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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시승] 토요타 GR 수프라, 16년 만에 부활한 전설

조회수 2020. 4. 28.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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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타 신형 수프라를 시승했다. 단종 16년 만인 지난해 부활한 5세대다. BMW Z4와 플랫폼 및 파워트레인을 나눴고, 오스트리아 그라츠에서 마그나 슈타이어가 생산한다. 과연 이번 5세대는 모호한 정체성을 극복하고, 버블경제의 절정기에 수많은 튜너와 드리프트 마니아에게 사랑받은 4세대의 후계자로서 자격이 충분한지 서울과 강원도를 넘나들며 살펴봤다.

글 김기범 편집장(ceo@roadtest.kr) / 사진·영상·편집 신동빈 기자|토요타

토요타 FT-1 콘셉트

부활한 토요타의 대표 스포츠카

수프라는 토요타의 간판 스포츠카다. 수프라는 ‘~위에’ ‘초월하다’라는 뜻의 라틴어. 1978년 코드네임 ‘A40’으로 처음 데뷔해 2002년 4세대(A80)를 끝으로 긴 잠에 빠졌다. 2014년 북미모터쇼에서 FT-1 콘셉트카로 부활을 암시했다. 같은 해 미국에서 차명과 로고 상표권도 신청했다. 2018년 6월 5일, 토요타는 “수프라로 나스카에 참가한다”고 선언했다.

일주일 뒤 토요타는 영국 ‘굿우드 페스티벌 오브 스피드’에서 시제작차를 선보였다. 공식데뷔는 2019년 1월 14일, 북미국제오토쇼. 이날 직접 발표에 나선 도요다 아키오 회장은 “난 수프라로 운전을 배웠다”고 밝히고, “신형은 뉘르부르크링 노르트슐라이페(북쪽코스)에서 담금질했다”고 설명했다. 이번에 시승한 수프라가 16년 만에 5세대로 부활한 신형이다.

1978년 등장한 1세대 수프라(왼쪽)와 1993년 데뷔한 4세대 수프라(오른쪽)

원조 수프라는 지금과 느낌이 퍽 달랐다. 셀리카의 가지치기 모델이었다. 1986년 코드네임 ‘A70’의 3세대부터 수프라는 이름과 메커니즘 모두 셀리카 그늘에서 벗어나 독자 모델로 거듭났다. 역대 수프라의 정점은 1993년 데뷔한 코드네임 ‘A80’의 4세대. 렉서스 SC(토요타 소아라)와 섀시 및 주요 부품 나눈 친척인데, 정작 둘은 사뭇 다른 길을 걸었다.

과감한 튜닝을 거친 수프라가 영화 <분노의 질주>에 나왔다. 사진 속 인물은 주연을 맡은 폴 워커

SC는 우아한 그랜드 투어러로 여유 있는 중년의 호기심을 모았다. 반면 수프라는 자동차 만화 <서킷의 늑대>나 <이니셜D> 보고 자란 마니아들 가슴에 불씨를 지폈다. 벽난로 연통만한 머플러와 작은 교각만큼 웅장한 뒷날개 꽂고 1,000마력 넘게 튜닝한 수프라는 2002년 단종 이후에도 튜너와 드리프터 사이에서 ‘살아있는 화석’으로 존재감을 이어갔다.

5세대 개발은 토요타가 BMW의 문을 ‘똑똑’ 두드리면서 물꼬를 텄다. 원가를 신앙처럼 좇는 토요타에게 ‘찔끔’ 만들 수프라 단독개발은 어불성설. 직렬 6기통 엔진과 뒷바퀴 굴림을 운영 중인 BMW를 점찍었다. 2012년 5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치른 86 유럽 미디어 시승회가 끝나기도 전, 치프 엔지니어(CE) 타다 테츠야는 극비리에 뮌헨으로 날아갔다.

