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유리의 진보적 역사와 진화

조회수 2021. 6. 18.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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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바람막이에서 안전과 기능을 모두 고려한 안전 유리로

1987년 1월 1일부터 시행된 ‘자동차 및 자동차 부품의 성능과 기준에 관한 규칙 제34조’ 창유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 우리나라에서는 자동차 앞면 창유리에 접합유리 또는 유리·플라스틱 조합 유리를 사용하도록 정했다. 그 밖의 옆 창문이나 선루프 등에 사용되는 유리 또한 강화유리, 접합유리, 복층 유리 또는 유리·플라스틱 조합 유리 중 하나로 사용해야 한다는 규정을 두었다. 단 컨버터블과 캠핑용 차는 윈드실드만에만 위 법률이 적용된다.

자동차 창유리에 관한 법률이 만들어진 1987년에 등장한 기아 콩코드 (출처: wikimedia commons)

창유리에 관한 법률이 시행된 후 자동차의 앞 유리는 충돌 후 파편이 흩날리지 않도록 약 2mm의 보통 판유리 사이에 합성수지 필름을 삽입해 제작되기 시작했다. 이로써 주행 시 날아드는 돌멩이나 나사, 못 등으로 인한 관통을 최대한 억제했다. 물론 탑승자의 안전에 큰 도움이 되었다는 건 자명한 사실다. 옆 창유리와 문루프 등은 약 3mm의 두께의 보통 판유리를 열처리 가공해 세 배 이상의 강도를 가지도록 제작된 강화유리 등을 사용했다.

일반 유리를 쓴 자동차 창의 파편 (출처: pxhere)

선루프 유리는 강화 유리를 고진공 상태에서 열선 반사 기능이 있는 금속으로 이온 코팅해 채광성을 높인 것이 특징이다. 이는 차내의 분위기를 밝고 화려하게 해 준다. 최근 무슨 이유에서인지 작은 충격에도 선루프 유리가 파손되는 경우가 종종 있어 안전에 각별히 신경을 써야 한다. 자동차의 뒷유리는 성에나 이슬이 끼어 시야가 가려지기도 하므로, 유리 표면에 은판을 코팅한 뒤 열선을 부착해 사계절 쾌적한 시야 확보를 하도록 기능성을 높인 것이 특징이다.

윈드실드의 존재 이유

이렇게 제작된 자동차의 유리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또한 초기 자동차에는 필요하지도 않았다. 최고속도가 시속 16km 정도였던 벤츠 페이턴트 모터바겐에 앉은 탑승객은 풍압에 노출되어도 불편함이 없었다. 천천히 달렸기 때문이다. 엔진 성능이 향상되며 자동차의 주행 속도도 비약적으로 높아졌다. 빠른 차가 나오기 시작하면서 맞바람에 대비할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했다. 운전용 고글이 있었지만, 임시방편의 바람막이여서 불편했다.

윈드실드가 없어 고글이 필수였던 과거의 드라이버 (출처: flickr)

자동차의 바람막이는 탑승객의 시야 확보와 안전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아이템이어야만 했다. 이런 이유로 만들어진 것이 윈드실드(windshield) 즉 우리말로 앞유리창이다. 유리라는 것은 그 당시에도 흔히 쓰는 제품이었다. 건물 등에 쓰는 평평한 창유리를 그대로 사용하여 제조단가도 높지 않고 쉽게 구할 수 있었다. 장점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적당한 강도를 가진 유리는 운전자와 승객의 얼굴로부터 맞바람과 먼지 그리고 비바람 등을 막기에 충분했다. 또한, 제조 기술의 발전으로 불순물을 상당히 제거한 유리는 투명도가 높아 시야 확보에도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초기에는 일부 고급 승용차와 레이싱 카 등에만 채용되었고 양산차에 적용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려 20세기에 들어와서야 쓰이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앞 유리를 단 포드

윈드실드가 자동차에 널리 쓰이기 시작한 것은 1907년부터 세상에 등장한 포드 모델 T 덕분이었다. 이 차는 대량생산방식으로 제작되어 지구촌에 자동차 시대를 연 사실만으로도 위대하고 놀라우며 역사적인 의미가 있다. 이게 다가 아니었다. 자동차 앞 유리의 보편화에 앞장선 모델이기도 했던 것이다. 앞 유리는 당시 100달러를 내면 속도계와 헤드라이트와 함께 따라오는 옵션이었지만, 양산차 최초로 윈드실드를 단 모델이라고 봐도 좋을 듯하다.

파리 미술 공예 박물관에 전시 중인 포드 모델 T (출처: wikimedia commons)

모델 T의 앞 유리는 상하 수평으로 분할되어 있었다. 창문이 오염되면 위쪽 창을 접어 시야를 확보하기 위한 디자인이었다. 이후 1915년부터는 올즈모빌이 세계 최초로 양산차에 윈드실드를 설치해 판매했고, 공기 저항을 줄이기 위해 앞 유리를 뒤로 기울거나 V자 형태로 좌우의 창문을 만든 모델도 등장했다. 지금의 곡면 유리를 상상할 수 없었던 시대였다.

