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 일장춘몽(一場春夢)..페라리 488 스파이더

조회수 2018. 10. 10.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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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라리 488 스파이더

[인제=데일리카 박홍준 기자] 평소 기상 시간보다는 20분 정도 일찍 일어나 씻었다. 끄지 못한 알람과 리마인더가 울렸고, 휴대폰을 보다 흠칫 해서 얼굴을 살짝 베였다.

‘페라리 488 스파이더 시승 : 인제 스피디움’. 반복되는 출근과 집의 반복에 까맣게 잊고 있었다. 잠깐의 일탈을 경험하는 날이었다는 걸.

한편으론 긴장되는 건 사실이었다. 아무리 엔트리 모델이라고 하더라도, 페라리는 페라리다. 주행 코스는 심지어 국내에선 고저차가 높기로 악명 높은 인제 스피디움 아닌가.

■ 보면서 줄담배만 피웠다

아름답다는 건 부정할 수 없다. 예술품 같아서, 한참을 바라보게 된다. 아니, 예술품이다. 실제로 새빨간 488 앞에 쪼그려 앉아 한참 줄담배를 피웠다.

페라리 488 스파이더

모든 게 미적 요소만을 고려해 빚어진 디자인 같지만, 라인 하나, 면 하나, 공기역학과 타협하지 않은 부분은 없다. 때문에 이전의 페라리 스파이더 라인업 대비 개선됐다.

전면부의 깨끗하고 매끈한 표면은 후면부로 갈수록 복잡해지고 울룩불룩해진다. 그럼에도 특유의 슬림한 자세는 잃지 않지만, 작은 체구 속 잔근육을 숨기고 있는 아이돌 가수 같은 모습의 느낌을 연상케 하는 형태다.

하드톱이 적용되는 컨버터블 모델이지만, 외관 디자인은 기존의 488 GTB와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톱을 닫은 상태에서도 외관을 해치는 모습은 찾기 어렵다.

이는 공기 흐름을 엔진 커버로 향하게 하는 플라잉 버트레스와 늑골구조의 엔진 커버, 메쉬 그릴이 장착된 역동적인 형태의 에어 인테이크 등을 통해 잘 나타난다.

디자인을 장황하게 설명했지만, 낮게 깔린 차체와 특유의 강렬한 레드 컬러, 독보적인 페라리 특유의 존재감은 좋다 나쁘다를 평가할 수준은 아니다. 그냥 가만히 한참을 바라보며 심취해 있으면 된다.

페라리 488 스파이더

면허가 없어도, 이 차를 운전할 자신이 없어도, 차 한 대를 주차할 만한 넉넉한 개인 공간이 있다면, 예쁜 조명 아래에 전시해두고 친한 친구들을 집에 초대하자. 그리고 맥주 한잔 하며 담배 한 대 태우며 시간을 보내자. 그리고 밤새 이 차의 아름다움을 논하는 것이다.

아름다움을 느끼는 누군가를 허락 없이 빤히 바라본다면, 그건 범죄다. 페라리는 그런 걱정 없이 바라봐도 된다. 무엇보다 그 못지 않게 아름답고 매혹적이다.

람보르기니가 남자의 본성을 자극하는, 마초적인 감각을 뿜어낸다면, 페라리는 보다 감성적인 무언가를 자극하는 느낌이다. 아름다운 것에 대한 집착을 건드는 느낌이랄까.

■ 당황스러움의 연속

인테리어 구성은 단촐하지만, 가죽의 컬러와 질감, 운전자의 방향으로 확실히 틀어져 있는 센터페시아 디자인은 차의 목적이 어떻고 무엇인지를 가늠케 한다.

페라리 488 스파이더

철저히 달리기에만 집중이 되어있을 줄 알았는데, 비싼 값은 나름대로 한다. 심지어 애플 카플레이와 후방카메라 까지 지원한다. 이는 클러스터 내의 디스플레이로 송출되는데, 10인치대의 디스플레이를 갖춘 근래의 고급차와는 확연한 성격의 차이를 보여준다.

중앙 송풍구 하단에 자그마하게 자리 잡은 애플 카플레이 버튼이 독특하다. 21세기의 첨단 기능이 아날로그 방식으로 구현되어 있다는 것, 어색하기가 짝이 없지만, 페라리는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고객을 위한 ‘배려’를 한 것이리라.