당시 BMW 그룹 기술담당 부사장은 현 폭스바겐 CEO 헤르베르트 디이스. 그는 순수 스포츠카를 꿈꾸는 토요타의 욕망에 수시로 빗장을 걸었다. 반면 1년 후 디이스의 바통 이어받은 클라우스 프뢸리히는 협조적이었다. 토요타의 열정을 이해하고 지지했다. 그럼에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스바루와 위험부담 나누되 입맛대로 개발을 주도한 86 때완 달랐다.

전 세대 수프라의 비율을 쫓아 '롱 노즈(보닛)&숏 데크' 스타일로 빚었다

*모든 세대 수프라의 공통분모

① 롱 노즈(보닛)&숏 데크

② 앞 엔진, 뒷바퀴 굴림(FR)

③ 직렬 6기통 엔진

세대별 수프라. 제일 뒤쪽부터 순서대로 1~5세대다

*세대별 수프라

① 1세대(A40, 1978~1982년): 2.6L 110마력

② 2세대(A60, 1982~1986년): 2.8L 145마력

③ 3세대(A70, 1986~1993년): 3.0L 터보 235마력 -독립 차종으로서의 출발점, 최초의 터보

④ 4세대(A80, 1993~2002년): 3.0L 터보 320마력(내수 280마력) -당시 3만9,990달러(현재 가치로, 6만2,000달러)

⑤ 5세대(A90|J29, 2019년~): 3.0L 터보 340마력-BMW 공동 개발해 Z4(G29)와 이란성쌍둥이

포르쉐 718 카이맨, 르노 알피느 A110, BMW Z4(왼쪽부터 순서대로)

*GR 수프라의 주요 라이벌

① 포르쉐 718 카이맨

② 르노 알피느 A110

③ BMW Z4



Z4의 흔적 지우고 4세대 재해석

‘나이트로 옐로’ 컬러로 단장한 시승차의 첫 인상은 사진보다 훨씬 강렬했다. 헤드램프는 큼직한 눈망울로 폭력적 성향 감췄던 4세대를 떠오르게 한다. 이번엔 날카로운 앞트임으로 매서운 느낌을 더했다. 도어 끝자락의 ‘공갈’ 흡기구 또한 4세대와 판박이. 트렁크 리드는 오리 꽁지처럼 뾰족이 잡아 올렸다. 번호판 주변 콧날은 흡사 F1 머신을 연상시킨다.




전반적 디자인은 오묘하다. 시선의 각도와 높낮이에 따라 느낌이 천차만별이다. 내려다보면 녹아 흘러내린 치즈처럼 미끈하다. 반면 눈높이 낮추면 돌연 굴곡과 선이 과하게 다가온다. BMW 스펙에 맞춰 수프라 고유의 스케일과 비율을 압축한 결과다. 게다가 2+2 구성의 4세대와 달리 Z4 같은 2인승. 좀 더 넓적할 뿐 차체 길이가 4세대보다 136㎜나 짧다.

토요타 신형 수프라의 치프 디자이너는 나카무라 노부오다. 그는 2014년 북미모터쇼에서 토요타가 공개한 FT-1 콘셉트에 쏟아진 뜨거운 반응을 보고 조용히 되뇌었다. ‘지금 토요타에 이런 차가 얼마나 중요한가!’ FT-1은 미국 캘리포니아에 자리한 토요타 디자인 연구시설 ‘캘티(Calty)’에서 태어났다. 공교롭게 4세대 수프라 디자인의 고향 또한 여기였다.

FT-1 콘셉트

당시만 해도 FT-1의 양산여부는 불투명했다. 설령 생산한들 수프라가 될 계획 또한 전혀 없었다. 물론 연결고리는 있었다. 디자이너들은 토요타 스포츠카의 미래를 상상하며 빚었다. 자연스럽게 아이코닉 스포츠카 수프라의 비율과 특징이 스며들었다. 토요타가 굳이 밝히진 않았지만, 수프라 팬들은 귀신 같이 눈치 챘다. 하긴 누가 봐도 수프라이긴 했다.

