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win Test #3] 애틋한 맘 품은 슈퍼카, GTC4루쏘 T vs 우루스

조회수 2020. 2. 26. 11:41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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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카의 은혜를 더 많은 이와 나누리라. 전에 없이 애틋한 두 슈퍼카는 사려 깊은 마음씨를 품은 죄로 무엇을 잃었을까? 뒷좌석에서도 즐기는 슈퍼카 끝판왕을 가린다

엔초 페라리와 페루치오 람보르기니가 봤다면, 뒷목을 잡을 일이다. 마라넬로의 도약하는 말과 산타가타 볼로냐의 성난 황소는 반세기 이상 경쟁을 벌였다. 그러나 한 번도 이런 진풍경을 연출한 적은 없다. 뒷좌석과 짐공간을 더한 슈팅브레이크와 SUV. 세상의 기대를 훌쩍 넘어서 탄생한 두 모델을 한참 동안 바라봤다. 한 대 한 대로서는 이미 익숙한 모델인데, 한곳에 모아놓고 보니 새삼 비현실적이다. 엔진을 차체 앞에, 넉넉한 짐공간을 차체 뒤에 꾸린 페라리와 람보르기니가 두툼한 엉덩이를 맞대고 서 있었다.

두툼한 힙 라인 좀 봐. 스쿼트 좀 했나봐?

두 모델이 독특한 이유는 비단 차체 형식 때문만은 아니다. GTC4루쏘 T는 2017년 출시 당시만 해도 의구심 가득하던 다운사이징 V8 트윈터보 엔진을 얹었다. 우루스는 역시 V8 트윈터보 엔진을 품었다. GTC4루쏘 T는 캘리포니아와 488 GTB로부터, 우루스는 아우디 RS6와 벤틀리 컨티넨탈 GT로부터 엔진을 물려받아 맞춤 조율했다. 자연흡기 V12·V8 맛집 페라리가 V8 터보 엔진까지 잘 만드는 건 몇 년 새 화려한 수상 이력이 증명한다. 자연흡기 V12·V10으로 이름 높은 람보르기니 역시 그에 뒤질세라 V8 터보 엔진을 선택했다. 

나란히 앞 가슴에 V8 터보 엔진을 달았다

두 모델은 ‘일상을 폭넓게 포용하라’는 사명감을 V8 트윈터보 엔진과 함께 가슴 깊이 품었다.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한 단계 누그러뜨린 것은 새로운 고객을 더 크게 껴안기 위한 포석이다. 그러나 구동방식만큼은 각자 자신 있는 스타일을 고수했다. GTC4루쏘 T는 페라리가 자랑하는 뒷바퀴굴림을, 우루스는 람보르기니가 사랑하는 네바퀴굴림을 선택했다. 두 모델 모두 3m 넘는 기다란 휠베이스가 주행성을 해치지 않도록 네바퀴조향 시스템을 넣었다.

스파이더도 아닌데, 스윙도어를(그것도 4개나) 단 람보르기니에 올라탔다. 실내에는 폭스바겐 그룹 최첨단 기술 종합선물세트가 펼쳐졌다. 아우디의 명민한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에 레이싱 게임에서나 볼 법한 화려한 그래픽을 수놓았다. 크루즈컨트롤 기능이 들어간 람보르기니는 명란젓 들어간 파스타처럼 어색하지만, 막상 맛을 보면 알 수 없는 매력에 빠지게 된다. 계기판 그래픽은 혼을 쏙 빼앗길 만큼 현란하다. 정신없을 법도 한데 의외로 직관성은 뛰어나서 짧은 순간 주행정보를 확인하는 데 무리가 없다. 브랜드 특유의 육각형 패턴과 날 선 디테일로 곳곳을 치장해서 람보르기니 실내에 앉아있다는 사실만큼은 확실히 자각할 수 있다.

GTC4루쏘 T 실내는 한 눈에 봐도 페라리답다. 속도를 형상화한듯한 곡선과 오직 빠르게 달리기 위한 필수요소로 적절히 버무렸다. 새빨간 시동버튼, 방향지시등, 마네티노, 와이퍼 설정 버튼까지 빼곡히 들어찬 스티어링휠만 봐도 그렇다. GT카답게 해상도 높은 와이드 센터페시아 디스플레이를 달았다. 조수석 탑승자와 주행의 스릴을 더욱 선명히 공유하기 위한 조수석 디스플레이도 추가했다.

스티어링휠 위 빨간 시동 버튼을 눌러 올해의 엔진 수상에 빛나는 V8 터보 엔진에 불을 지폈다. 주행성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완벽한 페라리였다. 가속 페달을 깊이 찌르면 언제든 다혈질 심장이 길길이 날뛴다. 킥다운 한 번에 기어를 세 단쯤 내려 물고 붉은 엔진을 핏빛으로 달군다. 배기음은 운전자의 정신을 완전히 빼놓는다. 가속 페달에 힘을 실을수록 사운드는 오금이 저릴 만큼 사나워진다.

GTC4루쏘 T는 0→시속 100km 가속이나 최고시속 면에서 V12 GTC4 루쏘보다 뒤처지지만 낮은 토크에서 중역대 토크까지 도달하는 시간은 더 짧다. 터보차저 덕분이다. 강력한 힘을 뒷바퀴에만 싣기 때문에 코너에서의 역동성도 빼어나다. 노즈는 코너 냄새만 맡으면 예리하게 안쪽을 찌르고 뒷바퀴는 조향각에 따라 명민하게 고개를 튼다. 쩨쩨한 스크루지 영감처럼 코너링에서 손톱만큼의 공간 낭비도 허락하지 않는다. 다가오는 코너를 빈틈없이 휘젓다 보면 어느새 등에 땀이 밴다. 눈가를 촉촉이 적신 습기도 아마, 땀이었을 것이다….