처음 타보는 페라리는 낯선 게 한 두 개가 아니다. 시동 버튼이 스티어링 휠에 있다는 건 알겠는데, 방향 지시 ‘버튼’과, 와이퍼 조절 ‘버튼’도 스티어링 휠에 붙어있다.

쉽게 말해, 우리가 흔히 쓰는, 칼럼식 레버는 페라리에서 찾아볼 수 없다. 차에서 흔히 작동하는 버튼들은 거의 다 스티어링 휠에 모여 있다. 차에 처음 앉아 이런 기능들을 찾느라, 순간 초보운전자가 되어버렸다.

이 정도의 실수는 애교였다. 시트포지션을 맞추는 과정에선 보닛을 열어버렸기 때문. 스티어링 휠의 높낮이를 조절하는 레버를 찾는데, 습관적으로 스티어링 안쪽으로 손을 집어넣어 레버를 당기니, ‘텅’ 하며 차량 바깥에서 무언가가 열린다. 정말 부끄러웠다.

페라리 488 스파이더

기어도 레버가 아닌 버튼식. P, R, N, D가 아니다. 두 개의 패들 시프트를 동시에 당기면 중립, 오른 쪽 한 개를 당기면 1단으로 옮겨진다. 오른 쪽 아래엔 R과 수동 변속 모드의 S, 자동 변속 모드의 오토 버튼만이 있다. 주차 시엔 기어를 중립에 둔 뒤 전자식 파킹 브레이크를 체결해야 한다.

“처음엔 불편한데, 적응되니까 편해”라는 아이폰 사용자들의 변명처럼, 익숙해지면 편하다는 게 페라리 관계자들의 설명이지만, 페라리를 익숙해질 만큼 자주 탈 사람이 세상에 얼마나 될까. ‘캐비어가 좀 비리긴 하지만, 먹다 보면 익숙해져요’ 만큼이나 냉소적이지 않은가.

■ “선배, 열선시트 켜놨어요?”

한 바탕 거사를 치르고 서킷으로 진입했다. 주행 모드는 스포츠. 흥미롭게도, 다섯 가지 주행 모드를 지원하는 488 스파이더에는 ‘컴포트 모드’가 없다.

젖은 노면을 주행할 때 사용하는 ‘웻’(WET)은 있지만, 일상 주행 시에 사용되는 모드는 ‘스포츠’다. 뒤이어 ‘레이스’, ‘CT 오프’, ‘ESC 오프’ 순으로 전자 장비의 개입이 느슨해진다.

페라리 488 스파이더

인제 스피디움에 대한 경험은 적잖았고, 고출력 차도 처음은 아니었지만, 주행은 스포츠 모드 상태에서 하기로 했다. 차량의 한계치 까지 몰아붙여볼 목적도 없는데다, 페라리의 성능을 끝까지 끌어내 탈 수 있는 사람은 국내 아니 전 세계에서도 손에 꼽을 것이리라.

패들시프트를 몇 번 아래로 당겨내니 페라리 특유의 8기통 사운드가 귀를 긁어댄다. 터보 엔진으로 다운사이징돼 순수성을 잃었다고 비난받지만, 익히 아는 이탈리아산 종마의 그 소리임은 확실하다.

488 스파이더에 적용된 3.9리터 V8 터보엔진은 최고출력 670마력, 77.5kg.m의 최대토크를 발휘한다. 최고출력은 8000rpm에서, 최대토크는 3000rpm에서부터 쏟아져 나온다. 마력은 전작의 458 이탈리아보다 100마력, 토크는 22.5kg.m이 올랐다. 어지간한 소형 SUV 한 대 분의 출력이다.

488 스파이더보다 빠른 488 피스타가 나왔고, 12기통 라인업의 이름값 한다는 ‘슈퍼패스트’가 있지만, 488도 결코 무시할 녀석은 아니다. 이전 세대의 퍼포먼스 사양인 458 스페치알레의 피오라노 랩타임 보다도 1초가 빨랐기 때문.

가속 성능도 인상적이다. 488 스파이더의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h까지의 가속 시간은 단 3.0초, 200km/h까진 8.3초에 달한다. 200km/h까지의 가속 성능은 람보르기니 아벤타도르의 8.6초 보다도 빠르다.

