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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니갈레, 길을 찾다. 두카티 959 파니갈레

월간모터바이크 입력 2020. 05. 14.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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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니갈레, 길을 찾다

DUCATI 959 파니갈레

1000일 넘게 갖고 있던 파니갈레와 처음으로 제대로 된 ‘길’을 달렸다. 그 동안 단지 예쁘잖아, 섹시하잖아라는 이유로 곁에 뒀던 이 바이크에 미안함이 앞섰다. 아무리 공도에서 재밌는 미들급이라지만 마음껏 뛰어 놀 곳은 역시 서킷이었다.


PROFILE

이재림  스튜디오 카잼

맨즈헬스, 모터 트렌드, 루엘 매거진에서 에디터로 근무 했다. 현재 스튜디오 카잼에서 자동차와 모터사이클 동영상 콘텐츠와 시승기를 제작하고 있다.

959파니갈레는 나의 네 번째 바이크다. 갖고 온지 3년이 넘었지만 겨우 3,000km 밖에 타지 않았다. 그런 까닭에 주변에선 내다 팔라고 아우성이다. 그 동안 거쳤던 기종은 대림 마그마, 두카티 스크램블러, BMW 모토라드 S 1000 RR이다. 각각 짧게는 4개월, 길게는 1년씩 탔는데 보유 기간대비 주행거리는 파니갈레보다 월등히 많다. 리터급을 타다가 미들급으로 내려왔는데 아쉽지 않냐고? 글쎄, 가끔 출력에 대한 아쉬움이 생길 때가 있지만 웬만한 상황에서는 아주 만족스럽다. 아니, 오히려 편하다. 959는 미들급이라고 하기에는 독특하다. 흔히 당구를 칠 때 ‘꽉 찼다’는 표현을 쓴다. 그러니까 꽉 찬 100이라고 하면 130놔도 될 실력인데 100 놓고 치는 경우다. 959 파니갈레는 꽉 찬 미들급이다. 배기량은 1,000cc가 넘지 않지만 리터급 슈퍼바이크와 겨뤄도 제법 버틸만한 성능을 갖고 있다. 물론 조금 더 보태 리터급으로 올라가는 게 낫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S 1000 RR을 경험해보니 내가 감당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주고받으며 달리는 게 아닌, 모터사이클의 무지막지한 파워에 끌려가는 것 같은 기분이 싫었다. 959로 다운그레이드 한 가장 큰 이유다.

959 파니갈레

디자인은 세상에 나온 지 4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아름답다. 물론 이번에 파니갈레 V2가 너무 예쁘게 나왔지만 내 눈엔 딱히 부러운 게 없다. 다만 사람이 앉았을 때 예쁜 모터사이클이 있고 그냥 세워뒀을 때 멋진 모터사이클이 있는데 959는 나 없이 덩그러니 있을 때 훨씬 멋진 것 같다. 속도를 내면 낼수록 카랑카랑하게 돌아가는 슈퍼콰드로 엔진은 4기통이나 3기통으론 흉내 낼 수 없는 알싸한 맛이 있다. 최고출력 157마력에 최대토크는 107.4Nm인데 차체는 그 모든 걸 받아낼 수 있을 만큼 안정적이다. 엔진과 섀시가 분리돼 한쪽은 밀고 다른 쪽은 받는 구조가 아니라 서로 유기적으로 완벽하게 얽힌 한 덩어리 같다. 어긋남이 없는 기계는 사용자에게 신뢰를 준다. 178cm에 75kg이란 평균 신체조건을 가진 내게 959의 시트 포지션은 잘 맞는다. 무게는 200kg이 채 되지 않고 시트고도 레플리카 평균이라 할 수 있는 830mm라 까치발 할 필요도 없다. 그 덕에 자세에서 오는 신체적인 피로도는 적었다.

그간 959를 많이 타지 않은 건 아까워서가 아니라 힘들어서다. ‘정자사멸 바이크’란 웃지 못할 별명을 가질 만큼 뜨겁다. 그 탓에 신호 걸릴 때마다 시동을 껐다 켜길 반복하며 달리다 보면 길에 세워두고 버스타고 싶다. 그럼에도 내다 팔지 않는 건 내릴 때는 꼴도 보기 싫다가 어느덧 또 올라타게 되는, 마치 “자?”라는 문자 하나에 언제 그랬냐는 듯 불같은 사랑을 나눴던 옛날 그녀처럼 끊기 힘든 중독 때문이다.상황이 이렇다 보니 언젠가부터 바이크 번호판에 찍힌 지역구를 넘어서는 일이 드물어졌다. 투어는 연례행사가 됐고 그저 심부름할 때 잠깐 타거나, 남산 소월길 몇 바퀴 돌며 콧바람 쐬는 게 전부다. 상황이 이러니 1년에 1,000km타기도 어려울 수 밖에. 그렇게 평화롭게(?) 지내던 어느 날, 서킷 주행을 결심한 계기가 생겼다. 타이어를 교체했는데 사이드월이 거의 닳지 않았던 것. 그래, 오로지 직진만 하기에는 파니갈레가 너무 아깝다. 트랙으로 가자.

