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시승] 함께 타는 즐거움, 혼다 뉴 파일럿

조회수 2018. 12. 21. 08:55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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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연말 대형 SUV 시장은 한정식 코스처럼 메뉴가 푸짐하다. 이번엔 혼다 차례로, 뉴 파일럿이 주인공이다. 최대 8명까지 품는 넉넉한 SUV로, 포드 익스플로러뿐 아니라 쌍용 G4 렉스턴, 현대 팰리세이드 등의 등짝을 겨눴다. 이들을 제압할 뉴 파일럿 만의 핵심 레시피는 어떤 게 있을까?

글 강준기 기자|사진 혼다코리아, 강준기

대학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었다. 두근대는 학과 엠티. 12인승 미니밴을 2대 빌려 12명씩 ‘꽉꽉’ 채우고 동해바다로 떠났다. 과자도 나눠 먹고 옆 차에 탄 친구 뒷담화도 하고, 때로는 90년대 히트 친 발라드를 선곡해 목이 쉬어라 부르며 신나게 갔다. 직접 운전대 돌려 알아가는 재미와 다른, ‘이동의 즐거움’을 발견한 순간이었다.

그러나 미니밴을 탄다고, 매일 사람 가득 태워 다니는 상황은 어쩌다 한 번이다. 혼자 타고 다닐 땐 텅 빈 공간이 그렇게 우울해 보일 때가 없다. 대형 SUV는 이 틈새를 노린다. 아빠 혼자 출퇴근할 때도 짐차가 아닌, 자가용 느낌이 물씬하며 명절 땐 삼촌, 사촌, 당숙 아저씨까지 다 태울 수도 있다.

2002년부터 시작한 북미 베스트셀러

1세대 파일럿

최초의 파일럿은 2002년 6월에 등장했다. 당시 CR-V 하나로는 치열한 북미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기 힘들었고, 오딧세이 플랫폼을 밑바탕 삼아 8인승 SUV를 빚었다. V6 3.5L 가솔린 SOHC 엔진은 가변 실린더 관리(VCM) 기술 갖춰, 상황에 따라 실린더 3개의 숨통을 끊었다. 그 결과 미국산 경쟁차보다 높은 연료 효율을 뽐내며 미국인의 마음을 훔쳤다.

2세대 파일럿

2세대부터는 우리 눈에 친숙하다. 좀 더 각진 모습으로 거듭났다. 국내 시장엔 2012년에 나왔는데, 기아자동차 모하비 등과 경쟁관계를 형성했다. 오늘 소개할 모델은 2015년에 등장한 3세대 파일럿의 부분변경 버전, 뉴 파일럿이다. 안팎 디자인을 다듬고 신형 오딧세이의 다양한 편의장비를 양껏 담았다. 심장엔 9단 자동변속기를 새로 짝 지어 완성도를 높였다.

휴식기 가진 연예인처럼, 어디를 고쳤는지 확 들어나진 않는다. 그러나 확실히 예뻐졌다.

표정도 근사하게 변했다. ㄱ자 모양의 LED 주간주행등은 유지하되, 램프 안쪽을 신형 어코드처럼 ‘반짝이’ LED를 심었다. 콧날 역시 두툼한 패널을 덧대 기존보다 넓고 안정감 있는 이미지를 더했다. 범퍼에 있던 방향지시등은 램프와 통합하면서 더욱 군더더기 없고 매끈한 얼굴을 빚어냈다. 네 발엔 새로운 20인치 알로이 휠을 신겼다.

차체 길이와 너비, 높이는 각각 5,005×1,995×1,795㎜. 현대자동차 팰리세이드보다 25㎜ 길고 20㎜ 넓으며 45㎜ 높다. 남다른 덩치를 뽐내지만, 공차중량은 1,950㎏으로 기대 이상 날렵하다. 비결은 차세대 에이스 바디. 충돌 안전성과 주행 성능 높인 뼈대로, 미국 고속도로 안전보험협회(IIHS)가 치른 신차 안전도 평가에서 ‘탑 세이프티 픽 플러스’ 등급을 받았다.

