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포르쉐의 조상'을 만나다 - 프로토타입 박물관 (1)

조회수 2020. 1. 16.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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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자동차 박물관 탐방기

인구 200만 명이 조금 안 되는 함부르크(Hamburg)는 베를린 다음으로 독일에서 큰 도시입니다. 유럽 전체로 봐도 일곱 번째로 큰 곳이죠. 북해와 엘베강 하류가 만나는 지점에 자리했고, 독일 도시는 물론 북유럽 국가들과 맺은 한자동맹의 한 축이었던 탓에 무역이 발달하며 경제 혜택을 많이 받은 곳이 함부르크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이곳은 지금도 독일에서 부자가 가장 많이 살고 있고, 문화, 교육, 첨단 산업 등, 여러 분야가 골고루 발달했습니다. '독일인들이 살고 싶어 하는 도시' 1위로 꼽히기도 했죠. 이번에 소개할 자동차 박물관 '프로토타입(Prototyp)'은 이런 풍요의 도시 함부르크를 대표하는 자동차 박물관이라 할 수 있습니다.

프로토타입 박물관 전경 / 사진=이완


◆ 함부르크 핫플레이스에 들어선 박물관

함부르크 중앙역에서 약 1km 떨어진 프로토타입은 하펜시티라는 곳에 있습니다. 하펜시티는 함부르크 내에서도 가장 핫한 곳으로, 2000년부터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시작한 일종의 신도시입니다. 기업과 대학은 물론 슈피겔과 같은 독일의 대표적 언론사가 자리해 있고, 크고 작은 박물관들이 이곳에 모여 있습니다.

해양 박물관 전경 / 사진=이완

함부르크에 오면 꼭 한 번 들려 봐야 한다는 해양 박물관, 또 미니어처 신세계를 경험할 수 있는 '미니어처 분더란트(원더랜드)' 등이 유명하고, 지난 2017년 오랜 공사 끝에 개장한 엘브필하모니 공연장의 경우 단번에 함부르크의 랜드마크가 되었습니다. 엘브필하모니 전망대에서 둘러보는 함부르크 전경은 추천할 만합니다.

왼쪽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엘베필하모니 전경, 공연장 전망대에서 바라본 구)항구 모습, 마젤란 테라스에서 바라본 엘베필하모니, 하펜시티 전경 / 사진=이완

그 외에도 하펜시티에는 과거 수출입 되던 물건을 보관하던 대형 창고 단지 슈파이어슈타트(Speicherstadt)가 있습니다.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이기도 한 이곳을 보기 위해 많은 이들이 찾고 있는데요. 이처럼 한 곳에 함부르크 명소가 몰려 있기 때문에 자동차뿐만 아니라 관광까지 한꺼번에 즐길 수 있습니다.

슈파이허슈타트 전경 / 사진=위키피디아, Vincent Seydel-Winter
슈파이어슈타트 사이의 운하 / 사진=이완


◆ '한국로'에서 찾은 프로토타입 박물관

2008년에 문을 연 프로토타입 박물관은 옛 고무 생산 공장 자리에 새롭게 지어진 건물에 있습니다. 독일 최대라는 해양박물관과는 불과 200m밖에 떨어져 있지 않고, 중앙역에서도 걸어서 올 수 있을 만큼 접근성도 나쁘지 않다는 게 이 박물관의 장점입니다.

눈에 띄는 표지판 '한국로(Koreastraße)'. 무역의 도시답게 하펜시티에는 여러 도시 혹은 국가명으로 된 도로명을 볼 수 있습니다. 그중 프로토타입 박물관이 있는 도로명은 Koreastraße / 사진=이완
티켓 구매 및 입장은 2층에서 / 사진=이완

관람은 2층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겉에서 봤을 때의 웅장함과는 달리 안으로 들어가면 작은 공간을 활용해 아기자기하게 꾸며놓은 전시실을 만나게 되는데요. 이곳에서 포르쉐를 중심으로 한 다양한 독일 자동차를 만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방문자가 이곳을 찾는 이유는 검은색 자동차 한 대를 보기 위해서가 아닐까 합니다. 그 주인공은 ‘모든 포르쉐의 조상'이라는 타입64입니다.


