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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값도 안 되는 승용차가 양산되자 일본 열도가 들썩였다

변성용 입력 2018.12.30 14:18 수정 2018.12.30 14:2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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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최초의 모노코크 바디 양산차, 스바루 360 (2)
스바루 360라는 이름은 늦게 정해졌다. 차량 디자이너 사사키씨가 “처음 개발한 승용차의 이름은 스바루 1500였다”라는 말만 듣고 마음대로 ‘SUBARU 360’ 로고를 만들었고 이것이 그대로 내부승인 절차를 거친 것이다. 플레이아데스 성단을 일컫는 순 일본식 이름인 ‘스바루’는 후지중공업의 모태가 된 여섯 개의 제작소를 상징하는 것으로, 후지중공업의 자동차를 대표하는 브랜드로 사용되다가 2016년부터 아예 후지중공업의 사명이 되었다.

[변성용의 사라진 차 이야기] (2부에서 이어집니다)

◆ 스바루360의 개발자, 모모세 신로쿠

비범한 제품은 비범한 인물이 있기에 탄생한다. 스바루 360의 개발을 주도한 사람은 후지중공업의 기술부장이였던 모모세 신로쿠(百瀬晋六). 대전기 해군의 비행기 엔진을 설계하던 엔지니어였던 그는, 회사의 주력상품이 바뀌자 자연스레 자동차를 만들게 된다. 스바루 360를 맡기 전부터 그는 이미 뛰어난 개발자였다. 모노코크 바디의 리어엔진 버스라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구조와 성능으로 일본의 버스 제작방향을 바꾸어 버렸으며, 첫 승용차를 자력으로 완성시키며 회사를 종합 사륜차 메이커로 탈바꿈시켰다. 사내에서 그의 이미지는 늘 뭔가를 그리고 있는 사람이었다. 스케치를 통해 아이디어를 다듬어가다 보면 언젠가는 좋은 제품이 나온다는 것은 그의 지론이기도 했다.

스바루 360의 콘셉트였던 가벼운 모노코크 차체나, 단순하지만 부드러운 승차감을 만들어낸 서스펜션은 모두 그의 거듭된 스케치가 실체화된 것들이었다. 극한까지 밀어붙여 만들어낸 스바루 360의 거주성은 그가 더미역할을 자처했기에 가능했다. 그는 당대의 일본인이라면 깜짝 놀랄 키의 소유자였다. 180cm의 장신을 좁은 목업 인테리어에 구겨 넣은 채, 조금이라도 공간을 더 키울 방법을 찾으며 고민했다. 그를 기준으로 맞춰진 4명분의 탑승공간은 평균신장이 160cm 안팎이던 다른 사람들에게는 더 없이 충분했다.

후지중공업 개발부장 시절의 모모세 신로쿠. 그는 스케치 말고도 틈만 나면 직원들의 책상을 찾아 돌아다니며 의논하는 리더로 신망이 높았다. 기능성과 합리성을 최우선시하며, 기성개념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접근방식은 이후 스바루의 상징인 수평대향엔진과 4륜구동시스템으로 이어지며, ‘모모세이즘’이라는 스바루의 자동차 개발철학으로 자리잡는다.

1957년, 교통부의 인증 테스트에서 스바루 360은 4명이 탑승한 상태에서 최고 속도 83km/h를 찍었고, 평균 연비는 26km/l에 달했다. 오버 히트한 승용차가 흔하던 1950년대의 비포장 산길을 60km/h로 거뜬히 내달리며, 차는 원래의 목표를 훌륭하게 달성한다.

◆ 그림의 떡에서 서민의 발로

스바루 360은 애초의 목표인 35만엔의 가격도 달성해 낸다. 스바루 360의 시판가는 33만8000엔. 당시 자가용의 평균 가격이던 100만엔에 비하면 실로 파격적인 수준이었다. 불과 1/3의 돈으로 제대로 된 승용차를 살 수 있게 되자, ‘자가용’의 꿈은 훌쩍 현실로 다가오게 된다. 작디작은 경차의 규격을 지키면서도 고집스럽게 완성한 4인승의 공간은 ‘가족’의 생활과 가치를 높이기에 충분했다.

스바루 360의 광고, 동쪽의 스바루, 서쪽의 폭스바겐이라는 광고타이틀이 보인다. 접점이라 할 부분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양국을 대표하는 국민차라는 점에서 두 차는 닮은 점이 많았다.

독일의 국민차 폭스바겐 비틀의 ‘딱정벌레’라는 애칭과 맞서듯, 둥글고 귀여운 모양새의 차는 금세 ‘무당벌레’라는 애칭을 얻으며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스바루 360의 출현을 기점으로 자동차는 부자들의 전유물이 아닌 서민의 일상으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한다. 연배가 있는 대부분의 일본인들은 그들의 삶의 일부분으로 이 차를 기억한다. 일본의 자동차 산업 절정기를 이끌었던 사람 대부분이 자동차의 즐거움을 눈뜨게 해준 유년기의 차로 스바루 360을 꼽는다. 자동차를 생활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자동차를 본질적으로 이해하게 된 사람들이 성장하여 다시 자동차를 만들어 나가는 선순환의 고리, 일본의 모터리제이션의 시작점은 바로 스바루 360이였던 것이다. 이 차를 시작으로 일본에서는 본격적인 경쟁차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으며, 일본 고유의 경차 문화가 형성되기 시작한다.