스타일 평가는 주관적이지만, 파일럿의 옆태는 다소 지루하다. 3열 창문 끝을 바짝 올려 속도감을 냈지만, 육중한 몸매를 숨길 수는 없었다. 반면, 익스플로러와 팰리세이드는 2열과 3열 창문 사이로 두툼한 C필러가 가로질러 지루함을 덜었다. 뒷모습은 파일럿 고유의 ㄱ자 테일램프를 유지하되, LED와 노란 방향지시등 램프 등을 새로 더했다.

실내는 넉넉, 소재는 평범

스마트폰 무선 충전 시스템

실내는 ‘호감형’이다. 센터페시아 중앙에 새로운 터치스크린을 입히면서 애플 카플레이 등 커넥티비티 시스템을 갖췄다. 빨갛게 물든 시동 버튼과 버튼식 기어레버도 포인트. 시트는 8인승 구조를 기본으로 7인승 버전을 마련했다(2열 독립시트). 생색내기에 불과한 여느 SUV의 3열보다 널찍한 공간을 뽐낸다. 2열과 3열은 계단식으로 배치해 뒤에 타도 답답하지 않다.

운전석에 앉으면 모든 시야가 쾌적하다. 대시보드가 평평하고 낮게 자리했고, A필러를 얇게 빚은 결과다. 각종 버튼 구성도 큼직해, 처음 탄 자동차임에도 적응하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러나 소재는 평범한 편이다. 가죽 시트를 제외하면 대부분 우레탄폼이나 플라스틱, 블랙 하이글로시 등으로 구성했다. 단, 각 소재는 빈틈없이 맞물려 조립품질은 나무랄 데 없다.

버튼식 기어레버 뒤쪽엔 널찍한 수납공간이 자리했다. 과장 좀 보태 운동화 두 켤레도 품을 수 있을 정도. 혼다에 따르면, 위쪽의 얇은 슬라이딩 커버는 6살짜리 아이의 무게를 지탱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또한, 음료를 위에서 엎질러도 콘솔 안으로 흘러내리지 않고, 커버 위에 남도록 설계했다. ‘깨알’ 같은 디테일이 엿보인다.

가장 궁금한 건 뒷좌석 공간이다. 2열 무릎공간은 975㎜로 쌍용 G4 렉스턴과 같다. 몸을 포근하게 감싸는 맛이 좋고, 천장 중앙에 10.2인치 모니터를 달아 보고 싶은 영화도 감상할 수 있다. 2열 시트 위쪽 버튼을 누르면 ‘스르륵’ 앞으로 접히며 3열로 쉽게 드나들 수 있다. 무릎공간은 810㎜로 팰리세이드보다 13㎜ 길다. 아빠가 3열에 탄 자녀에게 스피커로 목소리 전할 수 있는 캐빈 톡도 오딧세이로부터 가져왔다. 물론 애들은 싫어할 수 있는 장비다.

압권은 트렁크 공간. 7~8인승이라고 해서 꼭 꽉꽉 채워 다니는 경우는 드물다. 부부와 자녀 2명으로 구성된 가족은 간단한 피크닉을 갈 때에도 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파일럿은 3열 시트를 접었을 때 기본 용량이 1,325L에 달하는데, 기아 쏘렌토가 660L 수준이다. 유모차와 자전거, 각종 캠핑장비 등을 ‘테트리스’할 필요 없이 ‘툭툭’ 던지면 그만이다. 3열을 펼치고도 소형 SUV보다 넓은 467L를 제공한다.

뉴 파일럿엔 핸즈프리 테일게이트 기능이 들어갔다. 양손 가득 짐이 있을 땐, 범퍼 밑으로 간단한 발차기 시늉으로 트렁크 도어를 열 수 있다. 최근엔 흔한 기능이지만, 대부분 트렁크 밑에 발을 뻗어도 묵묵부답인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나 신형 파일럿은 후방 스키드 플레이트만큼 센서를 좌우로 넓게 심어 반응 속도가 남다르다.