◆ 포르쉐 역사의 시작 타입 64 (Typ 64)

타입 64 / 사진=이완

페르디난트 포르쉐가 본격적으로 자신의 브랜드로 된 자동차를 만들기 전, 그러니까 히틀러가 독일을 지배하던 절정기 때 타입 64는 등장합니다. 나치는 1939년 가을, 베를린에서부터 로마까지 1,300km의 거리를 달리는 자동차 경주를 개최하기로 합니다. 2차 세계 대전을 일으킨 이탈리아와 우의를 다진다는 목적이 담긴, 다소 정치적 경주 대회였습니다.

독일의 많은 제조사가 참여하기로 합니다. 당시는 '은빛화살'로 불린 독일 경주용 자동차들이 대회를 휩쓸던 때였고, 이를 나치가 적극 활용하던 때였습니다. 그리고 페르디난트 포르쉐 또한 이 대회를 위해 자신이 평소 생각하던 경량 스포츠카를 제작합니다.

유선형 디자인에 실내 공간을 최소화한 결과 타입 64의 공차중량은 불과 550kg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40마력짜리 자동차는 최고속도 140km/h 이상을 낼 수 있었죠. 하지만 1939년 9월, 타입 64가 만들어진 지 3주 후 독일은 폴란드를 침공했고 그렇게 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며 이 경주용 차의 데뷔는 무산됩니다.

타입 64 / 사진=이완
타입 64 / 사진=이완

하지만 포르쉐는 두 개의 타입 64를 더 제작했습니다. 그 중 세 번째 것은 사고로 망가진 첫 번째 모델의 차대로 만들어졌죠. 이후 두 대의 타입 64는 포르쉐 설계사무소에서 업무용 자동차로 사용됩니다. 하지만 전쟁 직후 두 대 중 한 대가 미군에 의해 다시 망가지게 됩니다. 다행히 남은 한 대는 오스트리아의 사업가이자 레이서인 오토 마테에게 팔리며 원형을 유지할 수 있게 됐습니다.

타입 64를 팔고 처음에는 포르쉐 쪽에서 이 차를 되사기 위한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오토 마테는 팔 마음이 없었죠. 1980년, 그러니까 거의 30년이 지난 후에서야 그는 타입 64를 포르쉐에게 되돌려주겠다고 마음먹습니다. 하지만 계획대로 되지 않았죠. 결국 그가 사망한 후 그 차는 경매로 팔리게 됩니다. 포르쉐는 경매 참가를 고민했지만 끝내 포기했고, 그것으로 이 차와의 인연은 완전히 끝나고 말았습니다.

오토 마테의 원형 그대로인 타입 64. 1981년 모습 / 사진=위키피디아, Lothar Squrzem

얼마 전 주최 측 실수로 2천만 달러(약 240억)가 예상 낙찰가였던 타입64가 유찰되었다는 뉴스가 있었는데 바로 오토 마테가 소유하고 있던 그 모델 이야기입니다. 그렇다면 프로토타입 박물관에 전시된 타입 64는 도대체 뭘까요?

박물관을 만든 올리버 슈미트와 토마스 쾨니히라는 두 명의 젊은 사업가는 오토 마테가 내놓은 자동차 유산들을 구입합니다. 자동차뿐만 아니라 많은 부품이 포함됐죠. 그리고 두 사람은 그 안에 타입 64의 오리지널 부품들이 섞여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어떤 설계도나 자료가 남아 있지 않은 상태에서 그들은 전문가들과 함께 3년 동안 복원에 매달렸습니다. 그리고 2011년 원형에 가까운 타입 64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이후 이 차는 박물관에 전시된 채 지금까지 많은 방문객을 맞고 있습니다.

2011년 성공적으로 복원된 타입 64 두 번째 모델 / 사진=이완

이쯤 되면 포르쉐 박물관에 전시돼 있는 타입 64 차체의 정체가 궁금할 텐데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포르쉐와 타입 64는 다시 만날 인연이 아니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포르쉐는 자신들 역사의 시작인 그 차를 어떤 형태로든 전시해야 했고, 망치로 두드려 만든 차체를 보여주는 것으로 대신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만약 포르쉐 측에서 오토 마테의 제안을 받아들였거나 경매에 참여해 낙찰을 받았다면 오리지널 타입 64를 우리는 경매장이 아닌 포르쉐 박물관에서 만날 수 있었을 겁니다.

포르쉐 박물관에 전시돼 있는 타입 64의 차체 / 사진=포르쉐

지금까지 복원된 타입 64에 대해 이야기를 해봤는데요. 2부에는 프로토타입 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는 다른 자동차들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글/이완(자동차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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