두카티 트랙데이와 DRE

하지만 왠걸. 올해 트랙데이와 교육 프로그램인 DRE(두카티 라이딩 익스피어런스)는 코로나19 때문에 개최 직전까지 조마조마했다. 이미 올해 초 예정됐던 시즌 오픈 라이딩이라든지, 두카티 엔듀로 아카데미도 모두 취소된 마당이었다. 다행히 3년째 DRE를 개최하며 쌓인 두카티코리아의 노하우 덕에 무사히 치러졌지만 진풍경도 여럿 펼쳐졌다. 과거시험을 방불케 하는 2미터 간격의 메디컬 체크용 테이블, 피트 소독을 위해 방역복과 마스크로 완전 무장한 관계자, 슬라럼이 아니라 참가자의 거리 간격 설정을 위한 라바콘 배치 등 어쩌면 앞으로 우리가 즐길 모터사이클 라이프가 이런 모습이 아닐까 싶어 우울했다. 슬픈 일은 한 가지 더 있었다. DRE 참가를 위해선 레이싱수트와 척추보호대, 그리고 헬멧, 부츠, 글러브가 필수인데 척추보호대를 챙기지 않아 현장에서 또 샀다. 이마저도 분당 두카티에서 몇 가지 의류와 액세서리를 판매했기에 망정이지 영암까지 내려가 구경만하고 올라올 뻔 했다. 하지만 그것만 빼곤 모든 게 완벽했다.

“차주는 몸만 오세요, 나머진 우리가 다 준비합니다.”라고 외치듯 모든 걸 다 준비해놨다. 먼저 바이크 픽업 서비스(15만 원)를 제공해 경기장까지 힘들게 바이크를 끌고 갈 필요가 없다. 전국에 있는 공식 두카티 딜러에 내 바이크를 갖다 주면 트레일러에 실어 영암 경기장 피트 코앞까지 실어다 준다. 탁송을 맡기면 두카티 코리아 정비실에서 타이어 마모도, 공기압, 브레이크 패드의 상태도 체크해주고 PP컵(Passion&Performance ; 두카티 원메이크 레이스)에 참가하는 경우엔 등화류 및 안전상 문제될 것까지 모두 제거해주니 웬만하면 이용하는 게 남는 장사다. 현장에선 전문 정비 팀이 상주하며 문제가 생겼을 경우 도와준다. 그러니까, 나를 위한 세미 레이싱팀이 생기는 거나 다름없다. 백미는 따로 있다. 바로 전문 인스트럭터와 함께 코스에 들어간다는 것. 소규모로 서킷주행을 하며 인스트럭터가 참가자 전원을 앞뒤로 살피며 무엇이 부족하고 어디가 잘못됐는지 짚어준다. 이것만으로 DRE는 참가하는데 의미가 있다. 20분씩 총 4 세션을 달리는데 원포인트 코칭 덕에 코스인 할 때마다 실력차이가 느껴질 정도다. 안전장비류와 바이크 비용을 빼면 DRE 참가에 필요한 금액은 35만 원이다. 영암 서킷 라이선스 발급비용(10만 원), 참가비(10만 원)가 추가된다.

영암 서킷에서 라이선스 발급을 위해 시험주행을 하는데 눈앞에서 슬로모션처럼 바이크가 미끄러졌다. 바로 적색기가 펄럭인다. 시험을 위한 발령이 아닌 실제상황이라니 머릿속이 하얘진다. 그렇잖아도 아침이라 몸이 더욱 경직된다. 어떻게 돌았는지도 모르게 라이선스 주행이 끝났다. 일단 시험은 합격. DRE는 바이크의 출력과 라이더의 실력에 따라 조를 나눠 로테이션 형식으로 진행된다. 주행에 앞서 ‘다른 라이더를 방해하면 어쩌지’라는 걱정이 심했다. 하지만 기우였다. 길 위에서 볼 땐 시뻘건 훌리건처럼 보이던 두카티스티들인데 서킷에선 양반이 따로 없다. 물론, 나만 그렇게 생각했을 수도 있다. 첫 랩부터 끝까지 서로 배려하는 실드가 느껴졌다.

