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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맛이 짜릿했던 두카티 트랙 데이

조회수 2021. 6. 4.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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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두카티 트랙데이

빨간 맛이 짜릿했던 트랙 데이

“두카티는 한국에서 트랙 데이 참가 용도로만 사도 아깝지 않은 거 같아.”주변 두카티 오너들에게 누누이 들어온 말이다. 1년에 단 네 번 열리는 브랜드 공식 트랙 데이를 위해 모터사이클을 구입한다고? 경험해보기 전에 이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다. 하지만 2021년 두카티 트랙 데이/PP 컵에 참가해보니 이해할 수 있다. 아니, 공감할 수 있다.

두카티 트랙 데이는 올해로 8년째 진행되는 행사다. 국산 및 수입 모터사이클 브랜드 전체를 통틀어 개최되는 거의 유일한 공식 트랙 데이 행사이기도 하다. 작년엔 코로나 19 바이러스 영향으로 대규모 모임에 제한이 걸리면서 트랙 데이 4회, PP 컵 6회라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 반면 올해 브랜드의 분위기는 좀 더 공격적이다. 방역 수칙에 따른 가이드를 철저하게 세우고, 교육 프로그램 리뉴얼, PP 컵 경기 방식 개선 등 만반의 준비로 이벤트를 한 단계 발전시켰다.

사실 바로 얼마 전까지도 트랙 주행은 생각해본 적이 없다. 2020년 가을 두카티 멀티스트라다 950S를 차고에 들인 후 사회적 거리두기 정책과 함께 대규모 모임 이벤트에 관심이 크게 떨어진 것도 이유다. 그보다 애초 장거리 투어를 목적으로 산 모터사이클이라 트랙 주행을 즐기겠다는 생각을 안 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이 스위치 올리듯 순간적으로 바뀌었다. 시작은 스마트폰에 전송된 하나의 메시지였다. “2021 두카티 트랙 데이, 신청 링크…” 호기심이 발동했다. ‘브랜드 트랙 데이 이벤트가 그렇게 만족스럽다는데, 참가해볼까?’조건을 살폈다. 

20분씩 총 4개 세션 트랙 주행, 점심 및 음료 제공. 피트 공간과 의자 및 테이블 제공. 심지어 랩 타임 측정용 폰더도 무상 대여해준다. 그런데 참가비용은 1인당 10만원으로 해결된다. 오전 타임에 트랙 라이선스 교육 및 발급도 진행되기 때문에 금요일 트랙 데이 단 하루를 알차게 보낼 수 있는 구성이다. 실력에 따라 PP 컵이라는 스프린트 레이스에 참가할 수도 있다. 트랙 데이 중간에 연습, 예선, 본선이 열리기 때문에 PP 컵에 참가한다면 거의 온종일 트랙을 달리게 된다.

이번 트랙 데이는 영암 코리아 인터내셔널 서킷(이하 KIC 서킷)에서 열렸다. 내가 사는 서울 강북을 기준으로 약 400km 떨어진 장소다. 모터사이클을 타고 가기엔 너무 힘들고, 별도 운송 수단으로 이동시키기엔 비용적으로 부담이었다. 하지만 두카티는 이 문제도 깔끔하게 해결해줬다. 정해진 시간에 서울 본사(혹은 지역별 지점)에 모터사이클을 입고하면, 무진동 트럭으로 영암 서킷까지 운송해줬다. 여기에 지불한 금액은 15만 원. 모터사이클을 운송해주고, 트랙 데이를 온종일 즐기는 데 25만 원 정도라는 것은 어떤 측면에서나 분명 합리적이다. 추측해보건데 1인 참가자당 발생하는 비용은 최소한 두 배 이상일 것이다. 그리고 그 부분은 브랜드가 자체 마케팅 비용으로 해결하지 않았을까 싶다.

레이싱 헬멧, 수트, 글러브와 부츠, 척추 보호대. 트랙 데이에서는 라이더의 몸을 보호할 안전 장비 착용이 필수다. 그렇게 안전 장비와 갈아입을 옷만 챙겨서 가벼운 마음으로 영암 KIC 서킷으로 향했다. 트랙 데이가 열리는 5월의 하늘은 푸르고 맑았다. 트랙의 입구에는 두카티의 상징인 빨간색 깃발이 펄럭였다. 

피트 한구석에 거의 모든 게 준비되어 있었다. 의자와 테이블이 마련됐고, 바로 옆에 멀티스트라다 950S가 미리와서 세워져 있었다. 트랙 데이는 10~30분 단위로 쪼개져서 모든 상황이 빠르게 진행된다. 따라서 사전에 제공된 스케줄에 맞춰 분주하게 움직여야 한다. 오전 9시, 참가자 확인 및 문진표 제출을 거쳐 KIC 트랙 라이선스 교육이 진행됐다. 그리고 이론 시험과 실기 주행을 거쳐 트랙 라이선스를 발급받았다. 

주행 그룹은 라이더의 성향과 실력에 따라 그린, 화이트, 레드로 신청할 수 있다. 처음 트랙에 오는 라이더를 위해서 두카티 라이딩 익스피리언스(DRE) 교육 프로그램도 별도 세션으로 준비된다. 내가 속한 그린 그룹은 랩 타임이나 경쟁이 목표가 아니다. 트랙을 온전히 즐기는 라이더로 구성되어서 쾌적하게 달릴 수 있었다. 서로 주행 라인에 영향을 주지 않기 위해 배려하는 모습이 좋았다. 

첫 세션에서 가볍게 몸을 풀고 두 번째 세션부터 좀 더 속도를 높였다. 정확한 제동, 확실한 자세, 불필요하게 몸에 힘이 들어가는 부분을 체크하며 랩 타임을 조금씩 줄여나갔다. 어느 순간 복잡했던 머릿속이 백지처럼 비었다. 빠르게 달리는 상황에서도 마음은 평화로웠다. 다음 코너를 완벽하게 돌기 위한 움직임에만 집중했고, 그 과정이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즐거웠다. PP컵까지 구경하거나 참견할 체력은 없었다. 그린 그룹에 정해진 세션을 모두 소화한 것으로 충분했다. 

매 세션 후 랩 타임을 받아서 비교하며 무엇이 잘못됐는지 생각해봤다. 그리고 마지막 주행 세션에 들어서며 최대한 나 자신의 한계를 넘어보려고 했다. 의욕이 넘쳤지만 클린 랩 기회가 좀처럼 오지 않았다. 욕심을 부린 탓에 실수도 했다. 당연히 아쉬운 기록으로 체커기를 받았다. 그렇게 오후 5시가 넘어서야 트랙 데이가 끝났다. 시간이 평소보다 곱절로 빨리 지나간 느낌. 그만큼 온전히 즐겼다는 의미였다. 

다음 두카티 트랙 데이는 6월 말 개최가 예정되어 있다. 당연히 이번에도 참가해볼 예정이다. 내 멀티스트라다는 회색이지만, 트랙에서 두카티 오너들이 말하는 ‘빨간 맛’을 제대로 느꼈다.


김태영(모터 저널리스트) 제공 월간 모터바이크 www.mbzine.com <저작권자 ⓒ 월간 모터바이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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