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터뷰] 제네시스 G80, 2만km 사용기

조회수 2018. 10. 4. 16:5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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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엔카매거진의 기자입니다. 기자의 주 업무 중 하나는 인터뷰입니다. 이번에는 제네시스 G80 오너를 인터뷰하기로 했습니다. 한데 저는 제네시스 G80를 갖고 있습니다. 제 차는 2017년 6월에 출고해 2만3,000km 탔습니다. 이 정도면 ‘G80 인터뷰이’로서 훌륭한 조건일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제가 저 스스로를 인터뷰하기로 했습니다. 살짝 ‘병맛’스럽지만 셀프 인터뷰를 줄여 [셀터뷰]라는 꼭지명도 붙였습니다. 10개의 문답 형태로 정리한 제네시스 G80 1년/2만km 사용기, 아래에 적어 보겠습니다.

 

Q1) G80 이전에 탔던 차들은 무엇인가?
대부분 스포티한 차들이다. 현대 투스카니를 4년 넘게 탔고 제네시스 쿠페는 2.0과 3.8을 모두 가져 보았다. 토요타 86 전기형과 후기형 각각 1대, BMW F30 3시리즈, 포르쉐 981 박스터도 탔다. 지금은 BMW M2와 미니 쿠퍼를 갖고 있다. 이런 이력은 내가 스포티한 차를 좋아한다는 것을 방증한다.

 

Q2) G80는 스포티한 차가 아닌데?
이 차는 나의 출퇴근을 함께한다. 출퇴근할 때는 ‘스포티’라는 가치가 필요 없다. 성능이고 디자인이고 어쩌고, 다 중요하지 않다. 출퇴근에는 오직 편한 게 최고다. 출퇴근용 자동차로서 ‘우리나라에서 파는 차 중 가장 편한 차’를 찾아 보라. 자연스레 G80가 떠오를 거다. 내가 그랬듯이.

 

Q3) ‘편하다’는 게 구체적으로 무슨 뜻인가?
“타면서 신경 쓸 게 없다”는 말이다. G80는 AS 기간이 5년이다. 엔진과 변속기뿐만 아니라 모든 부품을 5년 동안 무상으로 고쳐준다. 소모품 교환도 공짜다. 사업소 예약은 오래 걸리지만 곳곳에 널린 ‘블루핸즈’를 통하면 당일 수리도 가능하다. 수입차에 비해 눈에 덜 띈다든가 눈치가 덜 보인다는 점도 마음 편하다. 중고차 값을 높게 받을 수 있고 보험료가 싼 것도 메리트다.

 

Q4) G80는 연비 나쁘기로 유명하다. 실제로 어떤가?
맞다. 지금까지 누적 연비가 9.1km/L다. 기름 많이 먹는 편이다. 1년 동안 G80의 주유비로 450만 원 정도가 들었더라. 그런데 이는 G80가 선사하는 ‘쾌적함’에 대한 대가라고 생각한다. 가령 비즈니스 클래스는 이코노미 클래스의 2배에 이르는 돈을 내야 한다. 대신 이코노미보다 훨씬 쾌적하다.

비슷한 논리로 나의 쾌적한 출퇴근을 위해 9km/L의 연비를 납득할 수 있다. 결정적으로 비즈니스 클래스는 단 한 번의 여행을 좌우한다. 반면 출퇴근은 일단위로 벌어지는 사회생활의 시작과 끝을 함께한다. 그러므로 ‘쾌적성’이 더욱 중요하다고 본다.

 

Q5) 수입차 좋은 거 많은데 왜 G80 샀나?
직업 상 자동차를 풍부하게 경험하다 보니 차 고르는 기준이 생겼다. 나를 만족시키는 건 6기통 이상의 가솔린 엔진이었다. 다행히 G80는 V6 3.3L 가솔린 엔진이 기본이다. 그럼에도 5천 만~6천 만원이면 손에 넣을 수 있다. 하지만 6 실린더 품은 메르세데스 벤츠 E400나 BMW 540i는 1억 원 가까이 돈 내야 한다. G80보다 차도 작다. 결국 돈이 문제다. 이런 저울질을 하다 보면 이 차를 고를 수밖에 없었다.

 

Q6) “왜 흉기차 타냐”는 질문 안 받나?
인터넷에서라면 몰라도 현실 세계에서 그럴 일은 없다. 실제로 먹고 살다 보면 웬만한 현대차 사는 것도 만만치 않은 일이지 않은가. 나도 급식 먹을 때는 평생 현대차 탈 일 없을 줄 알았다. 그런데 처음 사회생활 시작했더니 그랜저 타는 임원들이 그렇게 대단해 보이더라.

