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 검색어 입력폼

[비교 시승] 토요타 86 vs 현대 벨로스터 N

조회수 2018. 10. 5. 21:50 수정
음성재생 설정

이동통신망에서 음성 재생시
별도의 데이터 요금이 부과될 수 있습니다.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다양한 분야의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를 카카오 플랫폼 곳곳에서 발견하고, 공감하고, 공유해보세요.

토요타 86과 현대 벨로스터 N을 맞붙였다. 둘은 하드웨어적인 공통점이 별로 없다. 예컨대 86은 후륜구동이고 벨로스터 N은 전륜구동이다. 86은 수평대향형 자연흡기 2L 엔진인 반면 벨로스터 N은 실린더를 곧게 세운 4기통 2L 터보다.

그런데 왜 배틀 붙였냐고? 둘 다 ‘운전자에게 즐거움을 주는 자동차’를 지향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두 차는 마니아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다. 직선보다 굽이치는 도로가 어울리는 것도 비슷하다. 사실 따지고 보면 양쪽 모두 6단 수동 기어박스와 LSD를 달았다는 거라든가 대중 메이커가 만든 스포츠 모델이라는 점도 닮긴 했다.

그렇다면 두 대의 철 덩어리 중 드라이버의 마음을 사로잡을 만한 녀석은 무엇이었을까? 서울에서 강원도 미시령 와인딩까지 500km를 번갈아 타면서 그 답을 찾기로 했다.

직선에서_
벨로스터 N의 완승
(지겹도록 들었겠지만) 벨로스터 N의 최고출력은 275마력이다. YF 쏘나타 시절 나왔던 쎄타 터보에 뿌리를 둔다. 대신 냉각 계통에 대한 숙성도가 올라갔다. 내구성이 좋아졌다는 얘기다. 엔진 힘이 매끄럽게 나오는 것도 인상적이다. 예를 들어 YF 터보는 출력이 ‘펑’하고 쏟아졌다. 반면 벨로스터 N은 고회전 영역까지 선형적으로 힘이 나온다. 터보차인데도 가속 페달 가감에 따른 반응이 선명히 살아 있는 것도 마음에 든다. 파워풀하다기보다는 잘 조율한 엔진이라는 생각이다. 다만 아반떼 스포츠(204마력)와 실제 ‘직발’이 비슷한 건 슬픈 일이다.

86은 203마력이다. 벨로스터 N보다 72마력 약하다. 대신 벨로스터 N에 비해 200kg 가까이 가볍다. 터보 없이 자연스럽게 공기 빠는 엔진이지만 7,400rpm까지 돌릴 수 있다. 4,500rpm 이상으로 회전을 걸고 타면 나름대로 펀치력이 있다. 다만 3,000rpm 밑에서는 모래로 만든 엔진처럼 생기가 없다. 벨로스터 N은 저회전부터 터빈이 돌아 화수분 같은데 말이다. 시내에서 86을 몰면 이따금 2005년형 현대 투스카니 2.0을 타는 기분이다. 디젤차가 옆에서 치고 나가면 손 쓸 법이 없다.

이런 환경 하에서 86이 벨로스터 N을 따라가는 건 무리였다. 벨로스터 N이 1바 이상의 부스트를 쓰면서 멀찍이 나갈 때 대기압으로 도는 86 엔진은 “나 죽어~”하는 껄끄러운 소리를 내뱉었다. 반면 벨로스터 N은 가속 페달에서 발을 뗄 때마다 ‘따당’하는 총성을 내며 여유를 과시했다.

나는 벨로스터 N의 룸미러에서 86이 조그맣게 변할 때마다 묘한 희열을 느꼈다. 86 앞모습은 멀리서 보면 모기처럼 생겼다(가까이서 보면 제법 괜찮지만). 미시령까지 86을 운전한 이정현 기자에게 저 소리를 했다. 그는 이윽고 담배에 불을 붙여 순식간에 재로 만들었다. 그는 두 달 전에 86을 샀다. 나는 두 달 전에 86을 팔았기 때문에 그 모습을 깔깔대며 지켜 보았다.

와인딩 로드에서 (1)
빠르고 운전이 무척 쉬운 벨로스터 N
미시령에 도착했을 때 먼저 시승한 차는 벨로스터 N이다. 86은 2012년에 나왔으니 더 궁금할 게 없었다. 86보다는 새 모델인 벨로스터 N이 흥미로웠다. 대신 벨로스터 N의 운전석에 오르면 즉시 출발할 수 없다. 만일 예전 방식의 르망 24시 레이스였다면 출발 때문에 꼴등했을 거다.