나카무라가 2013년 중반 총괄을 맡은 프로젝트 또한 스포츠카였다. 하지만 수프라는 아니었다. 이후의 우여곡절은 셀 수 없이 많다. 가령 BMW와 공동개발 때문에 휠베이스와 트레드 등 스펙부터 못 박았다. 동시에 덩치가 훨씬 큰 FT-1의 분위기 또한 살려야 했다. 디자인 팀은 FT-1을 수프라로 바꾸는 과정에서 비율을 유지하되 스케일을 잔뜩 압축했다.

지붕은 좌우가 봉긋 솟은 더블-버블 형태다

오죽하면 치프 디자이너가 팀원들에게 제시한 키워드가 ‘Condensed Extreme(응축된 극단)’이었다. 수프라의 차체 너비는 2+2 구성의 86보다 넉넉하다. 하지만 휠베이스는 2,470㎜로 100㎜ 더 짧다. 지붕은 좌우가 봉긋 솟은 더블-버블 형태. 수프라의 전통은 아니다. 레이싱 카에서 헬멧 쓴 탑승객의 머리 공간을 확보하기 위한 전통적 해법 중 하나다.

BMW 분위기가 짙게 밴 수프라 실내

BMW 유전자 감출 수 없는 실내

수프라에 탈 땐 머리를 조심해야 한다. 지붕이 워낙 낮게 드리워 부딪히기 십상인 까닭이다. 실내에 들어서면 이른바 ‘배지 엔지니어링’의 현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센터페시아 디스플레이의 그래픽이나 i드라이브, 바이와이어 방식의 기어 레버, 공조장치를 비롯한 각종 스위치, 스티어링 휠까지 몽땅 BMW다. 심지어 리모컨 키까지 엠블럼만 빼곤 똑같다.

아이러니하게도 실내를 보면 겉모습 차별을 위한 고민이 새삼 와 닿는다. 토요타는 선루프 한 장도 직접 만드는 회사. 소위 ‘기술의 손바닥화’다. 그런 회사가 수프라 부활을 위해 비장한 결심을 한 셈이다. 자격지심 때문인지 CE를 통해 흘리는 ‘팩트 폭격’도 이례적으로 많다. “토요타 차종 가운데 수프라의 무게중심이 가장 낮다”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알칸타라 소재를 두른 하이백 스포츠 시트

하지만 시트 포지션은 문 열고 팔 뻗어 땅에 닿을 정도로 설계한 86보단 높은 듯하다. 운전석에 앉으면 폐쇄감이 딱 쉐보레 카마로를 연상케 한다. 헬멧 너머로 내다보듯 윈드실드와 좌우 윈도로 풍경을 빠듯하게 가뒀다. 역설적으로 긴장과 설렘을 부채질하는 효과를 낸다. 일명 ‘하이백 스포츠 시트’엔 알칸타라를 씌워 몸이 미끄러지지 않도록 잘 감싸준다.

8.8인치 디지털 계기판

버튼 눌러 시동을 걸면 묵직한 포효와 함께 수프라가 잠에서 깨어난다. 디지털 계기판은 구성이 단출하다. 큼직한 타코미터를 중앙에 심고, 좌우 남는 공간에 속도와 각종 정보를 띄웠다. 속도계와 타코미터를 좌우로 나누고 가운데 정보 띄우는 Z4 계기판보다 심심하고 균형미도 떨어진다. 대신 ‘엔진 회전수만큼은 확실히 보여주겠다’는 목적엔 충실하다.