짜릿했던 첫 경험

첫 세션은 코스를 익히고 분위기 파악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저 앞이 뚫렸으면 냅다 스로틀 열고, 꼬부라진다 싶으면 닫았다. 피트인 하는데 첫 번째 든 생각은 시원하다, 두 번째 든 생각은 재밌다. 20분 타고 40분 쉬는데 중간 휴식이 길게 느껴지지 않는다. 인스트럭터가 코스 설명을 비롯해 라이딩에 필요한 생생한 정보를 알려주는 까닭이다. 코너마다 기어변속을 어떻게 하고 스로틀을 어떻게 여닫는지, 또 라인은 어떻게 그려야 하는지 설명을 듣는데 방금 달렸던 코스의 느낌이 몸에 그대로 남아있어 화선지가 먹물 빨아들이듯 흡수된다.

두 번째 세션에 들어가는데 바이크가 미끄러졌다는 얘기가 또 들려온다. 긴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다. 쉬는 시간에 들었던 코스설명을 떠올리며 변속하고 감으려는데 이런, 생각이 껴들 틈이 없다. 다시 또 뚫리면 감고, 막히면 닫는다. 모든 두카티 바이크가 참가할 수 있는 DRE인만큼 서킷에선 별의별 바이크가 다 지나간다. ‘멀티스트라다가 저렇게 잘 달리네?’ ‘V4R은 역시 넘사벽이구나’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자연스레 다른 기종에도 관심이 가며 지르게 된다. 이렇게 만반의 준비를 하면서 남는 게 있을까 싶었는데 역시 두카티는 다 계획이 있구나.

마지막 두 세션은 인스트럭터의 라이더 별 원포인트 레슨이 이어졌다. 중간중간 직선로가 나오면 그림자처럼 옆에 붙어 따봉 손가락을 펼쳐주거나 속도를 더 내라는 등의 수신호를 주며 코칭해 준다. 고등학생 때 쪽집게 과외 받는 기분이다. 확실히 랩을 더해갈수록 타이어 그립이 눈에 띄게 좋아진다. DRE가 막을 내릴 때쯤 되자 바깥 온도는 17℃에 이르렀다. 햇살과 바람도 청량했다. 주변 환경도 눈에 더 잘 들어온다. 평지라고 생각했지만 달려보니 기울어진 노면, 바닥에 나뒹구는 타이어 부스러기, 앞차 머플러에서 풍기는 연료 타는 냄새, 그리고 나를 앞질러가는 수많은 바이크들… 동네에서 스쿠터처럼 타던 바이크가 보여주는 믿을 수 없는 몸 놀림에 헛웃음이 터진다. 시프트 타이머는 연신 깜박거리고 엔진 회전계와 속도계는 본 적 없는 숫자를 계속 띄운다. 좌우로 휘는 꼬부랑길에서 엉덩이는 이리 들썩, 저리 들썩하고 쉴 새 없이 가감속하느라 앞뒤로 널뛰기한다. 그런데 바이크와 나는 즐겁다. 몇 번 코너였을까? “바이크를 믿으세요. 더 깊숙이 쳐다봐도 됩니다.”라는 말이 떠올라 바깥으로 도망가는 고개를 안으로 우겨 넣었다. 그러자 내 엉덩이를 누가 손으로 미는 느낌이 났다. 정확히는 뒷바퀴를 포함한 내 뒤 전부라고 해야겠다. 갑자기 땅이 가까워졌다. 그리고 순식간에 싹! 하고 돌아나갔다. 그 손은 뭐였을까? 아직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마지막 세션의 기억나지 않는 코너가 오늘 최고의 순간이었다.



이번 두카티 레이싱 익스피리언스에서 달린 거리를 살펴보니 120여km다. 하지만 실제 체감한 밀도는 훨씬 진하다. 어쩌면 이번 서킷 마일리지야말로 내 바이크가 달리고 싶었던 진짜 길이 아니었을까 싶다. 바퀴를 두 개 가진 것은 모두 옳다. 그저 얼마나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냐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나는 아슬아슬함의 극치로 몰아가는 데서 답을 얻는다. 실력이 좋아서가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그럼에도 왜 959를 타냐고 묻는다면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으니까라고 대답하겠다. 가뜩이나 이것저것 잡념이 많아 스트레스 받는 성격인데 파니갈레에 올라타는 동안에는 오직 나와 바이크밖에 생각할 수 없으니까. 그리고 그 몰입의 즐거움은 다른 어떤 것으로 대체할 수가 없다







이재림 사진 양현용 편집장 (월간모터바이크) 취재협조 두카티코리아 www.ducati-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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