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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초 페라리 디자이너가 농기구를? 거장 켄 오쿠야마의 열정

임범석 입력 2018.12.08 12:18 수정 2018.12.08 12:2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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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속 히어로, 조르제토 주지아로 그리고 켄 오쿠야마 (2)
주지아로와 함께 나의 또 다른 영웅은 슈퍼카 디자인계의 거장 켄 오쿠야마다. 그가 구사하는 화려한 컬러, 살아 움직이는 듯한 역동성은 나에게 엄청난 영감을 전해주곤 했다
얼마 전 우연히 상하이 공항에서 만났다. 켄 오쿠야마 역시 내 영웅이다

(1부에서 이어집니다)

[임범석의 디자인 에세이] 주지아로는 자동차 프로포션, 즉 전체적인 비율 분야의 대가였다. 그는, 지루해 보이기 십상인 자동차 옆모습에 라인 몇 개를 넣어 단박에 박진감 넘친 디자인을 만들어 내곤 한다. 라인 몇 개 긋는 게 뭐 그리 어려운 일이냐고 할 수 있지만, 옆모습에 생동감을 주는 일이 자동차디자인에서 가장 어려운 작업 중 하나다.

그리고 주지아로의 디자인은 직관적이다. 그의 디자인 특징 중 하나인 심플한 형식, 환상적인 비율, 흥 넘친 디테일은 1980년대까지 이어진 디자인 트렌드였다. 그의 작품은 자동차디자인 전공자들에게, 거리에서 접할 수 있는 최고의 교과서였다. 학생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이탈 디자인 컨셉트 '비자리니' 풀사이즈 렌더링과 주지아로(1966년)

내가 생각하는 주지아로의 최고작품? 흠, 한두 개가 아닌데…, 양산모델 중에서는 1966년 드 토마소 망구스타, 1966년 마세라티 기블리, 1976년 로터스 에스프리 S1 등을 꼽을 수 있다. 컨셉트 모델은 1968년 비자리니, 1986년 마치모토, 1988년 아즈텍 등이다.

그는 가장 뛰어난 디자이너이자, 20세기 가장 중요한 디자이너다. 그는 엄청난 양의 작품을 만들어낸 것으로도 유명하다. 피카소가 2만 점이 넘는 그림을 그린 것처럼, 주지아로 역시 100개가 넘는 컨셉트 모델과 300개가 넘는 양산차를 디자인했다.

비자리니 실제모델

맘 속 깊숙한 곳에 자리한 나의 영웅, 마침내 그를 만날 수 있었다. 모터쇼에서였다(어느 모터쇼였는지는 가물가물하다). 수트를 멋지게 차려 입은 그는, 정말 잘생긴 멋쟁이 이탈리아 남자였다. 외모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만으로도 자동차디자인계의 거장이라는 걸 금세 알아차릴 수 있었다. 조심스레 다가가 떨리는 목소리로 인사를 했다. 거장은 나에게 손을 흔들어주며 이탈리아어로 말을 건넸다. 끝.

그렇게 스쳐 지나갔다. 별의별 후회가 다 밀려왔다. ‘왜 말을 더 걸지 못했을까? 사인이라도 받을 걸! 평소 이탈리아어를 배웠어야 했나?’ 사진 한 장 함께 찍지 못했다. 스마트폰 시대가 아니었다.

그리고 몇 년 후 어느 회의석상에서 그와 다시 만났다. 노신사였지만 그는 여전히 정력적이었고 세련미 넘쳤다. 몇몇 작품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의 아들(아들 역시 자동차 디자이너다)과 함께 새로운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는 얘기도 들었다. 마지막에는 함께 사진도 멋지게 찍었다.

GM 시절 켄 오쿠야마의 스케치

나에겐 주지아로와 함께 한 명의 히어로가 더 있다. ACCD 학창시절, 선생님은 가끔 GM에서 일하고 있는 젊은 일본인 디자이너를 언급하며 조만간 스타가 될 거라고 이야기하고는 했다. 당시 전세계에서 활약하고 있는 아시아 출신 디자이너는 손에 꼽힐 정도로 적었다. GM, 포드, 크라이슬러를 포함한 미국 스튜디오에서 아시아 출신 디자이너 역시 10명이 채 되지 않았다.

내 꿈 역시 GM 디자이너였다. 따라서, 이미 GM에서 일하고 있으며, 유능함을 인정받은 아시아 출신 디자이너 이야기는 나에게 꿈과 희망을 품게 해주었다. 잡지에서 그의 작품을 몇 번 본 적이 있었다. 그의 스케치는 힘이 넘쳤고, 역동적이었으며 대담했다. 전형적인 GM 스타일이었다. 일본인이었지만, 그의 디자인만큼은 미국적이었고, 당시의 GM의 이상과 완벽히 맞아 떨어졌다.

