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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카의 전설, 부가티 이야기

오토티비 입력 2018.12.10 10:37 수정 2018.12.10 11:3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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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년 에토레 부가티가 설립한 초호화 자동차 브랜드
지금은 VW가 상표권 사들여 베이론과 시론 생산

2차대전 이전의 클래식카는 사실 부호들의 취미에 가깝다. 단지 오래된 차가 아니라 역사적인 가치와 희소성, 그리고 독특한 스토리를 품은 클래식카의 가치는 상상을 초월한다. 일례로 단 6대만 남아 있는 ‘부가티 타입41 르와이얄’은 부르는 게 값일 정도.

그러나 이러한 차들은 값을 제아무리 부르더라도 쉽게 살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소장자나 박물관이 사정이 있어 경매 시장에 내놓지 않는 이상 거래가 불가능하다. 그나마 경매 시장에 나오면 추적이라도 가능하지만 개별 접촉으로 거래될 경우 구매자가 누구인지 차의 행방이 어디로 갔는지 알 길이 없다. 이 때문에 부가티 타입41 르와이얄은 한때 삼성의 이건희 회장이 사들였다는 소문이 무성했지만, 실제로 이를 확인할 방법은 없다.

지금은 단종된 브랜드이자 당대에도 비싼 값으로 아무나 살 수 없었던 차, 그리고 생산량도 많지 않아 희소한 클래식카의 가치는 일반인들의 상상을 초월한다. 이러한 클래식카의 대표 모델을 꼽으라면 단연 부가티를 첫손으로 꼽을 수 있다.

부가티 타입41 르와이얄

1909년 에토레 부가티가 설립

“지나치게 아름답다거나 너무 비싸다는 말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 말은 부가티자동차를 설립한 에토레 부가티가 자동차를 만들며 늘 강조했던 말이다. 이 같은 철학을 토대로 에토레 부가티(Ettore Bugatti)와 아들 장 부가티(Jean Bugatti)는 항상 아름다운 디자인의 수많은 경주차와 스포츠카를 만들었다. 단지 아름다울뿐 아니라 기술적으로도 완벽을 추구했고, 그에 걸맞게 값은 늘 당대 최고였다.

창업자 에토레 부가티(왼쪽)와 그의 아들 장 부가티
프랑스 알자스 몰스하임에 자리한 부가티 본사

1881년 이탈리아 밀라노의 예술가 집안에서 태어난 에토레 부가티는 엔지니어링에 대한 천부적인 소질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그의 아버지인 카를로 부가티는 귀족의 성이나 부호들의 저택을 꾸미는 데 주로 사용된 가구를 디자인했다. 이러한 아버지의 영향으로 에토레 부가티는 1909년 프랑스 알자스 몰스하임에서 만든 부가티자동차에 예술품의 감성을 더했으며, 그의 동생 렘브란트 부가티는 조각가가 되었다. 부가티의 로고인 앞발을 든 코끼리 형상 역시 동생 렘브란트가 디자인한 것이다.

1924년 유럽 그랑프리를 위해 만든 타입35 프로토타입
1920년대 부가티는 유럽의 각종 레이스를 휩쓸었다

1924년 유럽 그랑프리를 위해 특별히 제작된 직렬 8기통 2.0L 엔진의 타입35(Type 35) 경주차는 20년대 유럽 내 모든 경주를 휩쓸며 부가티의 명성을 단번에 드높인 모델로 기억된다. 타입35는 특히 드럼 브레이크와 휠이 일체형으로 제작돼 뛰어난 제동력을 발휘했고, 경량화로 무게 대비 출력이 우수한 모델로 평가받았다. 아울러 ‘예술과 기술의 완벽한 조화’라는 부가티의 철학이 잘 반영된 차종으로 지금까지 클래식카 수집가들로부터 고가에 거래될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2년간의 경주에서 1,000번 넘게 우승했고, 1926년에는 유럽 내 그랑프리 12개 경기에서 모두 우승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타입57S Atalante의 아름다운 자태(1937)

타입57도 부가티에게 영광을 안겨준 차다. 에토레 부가티의 아들 장 부가티는 타입 57C를 몰고 르망 24시간 경주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타입57은 지금까지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투어링카 중 하나로 손꼽히는 명차다. 안타깝게도 이를 설계한 장 부가티는 시험운전 도중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단 6대만 존재하는 타입41 르와이얄

부가티 타입41 르와이얄과 장 부가티(1932년)

한편 타입35가 유럽 경주를 휩쓸며 부가티의 기술적 명성이 최고조에 달할 즈음 부가티는 경주와는 다소 거리가 먼 예술적 자동차 만들기에 열중했다. 바로 그 결과물이 ‘타입41 르와이얄(Royale)’이다. 크기나 배기량 등 모든 면에서 초호화 럭셔리 컨셉트를 지닌 타입41 르와이얄은 부가티의 대표적인 최고급 모델로 만들어졌다. 처음부터 왕족이나 부호를 위해 제작된 이 차는 무게 2.5톤, 길이 6.7m, 직렬 8기통 12.7L 300마력 엔진과 3단 변속기가 탑재됐으며, 2단에서 최고시속 145km를 발휘했다. 이 차 역시 그릴 위에는 렘브란트 부가티가 디자인한 코끼리 엠블럼이 달렸다.

