했다. 특히 두툼한 양털 매트에 발이 닿는 느낌은 구름 위를 걷는 기분이었다. 여기까지가 다른 롤스로이스와 같다면 특별한 한 가지가 더 남았다. 바로 바깥세상과 탑승자를 연결시켜줄 오픈톱이다. 롤스로이스표 럭셔리 감성의 화룡점정이다.

람보르기니 우라칸 에보 스파이더는 느낌이 180도 달랐다. 일단 전투기 콕핏을 연상케 하는 운전석부터 상냥하지 않았다. 공중전을 앞둔 조종사를 품듯 시트는 온몸을 옥죄었다. 덩달아 출발 전부터 스티어링휠을 잡은 손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우라칸이 지나가면 도로에 찾아온 평화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멀리서부터 우렁찬 배기음이 천지를 뒤흔든다. 야수의 등장을 따로 경고할 필요도 없었다.

성난 파도 소리는 우라칸의 포효에 비하면 조그마한 개미 소리에 불과했다. 지붕이 접어 넣자 소리가 더 직접적으로 귓속에 들이쳤다. 아드레날린이 분출했다. 굽잇길에서는 협곡 사이사이를 이리저리 헤집으며 곡예비행하는 전투기로 기꺼이 변신했다. 가상의 적기를 바짝 쫓아 당장이라도 미사일을 발사할 것처럼 공격적으로 내달렸다.

비슷한 가격대의 2도어 오픈카이면서 성격은 극명하게 갈리는 두 모델 사이에서 고민에 빠졌다. 오픈톱 하면 더없이 여유로운 석양 풍경 속에 시원한 바람에 머리칼 휘날리며 편안하게 달리는 컨버터블이 쉽게 상상된다. 이런 점만 보면 롤스로이스 던에게 마음이 간다. 던은 1950년부터 1954년까지 생산한 ‘실버 던’에게 영감을 얻어 제작한 4인승 컨버터블이다. 114년을 이어온 브랜드 철학에 따라 최고급 소재와 더불어 믿을 수 없는 장인정신이 곳곳에 스몄다.

특히 풍절음 걱정을 말끔하게 지운 6겹 소프트톱과 어떠한 소음도 나지 않는 개폐 매커니즘(롤스로이스는 자랑스럽게 ‘침묵의 발레’라고 부른다)은 가장 조용한 컨버터블을 만들겠다는 브랜드 고집이 잘 묻어난다. 롤스로이스는 달릴 때나, 멈춰있을 때나 어떤 순간에서도 변함없는 가치를 보장한다. 브랜드 전통과 존재감 넘치는 위용, 호화로운 인테리어, 12기통 엔진이 선사하는 묵직한 주행질감을 생각하면 진정 완벽에 가까운 오픈카다.

우라칸 에보 스파이더는 환상적인 운전 재미를 선사한다. 브랜드 성격답게 여유와 편안함 따위와는 타협하지 않고, 극강의 퍼포먼스만으로 컨버터블에 대한 기대심을 깨부순다. 사나이 마음은 갈대와 같은 것. 막상 달리고 보니 오픈카는 역시 스포츠카에 안성맞춤이다. 우라칸은 심지어 더 빠르고 멋진 슈퍼카가 아니던가. 에보의 V10 심장은 최고출력 640마력, 최대토크 61.2kg·m의 힘을 자랑한다.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3.1초 만에 도달하고, 최고시속은 325km에 달한다. 제원 수치만으로도 혀를 내두르게 만드는 괴물이다.