페라리 488 스파이더

첫 랩에서 저속 주행을 마친 뒤 마주한 직선주로, 패들시프트를 고회전대까지 튕겨내자 스티어링 휠에 내장된 LED가 마치 F1 콕핏을 연상케 하듯 변속을 지시하는 빨간 불을 깜빡인다. 액셀러레이터에 체중을 싣고 패들시프트를 팅겨내니 벌써 직선 주로가 250미터 앞이란다. 아득하다.

과장은 아니다. 시공간을 뛰어넘는다는 느낌이 이런 기분인가 싶다. ‘와 진짜 소리 좋네’ 하며 엔진음을 감상하는 순간도 잠시, 곧장 제동에 들어가야 했다. 자칫 감속 타이밍을 놓쳤다간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브레이크만으로 제동을 시도하던 찰나의 순간, 미세하게 뒤가 흐르는 게 느껴졌고, ‘아차’ 싶은 순간 엔진 브레이크로 제동을 더하고 스티어링에 보타를 가하니 차는 점차 안정을 되찾는다. 불과 몇 초가 되지 않는 순간이었지만, 순간의 속도를 즐기다가 큰 일을 당할 뻔 했다.

F1의 노하우가 집약된 페라리의 달리기 성능은 딱히 무언가를 더하고 덜하며 평가할 여지는 없다. 운전자의 의지보다도 훨씬 기민하고 민첩하게, 원하는 만큼 충분한 거동을 해준다. 차는 지치지 않는데, 운전자가 지치게 된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이 차가 코너를 돌아 나갈 때 특유의 느낌을 설명할 방법이 없다. 스티어링을 돌리는 만큼 차가 선회하는데, 그냥 원하는 방향 그대로 롤링 없이 그대로 이동한다. 다만, 속도 대비 엄청난 횡가속력을 억지로 뚫고 이동하는 듯 한 감각,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과 같은 느낌이다.

페라리 488 스파이더

때문에 아웃, 인, 아웃이라는 서킷 공략의 가장 기본적인 법칙에 따라 운전을 하는 것도 매우 치열하다. 그래서인지 몇 바퀴를 돌고 나면 진이 다 빠지기 일쑤다.

단순히 속도가 빨라서 재미있는 차가 있고, 핸들링 특성이 독특해 치열한 운전이 가능하기에 재밌는 차가 있다고 생각한다. 페라리 488은 속도도 빨랐고, 운전도 치열했다. 그러니 운전이 두 배는 재밌을 수 밖에.

여담이지만, 한참을 운전하고 피트로 복귀하니 땀이 비오듯 쏟아졌다. 에어컨을 가동하며 주행중인 상황이었음에도 말이다. 등은 잔뜩 젖어있었다.

설마, 동승한 선배 기자가 장난으로 열선 시트를 켜놓은 건 아닐까 했더니, 시승 차량은 심지어 열선 시트가 적용된 모델도 아니었다.

■ 페라리 488 스파이더, 차가 아닌 ‘꿈’

페라리 488 스파이더

시승기에선 차량의 시장 경쟁력으로 대표되는 가격, 동급 차종 대비 장단점을 언급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페라리를 언급하며 경쟁 차종과 가격을 비교하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연비가 나쁠지언정, 페라리를 살 사람들은 휘발유 가격이 오르건 말건 늘 주유소에서 ‘가득’을 외치는 사람일 것인데다, 프로모션 조건이 별로여서, ‘가성비’가 좋지 못해서 구매를 망설이는 사람은 없을 것이리라 생각된다.

그래서일까, 인상적인 자동차를 시승해보면 가끔은 ‘사고싶다’는 생각을 갖지만, 페라리 488을 시승하며 그 정도 까지 생각이 진척되진 않았다. 3억8300만원 이라는 ‘기본’가격표를 보고 나서다. 물론 좋은 차라는 사실은 자명하다.

“우리는 차를 파는 게 아니다. 꿈을 파는 것이다.”라던 루카 디 몬테제몰로(Luca Di Montezemolo) 전 페라리 회장의 말처럼, 인제 스피디움에서 경험해본 페라리 488 스파이더는 일장춘몽(一場春夢)과 같았던, 잠깐의 꿈같은 현실이었다.

페라리 488 스파이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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