1934 크라이슬러 임페리얼 에어플로우 세단 (출처: wikimedia commons)

여담이지만 1934년에 나온 크라이슬러 임페리얼 에어플로우 CW(Imperial Airflow CW)는 곡면 앞 유리를 최초로 채용했다. 또한 수직으로 분할된 앞창을 레버로 개방하면 시원하고 쾌적한 드라이브를 즐길 수 있었다. 또한 사고 시 탈출구로도 사용할 수 있었다. 이처럼 기능적인 윈드실드 디자인은 당시 여러 자동차 메이커에 영감을 주었다고 한다.

안전성 높은 유리 탄생의 비화

모델 T부터 쓰기 시작한 유리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건물 창에 쓰던 제품을 그대로 자동차에도 쓰다 보니, 충격에 부서진 유리 조각이 탑승객에게 상해를 입히기도 했다. 이런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자 포드는 소송을 당하기 일쑤였다. 자동차가 부서져도 비산하지 않는 유리가 있어야만 포드는 법정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단순한 바람막이 역할로는 부족하고, 안전성까지 고려해야만 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안전 유리가 발명되기 전의 자동차 사고 (출처: flickr)

때마침 1903년 프랑스의 과학자 에두아르 베네딕투스(Édouard Bénédictus)가 질산 섬유소를 오랫동안 담았던 플라스크를 실수로 떨어뜨리면서 신기한 현상을 발견했다. 유리로 만든 플라스크가 깨지면서 당연히 파편으로 흩어질 줄 알았지만 삼각형 모양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는 오랜 시간 방치해 꾸덕꾸덕해진 질산 섬유소가 유리를 비산하지 않도록 했다는 것을 알아챘다. 그러나 중요한 현상이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그는 까맣게 잊고 삶을 이어나갔다. 그는 과학자이기도 했지만, 화가, 작곡가, 직물 디자이너 등 여러 가지 직업을 갖고 있어 무척이나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한다.

파손 후에도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접합 유리 (출처: historycollection)

어느 날 신문을 읽던 베네딕투스는 자동차 유리가 깨지며 승객에게 커다란 중상을 입혔다는 기사를 접했다. 그는 파손 후 비산하지 않았던 플라스크에 해답이 있다고 생각하고 밤새도록 연구에 몰두했다. 그리고 마침내 두 겹의 유리 사이에 질산 섬유소로 만들어진 필름을 샌드위치처럼 넣은 비산 방지 자동차용 유리를 만들었다. 우연한 실수로 인류의 안전을 위한 위대한 발명품이 탄생했던 것이다.

이 소식을 들은 헨리 포드는 1920년대부터 포드의 양산차에 베네딕투스가 발명하고 특허를 낸 접합 유리(laminated glass)를 도입했다. 자사의 자동차에 사용된 판유리가 깨져 여러 소송에 휩싸여 있던 포드에게는 자동차의 구조적 문제를 풀기 위한 해결책 또는 꼭 필요한 약롱지물(藥籠之物)이었다. 이후 베네딕투스가 개발한 삼중 구조 비산 방지용 유리 트리플렉스 또한 포드 차에 쓰였다. 1937년이 되어서야 미 연방규정에 따라 자동차의 뒤창을 제외한 모든 창에 판유리를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참고로 윈드실드를 제외한 다른 창문에 쓰이고 있는 강화 유리(tempered glass)의 시작은 1938년 PPG 공업에서 개발한 허큘라이트(Herculite) 제품이었다.

강화 유리가 깨지면 일반적으로 이런 형태가 된다 (출처: steppingintopm)

이렇게 발명된 비산 방지용 접합 유리(laminated glass)에는 두 가지 큰 단점이 있었다. 두 겹의 유리 사이의 셀룰로오스 층이 시간이 지나면 변색돼 어두워지고 부서지기 쉬워졌다. 외부의 충격에 쉽게 구멍이 뚫리는 일도 생겨났다. 운전 시야의 문제와 충돌 시 또 다른 안전사고를 야기할 수 있는 심각한 결점이었다. 그러나 이 문제는 금방 해결됐다. 1938년 칼턴 엘리스(Carleton Ellis)가 셀룰로오스를 대체할 폴리비닐부티랄 (PVB)을 개발해 더 강하고 자외선에 강한 자동차 유리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제품은 오늘날까지 여러 메이커에서 애용하고 있다.

유리 기술 발전은 발명의 역사

이렇게 눈부신 자동차 유리 기술이 발전하면서 1950년대 전후 여러 업체에서 대형 단일 곡면 유리로 만든 윈드실드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양산차는 뷰익 스페셜(Buick Special)로 컨버터블과 세단 등 여러 모델에 풀 랩 어라운드와 파노라마 윈드실드가 적용되었다. 당시 시대를 앞서간 자동차 메이커라 칭송받던 터커(Tucker)가 1948년 내놓은 터커 48도 빼놓을 수 없다. 이 모델은 리비 오웬스 포드(LOF)에서 생산한 라미네이트 유리 윈드실드를 달았다. 이 앞 유리의 설계에는 무척 독특한 점이 있었다. 위급상황에서 스펀지 고무 개스킷을 사용하여 앞 창문을 제거해 탈출할 수 있도록 디자인했다는 것이다.

