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3년, 모터쇼의 새 역사 쓴 GM 모터라마

조회수 2021. 6. 18.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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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M, 모터라마로 자사의 역사를 쓰다

요즘 모터쇼에서 정형적인 모습을 벗어나 브랜드마다 지닌 색깔이 묻어나는 모습이 보인다. 빠른 차는 서킷에서, 오프로드 성향의 모델은 캠핑장 등에서 고객과 만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게 되었다. 이런 메이커의 서비스가 최근 코로나 시대에 탄생했다고 보면 조금은 곤란한 면이 있다. 전부터 페라리, 메르세데스-벤츠, 애스턴 마틴 등 여러 유럽 메이커가 포뮬러 경주를 통해 팬들과 소통해왔다는 건 누구나 안다.

14만 이상 관람객을 모았던 1953년 제너럴 모터스 모터라마 (출처: wikimedia commons)

북미 업체들은 서킷이 아닌 다른 무대를 선택해 고객과 만났다. 대표적인 예로 제너럴 모터스 모터라마(General Motors Motorama)를 들 수 있다. 이 모터쇼는 GM이 1949년부터 12년간 매년 1월 첫째 주에 열었던 버라이어티 쇼였다. 이 행사는 패션쇼, 오케스트라, 발레 공연 등 볼거리가 풍성했다. 물론 GM이 보유한 시대를 앞선 자동차를 선보이는 장이라는 것은 기본이었다. 그중 1953년 무대에 등장했던 모델들 중 독창성과 생명력이 있었던 몇 가지를 소개한다.

1950년대 GM을 설명하다 - 뷰익 와일드캣

1953년 1월 뉴욕에서 제너럴 모터스 모터라마가 열렸다. 이후 시카고, 마이애미, 로스앤젤레스, 샌프란시스코, 달라스, 캔자스 시티를 순회하며 꿈의 자동차를 선보였다. 그중에서도 당시 첨단 소재였던 유리섬유 강화 플라스틱(FRP)을 차체에 쓴 뷰익 와일드캣(Buick Wildcat) 콘셉트카가 눈길을 끌었다. 1954년에 와일드캣 II가 만들어진 뒤에 이 모델은 와일드캣 I로 명성을 크게 얻었다. 이 차는 업체 첫 콘셉트카 와이 잡(Y-Job)처럼 향후 GM이 진화할 방향성을 담고 있었고, 판매가 목적이 아니라 자사의 기술과 디자인을 실험할 수 있는 모델로 지금까지 높게 평가받고 있다.

1953 뷰익 와일드캣 콘셉트카 (출처: flickr)

와일드캣의 차체 디자인은 손잡이 없이 스위치로 열리는 도어, 오목한 그릴, 전면을 감싸는 로켓 모양의 범퍼, 60도로 젖힌 랩 어라운드 윈드실드, 펜더의 15개 벤트 등 독특한 점들이 눈길을 끌었다. 바퀴가 회전하는 동안 허브 캡이 정지 상태를 유지하도록 설계된 로토 스태틱(Roto Static)을 적용하는 등 와일드캣은 혁신이란 단어 그 자체였다. 창문과 좌석 그리고 루프는 유압으로 개폐가 가능하도록 제작되었다. 파워트레인은 고성능 V8 엔진에 다이나플로우(Dyanaflow)사의 자동변속기를 결합해 가속은 더뎠지만 변속감은 부드러웠다.

럭셔리 컨버터블, 캐딜락 르망 콘셉트

르망 콘셉트는 1953년형 캐딜락 세단 표준 섀시에 맞춰 제작되었다. 전보다 짧은 캐딜락 331 CID(5.4L) V8 엔진에 세계 최초 양산형 자동 변속기 하이드라매틱(Hydra-Matic)을 사용하여 부드러운 변속감을 제공했다. 또한 외형적으로도 P-38 전투기 스타일의 테일핀 스타일을 채용하는 등, 당시 캐딜락의 여러 디자인 요소를 반영한 모델이기도 했다.

1953 캐딜락 르망 콘셉트카 (출처: wikimedia commons)

편안한 드라이브가 모토였던 GM의 자동차 철학은 랩 어라운드 윈드실드부터 화려한 크롬 계기판, 공간이 넉넉한 벤치 시트, 넉넉한 레그룸, 칼럼에 단 변속 레버 등을 채용한 르망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장수한 차명의 대표주자 - 올즈모빌 스타파이어

올즈모빌은 GM의 신개념 디자인을 적용하여 차별성에 무게를 두는 메이커로 유명했다. 1953년 모터라마에서 올즈모빌 스타파이어(Oldsmobile Starfire)를 보면 그 의미를 쉽게 알 수 있다. 차명부터 록히드 F-94 스타파이어 요격기에서 차용할 정도로 다른 브랜드와 달랐다. 또한 로켓 모양의 후미등 덕분에 303 CID(5.0L) 로켓 V8 엔진에서 뿜어져 나오는 165마력의 힘을 정지 상태에서도 느낄 수 있었던 것도 새로운 개념의 디자인 덕분이었다. 2인승 로드스터의 이미지를 버리고 안락한 좌석을 2열에 놓은 것도 신개념 요소라 볼 수 있다.

