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페라리 V8 듀오와 보낸 한여름의 꿈

이세환 입력 2018.08.10 14:0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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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력한 페라리 V8 터보 듀오와 함께 짜릿한 하루를 보냈다. 페라리가 준비한 푸짐한 만찬에 배가 꺼질 틈이 없었다

뜨거운 여름의 한가운데, 하염없이 권태로운 나날을 보내던 중 페라리에서 눈이 번쩍 뜨일 만한 제안을 하나 전해왔다. 페라리의 V8 터보 듀오를 타고 신나게 투어링을 즐긴 뒤, 내친김에 서킷까지 돌아보지 않겠냐는, 화끈한 제안이었다.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페라리가 준비한 V8 듀오는 GTC4루쏘 T와 488 스파이더. 성향이 정반대에 가까운 두 모델을 고른 이유는 우리의 일정 때문이었다. 사실, 일정이 생각보다 꽤 빡빡했다. 아침 8시에 페라리 청담 전시장에서 출발해 하루 종일 차를 탄 뒤, 다시 청담 전시장으로 돌아오면 오후 5시가 넘는 스케줄. 보나 마나 온종일 차를 탈 게 뻔했다. 그것도 600마력을 훌쩍 뛰어넘는 강력한 슈퍼카들과 함께 말이다.

아침 일찍부터 서두른 탓에 정신은 또렷했지만, 몸은 미처 제대로 깨어나지 않았다. 그래서 다른 기자에게 운전을 맡기고 냉큼 GTC4루쏘 T의 뒷좌석에 올라탔다. 페라리 최초의 4인승 V8 터보 모델의 뒷좌석에서 여유롭고 느긋하게 여정을 즐길 일이 얼마나 있겠는가.

사실, 작년 4월에 인제 스피디움에서 GTC4루쏘 T 미디어 시승회가 열렸을 때, 잠깐이나마 뒷좌석에 앉아 시승한 적이 있다. 하지만 지금 달리고 있는 평탄한 고속도로가 아니라, 좌우로 휘감기는 코너와 심한 고저 차로 유명한 인제 서킷 위에서였다. 빠른 가속과 제동, 방향 전환에 내 몸은 쉼 없이 요동쳤고 천장을 뒤덮은 파노라마 선루프를 감상할 틈조차 없이 손잡이만 꽉 붙잡고 있었다.

뒷좌석 버킷 시트에 몸을 파묻고 뻥 뚫린 하늘을 감상하는 호사를 누렸다

지금은 다르다. 차 이름에 ‘고급스러움’이란 뜻의 이탈리아어 ‘루쏘(Lusso)’를 붙일 만큼 고급 소재로 치장한 슈팅 브레이크의 뒷좌석은, 밖에서 보기와 달리 한없이 편하고 아늑하다. 뒷좌석에도 체형에 맞춘 버킷 시트를 갖다놓아서 오랫동안 앉아 있기에 충분하다. 숨길 수 없는 마라넬로의 피가 흐르기에 차체는 낮지만, 뒷좌석을 넘어 트렁크까지 뚫린 창문과 머리 바로 위까지 드넓게 펼쳐진 파노라마 선루프 덕분에 개방감은 끝내준다. 북상하는 장마전선 때문에 요 며칠 비가 오락가락했지만, 때마침 날씨는 맑았고 시원스럽게 푸르른 하늘이 유리창 너머 가득 펼쳐졌다.

뒷좌석에 앉아도 저 멀리 보닛 아래 안긴 3.9ℓ V8 터보 엔진의 매력적인 음색을 즐길 수 있을까 싶었는데, GT 성향을 강조하기 위해서인지 꽉꽉 틀어막은 방음 성능만 느껴야 했다. 그게 아니라 다른 기자가 너무 살살 운전한 탓일까? 고속도로에서 벗어나 국도로 접어든 뒤, 운전석을 차지했다.