이유는 ‘고를 게 많아서’다. 배 부른 소리다. N차는 댐퍼 감쇠력, 운전대 반응, 엔진 반응, 심지어 LSD의 적극성까지 모두 설정할 수 있다. 사실 어떤 차들은 이렇게 주행 모드를 바꿔도 큰 차이 없는 경우가 있다. 오히려 스포츠 모드로 갈수록 느려지기도 한다. 그런데 벨로스터 N은 달랐다. 주행 모드를 스포츠에 가깝게 설정할수록 분명히 빠르다. 그리고 한층 날카롭다. 양산차 중 주행 모드에 따른 변화의 정도가 으뜸이다. 나는 이 점을 벨로스터 N의 최고 장점이라고 꼽는다.

고심 끝에 찾아낸 나의 세팅은 엔진과 변속기 반응을 스포츠 플러스에 두는 거였다. 물론 배기 시스템과 E-LSD도 가장 스포티하게 설정했다. 단, 댐퍼는 노말 모드가 적절(노말 모드도 단단함)하다. 분명히 말하건대 일반 도로에서는 노말이 가장 나았다. 만일 댐퍼를 스포츠 플러스 모드까지 올리면 무쇠처럼 딱딱해지면서 노면을 놓치기 일쑤였다. 자칫 한 방에 스핀할 수도 있을 듯하다. 강한 댐퍼로 스프링이 너무 안 눌리기 때문에 하중을 이쪽 저쪽으로 옮기는 것도 어려워졌다.

미시령 와인딩은 숏턴이 많다. 275마력을 짜내면서 달릴 수 없다. 주로 2단으로 달리다 이따금 3단으로 가는 정도다. 여기는 오히려 86에게 유리할 수 있다. 한데 벨로스터 N은 놀라웠다. 반전을 허락하지 않았다. 86보다 빠르다는 게 확실히 다가온다. 피렐리 피제로 타이어 탓이 가장 클 테지만 롤을 억제한 섀시 덕도 컸다.

벨로스터 N은 운전이 너무 쉽다. 그저 차의 머리를 코너 안쪽으로 넣은 뒤 가속 페달을 누르면 끝이다. 이윽고 엔진은 큰 힘을 내고 LSD가 그 힘을 고스란히 전하면서 언더스티어 없이 산뜻하게 돌아 나간다. 코너가 시시했다. 트랙 랩 타임이 빠른 게 당연하다.

자동 레브 매칭까지 켜 놓으면 정말이지 운전자가 할 일이 거의 없다. 엔카TV의 김현규 PD는 “세미오토 같다”며 자기 차(아반떼 스포츠)의 가치를 강조했다. 이정현 기자는 “자기는 레브 매칭 안 켜는 게 좋다”고 말했다. 두 사람 다 제 정신이 아닌 것 같다고? 사실 나도 그들 의견에 일부 공감했다. 우리가 하려는 말은 벨로스터 N을 몰 때 차 다루는 재미가 살짝 덜하다는 거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것은, 86보다 벨로스터 N이 빠르다는 사실이다.

와인딩 로드에서 (2)
운전자에게 많은 권한을 주는 86
벨로스터 N의 운전을 이정현 기자에게 맡긴 뒤 86의 키를 넘겨 받았다. 시동 걸 때 느껴지는 불규칙한 진동이 수평대향 엔진 달렸다는 걸 암시한다. 벨로스터 N은 배기음으로 자신이 내연기관 품었다는 걸 알리지만 86은 엔진이 그 일을 했다. 회전이 올라갈 때 느껴지는 특별한 소리(누군가에게는 소음이겠지만)가 퍽 마음에 든다. 여기에 비등장 배기 매니폴드를 달면 정말 멋진 사운드가 난다는 거, 86 오너 빼고 몇 명이나 알까?

벨로스터 N 변속감이 좋다고들 말하지만 벨로스터 N 몰다가 86을 몰면 ‘신세계’다. 86 기어 노브 스트로크가 N보다 50% 이상 짤막한 기분이다. 기어 기둥의 길이는 긴데 작동 거리가 반도 안 된다. 직결식 특유의 ‘척’하고 기어 물리는 감각도 벨로스터 N(케이블식)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좋다. 클러치 페달 감각도 우수하다. 86만 탈 때는 “거지 같다”고 말했었는데 벨로스터 N 클러치 페달을 허우적거리다 86 것을 밟으니 86 변속기가 훨씬 낫다.