렘브란트 부가티가 디자인한 코끼리 엠블럼
부가티 타입41 르와이얄의 아름다운 옆모습

최초의 르와이얄은 1926년 타입41의 프로토타입인 섀시번호 41110이다. 길이 5.4m의 4인승 컨버터블에 직렬 8기통 엔진이 탑재됐다. 당시 프로토타입에 훗날 르와이얄(Royale)이란 차명이 부여된 것은 왕족이 첫 차를 사려 했기 때문이다. 비슷한 초대형 고급차였던 히스파노 수이자는 당시 스페인의 국왕 알폰소 13세의 후원을 받고 있었는데, 알폰소가 부가티 타입41의 첫 구매자였다. 이후 루마니아, 벨기에 국왕이 당시 영국산 최고급차인 롤스로이스 팬텀보다 3배 비싼 가격으로 르와이얄을 구입했다. 이후 르와이얄은 추가로 3대가 생산됐고, 결국 6대를 끝으로 막을 내렸다.

미국 포드 박물관이 보관 중인 타입41 르와이얄 컨버터블

그러나 워낙 호화차라 한 대를 만드는데 제작비와 기간이 상당히 걸려 타입41 르와이얄은 결국 6대만 제작됐다. 섀시 번호에 따라 쿠페 나폴레옹(41110), 쿠페 드빌 바인더(41111), 카브리올레 바인베르거(41121), 리무진 파크 워드(41131), 켈너 카(41141) 등 총 6대가 그것이다. 이들 중 프랑스는 쿠페 나폴레옹과 파크워드 리무진을 자국의 문화재로 등록해 보물로 여기고 있으며, 포드 박물관에 소장된 카브리올레 바인베르거를 비롯해 몇 대가 미국에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타입41 르와이얄 쿠페 드빌 바인더

지난해 미국 서부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피터슨 자동차 박물관에 부가티 타입41 르와이얄이 전시되었다. 1994년 설립된 이 박물관은 200여 대의 차와 함께 자동차 관련 문화와 산업, 디자인 등을 전시하고 있다. 지난해 라라클래식 황욱익 에디터가 이곳을 방문했을 땐 ‘아트 오브 부가티’라는 특별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는데, 단순히 부가티 차량만 전시한 것이 아니라 부가티 가문의 역사와 업적 등에 대해 자세히 소개되었다.

피터슨 박물관에 전시된 타입41 르와이얄 쿠페 드빌 바인더(사진: 황욱익)

이때 전시된 차는 타입35C 그랑프리(1925), 타입46 카브리올레(1930), 타입55 수퍼 스포트(1932), 타입57 벤투(1935), 타입57SC 아틀란틱(1935), 타입57C 아라비스(1939), 타입57C 아타란테(1939) 등이었다. 그리고 1932년에 제작된 타입41 르와이얄도 함께 전시되었다. 이 차는 쿠페 드빌 바인더로, 처음에는 2+2 좌석의 오픈 로드스터 보디였지만 루마니아 왕에게 팔리면서 코치빌더 헨리 바인더에 의해 지금의 모습으로 바뀐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1909년 설립된 부가티는 주로 왕족들이 구매를 할 만큼 대단히 비싼 차를 주로 만들었다. 그러나 제1~2차 세계대전과 대공항, 군주제 폐지 등의 격동을 겪으면서 사세가 급격하게 기울었고, 창업주의 아들 장 부가티의 사망(1939년)과 창업주 에토레의 사망(1947년)으로 회사는 50년대 초 사실상 명맥이 끊겼다. 이후 창업주 가족과 일부 인사들이 회사를 다시 살려보려 했지만 60년대 초 결국 문을 닫았다.

EB110에 이어 베이론으로 부활

부가티 EB110(1991~1995년)

1987년 이탈리아 사업가 로마노 아르티올리가 부가티 상표권을 인수해 람보르기니를 디자인한 마르첼로 간디니 등을 영입, 부가티 EB110을 만들었다. 이 차는 당시 가장 빠른 양산차로 이름을 올렸고, 미하엘 슈마허 등이 타면서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이후 부가티는 조르제토 쥬지아로 디자인의 4인승 컨셉트카 EB112를 발표하기도 했지만 양산에는 이르지 못했고, EB110 역시 100여 대 판매에 그치고 회사가 파산해 1995년 문을 닫았다.

부가티 베이론 16.4(2005년)

이대로 역사 속으로 묻힐 뻔했던 부가티는 1998년 폭스바겐이 상표권을 사들이면서 다시 부활했다. 폭스바겐은 부가티 인수 후 EB118, EB218 등의 컨셉트카를 발표하다 1999년 컨셉트카 18/3 시론을 발표했고, 2005년 드디어 양산차 최초로 시속 400km를 돌파한 베이론을 선보였다. 이후 2016년 후속작 시론을 내놓으며 지금에 이르고 있다.

오토티비 편집팀 사진 부가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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