1953 올즈모빌 스타파이어 콘셉트카 전시 초대장 (출처: flickr)

GM 디자이너의 의도였는지 모르지만 스타파이어란 모델명은 올즈모빌 차에 꽤 많이 애용되었다. 1954년부터 90여 개의 컨버터블에 그 이름을 썼고, 1961년에 GM이 새로운 플랫폼 B-보디(B-Body)로 만든 고급 스포츠 럭셔리 모델에도 쓰였다. 나아가 1975년부터 5년간 생산된 올즈모빌 스타파이어 등에도 사용되며 오랜 시간 동안 생명력을 이어간 이름이라는 것을 증명했다.

콘셉트카 세상의 살아있는 전설이 된 쉐보레 콜벳

쉐보레는 콜벳 콘셉트카를 일반 관객들에게 처음 선보였다. 자동차 구매자들의 반응은 무척 긍정적이었다. 이에 발맞춰 제너럴 모터스 경영진은 콜벳 300대를 생산하기로 했다. 콘셉트카가 기술과 디자인의 실험 모델이자 소비자의 반응을 파악할 수 있는 마케팅 도구로서 가치가 있음을 콜벳은 증명했다. 콘셉트카 세상에서 살아있는 전설로 명함을 내민 순간이 아니었을까. 사실 쇼카로 이름 없이 사라진 차는 셀 수 없이 많았다.

할리 얼의 디자인 철학이 엿보이는 1953 쉐보레 콜벳 콘셉트카 (출처: Flickr)

그렇게 대중의 호응을 받으며 세상에 데뷔한 콜벳은 당시 첨단 소재로 주목받던 유리섬유를 차체에 유감없이 썼다.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비용 문제가 크게 작용했다. 프레스에 찍어 라인을 만들어내는 과정을 거치는 강판보다 공정에 드는 비용이 저렴하다는 것이 경영진에게는 매력적이었다. 또한 복잡한 곡선 라인을 수작업보다 훨씬 간결하게 만들 수 있다는 점도 유리섬유를 선택한 이유였다. 이로써 업체 최초로 차체를 유리섬유로 만들어진 양산차라는 별명이 생겼다. 대량생산 차의 전설이 될 만한 요소가 콜벳에게는 충분했다.

1953 GM 모터라마에서 선보인 쉐보레 콜벳 콘셉트카 (출처: Flickr)

1세대 콜벳의 엔진은 블루 플레임(Blue Flame) 직렬 6기통이었다. 이것은 총괄 디자이너 할리 얼의 개인적 취향이 영향을 많이 주지 않았을까 한다. 당시 그는 재규어 XK120가 직렬 6기통 엔진으로 세련된 가속감과 사운드를 만들어낸다는 점을 무척 높게 평가하고 있었다. 또한 쉐보레 브랜드가 경쟁 상대로 삼고 싶었던 것은 미국 브랜드가 아닌 유럽의 메이커였다는 점도 충분한 이유가 되었다.

1950 재규어 XK120 (출처: geography)

그렇게 생산된 300대의 콜벳은 빨간색 실내와 2단 자동변속기를 갖춘 폴로 화이트 모델이었다. 자동변속기가 미국 소비자층에 호응을 얻으리라 생각한 결과였지지만 실은 그 반대였다. 그런 이유로 양산차 데뷔 2년 후인 1955년부터 수동변속기 모델을 시장에 내놓았다. 유럽차를 경쟁자로 놓고 소비자의 구미에 맞는 마케팅으로 탄생한 모델 중 하나가 바로 1세대 콜벳이었다. 이 차는 지금까지 가장 아름다운 미국 스포츠카 중 하나라고 평가받고 있다.

더 많이, 더 자주 모터쇼가 열리길 바라며

올해 초, 작년과 마찬가지로 코로나19 영향으로 인해 도쿄 올림픽이 연기되었다. LA, 제네바 등 주요 글로벌 모터쇼가 취소 또는 무기한 연기되었다. 비단 국외 만의 사건이 아니었다. 세계자동차산업연합회(OICA)가 공인한 서울모터쇼도 올해 여름에 열릴 예정이나 구체적 내용은 불투명하다. 국내외 자동차 메이커가 모여 수많은 관객에게 자사의 기술과 디자인 그리고 자본력으로 만든 모터쇼들은 축소되는 분위기다. 반면 브랜드 마케팅은 온, 오프라인 여러 방면으로 확대되었다. 그래서 그런지 코로나19의 영향에서 벗어나면 어떤 형태의 모터쇼가 열릴지 궁금한 건 필자 뿐만 이 아닐 것이다.

윤영준 (자동차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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