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시승] 세기의 만남, 마세라티 르반떼 S Q4 펠레테스타 에디션

조회수 2020. 5. 25. 21:3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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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넘는 역사 뽐내는 이탈리아의 마세라티와 에르메네질도 제냐가 함께 만든 작품을 만났다. 르반떼 S 그란스포트 펠레테스타 에디션이다. 파우치 하나에 200만 원 넘는 제냐의 가죽 원단으로 실내를 꾸몄다. 2,000만 원짜리 시트에 몸을 파묻은 채 고속도로와 꼬부랑길에 430마력을 흩뿌렸다. 이날 상위 1% 삶의 간접체험은 더없이 구체적이고 생생했다.

글 김기범 편집장(ceo@roadtest.kr)
사진 김기범, 임재범(카리포트 기자), 류청희(자동차 평론가)

스트링으로 직조한 가죽 원단

시작은 여느 가죽 세공과 비슷하다. 재료는 부드럽게 가공한 나파(Napa) 가죽. 상처 없이 깨끗한 부위만 골라 레이저를 이용해 일정한 크기로 자른다. 조각들을 접착제로 기다랗게 이어 붙인 뒤 이음매를 무두질로 다듬는다. 그러면 두루마리처럼 돌돌 만 엽서 한 장 너비의 가죽 띠가 나오는데, 다시 칼국수 면발처럼 가늘게 썰어 가죽 실타래를 완성한다.

이 가죽 끈을 씨줄과 날줄 삼아 직조기로 촘촘히 짠다. 그 결과 쫀쫀한 격자 패턴의 가죽 원단이 나온다. 이탈리아어로 ‘가죽’이란 뜻의 ‘Pelle’와 ‘직물’이란 뜻의 ‘Tessuta’를 합쳐 ‘펠레테스타(Pelletessuta)’라고 부른다. 이탈리아의 남성복 브랜드 에르메네질도 제냐가 상표 등록한 소재로, 가방이나 지갑 등을 만들 때 쓴다. 이제 자동차로도 만날 수 있다.


마세라티 펠레테스타 에디션이 주인공이다. 국내엔 르반떼와 콰트로포르테 각각 10대씩 판다. 시승차는 르반떼 S Q4 그란스포트 ‘펠레테스타 에디션’으로 10대 중 1호차. 제냐의 펠레테스타 원단을 시트와 도어 트림 등 실내에 아낌없이 씌웠다. 옵션 가격만 2,000만 원이다. 제냐 펠레테스타 파우치 하나에 200만 원 넘는 점을 감안하면 얼추 셈이 나온다.

에르메네질도 제냐는 창업자의 이름과 성이다. 1910년 이탈리아 트리베로에서 원단 공장으로 출발했다. ‘뛰어난 품질’과 ‘편안한 착용감’을 기업철학으로 삼아 4대째 가업을 잇고 있다. 제냐는 원자재 수급부터 완제품 판매까지 ‘수직통합체계’를 갖춘 브랜드. 전체 매출의 85%는 의류와 액세서리, 15%는 맞춤 수트 시장에서 최고로 손꼽는 원단에서 나온다.

제냐는 혁신적인 신소재 개발에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매 시즌마다 500~600가지 다른 실을 써서 800여 종의 직물을 만든다. 대표 소재는 울. 호주산 최고급 메리노 양모 1㎏에서 12㎞ 길이의 방직사를 뽑는다. 그만큼 가볍고 내구성이 뛰어나다. 방염 성능도 기본이다. 자동차의 내장재로 이상적인 조건을 갖춘 셈이다. 다만 굉장히 비쌀 뿐이다.

지난 2013년 마세라티는 에르메네질도 제냐와 협업을 시작했다. 2014년 마세라티 창업 100주년을 기념해 100대 한정판으로 선보인 올 뉴 콰트로포르테 제냐 리미티드 에디션이 신호탄이었다. 2015년 두 브랜드는 한시적이 아닌, 꾸준한 협업을 선언했다. 한 세기 넘는 역사 뽐내는 두 이탈리아 브랜드의 만남은 럭셔리 업계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지중해에서 부는 뜨거운 바람

르반떼는 마세라티 역사상 최초의 SUV다. 기블리를 밑바탕 삼아 완성해 2016년 데뷔했다. 차체 주요 부위를 알루미늄으로 짜서 무게를 줄였다. 앞뒤 무게배분을 50:50으로 정확히 맞추고, 무게중심은 세상 어떤 SUV보다 낮췄다. 차체 강성은 험로주행을 감안해 뼈대 나눈 기블리보다 20% 더 높였다. 섀시의 틀을 잡는 접근방식부터 레이싱 혈통다웠다.

디자인도 예사롭지 않다. 보닛은 우아하게 뽑았고, 캐빈은 뒤쪽으로 잔뜩 밀어냈다. 매끈한 지붕과 프레임 없는 도어, 육중한 어깨 라인의 조화가 섹시하다. 매섭게 쭉 찢은 눈매와 입을 쩍 벌린 듯한 흡기구 어울린 첫 인상은 강렬하면서도 포악하다. 반면 꽁무니는 동글동글 순하다. SUV 중 가장 낮은 공기저항계수(Cd 0.31)를 달성하기 위한 묘안이었다.