시승차의 실내는 진회색 일색으로 다소 칙칙하다(빨강은 옵션). 금속 느낌 소재와 다양한 컬러의 가죽을 쓴 Z4와 대조를 이룬다. 프리미엄 브랜드와 주요 DNA를 공유하고도, 굳이 대중차 브랜드의 신분을 드러낸 듯해 아쉽다. 물론 원가 절감을 위한 선택이기도 하다. 수납공간은 인색하다. 스마트 폰 무선충전패드 빼면 핸드백 하나 놓을 공간조차 여의치 않다.

BMW 분위기 풍기는 변속 레버 주변부. BMW 분위기 풍기는 다이얼은 '토요타 수프라 커맨드'다
290L 트렁크 공간

각종 기능 접근성 및 조작성은 BMW Z4와 판박이. i드라이브 다이얼을 돌려 고르고 눌러 결정한다. 호불호는 나뉘겠지만 개인적으로는 토요타의 인포테인먼트 시스템보다 만족스럽다. 실내에서 아쉬운 공간은 트렁크가 소화한다. 해치 도어여서 짐을 싣고 내리기도 좋다. 다만 절대적 공간은 빠듯해서 기내 반입용 트렁크 두 개를 삼킬 수 있을지 의문이다.

앞 펜더와 문짝에 알루미늄 소재를 썼다

속도와 회전수 개의치 않는 가속

수프라의 뼈대는 BMW 그룹의 ‘클러스터 아키텍처(CLAR)’다. CE 타다 테츠야는 “수프라의 무게중심이 86보다 훨씬 더 낮고, 차체강성은 2.5배에 달한다”고 이야기한 적 있다. 심지어 카본파이버 쓴 렉서스 LFA도 능가하는 수준. 무게를 줄이기 위해 차체 앞부분 골격과 펜더, 도어는 알루미늄, 트렁크 도어는 합성수지로 만들었다. 앞뒤 무게배분은 5:5다.

서스펜션은 앞 스트럿, 뒤 멀티링크. 직경이 각각 23.5㎜, 18㎜인 스태빌라이저 바를 앞뒤로 물렸다. “주행성능의 총량을 놓고 보면, 엔진과 서스펜션의 기여도는 의외로 높지 않아요. 가장 중요한 건 섀시죠. 휠베이스, 트레드, 무게중심 등이 핸들링의 80%를 결정할 수 있어요. 이 세 가지만 충실해도 차량의 기본기는 확실해집니다.” 테츠야 CE의 말이다.

5,000~6,500rpm에서 최고출력 340마력, 1,600~4,500rpm에서 51㎏·m 최대토크를 내는 직렬 6기통 3.0L 가솔린 터보 엔진

수프라는 직렬 6기통 3.0L(2,998㏄) 가솔린 트윈스크롤 터보차저 엔진을 보닛 속에 품고 뒷바퀴를 굴린다. 최고출력은 340마력. 같은 엔진의 BMW Z4 M40i보다 47마력 낮다. 대신 최대토크는 51.0㎏·m로, Z4 M40i보다 1.0㎏·m 높다. 0→시속 100㎞ 가속시간도 4.3초로, Z4 M40i보다 0.2초 빠르다. 최고속도는 둘 다 시속 250㎞에 봉인했다.

참고로 20년 전 데뷔한 4세대 수프라는 배기량이 1㏄ 적은 엔진으로 320마력을 냈다. 신형 수프라의 변속기는 ZF 자동 8단. 토요타는 “무게 때문에 듀얼 클러치를 쓰지 않았다”고 밝혔다. 맞수 포르쉐 카이맨, 르노 알피느와 다른 점이다. 기어비는 BMW Z4 M40i는 물론 직렬 4기통 2.0L 가솔린 터보 엔진의 수프라와도 같다. 6단에서 최고속도를 찍는다.



한편, 이날 우린 서울 강남에서 샛노란 2020년형 GR 수프라를 받아 경부고속도로에 올라탔다. 정체 뚫고 달릴 때 수프라 운전은 별 감흥이 없었다. 실내는 기이하리만치 조용했고, 서스펜션은 의뭉스럽게 부드러웠다. 스티어링도 정보를 적당히 걸러 덤덤했다. 영동고속도로에 접어들면서 길이 뚫렸다. 가속 페달을 짓이기자 비로소 축제의 막이 올랐다.