시트 포지션을 비롯한 운전 자세도 86의 압승이다. 이건 어쩔 수 없다. 86은 나올 때부터 스포츠카로 만든 거고 벨로스터 N은 승용차인 벨로스터의 개량품이기 때문이다. 86 운전석에 앉으면 포르쉐 생각이 난다. 낮게 앉는 시트는 다리를 쭉하고 뻗게 한다. 스티어링 휠은 노면과 수직에 가깝게 서 있다. 기어 노브와 운전대의 거리는 한 뼘이 안 된다. 엔진회전계를 큼직하게 박은 계기판은 얼굴과 딱 마주보고 있다. 이건 정말이지 포르쉐 감각이다.

86의 최대 강점은 무게중심이 극단적으로 낮고 가볍다는 거다. 이는 서행할 때부터 알 수 있다. 운전이 너무 산뜻하다. 조미료랑 치즈 넣은 샐러드 먹다가 진짜 풀 먹는 느낌이다. 86은 시속 40km로 몰아도 웃음이 난다. 뒤 타이어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엉덩이로 정확하게 감지할 수 있다. 가령 코너에서는 뒤 타이어가 사선으로 휘는 감각까지 전해지는 듯하다. 손바닥으로는 앞 타이어의 접지감이 선명하게 다가왔다. 대중차의 EPS로서 이럴 수 있나? 그것도 2012년에 나온 녀석이?

하지만 이번 시승은 ‘비교 시승’이다. 86은 '벨로스터 N에 비해서 좋은 점'이 있어야만 했다. 더 빨라야 한다는 얘기다. 애석하게도 ‘빠름’이라는 관점에서, 86의 명백한 패배였다. 86의 장기인 내리막에서조차 벨로스터 N이 더 빨랐다. 벨로스터 N으로 내리막 탈 때는 심심해서 졸음이 올 지경인데 86은 외줄타기 하는 기분이다. 한계로 몰아붙일 때 가속 페달과 운전대를 섬세하고 섬세하며 섬세하게 조작해야 했다.

차가 알아서 해주는 듯한 N과 달리 86은 운전자에게 많은 역할을 일임했다. 이정현 기자는 "선배는 86을 몰 때 말수가 줄어든다"고 했다. 실제로 종종 예민해졌다. 차와 쉼 없이 교감하면서 최적의 그립을 찾아야만 해서다. 자칫하면 오버스티어가 과해졌고 이윽고 벨로스터 N의 뒤 범퍼가 멀어졌다. 사실 우리 86 시승차는 자연을 생각한 순정 타이어 대신 브릿지스톤 RE003을 달았다. 피제로 정도는 아니지만 나름대로 그립 좋은 제품이다. 엔케이 RPF1을 끼워 앞뒤 트레드도 순정보다 한껏 벌려 놓은 상태였다. 그런데도 벨로스터 N의 벽은 너무 견고했다.

에필로그
그렇다면 우리는 벨로스터 N을 수퍼카로 칭송하고 86을 쓰레기라며 깎아 내려야 할까? 차를 하루 이틀 탈 거면 그럴 수 있다. 이때는 빠른 게 최고의 가치니까. 트랙용으로 살 때도 N이 낫다. 순정차 기준 인제 스피디움 랩타임이 86보다 5초 정도 빠르다. 수리비는 86의 30%쯤에 머문다. 서킷에서는 사고가 잦기 때문에 수리비도 따져 보아야 한다. 이렇게 되면 “86을 왜 사냐”는 말이 튀어 나오기 시작한다.

하지만 두 차가 주는 즐거움은 색깔이 다를 뿐이다. 가령 벨로스터 N은 ‘빠름’으로써 즐거움을 선사한다. 그러니까 빠른 데서 즐거움을 느끼는 사람은 절대 86 사면 안 된다. 대신 86은 ‘조작’의 즐거움을 제공한다. 여전히 드라이버를 키우는 차다. 운전 실력을 키우고 싶다면 86이 낫다. 86은 양산차를 통틀어 후륜차 맛이 진한 모델 중 하나다. 대신 한국토요타가 값을 딱 1,000만 원만 내려줬으면 좋겠다. 나는 지금까지 86을 두 대나 샀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할 권한이 있고, 86에게는 3대째 살 만한 매력이 있다. 나처럼 86을 비교적 오랜 시간 탔던 사람들은 다들 동의하는 얘기다.

마지막으로 벨로스터 N의 탄생을 주도한 분들께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다. 한국인으로서 더욱 그렇다. 이런 차를 만들자고 제안하고, 실제로 만들고, 그걸 다시금 조율하고, 최종 컨펌 받기까지 얼마나 힘들었을지 알 만하다(그것도 현대자동차라는 조직에서). 앞으로 N카가 잘 되길 진심으로 바란다. 벨로스터 N으로 미루어 보건대 분명히 그렇게 될 거라고 생각한다.

정상현 기자 jsh@encarmagazine.com

이 콘텐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