기존 6단 대신 9단 자동변속기 짝 지어

파일럿의 심장엔 V6 3.5L 가솔린 i-VTEC 엔진이 자리했다. 최고출력 284마력, 최대토크 36.2㎏‧m를 뿜는다. 요즘처럼 경유와 휘발유 값이 큰 차이 없는 시대에, 디젤 엔진 없다고 아쉬워할 필요는 없다. 기존의 6단 기어 대신 9단 자동변속기를 짝 지어 연료 효율을 높였다. 상시 사륜구동을 기본 장비로 얹고 복합연비 8.4㎞/L, 고속도로 연비 10.0㎞/L를 낸다.

간단한 제원 확인을 마치고 시승에 나섰다. 경기도 용인에서 출발해 충남 당진까지, 고속도로와 일부 오프로드 구간에서 테스트를 치렀다. 가속 페달을 밟자 기대 이상 시원스레 속도를 붙인다. ‘산뜻하다’는 표현이 정확할 듯하다. 특히 9단 기어는 평범하게 출발할 땐 2단부터 무는데 변속 반응이 빠를 뿐 아니라 대부분 2,000rpm 이하를 유지해 정숙성이 좋다.

누가 VTEC 엔진 아니랄까봐, 4,000rpm 이상에서 목청 키우는 모습이 퍽 흥미롭다. 2t(톤) 남짓한 차체 덕분에 건장한 성인 남성 2명이 타도, 힘이 부족하다는 느낌은 전혀 받을 수 없다. 오히려 2.2L 디젤 엔진 품은 팰리세이드보다 호쾌하다. 또한, 요철 구간에서 2차, 3차 진동을 처리하는 수준도 발군이다. 혼다의 SUV 제작 노하우를 알 수 있는 단서다.

단, 아쉬운 점도 분명했다. 통상 후측방 경보 시스템은 사이드미러에 집어넣는데, 혼다는 실내 안쪽에 별도의 플라스틱 패널을 더해 심었다. 기능은 흠잡을 데 없지만, 거울에 통합시키는 편이 더 깔끔하며 보기도 좋다. 또한 엔진 시동 버튼은 빨간색, 계기판이나 각종 버튼은 초록색 조명을 쓰는데 크리스마스 분위기 내려는 의도가 아니라면 다소 거슬린다.

지난주, 팰리세이드를 시승하며 가장 실망했던 부분은 풍절음이다. 앞 유리와 1열 창문에 이중접합 차음유리를 넣었지만, A필러와 사이드미러 사이에서 발생한 소음이 실내로 들이쳤다. 반면, 파일럿은 넉넉한 사이드미러를 쓰지만 풍절음을 말끔히 제압했다. 바닥으로부터 올라오는 소음도 억제해, 시종일관 산뜻한 기분으로 달릴 수 있다. 주행질감의 차이다.

뉴 파일럿엔 혼다의 i-VTM4라는 지능형 가변 토크관리 시스템이 들어갔다. 평상 시 앞바퀴로 대부분 엔진의 힘을 보내다가, 필요에 따라 뒤 차축으로 엔진의 힘을 최대 70%까지 보낼 수 있고, 좌우로 100%까지 몰아줄 수도 있다. 가파른 경사면에선 언덕 유지 보조 장치가 약 3초 동안 작동하며, 눈과 진흙, 모래 등 별도의 오프로드 주행모드도 챙겼다.

혼다 파일럿. 무난한 성격 탓에 마지막 문단을 정리하는 게 퍽 힘들다. 오히려 또렷한 장점과 단점이 없는 게 파일럿의 가장 큰 매력으로 다가온다. 온 가족이 넉넉한 공간에서 주변 경치도 감상하고, 때로는 담소를 나누며 영화도 보며 ‘이동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자동차다. 오히려 차에 신경 쓰지 않고, 온전히 내 삶에 집중하게 만드는 녀석 같아 기특하다.

가격은 5,490만 원 ‘파일럿’과 5,950만 원 ‘엘리트’ 트림 두 가지로 나눈다. 준자율주행 기능 등 대부분의 장비를 양껏 담았기 때문에, 팰리세이드 프레스티지 트림에 모든 옵션을 더한 모델과 비교할 수 있다. 약 400만~500만 원 보태 검증 받은 파일럿을 사느냐, 화려하되 아직 숙성 기간이 필요한 팰리세이드를 사느냐. 선택은 본인의 몫이다.

<제원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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