최대토크 밴드가 1,600~4,500rpm의 너른 범위에 걸쳐 있어 늘 힘이 넘쳐났다. 터보차저는 속도나 회전수를 의식하지 못할 만큼 은밀하게 개입해 가속에 살기를 더했다. 직렬 6기통의 풍성하고 그윽한 사운드는 가속의 흥을 북돋웠다. 연비는 난폭하게 몰 땐 6~7㎞/L까지 떨어졌지만, 고속도로에선 평균 13~14㎞/L, 내리막 구간에선 25㎞/L까지도 나왔다.

앞 네 개 피스톤으로 직경 348㎜ 디스크를 움켜쥐는 브렘보 브레이크

일명 ‘돌부처’ 코너링과 브레이킹

폭풍 같은 질주를 수시로 반복하다 이내 흥미를 잃었다. 상대를 찾기 어려울 만큼 우월했고, 밀어붙이는 힘은 폭력적이되 한사코 차분하고 안정적이었던 까닭이다. 여기까진 일주일짜리 대륙횡단에나 어울릴 성향. 이제 남은 절반의 모습을 확인하기 위해 대관령 옛길을 찾았다. 풍력발전기 우뚝 선 휴게소부터 끝자락의 박물관까지 왕복이 오늘의 어택 코스다.

편도 1차선뿐인 내리막 굽잇길은 제동력의 한계를 가늠할 기회. 앞차와 간격을 멀찍이 벌렸다가 순간 가속으로 바짝 좁힌 뒤 감속하는 패턴을 반복했다. 앞 4피스톤, 뒤 싱글 피스톤의 브렘보 브레이크는 반복되는 제동에도 지치는 기색이 없었다. 다만 강철 체력만큼 제동감 또한 무딘 편. 따라서 꾹 밟은 뒤 답력을 미세하게 조절하는 요령이 필요했다.



대관령 박물관에서 차를 돌렸다. 오르막이어서 구동바퀴에 하중을 실을 수 있고, 추월차선이 있으니 심리적 압박이 덜했다. 스포츠 모드로 잔뜩 흥분한 수프라는 가파른 구배에 개의치 않은 채 맹렬하게 치고 나갔다. 패들 시프터 까딱이며 토크를 뭉치고 터뜨리는 과정은 흥미진진했다. 업시프트는 번개 같았지만, 다운시프트 땐 종종 찰나의 기다림이 필요했다.

평소 덤덤했던 스티어링은 템포 바짝 당긴 주행 때 화려하게 빛났다. 요철과 저항에 휘둘리지 않고 꿋꿋이 버텼다. 미세한 조작도 왜곡이나 지체 없이 조향에 반영했다. 코너의 정점에서 횡방향 접지력은 경이로울 정도. 언더스티어가 날 법한 순간에도 꿈쩍 않는, 그야말로 ‘돌부처’ 코너링이다. 무게중심 이동은 전형적인 롱 노즈, 숏 데크의 FR 공식을 따른다.



기다란 코끝을 약간의 마진 두고 코너 안쪽으로 밀어 넣으면, 떡 벌어진 어깨를 살짝 기울인 뒤 바깥쪽 뒷바퀴를 짓이기며 빠져 나간다. 미드십(MR)의 중립적이고 태세전환 빠른 움직임과 대조적인 매력인데, 예측 가능하고 리드미컬해 큰 희열과 성취감을 맛볼 수 있다. 게다가 전자식과 기계식의 장점을 합친 ‘액티브 디퍼렌셜’이 이 과정에 감칠맛을 더한다.

