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win Test #4] 로터스 엘리스 스포츠 220 vs 한국지엠 다마스

조회수 2020. 2. 27. 08:28 수정
음성재생 설정

이동통신망에서 음성 재생시
별도의 데이터 요금이 부과될 수 있습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번역중 Now in translation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다양한 분야의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를 카카오 플랫폼 곳곳에서 발견하고, 공감하고, 공유해보세요.

착각하지 마라. 당신이 보는 건 진짜가 아니다. 여기, 이게 진짜다

맞춰둔 알람이 울리고 기계적으로 몸을 일으켜 씻었다. 출근길 만원 지하철에 몸을 욱여넣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보통 날이다. 밀린 일을 처리하고 잠깐의 휴식 시간. 10년 지기 친구 놈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날 잘 들어갔어? 새로 산 차는 어때? 완전 기계적인 차잖아. 적응은 했어?” 시시콜콜한 대화를 나누다 눈앞이 번쩍였다. 통화를 마치고 휴대폰 메모장을 열었다. 그리고 차근차근 메모를 시작했다. ‘2인승, 경량, 뒷바퀴굴림, 수동변속기…’ 며칠 동안 기획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는데 고민이 해결됐다.

자동차는 인간이 가장 바깥에 입는 겉옷 중 겉옷이다. 어떤 이는 화려한 옷을, 다른 이는 최신 소재가 쓰인 옷을 집어 든다. 몸을 가리고 보호하는 기본적 기능에 다른 의미가 더해진 것이다. 이번에는 거추장스럽게 달려있는 모든 걸 덜어내고 본질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이쯤에서 이번 주인공을 공개한다. 까다로운 조건에 딱 들어맞으면서 자동차 본질의 정석을 보여주는 로터스 엘리스와 한국 GM 다마스다. 콜린 채프먼이 1952년 설립한 로터스는 백야드빌더 감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브랜드다. 그런데, 엘리스에 대적하는 모델이 다마스라는 게 믿기지 않는다고? 당황한 독자의 마음은 십분 이해한다. 그렇지만 다마스도 엘리스 못지않게 위에 나열된 조건을 충족한다. 친구가 새로 뽑은 다마스도 패널밴 구조라 2명밖에 앉지 못하고 가벼운 몸무게, 뒷바퀴 굴림, 수동변속기로 무장한 모델이다.

먼저 엘리스에 앉았다. 아니, 몸을 구겨 넣었다. 한 번이라도 엘리스에 앉아본 이라면 이 마음을 이해할 테다. 무사히 시트에 몸을 안착시키는 것부터가 일이다. 마치 롤케이지를 잔뜩 두른 레이스카에 타는 기분이다. 엘리스는 로터스에서 가장 작은 차다. 위로는 강력한 엑시지와 너무 현대적인(?) 에보라도 있다.

그렇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엘리스를 타고 다마스를 만나고 싶었다. 곤히 잠들어 있는 심장을 깨우고 기어를 1단에 물리고 바퀴를 굴렸다. 스티어링휠을 돌리기 위해 도움을 주는 장치가 없어 피트니스 센터에서 덤벨을 들고 돌리는 듯 무거웠지만, 엘리스는 이런 맛에 타는 차다. 엘리스뿐만 아니라 다른 로터스 모델(에보라는 아니다)을 타고 있으면, 운전자가 사람이라기보다 기계 부속 같은 느낌이 든다.

4기통 DOHC 1.8L 슈퍼차저 심장을 단 엘리스는 최고출력 220마력, 최대토크 25.4kg•m의 힘으로 뒷바퀴를 굴린다. 출력이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다고? 900kg 남짓한 무게를 생각하면 모자른 힘이 아니다. 철컥철컥 소리를 내는 변속기는 또 어떤가. 자꾸만 기어를 바꾸고 싶을 정도로 손맛이 일품이다. 서스펜션은 단단함을 넘어서는 경지에 이르렀다. 오죽 딱딱하면 불규칙한 노면에서는 스티어링휠을 꽉 붙들고 있어도 요리조리 옮겨 다니며 춤을 춘다. 그만큼 도로의 상태를 조잘조잘 잘도 알려준다.