켄 키요유키 오쿠야마 CEO

GM의 디트로이트 스튜디오에 입사했고, 마침내 그와 함께 자리를 할 수 있었다. 같은 회사, 같은 직원으로서 말이다. 나는 폰티악 2 스튜디오에 배정받았고, 그는 쉐비 3 스튜디오에서 차세대 ‘케벌리어’(Cavalier) 디자인 프로젝트를 담당하고 있었다. 때때로 그의 사무실에 들러 작품을 보곤 했다. 그의 풀사이즈 테이프 드로잉 및 렌더링이 기억난다.

그렇다, 나의 또 다른 영웅은 슈퍼카 디자인계의 거장 켄 오쿠야마다. 켄 오쿠야마의 화려한 컬러, 살아 움직이는 듯한 역동성은 나에게 엄청난 영감을 전해주곤 했다. 아쉽게도 그와의 첫 만남은 짧게 끝났다. 그는 독일 오펠로 파견근무를 떠났고, 이후 새로운 도전을 위해 일본으로 돌아갔다.

엔초 페라리(2002년). 이 시대 최고의 슈퍼카다

일본에서 태어난 오쿠야마는 일본에서 학업을 마쳤으며 전공은 그래픽 디자인이었다. 그 역시 자동차에 대한 열정이 컸고, ACCD로 유학을 떠난다. 첫 직장은 GM, 잠시 포르쉐에서도 일했으며 다시 GM으로 돌아왔다. 후에 피닌파리나로 옮겨 디자인 디렉터가 된다. 피닌파리나 시절 많은 모델을 디자인했는데, 마세라티 콰트로포르테와 함께 유명한 ‘엔초 페라리’는 그의 역작 중 역작으로 평가받는다. 대표작으로는 1997년 푸조 노틸러스, 2005년 마세라티 버드케이지, 1997년 피닌파리나 메트로쿠보, 2000년 페라리 로싸 등이 있다. 그의 작품은 도심형 컴팩트카부터 미드 엔진 슈퍼카까지 다양하다.

피닌파리나 시절 켄 오쿠야마의 엔초 페라리 스케치

그와 나는 각자의 영역에서 비슷한, 가끔은 새로운 분야의 디자인에 매진했고, 세월이 흘러 다시 그와 같은 직장에서 일하게 되었다. 이번에는 자동차디자인 스튜디오가 아닌, 교육기관이다. 켄 오쿠야마가, 내가 교수로 근무하고 있던 ACCD의 학과장으로 오게 된 것.

람보르기니 아벤타도르 기반의 ‘코드 0’

현재 켄 오쿠야마는 일본에서 디자인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그의 최근 작품 중 나에게 가장 깊은 인상을 준 모델은 람보르기니 아벤타도르 기반의 ‘코드 제로’(Kode 0). 람보르기니 쿤타치에 대한 오마주로 1970년대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특히 하나의 라인처럼 보이며 앞쪽 펜더까지 뚝 떨어지는 윈드실드가 인상적이다. 역동적이며 대담한, 켄 오쿠야마만이 그릴 수 있는 대담한 터치를 생생히 확인할 수 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가격은 약 150만 달러(약 18억 원, 물론 기본이 되는 차값은 뺀 가격이다). 참고로, ‘코드 57’은 페라리 599를 베이스로 했다.

페라리 599를 베이스로 한 ‘코드 57’

그리고 이제, 그는 자동차디자인에만 머물지 않는다. 디자인 범위를 넓혀 주문형 슈퍼카부터 신칸센 열차, 농기구, 선글라스도 디자인하고 있다. 현재는 일본 JR(Japan Railway)사와 콜라보레이션을 하고 있다고. ‘시카시마호’라 불리는 럭셔리 침대열차도 그의 작품이다. 철로 위의 부티크 호텔, 레스토랑이라 불릴 정도로 대단한 디자인이다. 특히 옆에 만든 삼각형 윈도 패턴이 미래지향적인 스타일이다.

그는 슈퍼카에서 기차, 그리고 아주 섬세한 패션안경에 이르기까지 자유자재로 디자인하는 최고의 디자이너다. 그의 디자인 유연성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시카시마 트레인의 럭셔리한 실내. 켄 오쿠야마가 디자인했다

최근 상하이에서 그를 만났다. 우리들 대화는 어느새 요즘의 디자인 트렌드, 그리고 앞으로의 디자인 방향을 좇고 있었다. 전기차, 신소재, 신기술, 그리고 퓨처 모빌리티…. 대화의 주제는 수시로 변했고, 끝도 없었다.

그는 한 곳에 머무르는 디자이너가 아니라 항상 앞으로 나아가는 디자이너임을 새삼 느꼈다. 내가 그를 존경하는 이유이기도 하고.

자동차 칼럼니스트 임범석 (전 미국 ACCD 디자인학과 교수)

임범석 칼럼니스트 : 미국 ACCD를 졸업하고 GM 및 혼다에서 디자이너 생활을 했다. 이후 한국인 최초로 ACCD 교수를 역임하며 미래 자동차업계를 이끌어갈 인재를 양성했다. 최근 중국으로 활동무대를 넓혀 글로벌 디자인 컨설턴트로 활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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