어댑티브 서스펜션은 기본적으로 부드럽다. 소위 ‘뉘르’에서 담금질한 차들의 특징으로, 다양한 노면을 아우르기 위한 선택이다. 타다 테츠야도 “일반 도로 80%, 서킷 20% 주행을 염두에 두고 개발해 거친 노면에서도 좋은 접지력을 즐길 수 있다”고 설명했다. 대신 세밀하고 정교한 운전을 요한다. 조작이 거칠어지면 돌연 움직임이 커지는 경향이 있어서다.



과거보다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전설’

자동차 업계엔 ‘헤일로 카(halo car)’라는 용어가 있다. 해당 브랜드의 이미지 끌어올릴 역할 짊어진 차종을 뜻한다. 포드 GT나 닛산 GT-R이 좋은 예다. 좀 더 행간을 곱씹자면, ‘우와, 너희가 이 정도였어?’ 같은 반응 이끌어낼 주역이다. 토요타에겐 수프라가 그런 존재다. 4세대가 좋은 예로 스포츠카를 넘어 다양한 스펙트럼 지닌 문화의 중심이었다.

GR 수프라 GT4

이제 토요타가 다시 한 번 수프라의 꿈을 깨웠다. 사내에서 모터스포츠를 책임진 가주 레이싱이 개발에 앞장섰다. 이름 앞에 ‘GR’이란 부제 붙인 배경이다. 실제로 GR 수프라는 레이싱 콘셉트를 먼저 만들고, 이후 점진적인 디튠 및 최적화로 양산을 준비했다. 지난해 10월 공개한 GR 수프라 GT4가 좋은 예다. 같은 엔진으로 출력을 435마력까지 높였다.

또한, 신형 수프라는 튜닝을 감안해 설계했다. 예컨대 디퍼렌셜 기어 및 오일 쿨러 장착을 감안해 여유 공간을 남겼다. 현재는 막힌 범퍼와 보닛의 빗금은 추가 냉각을 위한 방열구다. 엔진룸엔 스트럿 브레이스 달 구멍과 나사산까지 파 놓았다. 미국에서는 이미 GR 수프라를 위한 1,000마력 키트까지 나왔다. 심지어 4세대 A80의 2JZ 엔진도 얹을 수 있다.



이번 시승을 마치고 어딘지 석연치 않았다. 다방면으로 우월하고 잠재력이 무궁무진한데, 발톱을 깊숙이 감춰 젠틀하고 부드러웠다. 산전수전 겪은 가주 팀 레이서들의 걱정이 묻어났다. 이를테면 신경 곤두세울 피드백을 너무 걸러 스릴마저 희석시켰다. 묵직하고 안정적인 대신 날카로운 맛이 떨어졌다. ‘가성비’는 뛰어난데 또렷하고 강렬한 정체성이 아쉬웠다.

토요타 스스로 생각해도 그랬던 모양이다. 이번 시승차는 전 세계에 1,500대 한정으로 뿌린 론치 에디션. 국내엔 30대를 배정받아 ‘완판’했다. 다음은 2021년형인데, 피스톤 헤드를 재설계해 출력을 미국 기준 382마력으로 성큼 높였다. 나아가 서스펜션을 비롯한 섀시를 전반적으로 다시 손봤다. 튜너의 몫으로 남겼던 보닛 속의 브레이스도 단다.



출시 1년만의 변화치곤 이례적이다. 앞으로도 GR 수프라는 판에 박힌 주기에 연연치 않고 수시로 진화하며 ‘무한 확장성’을 어필할 전망이다. 세마쇼와 오토살롱을 기다릴 이유도 하나 더 생겼다. 타다 테츠야 CE는 수프라의 운명을 이렇게 암시했다. “토요타 내에서 순수 가솔린 엔진으로 고회전과 특유의 즐거운 음색을 들을 수 있는 마지막 스포츠카에요.”



<생생한 영상으로 확인하는 토요타 GR 수프라 1부>

<생생한 영상으로 확인하는 토요타 GR 수프라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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