르반떼는 아랍어로 ‘지중해에서 부는 바람’이란 뜻이다. “이 바람은 온화하다가도 돌연 사나워지는데, 르반떼의 성격이 딱 그렇지요.” 출시를 앞두고 이탈리아 브레시아에서 치른 국제 시승회 때 만난 본사 홍보담당의 설명이었다. 이날 한적한 영동고속도로를 달리면서 그의 말을 새삼 곱씹었다. 순항할 땐 세상 편안한데, 스포츠 모드로 바꾸면 별안간 격노한다.

곧장 기어를 낮춰 엔진회전수를 확 띄우면서 대시보드 너머 엔진 음색이 돌연 칼칼해졌다. 뒷좌석 너머 머플러는 플랩을 활짝 열어 묵직한 바리톤으로 울부짖기 시작했다. 르반떼 S의 엔진은 V6 3.0L 가솔린 트윈터보 직분사로 430마력을 낸다. 최대토크는 50.9㎏·m인데, 2,000rpm 이하에서부터 토해낸다. 스포츠 모드에선 59.1㎏·m까지 한 끗 더 치솟는다.

엔진을 설계하고 조립한 페라리의 후광은 손끝으로도 느낄 수 있다. 림 모서리를 구부린 사각형 느낌의 큼직한 스티어링 휠과 좌우를 절반 가까이 에워싼 패들 시프터가 영락없는 페라리다. 2018년 르반떼는 아날로그의 감성을 최대한 희석시키지 않으면서 전기식 스티어링으로 거듭났다. 그 결과 노면 정보를 충분히 전하며 결의 마디마디 또한 적당히 까칠하다.

파워트레인의 감도를 최대치로 높인 스포츠 모드에서 르반떼 S의 반응은 장르와 차체 높이를 잊게 만들기 충분하다. 르반떼 S의 0→시속 100㎞ 가속 시간은 5.2초, 최고속도는 시속 264㎞. 실제 가속 느낌은 맹렬한 사운드 덕분에 수치보다 한층 폭력적이다. 어떤 속도 대에서도 가속 페달만 건들면, 타코미터 아니었나 착각할 만큼 속도계 바늘이 팡팡 튀어 오른다.

정교한 밸런스와 압도적인 파워

이번 마세라티 소규모 그룹 시승회엔 기블리와 르반떼 군단이 동행했다. 중간 경유지인 평창에 도착해 모아놓고 보니 이번 세대 마세라티의 디자인 정체성이 오롯이 드러난다. 움푹 파여 입체적인 그릴과 롱 노즈·숏 데크의 이상적 비율, 우람한 어깨 라인에 ‘알피에리 콘셉트’의 잔영이 어른거린다. 또한, 세단과 SUV를 일관되면서도 자연스럽게 아우른다.

촬영을 마친 뒤 대관령 휴게소를 찾았다. 고갯마루에서 시작해 강릉으로 향하는 아흔아홉 구비 꼬부랑길을 마세라티로 달리기 위해서다. 걱정대로 편도 1차선의 내리막은 앞서 달리는 차의 꽁무니를 좇으며 전후좌우 움직임 느껴보는 이상의 주행은 어려웠다. 대관령 박물관에서 차를 돌려 업힐 어택에 나서면서 돌연 우렁찬 배기음이 골짜기를 쥐고 흔들었다.

‘스카이 훅’ 개념을 적용해 상황에 맞춰 6가지 다른 높이와 연속 가변 댐핑을 제공하는 르반떼 S의 에어 서스펜션은 스포츠 모드에서조차 부드러운 편. 하지만 반듯한 밸런스와 낮은 무게중심 덕분에 움직임을 예측하고 대응하기 좋다. 전반적인 운전감각이 부드럽고, 시야도 시원시원해 누구나 쉽게 몰 수 있다. ‘고성능=뻣뻣하고 불편한 차’의 편견을 무너뜨렸다.

추월차선 덕분에 숨통 트인 오르막. 르반떼 S는 족쇄 풀어헤친 경주마처럼 무서운 기세로 치고 올랐다. 트윈터보는 후끈 달아오른 토크를 구김살이나 응어리 없이 가지런히 쏟아냈다. 옥에 티는 압도적 파워를 소화하기 벅찬 타이어. 때문에 뒷바퀴가 미끄러질 찰나 앞에서 힘차게 끌고, 리미티드 슬립 디퍼렌셜로 방점 찍어 자세 다잡는 과정을 반복했다.

Q4는 뒷바퀴 100%를 기본으로 슬립을 감지하면 0.15초 안에 최대 절반의 구동력을 앞으로 나누는데, 까치발로 접지력의 한계를 넘나드는 오르막 헤어핀에서 100마디 설명이 필요 없었다. 오감으로 절절히 와 닿았다. 타이어 온도가 치솟아 트레드가 끈적끈적해지면서, 이 과정은 한층 은밀하고 매끈해졌다. 르반떼 S를 휘두르는 재미도 이때부터 시작이었다.

마세라티가 정의한 르반떼 고객은 고성능을 파악하고 있되 과시하고 싶진 않은 오너. 르반떼가 겨냥한 과녁은 제냐와 비슷하다. ‘가성비’보단 브랜드 가치를 높이 사는 고객들이다. 르반떼 S 펠레테스타 에디션은 그 교집합을 노린다. 세계 최대의 명품 마켓 플레이스 ‘제임스 에디션’에 이름 올린 자동차 가운데 마세라티가 두 번째로 많은 이유 또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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