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rin 칼럼] 단 5초의 승부, 신형 아반떼 디자인

조회수 2018. 9. 20.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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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초, 15초, 1분.


이건 모두 우리에게 익숙한 숫자들입니다. 5초는 대부분의 영상컨텐츠 시작 전 나오는 광고 분량이고, 15초는 전세계적 열풍조짐이 보이는 틱톡(TicToc) 어플에서 자신을 뽐낼 수 있는 시간이며, 마지막 1분은 인스타그램 동영상 길이제한입니다.


생각하지 않으면 인지조차 할 수 없는 짧은 시간이지만, SNS 세상에서는 지금 이 순간에도 저 짧은 찰나에 새로운 역사가 생겨나고 있습니다. 몇 초짜리 영상이 인기를 끌어 인생이 바뀐 사람의 이야기 정도는 이제 낯설지도 않죠. 그러한 흐름 속에서 사람들이 인내할 수 있는 시간도 짧아지고 있습니다.


새로운 것을 접할 때 우리는 기대합니다. 매우 짧은 시간 안에, 나의 관심과 눈길을 끌어주길 말이죠. 그래서 동영상도 초반 몇 초가 재미 없으면 넘겨버리고, 기사나 포스팅도 첫 몇 줄에 호기심이 생기지 않으면 커서를 내려버립니다. 음악도 틀자마자 취향에 맞지 않으면 다음 곡으로 스킵하기 일쑤. 이렇듯 초반 몇 초에 승부를 걸어 눈길을 끌지 못하면 보는 이는 떠나버립니다. 그러면 나머지를 아무리 공들여 만든들 소용이 없어지는 것이죠.


그래서 점점 더, 글이든 음악이든 영상이든, 첫 몇 초에 집중하는 구조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자극적인 후렴구가 바로 나와야지, 예전처럼 전주로 첫 1분가까이를 허비했다간 가사를 듣기도 전에 모두 떠나버리는 겁니다.


숨겨진 메시지나 깊이, 찬찬히 들여다봐야 알 수 있는 매력, 오래 대해도 질리지 않는 완성도…


전통적으로 중요시 여겨졌던 이런 ‘비(非)자극성’ 요소들보다 첫인상을 휘어잡는 ‘단기 자극성’이 훨씬 더 중요해졌다는 뜻입니다. 이 이야기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자동차디자인 사례가 렉서스입니다.


렉서스는 태초부터 철저하게 비자극성 디자인을 추구해 왔었습니다. 너무 개성이 없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노멀하고, 모던하고, 침착했지요. 기계적 완성도에 대한 자신감이 있었기에 그것을 감싸고 있는 디자인은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 무던한 스타일을 추구했습니다. 오래오래 타면서 천천히 감동하라고 말이지요.


그랬던 렉서스가 화끈하게 바뀐 건 스핀들그릴부터 입니다. 스핀들그릴을 필두로 렉서스 디자인개혁을 이끌었던 임원이 한국에 와서 직접 이런 이야기를 했던 적이 있습니다.


“사이드미러에 나타난 순간, 렉서스임을 알아차릴 수 있는 강력한 임팩트를 원했다”


사이드미러에 렉서스가 보이면 화들짝 놀라 비켜줄 그런 디자인을 원했다는 것이죠. 운전 중 사이드미러 속 어떤 물체를 보고 깜짝 놀라려면 1초도 걸리지 않을 겁니다. 새로운 렉서스는 그토록 짧은 시간에 보는 이가 놀랄 만큼의 임팩트있는 디자인을 추구했습니다.


LEXUS LF-1 CONCEPT

그러다 보니 사람들에게 익숙한 비례, 친근한 형상, 낯익은 인상은 버려야 했습니다. 철저하게 낯설고, 집요하게 이질적인 디자인을 만들었죠. 그래서 렉서스의 새로운 디자인은 평가가 매우 극렬하게 나뉩니다.


‘무척 신선하다’거나 혹은‘매우 기괴하다’ 고요.


기괴하다는 쪽은 아마도 프레데터 같은 것을 떠올리셨겠지요. 일리는 있습니다. 프레데터나 요사이 렉서스나 사람들에게 최대한의 이질감을 선사하기 위한 디자인이라는 공통점이 있으니까요. 한마디로 둘 모두 보자마자 놀라는 ‘단기 자극성’ 디자인을 추구했다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나라 자동차시장에도 이런 단기 자극성 디자인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모두가 보자마자 벌어진 입 다물지 못했던 ‘로디우스’ ‘카이런’ ‘액티언’ 3형제가 있었지요. 그러나 그때는 아직, 지금처럼 초단기에 승부를 봐야 하는 시대가 아니었습니다. 지금보다는 조금 더 오래 물건을 간직하며, 어떤 대상을 차분하게 바라볼 수 있던 시기였기에, 이들 3형제의 매우 자극적이고 이질적인 디자인은 썩 성공하지 못한 사례로 남고 말았습니다. 심지어 이들 디자인은 사람들에게 웃음거리가 되기도 했었지요.