360은 수요에 따라 왜건이나 캔버스탑 같은 변형 모델도 만들어졌다.

전후를 대표하는 대중차가 된 스바루 360은 1958년부터 생산이 중단되는 1970년까지 12 년간 39만대가 만들어졌다. 시장의 요구에 따라 캔버스탑과 왜건 같은 다양한 변종모델도 선보였다. 이 차의 업적은 상업적인 성공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기술적으로도 다른 자동차분야에 큰 파급효과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스바루 360을 기점으로 일본의 모터리제이션은 본격화된다. 일본인 대다수는 자동차가 생활의 일부가 되고, 삶의 영역이 확장되는 것을 이 차를 통해 체감했다. 여성이 적극적으로 운전을 시작한 것도 이 차의 발매 무렵부터다.

◆ 경트럭의 역사를 쓰다

1961년, 스바루 360의 파생모델인 삼바(Sambar)가 시판된다. 승용모델의 완성 직후부터 개발을 시작한 두 번째 경차는 운전석이 앞바퀴 앞에 위치한 캡오버 스타일의 밴과 트럭 모델. 범퍼에서 도어하단, 그리고 휠 하우스로 연결되는 두터운 라인 덕분에 입술트럭이라고 불리운 차는 다른 차의 개발 방식을 차용한 결과물이였다. 유사한 생김새에도 불구하고 비틀과 접점이 없는 스바루 360과 달리 삼바는 명백하게 비틀의 방식을 따랐다. 비틀의 구동계를 활용한 폭스바겐의 상용차, Type 2의 방식을 그대로 답습한 결과물이 바로 삼바였기 때문이다.

초대 삼바 트럭의 모습. 스바루 360의 동력계를 그대로 활용한 경트럭이었다.

현대적인 자동차 만들기에서 승용차와 트럭사이에는 메우기 힘든 간극이 존재하지만, 1950년대는 지금보다 단순한 방식의 접근이 가능한 시절이었다. 화물의 중량을 견뎌야 하는 상용차량인 만큼 차체는 모노코크 대신 사다리 프레임을 썼지만, 드라이브트레인이나 서스펜션 구조는 기존 스바루 360의 것을 그대로 활용해 만들었다. 리어엔진, 트레일링암의 토션바 서스펜션도 거의 그대로였다. 엔진룸이 뒤에 있다 보니 필연적으로 데크부가 2단 형태가 되고, 이 때문에 데크를 넓게 쓸 수 없는 문제가 있었지만, 나중에 엔진룸 상단 패널을 캐빈 뒤로 연장한 플랫데크가 나오면서 차는 현대적인 트럭의 모습을 갖춘다. 원래의 낮은 부분은 잠금장치를 단 라커 형태의 분리된 수납공간으로 만들었다.

삼바 초기형의 후부. 엔진의 공간 때문에 뒷데크가 올라와 있다. 2세대가 되면서 칸막이와 플랫 데크를 갖춘 일반적인 트럭 형태로 바뀐다.

적재중량 때문에 스프링 레이트가 올라가긴 했지만 그 부드러운 승차감만큼은 여전했으며, 덕분에 중소상인들의 평가가 매우 높았다. 판유리나 두부 같은 섬세한 화물 배달은 다른 화물차로는 불가능한, 오직 삼바만이 가능한 영역으로 취급될 정도였다. 뒷차축 뒤에 매달린 엔진(RR)은 그 자체가 밸러스트 역할을 해 준 덕택에 화물이 없는 상태에서도 차는 좋은 접지력과 등판능력을 발휘했고, 덕분에 ‘농로의 포르쉐’라는 농담 섞인 별명까지 얻었다. 360cc의 엔진은 출력이 18마력으로 조금 늘었지만 토크는 겨우 3kg.m를 넘는 가냘픈 힘밖에 내지 못했다. 하지만 이 정도로도 충분했다. 쓸만한 상용차라는 것이 아예 없던 시절에 출현한 경차 트럭과 밴은 그 존재만으로도 큰 사랑을 받았으며 사람과 물건을 싣고 분주하게 일상을 달렸다. 무려 50년 동안 6세대의 모델을 거칠 동안 삼바는 꿋꿋하게 RR방식을 이어 나갔다.

스바루 360과 함께 탄생한 경트럭과 밴 또한 일본인들의 일상을 지켰다. 길이 3m, 높이 1.5m밖에 되지 않는 차의 크기에 주목

스바루 360과 삼바는 어디까지나 내수시장만을 보고 만들어진 차였다. 다른 시장은 전혀 염두에 두지 않은 채, 철저하게 일본의 법과 일본인의 생활에 맞추어진 차였지만, 누군가는 이 차를 통해 엉뚱한 기회를 찾으려 든다.

후지중공업은 꿈도 꾸지 않았던 스바루 360의 미국진출이 곧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3부로 이어집니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변성용

변성용 칼럼니스트 : 자동차 전문지 <카비전>과 <자동차생활>에서 13년간 객원기자로 글을 썼다. 파워트레인과 전장, 애프터마켓까지 자동차의 다양한 분야에서 업무를 수행하며 자동차를 보는 시각을 넓혔다. 현재 온오프라인 매체에 자동차 관련 글을 기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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