여느 페라리와 다름없이 스포티하고 고급스럽다

샛노란 배경 속 박차고 오르는 말이 눈앞에 있다면, 흥분을 가라앉히기 쉽지 않다. 엔진 시동 버튼과 마네티노 다이얼, 칼날처럼 솟은 패들 시프트가 한데 모여 완성한 다재다능한 페라리 스티어링 휠을 잡고 마음을 가라앉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나도 모르게 패들 시프트를 잡아당기며 페라리 사운드의 지휘자를 꿈꾸고야 만다.

터보 엔진이란 생각이 안 들 만큼 반응은 잽싸고 자연스럽게 속도계 숫자를 더한다. 엔진 회전수와 기어 단수에 따라 토크를 정교하게 조율하는 가변 부스트 매니지먼트 시스템 덕분이다. 여기에 웬만한 프로 드라이버보다 빠르게 변속하는 게트락 F1 듀얼 클러치 변속기가 어울려, 머리로 생각하는 것보다 빠르게 속도가 올라간다.

4인승, 4개의 테일램프와 머플러 팁, 4륜구동, 4륜 조향

그보다 인상적인 건, 흥에 취해 스로틀을 한껏 열어도 떨쳐낼 수 없는 안정감. 2990mm에 달하는 긴 휠베이스의 영향도 있지만, 후륜구동 바탕의 4륜 조향 시스템을 곁들여 고속에서의 직진 안정성을 한껏 높인 효과다.

GT 성향에 맞게 부드럽게 세팅한 브레이크. 그래도 강력하다

추가적으로, 운전자 모르게 최상의 접지력을 확보해주는 자세 제어 장치인 3세대 사이드 슬립 앵글 컨트롤도 빼놓을 수 없는 요소. 인제 스피디움 가까이 이르러 진입한 좁은 산길에서도 긴 휠베이스를 잊고 스티어링 휠을 마음껏 돌릴 수 있게 도와주는 아이템이다. 그야말로 4명이 편안히 앉아 즐길 수 있는 최고의 GT다.

먼 길을 달려 도착한 인제 스피디움의 트랙 위에서 우리를 반긴 건 488 스파이더. 모터스포츠에서 시작한 페라리의 전통적인 레드 컬러, 로쏘 코르사를 덧입은 경주마 한 마리가 숨을 죽이고 있었다. 488 스파이더가 국내에 처음 등장했을 때 페라리는 특색 컬러로 청명한 하늘빛의 블루 코르사를 내세웠지만, 페라리 하면 역시 강렬한 로쏘 코르사를 빼놓을 수 없다.

트랙을 달리는데 왜 쿠페인 488 GTB가 아니라 오픈톱 모델인 488 스파이더냐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페라리라면 상관없는 얘기다. 페라리 엔지니어들은 488 GTB와 같은 수준의 차체 강성을 위해 알루미늄 합금과 마그네슘 등을 결합해 만든 스페이스 프레임 섀시로 488 스파이더의 틀을 마련했다.

페라리가 자랑하는 접이식 하드톱은 일반 소프트톱보다 약 25kg이나 가볍고, 이를 488 스파이더에 달기 위해 가장 효율적인 공력 성능을 이뤄냈다. 차체를 타고 넘는 공기가 늑골 구조의 엔진 커버로 향하도록 설계한 플라잉 버트레스와, 다운포스와 냉각을 위해 양옆에 뚫어놓은 그물망 흡기구 등이 그렇다. 물론, 488 GTB에서도 소개한 차체 하부의 와류 발생 장치나 블로운 스포일러도 여전하다. 공기역학을 고려해 빚어낸 예술적인 디자인은 지금의 페라리를 있게 한 핵심적인 기술 중 하나. 데뷔한 지 얼마 되지 않은 GTC4루쏘보다도 조각칼로 그려낸 듯한 488 스파이더의 매끈하고 우아한 외모에 더욱 눈길이 가는 이유다.

