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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모지에서 살아난 왜건

조회수 2021. 2. 2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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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려진 밥상이 조촐하기 짝이 없는데, 그나마도 볼보가 장악해버렸다


대한민국은 소문난 왜건 불모지다. 아무리 좋은 왜건이라 해도 한국 땅을 밟으면 맥없이 무릎을 꿇었고, 왜건 시장은 자꾸만 쪼그라들었다. 현대자동차 역시 아반떼 투어링, i30 CW, i40과 같은 모델을 내놓았지만 냉담한 반응을 버티지 못하고 결국 쓸쓸히 무대 밖으로 퇴장하고 말았다. 볼보는 왜건이 살아남을 수 없는 척박한 시장에서 우직하고 버티고 버텼다. 그리고 인내 끝에 달콤한 결과를 얻었다.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에서 ‘국산 왜건’을 살 수 없다. BMW 3시리즈 투어링과 푸조 508 SW, 그리고 볼보 크로스컨트리가 전부다. 차려진 밥상이 조촐하기 짝이 없는데, 그나마도 볼보가 장악해버렸다. 왜건의 명가 볼보는 크로스컨트리(V90)에 이어 크로스컨트리(V60)까지 연타석 홈런을 때리며 한국에서도 왜건이 흥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한 우물만 판 집념의 결과인 셈이다. 특히, 크로스컨트리(V60) 판매량은 지난해 기준 96.8% 성장했다. 정상에 올라선 볼보는 마일드 하이브리드(볼보에서 디젤 또는 가솔린 엔진만 달린 모델은 이제 살 수 없다)라는 새로운 카드로 굳히기에 들어갔다.

가솔린 엔진 옆에 48V 마일드 하이브리드를 품은 크로스컨트리(V60)는 눈에 보이는 부분보다 내실을 다지는 데 집중했다. 겉모습은 변한 구석이 없다는 얘기다. T5를 떼어내고 붙인 B5 레터링이 변화의 전부다. 볼보의 상징인 토르의 망치 헤드램프와 크롬으로 감싼 그릴, 아이언 마크, 곧게 뻗은 스웨덴 길이 떠오르는 테일램프 역시 그대로다.

실내로 들어서도 큰 변화는 느껴지지 않는다. 마일드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품고 있다는 걸 알리기 위해 계기판에 표시된 배터리 모양과 시프트레버만 전자식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XC40 B4 인스크립션 트림에도 오레포스 크리스탈 시프트레버가 장착되지만, 크로스컨트리(V60)는 그렇지 않다. 상위 모델인데 크리스탈이 아닌 가죽을 손에 쥐어야 한다는 건 도통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유가 뭘까?

엔진을 깨워야만 볼보가 내세운 새로운 전략을 느낄 수 있다. 마일드 하이브리드 시스템은 일반 하이브리드와 달리 전기모터가 직접적으로 바퀴를 굴리지 않는다. 아이의 걸음마를 돕는 보행기처럼 보조만 해줄 뿐이다. 직렬 4기통 2.0L 터보 심장은 최고출력 250마력, 최대토크 35.7kg·m를 발휘하고, 전기모터가 힘(10kW, 4.1kg·m)을 보탠다. 엔진과 전기모터가 힘을 쏟아내는 구간이 다르기 때문에 터보랙 따위는 느껴지지 않고 경쾌하게 속도를 높인다. 엔진의 힘만 놓고 봐도 결코 부족하지 않다.

마일드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품었다고 이질감이 느껴지지는 않는다. 주행 시 배터리를 충전하는 회생제동도 그렇고, 전기모터에게 도움을 받은 엔진이 바퀴를 굴리는 것도 상당히 매끄럽다. 하지만, 연료효율성은 그다지 감동을 주지 못한다. 대게 하이브리드라는 말이 붙으면 드라마틱한 효율성을 기대하기 마련인데, 크로스컨트리(V60)는 경쾌한 움직임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엔진과 합을 맞추고 있는 8단 자동변속기는 변속 충격은 없으면서 적당히 부드럽고 적당히 빠르게 기어를 바꿔 문다. 서스펜션은 단단하기보다 탄탄함에 가깝게 조율했다. 장거리 이동에도 피로도가 크게 느껴지지 않을 수준이다.

왜건의 불모지에서 크로스컨트리(V60)가 살아남은 이유는 분명하다. 엠블럼만 봐도 믿음직한 안전성, 경쾌한 움직임, 차체에서 느껴지는 강직함, 왜건에 버무린 SUV 특성까지. 지금껏 몰랐던 왜건의 참된 매력을 느끼고 싶다면, 크로스컨트리(V60)에 관심 가져보길 바란다. 다만, 구입하려면 몇 개월 기다릴 인내심이 필요하다.

허인학

사진 박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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