선진기술의 총아라 불리던 1948 터커 48 (출처: flickr)

1952년에 알라스타 필킹턴(Alastair Pilkington)이 개발한 필킹턴 공정으로, 자동차 유리 생산에는 대혁신의 바람이 불었다. 현대에 만들어지는 대부분의 유리는 이런 방식으로 제조되는 플로트 글라스와 거의 같다. 이 유리는 표면이 매끄럽고 평평해 접합 유리와 강화 유리에 모두 쓸 수 있다. 또한 긁힘에 강하고 광 투과율이 높으며 온도 변화에 대한 내성이 있어 자동차용 유리 뿐만 아니라 인테리어용으로도 주목을 받고 있다.

자동차에 쓰인 필킹턴 글라스의 상표 및 표시 (출처: CPR Auto Glass)

이때까지 자동차 유리의 발전상을 보면 모두 세상에 없던 기술로 만들어졌다. 어떤 이들이 외계의 도움을 받은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하는 것이 이 때문일 것이다. 한편 우리나라에서도 유리 산업의 기초가 되는 판유리를 제작하기 비슷한 시기에 시작했다.

1950년대 움트기 시작한 우리네 유리 산업

한국전쟁 후 1957년, 국가 재건 사업의 일환으로 유엔(UN)의 도움을 받아 인천에 한국 최초의 판유리 공장을 건설한 한국유리공업주식회사의 전신인 인천판유리공업이 설립되었다. 이 회사는 문경시멘트와 충주비료와 함께 3대 기간산업으로 전쟁의 폐허를 극복하며 산업화의 밑거름이 되었다. 아파트와 건물 등에 쓰일 판유리 뿐만 아니라 형광등에 쓰이는 관유리, 자동차 유리 등을 생산하며 국내 최대 유리공장으로 성장했다

인천판유리공업 공장 준공식 (출처 Encyves Wiki)

1980년대 들어 경쟁업체의 등장과 저렴한 외국산 유리가 수입되면서 회사 경영에 어려움을 겪던 인천 남동구 만수동의 판유리 공장들은 문을 닫았다. 국내 시장의 경우 유리섬유 소재만 해도 약 80%가 해외업체가 장악한 상황이라고 한다. 그러나 자동차 유리 쪽은 다르다.

최근 자동차용 안전유리가 매출의 90%를 차지하고 있는 코리아오토글라스가 국내 판유리 점유율 50%의 KCC와 합병하며 글로벌 경쟁력을 키웠다. 또한 한글라스는 영국의 필킹턴, 미국의 PPG, 일본의 아사히 글라스, 니폰 시트 글라스 등 세계 유수 유리회사와 자본·기술·판매 제휴를 맺은 결과 플랜트를 해외에 수출할 정도로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다.

다양하게 투과율을 조절한 SPD 스마트 글라스 (출처: glass on web)

또한, 세계 최초로 투과도 가변 유리(SPD)를 개발하여 독일 메르세데스 벤츠사 등 세계 유수의 자동차, 항공기 업체로부터 주목을 받고 있다고 한다. 지금은 여러 유리 공장이 자동차보다는 방송과 건설 붐을 타고 시장에 필요한 LCD 유리 및 판유리를 제조하고 있다. 유리 생산 설비와 기술이 한쪽으로 쏠려있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짧은 역사지만 한국인은 고유한 근면 성실함과 뚝심으로 해외 시장에 진출할 만큼 성장했다. 현재 우리나라의 여러 자동차 유리 관련 기업도 유수의 해외 기업 못지않는 높은 수준의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자동차와 함께 진화하는 유리의 역사

미국 고속도로 교통안전국(NHTSA)은 1970년에 연방정부에 의해 신차의 안전 요건을 규제할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당시 이 안전국이 만든 법률은 차에 쓰는 유리와 많은 관련이 있었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안전한 드라이브를 위해 1980년대에 관련 법률이 시행되면서 산업 전반에 영향을 주기도 했다. 자동차 유리의 역사는 단순하지 않다. 소비자의 요구를 파악하고 시장의 변화에 따라 제품이 사라지기도 하고 세상에 없던 기술을 담아 진화된 모습을 갖고 등장하기도 한다.

단순한 바람막이로 시작된 앞 유리에 지금은 라디오와 TV 안테나, VICS와 GPS 수신부 등 다양한 기능이 포함되어있다. 사고 시 흩어지는 유리 조각은 이젠 우리나라에서도 1980년대 댄스음악처럼 낯설게 느껴진다. 시대에 따라 자동차 모델에 적용된 유리의 제조방식이나 디자인의 차이점을 아는 것도 자동차 역사와 진화를 인식하기 위한 좋은 방법이 아닐까 한다.

윤영준 (자동차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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