CT OFF, ESC OFF까지 선뜻 돌리기가 쉽지 않다. 그 뒤로는 짜릿한 신세계가 열린다

488 스파이더에 올라 바람을 가르며 트랙을 질주했다. 마네티노는 기본 모드인 스포츠. 우리에게 허용된 건 다음 단계인 레이스 모드까지. GTC4루쏘 T와 같은 F154 계열의 V8 터보 엔진이 내뿜는 최고출력 670마력의 마지막 한 방울과 끝을 알 수 없는 섀시의 잠재력을 온전히 이끌어내려면 레이스 모드 너머까지 마네티노를 돌려야 했지만, 안전을 위한 최후의 보루를 남겨둔 셈이다.

코너에서 부드럽고 선명한 궤적을 그리는 게 쉽다

붉게 물든 경주마를 다스리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고? 천만의 말씀. 요즘 페라리는 전문 드라이버가 아닌 일반인도 쉽게 다룰 수 있을 만큼 안정적이다. 더 많은 사람이 더 쉽게 페라리를 경험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덕분. 물론, 기본 운전 실력이 뒷받침돼야 하고, 사이드 슬립 앵글 컨트롤의 고삐를 놓지 않아야 한다는 조건이 따라야 한다.

488 스파이더는 정말 과하게 안정적으로 트랙 위를 달렸다. 오차 없는 제동력을 발휘하는 카본 세라믹 디스크 브레이크를 일부러 덜 밟고 코너에 빠르게 진입해 스티어링 휠을 돌려도 안전하게 돌아나가며, 헤어핀 깊숙한 곳에서 스로틀을 왈칵 열어도 꽁무니를 살짝 흔들기만 하지, 별일 없다는 듯 속도를 올렸다.

예리한 제동력의 일등 공신

자세 제어 장치의 개입이 강한 스포츠 모드라 그런 줄 알았지만, 레이스 모드에서도 반응이 예리하고 빨라져서 재미를 돋울 뿐 크게 바뀌는 건 없다. 과하게 욕심내며 박차를 가하지 않는 이상, 488 스파이더는 길길이 날뛰는 야생마가 아니라 훌륭하게 조련된 경주마나 다름없다. 불과 4바퀴밖에 트랙을 돌지 않았지만, 귓가로 들려오는 터빈 소리를 따라 아드레날린이 온몸으로 퍼지기엔 충분했다.

페라리가 488 GTB가 아니라 스파이더 모델을 가져온 이유는 따로 있었다. GTC4루쏘 T를 타고 왔던 길을 되돌아가면서 목청 좋은 V8 터보 엔진의 배기 사운드를 마음껏 즐겨보라는 메시지였다. 이토록 달콤한 제안을 뿌리칠 이가 어딨겠는가. 제대로 달리기 전에 버튼을 14초 동안 눌러 하드톱을 열자, 강원도의 상쾌한 바람이 귀밑까지 몰려와 살랑거렸다.

지붕을 활짝 열고 뜨거운 태양과 시원한 바람을 누려라!

3단계로 조절할 수 있는 윈드 디플렉터를 최대한 내리자 목덜미를 간지럽히던 산들바람이 파워 냉방 모드로 바뀌고, 본격적인 페라리 사운드트랙이 들려온다. 페라리가 제시한 선율에 내 멋대로 음을 더하고 길이를 늘였다. 기타 줄을 튕기듯 패들 시프트를 튕기자 탄력적으로 오르내리는 태코미터 바늘. 그래, 페라리 오픈카가 선사하는 이 기분에 취해 넋을 잃고 돌아가라는 뜻이로구나. 그렇게 하룻밤 꿈만 같은 시간이 속절없이 흐르고 있었다.

Ferrari GTC4Lusso T

Price 약 4억 원

Engine 3855cc V8 가솔린 트윈터보, 610마력@7500rpm, 77.5kg·m@3000rpm

Transmission 7단 DCT, AWD

Performance 0→100 3.5초, 320km/h, 7.0km/ℓ, CO₂ 251g/km

Weight 1895kg

Ferrari 488 Spider

Price 약 4억 원

Engine 3902cc V8 가솔린 트윈터보, 670마력@8000rpm, 77.5kg·m@3000rpm

Transmission 7단 DCT, RWD

Performance 0→100 3.0초, 325km/h, 7.5km/ℓ, CO₂ 233g/km

Weight 1595kg


 이세환 사진 김범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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