 

Q7) 에피소드는?
대리운전 불러서 뒷자리 앉았다. 직접 운전할 때보다 훨씬 편했다. 잠시나마 회장님 된 기분이었다. 동승자들 역시 조수석에서는 별 말 없는데 뒤에 타면 칭찬 많이 한다. “얼마짜리냐”는 질문도 뒷자리 승객에게만 받아 보았다. 어떤 사람은 뒤에 타더니 “떠들면 안 될 것 같다”고 했다. 도서관처럼 너무 조용해서라고.

 

Q8) 잔고장 같은 건 없었나?
전혀 없었다. 여전히 새 차 같다. 사실 전에 탔던 그랜저 HG는 1만km 넘기면서 노킹이 엄청 심해졌었는데 G80는 멀쩡하다(이게 당연한 건데). 변속기 질감도, 승차감도, 정숙성도 새 차 그대로다. 대신 가끔씩 파노라마 선루프에서 찍찍거리는 잡소리가 난다. 그럴 때는 '야옹' 한다.

 

Q9) 단점 3개를 꼽아 달라.
우선 필요 이상으로 큰 감이 있다. 서울 시내의 낡은 건물 주차장은 아예 못 들어간다. ‘퍼시픽 타워’에 한 번 진입했다가 정말 울 뻔 했다. ‘HSBC 빌딩’은 아예 시도도 안 해봤다. 골목길도 웬만하면 피한다. 이럴 줄 알았으면 어라운드 뷰 옵션 넣는 건데.

둘째는 이미지다. 장년층이나 임원급이 많이 타다 보니 내 나이(30대 중반)와 안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외장까지 인도코끼리 색이어서 이따금 아빠차 몰고 다니는 기분이다. 호텔리어가 운전석이 아니라 조수석 뒷자리 문을 열려고 했을 때도 '차를 잘못 고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인테리어. 너무 구식이다. 현대차는 인테리어에 많은 돈을 투자할 필요가 있다. G80뿐만 아니라 현대차 인테리어 대부분이 구닥다리 같다. 내 G80에서 가장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바로 실내 디자인이다. 요즘은 종로구 사무실도 이런 식으로 인테리어 안 한다.

 

Q10) 차세대 G80에게 바라는 점은?
일단 좋은 점들을 그대로 가져갔으면 한다. 가령 디자인을 크게 틀지 말았으면 좋겠다. 지금 익스테리어가 너무 마음에 든다. 그런데 스파이샷 보니 많이 바뀌더라. 결국 쓸 데 없는 바람이 될 터다. 기본형의 6기통 엔진 라인업도 유지했으면 좋겠다. 하지만 이 역시도 4기통 2.5 터보가 V6 3.3을 대체한다는 소문이다.

사실 차세대 모델에 바라는 건 경량화나 연비 개선이 아니다. 나를 포함해 G80 타는 대개의 사람들은 의외로 그런 데에 관심이 적다. 뭐, 좋은 연비나 가벼운 보디 같은 건 다른 차에서 누리면 된다. 그런 게 아쉬우면 BMW 사는 게 낫다. 요즘 520i는 프로모션이 1,000만 원 이상이어서 5,000만 원 초반에 가질 수 있다.

현대는 G80의 장점을 잘 살려야 한다. '제네시스'로 브랜드를 분리했으면서 차는 여전히 현대차 전시장에서 파는 건 앞뒤가 안 맞는다. 전용 AS망도 확충해야 한다. 현대 브랜드보다 돈 더 내고 샀는데 사후 서비스는 거의 같다. 일산 서비스센터가 그나마 현대와 제네시스가 분리되어 있을 뿐이다. 브랜드 가치를 끌어올릴 만한 활동을 지금보다 몇 배 열심히 해야 할 거다. 이 시장에서는 자동차 자체의 상품성도 중요하지만 브랜드 경험이 더욱 중요하다.

현대는 G80 차주들이 “그거 어차피 현대차 아니냐”는 소리를 듣게 하면 안 된다. 그러지 않기 위해서 무얼 해야 하는지 현대는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이제는 그들이 감지한 사실을 재빨리 실행해야 할 때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제네시스 브랜드를 이탈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나 역시도 그런 마음이 슬슬 들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정상현 기자 jsh@encarmagazin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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