우르스에 올라탔다. 탄도미사일 발사 장치처럼 생긴 시동 버튼을 골똘히 바라봤다. 범상치 않은 생김새 때문인지 새 엔진에 대한 염려 탓인지, 붉은 뚜껑을 열어 재치고 시동 버튼을 누르기까지 한참을 망설였다.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엔진은 엄청난 괴력을 내뿜었다. 주행감은 분명 여느 람보르기니와 달랐지만, 거대한 차체를 생각하면 기적에 가까운 주행성이다. 길이 5.1m, 너비 2m, 높이 1.6m, 무게 2.2t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덩치가 물리학을 거스르며 내달린다. 폭스바겐 그룹 내 폭스바겐 투아렉, 아우디 Q7, 포르쉐 카이엔, 벤틀리 벤테이가에 두루 들어가는 MLB 에보 플랫폼에 아우디와 벤틀리에 들어가는 고성능 V8 엔진을 얹었다. 그 사실만으로도 우루스는 람보르기니의 한계를 넘어선 모델이다. 공룡기업이 낳은 슈퍼 괴물이다.

무게감을 걷어내고 성향 자체만 놓고 보면 람보르기니가 아니라고 탓하기도 어렵다. 2t 넘는 가족용 자동차가 코너를 이토록 빠르고 평평하게 돌 수 있는지, 운전하면서도 믿을 수 없었다. 슈퍼 SUV라는 이름에 이보다 어울리는 모델은 없다. 우루스는 우라칸처럼 피가 역류하는 듯한 날 선 주행감을 전하지는 못했지만, 슈퍼카 울타리에 확고히 자리 잡고 있다. 게다가 지금까지 어떤 람보르기니도 가보지 못한 길을 달린다.

두툼한 센터터널에 터잡은 주행모드 조작 스위치 탐부로에는 스트라다, 스포츠, 코르사 외에 눈길을 의미하는 네브 모드를 마련했다. 옵션을 추가하면 사막을 헤집기 위한 사비아와 험로를 요리하는 테라 모드도 더할 수 있다. 스포츠 주행성을 양보한 대가로 얻은 폭넓은 활용성은 우루스의 가장 큰 강점이다. 기본 짐공간은 810L. 2열 시트를 접으면 1800L까지 확장한다.

역사상 가장 사악한 주차 테러. 주차 난이도 ★★★★★

적재함 개구부와 바닥이 완전히 평평하기 때문에 큰 짐을 싣고 내리기 편하다. GTC4루쏘 T의 적재용량은 450L. 2열 시트를 접어야(800L) 우루스의 기본 적재용량에 근접한다. 해치도어 덕에 짐을 싣기 편하지만, 적재함 바닥이 푹 꺼져있어서 무거운 짐을 꺼내기는 쉽지 않다. 뒷좌석 공간 역시 우루스가 더 여유롭다. 거대한 차체에 걸맞게 다리·머리·어깨공간 모두 넉넉하다.

두 모델의 휠베이스는 큰 차이가 없지만, GTC4루쏘 T는 앞뒤 46:54의 황금 무게배분을 구현하기 위해 실내공간을 엔진에게 양보했다. GTC4루쏘 T는 뒷문이 없기 때문에 쿠페 뒷좌석에 앉듯 앞좌석을 젖혀야 타고 내릴 수 있다. 뒷좌석은 성인이 앉기에도 무리 없다. 시각적인 답답함도 없다. 루프 높이는 낮추면서 머리공간은 확보하는, 게다가 자외선까지 효과적으로 차단하는 획기적인 글래스 루프 덕에 오픈톱 스포츠카 뒷좌석에 버금가는 엄청난 개방감을 누릴 수 있다. 성난 배기음을 감상하면서 흘러가는 구름을 보노라면 자연스레 서정적인 감상에 젖는다.

GTC4루쏘 T는 변화를 꾀하면서도 페라리다운 올곧은 고집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슈퍼카 본연의 주행성을 흔들림 없이 지키면서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뒀다. 슈퍼카 정체성에 한 치 어긋남 없는 일상용 차를 원하는 운전자라면 GTC4루쏘 T에 큰 점수를 줄 수밖에 없다. 그러나 뒷좌석 승객의 만족을 운전자의 만족과 동등하게 생각하는 이라면 우루스를 선택하는 게 옳다. 우루스는 엔진을 비롯한 많은 부분이 브랜드 정체성을 벗어났지만, SUV 본연의 임무를 완벽하게 수행한다. 슈퍼카 향을 짙게 풍기면서 언제 어디서나 누구와 함께든 편하게 탈 수 있는 차를 원한다면 이보다 좋은 선택지는 없다.

이탈리아 슈퍼카 두 대가 먹성 대결을 벌였다. “살려줘…!”

한참을 생각해도 승부가 나지 않았다. 결국은 기존 요소와 새로운 요소의 배합률의 차이다. 두 모델을 한 대씩 차고에 들이는 것만이 유일한 해답 같았다. 승부는 엔초와 페루치오에게 맡기기로 했다. 엔초와 페루치오가 두 모델을 본다면, 누가 더 노발대발할까? 아마도 페루치오 람보르기니일 것이다. GTC4루쏘 T에게 축하 인사를 전한다. 아마 람보르기니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을 것이다. 우루스가 벌어들인 돈을 세느라 이 기사를 볼 시간도 없을 테니까. 진짜 승부는 올해가 지나야 갈릴 터. 연말 공개 예정인 페라리 SUV는 과연, 슈퍼 SUV의 기준점으로 우뚝 선 우루스를 넘어설 수 있을까? 결코 쉽지 않은 도전이다.

김성래 사진 이영석, 박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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