그러나 2018년이 되자 많은 것이 변했습니다. 상황도 취향도 시간의 개념도 변했죠. 그러면서 비로소 우리나라에도 초단기 승부형 자극적 디자인의 필요성이 대두된 것이지요.


앞서 말씀 드린 것처럼 홍보마케팅 중 상당수가 온라인 특히 SNS를 통해 이뤄지고, SNS 광고를 보는 사람들은 불과 5초를 견디지 못하며, 순간의 찰나에 보는 이의 머릿속에 강력한 임팩트를 남겨야 살아남는 시대입니다.



이런 시대에는 오래도록 질리지 않는 깊이보다, 첫인상에 무척 멋져야 하는 뾰족한 자극성이 더 중요합니다. 그런 시대적 배경 속에 탄생한 것이 신형 아반떼의 디자인입니다. 그야말로 뾰족한 디자인이죠.


이 디자인은 매우 직설적이라 추가해석이 그다지 필요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삼각형’이나 ‘사각형’으로 디자인됐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차는 별로 없습니다. 대부분의 자동차들은 한마디로 정의하기 힘든 복잡한 형상이기 때문이죠. 그래야 더 깊이 있고, 더 멋있다고 생각해 왔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제가 자동차 디자인을 배울 때에도 보자마자 다른 어떤 대상을 떠올릴 수 있는 디자인은 수준 낮은 것으로 치부됐었습니다. 이세상에 없는, 내가 찾아낸, 그 무언가를 숨겨두었다가 오래 보면 알 수 있는 그런 디자인이 멋진 것으로 대우받았죠.


그러나 신형 아반떼 얼굴을 이루는 특징적 요소들은 디자이너만이 표현할 수 있는 오묘한 형상과는 조금 거리가 있습니다. 과장 좀 보태면 누구나 그릴 수 있는, 상당히 직설적인 ‘삼각형’으로 이뤄져 있지요. 후면에서도 테일램프나 하단의 번호판 부근 디자인이 큰 틀에서 직설적입니다. 복잡하게 꼬고 접고 요란을 부리는 렉서스와는 조금 다른 방법이지만, 이렇게 직설적인 디자인이 드물었기에 낯설고 이질적으로 느껴집니다. 그래서 눈에 띄고 뇌리에 박힙니다.


저는 신형 아반떼 디자인에 대해 좋다 나쁘다 평가할 생각이 없습니다. 그러나 현대 디자인팀이 의도한 바는 성공적인 듯 합니다. 이미 온라인에서는 호불호가 나뉘며 엄청난 화제를 모으고 있으니까요. 5초이상 바라보고 있지 않는 네티즌들의 눈길을 확실하게 잡아 끈 것 만으로도 큰 성공입니다. 그들이 좋아하든 싫어하든 말이죠.


그러나 이런 스타일을 싫어하는 분들이 계시다면 비보가 하나 있습니다. 예측하자면 아반떼 같은 대중브랜드의 대중적 차급에서 이런 단기 자극성 디자인은 앞으로 더욱 흔해질 것 같습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첫인상에 승부를 봐야 하는 SNS 배경들 외에 한가지 더 강력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죠. 바로 셰어링 카 등 자동차 사용구조의 변화입니다.


매일 세차하고 가꾸며 오래오래 바라보는 내 차와, 가끔 특별한 일로 필요할 때 잠깐 빌려 타는 차의 디자인 지향점은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전자의 디자인이 장기적이라면, 후자의 디자인은 단기적입니다. 전자의 디자인이 오래 봐도 질리지 않아야 한다면, 후자의 디자인은 짧은 시간 동안 신선하고 자극적인 경험을 선사하는 게 더 중요합니다.


5초 이상을 허용하지 않는 SNS 생태계에서 첫인상으로 살아남아야 하는 디자인.


길게 소유되지 않고, 특별한 잠깐의 순간을 위해 경험되어야 하는 디자인.


물론 모든 자동차 디자인이 이렇게 흐르지는 않겠습니다만, 한동안 이런 방향성이 자동차 디자인 종류의 큰 축 중 하나를 차지할 것은 틀림 없어 보입니다. 신형 아반떼의 뾰족하고 직설적인 ‘단기 자극성’디자인은 그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 아닐까 싶네요.

김준선기자 autodesigner@naver.com <자동차 전문 매체 모터그래프(http://www.motorgrap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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