에보는 람보르기니 다나미카 베이콜로 인테그라타(LDVI)로 불리는 중앙 처리 장치로 이런 괴력을 더 매력적으로 요리한다. LDVI는 단순하게 민첩한 반응을 끌어내는 데 그치지 않는다. 조향 각도와 가속 수준, 현재 기어, 주행 모드 등 차의 모든 설정과 주행 특성을 분석하여 운전자의 의도를 예측하고 최상의 결과를 만들어낸다. 거짓말처럼 호흡을 척척 맞추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빠른 코너 탈출을 마음먹고 힘차게 가속하면 차가 알아서 리어 스티어링과 네바퀴굴림에 물린 토크벡터링 시스템을 조절해서 출구까지 빨려 들어가듯 안내했다. 심지어 드리프트 욕심을 부려도 슬립을 제어해 마치 프로 레이서가 된 듯한 착각을 일으켰다. 노면 상태만 좋다면 날쌘 가속을 거침없이 이어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하지만 스포츠 주행도 잠시다. 운전자는 시종일관 빠른 속도로 달리지 않는다. 긴장을 풀어서든, 도로가 막혀서든, 천천히 다닐 때가 더 많다. 다이내믹한 주행을 하지 않는 경우, 우라칸에는 불편한 승차감만 남는다. 브랜드 가치와 존재감은 두 모델이 비슷한 수준이라고 치더라도 우라칸은 극단적인 장점이 때로는 단점이 되어, 빛을 보지 못하는 게 된다(우라칸 에보가 그나마 데일리카에 초점을 맞춘 모델이지만, 여전히 편안함과는 거리가 멀다). 이런 점을 감수하고서라도 에보 스파이더가 선택받을 가치가 있는지는 두고 보기로 했다.

엔진 제원 수치(563마력, 79.6kg·m)만 보고 제법 날쌔게 달리는 던을 상상하는 건 무리다. V12 트윈터보 엔진 최대토크가 우라칸보다 18.4kg·m 높다 하더라도 2.5t이 넘는 거구는 결코 원하는 만큼 움직여주지 않았다. 우라칸은 마치 적토마에 올라타 적진을 향해 거침없이 내달리는 관우 같았다. 반면 던은 어떤 순간에서도 체통을 잃지 않는 귀족의 면모가 주행성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나쁘게 말하면 생동감이 덜했고, 좋게 말하면 힘을 부드럽게 분출해서 다루기 쉬웠다.

고속도로와 일반도로를 오가며 한참 달렸다. 승차감은 이 세상 자동차가 아니라고밖에 설명할 길이 없다. 서스펜션에 어떤 마법 가루를 뿌렸는지 투박한 시멘트 고속도로나 요철이 많은 거친 시골길이나 갓 포장한 아스팔트처럼 한없이 부드러웠다. 승차감을 위해 우주에서 가져온 금속을 서스펜션에 사용했다고 해도 믿을 판이다.

세상 어디에 내놔도 주인공이 될듯한 우라칸이지만 던 앞에서는 그리 특별해 보이지 않았다. 가격 면에서도 던 못지않은 고가 모델이지만, 장인의 손길이 깃들어 어디 하나 평범한 곳이 없는 롤스로이스의 럭셔리 분위기와 비교하면 다소 단출해 보였다. 요철이 많은 우리나라 도로 환경에서 두 모델을 번갈아 타보고 나니 우라칸에 불평하게 됐다.

작은 도로 흠에도 벌벌 기어야 한다. 운전자의 두 눈은 직접 전방주의 센서처럼 바쁘게 노면 상태를 파악하고, 초 단위로 옳은 판단을 내려야 차체 안전을 보장할 수 있다. 매일 타는 용도로는 영 부담스럽다. 물론 서킷에서 만났다면 우라칸 에보 스파이더가 압도적으로 좋았겠지만.

폭발적인 성능과 배기음으로 운전자의 혼을 쏙 빼놓는 우라칸 에보 스파이더가 훌륭한 오픈카라는 사실에는 이견이 없다. 만약 시골 구석구석까지 노면 상태가 좋은 독일이었다면 망설이지 않고 우라칸 에보 스파이더를 고르라고 말하고 싶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일상용보다는 트랙데이용으로 알맞다. 성격이 완전히 다른 람보르기니와 롤스로이스를 두고 우열을 가리기는 쉽지 않다.

그래도 꼭 선택해야 한다면, 롤스로이스 던의 손을 들어주겠다. 우라칸이 별로라서 그런 건 아니다. 운전 재미에 집중한다면 우라칸이 정답이다. 다만, 시종일관 마음 졸이며 땅만 보고 달려야 하는 우라칸과 달리 매일같이 멀리 고즈넉한 석양을 내다보며 여유롭게 퇴근길을 달리고 싶다면 던을 고르는 편이 낫다. 진정 꿈꿔왔던 오픈카 세상 유토피아다.

박지웅 사진 이영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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