친구와의 약속 장소 근처에 다다랐을 때쯤, 손바닥만 한 사이드미러에 뽀얀 다마스가 얼굴을 들이밀었다. 귀여운 외모에 웃음이 났다. 급히 차를 세우고 엘리스에서 내려 다마스의 운전석을 꿰차고 달아났다. 엘리스 탑승에 비하면 다마스에 오르는 일은 플래그십 세단을 타는 것처럼 편하다. 18만원을 들여 추가한 인조가죽 옵션 덕에 시트와 스티어링휠 감촉이 유난히 좋았다. 다마스에겐 인조가죽도 호화로운 사치품인 셈이다. 물론, 엘리스와 마찬가지로 블루투스, 내비게이션, 자율주행 기능 따위는 기대하지 않는 게 좋다. 엘리스와 다마스는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누리고 있는 편의기능에 대한 고마움을 다시금 깨닫게 해주는 존재다.

다마스의 0.8L 자연흡기 LPGi 심장은 1열 의자 밑에 꽁꽁 숨겨져 있다. 작디작은 심장이 내는 힘은 최고출력은 44마력(숫자를 빼먹은 게 아니다), 최대토크 6.7kg•m다. 여기에 5단 수동변속기를 물리고 엘리스와 마찬가지로 뒷바퀴를 굴린다. 몸무게는 865kg. 엘리스보다 더 가볍다. 1단을 넣고 가속, 바로 2단, 또 3단. 기어비가 상당히 짧지만, 몸놀림은 가볍다. 솔직히 말하자면, 다마스가 이렇게 깃털처럼 가볍게 움직일 것이라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과소평가했던 다마스에게 괜스레 미안한 마음이 든다.

촬영을 위해 다시 엘리스의 지붕을 걷어내 엔진 쪽에 있는 아주 작은 짐 공간에 넣었다. 그리고는 돌침대 같은 시트에 다시 몸을 던졌다. 거미줄처럼 엉킨 산속 고갯길을 오르며 촬영하는 게 목표였다. 엘리스는 물 만난 고기처럼 펄떡거렸다. 이런 게 진정한 고카트의 짜릿한 맛이다. 롤이 생길 여지 따위는 없었고, 페달 간격이 좁아 힐앤토 기술을 뽐내기도 쉬웠다. 일반 차라면 한참을 올라야 만날 수 있는 정상인데, 엘리스는 단숨에 꼭대기에 올랐다.

다시 다마스에 올라 1단 기어를 넣고 폼을 잡았다. 이번에는 다마스가 엘리스를 리드하며 고갯길을 거슬러 내려갈 차례다.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수로에 빠지기 십상이다. 내리막에서는 44마력의 힘도 얕봐선 안 된다. 신중하게 코너를 공략했다. 껑충한 키에 귀여운 외모를 가진 다마스는 스티어링휠을 돌리는 데로 말을 잘 들었다. 브레이크 페달을 밟으면 나름 즉각적으로 디스크로터를 붙잡는다.

이제 엘리스와 다마스의 다른 점을 얘기해 볼까? 일단 엘리스는 영국 태생의 진정한 경량 스포츠카다. 모든 요소는 운전자의 재미를 위해 존재하는 요소다. 반대로, 다마스는 재미와는 담을 쌓은 차다. 우리는 흔히 ‘소상공인의 발’이라고도 부른다. 그리고 짐을 450kg이나 실을 수 있어 사물함 정도의 짐공간을 가진 엘리스를 비웃을 수 있다. 붙어있는 가격표도 다르다. 엘리스를 손에 넣으려면 8350만원이나 내야 한다. 부자의 장난감인 셈이다. 다마스는 가장 높은 트림에 에어컨, 인조가죽 옵션을 모조리 넣어도 1080만원이다(그리고 세금도 적다).

인정한다. 사실 다마스가 엘리스를 대적한다는 건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다. 엄연히 걷는 길이 다르다. 로터스는 대중적인 모델에는 관심이 없다. 마니아만을 위한 특별한 선물만을 만드는 브랜드다. 그중 하나가 엘리스다. 반면, 다마스는 아주 오래전부터 우리 곁에 있어서 친숙한 존재다. 낮은 가격에 많은 사람이 애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목표인 셈이다. 이 둘을 한데 모은 이유는 하나다. 화려한 겉모습에 본질이 잊지 말자는 얘기를 하고 싶어서다. 끝내 이 대결의 승자를 고를 수가 없었다. 다만, 엘리스를 타고 돌아가는 길 멀어져가는 사이드미러 속 다마스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허인학 사진 이영석


이 콘텐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